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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굶주린상상력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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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닉네임변경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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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panic_88863
    작성자 : 굶주린상상력
    추천 : 68
    조회수 : 4753
    IP : 203.84.***.113
    댓글 : 29개
    등록시간 : 2016/06/29 15:5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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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 나는 선풍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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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선풍기다.

     

     

    나는 선풍기다.

    선풍기인 주제에 나는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

    생각 할 수도 있고, 흥분 할 수도 있다. 그래서 TV에서 뇌물먹은 정치가가 나오면 화를 내기도 하고, 내 주인인 그녀가 알몸으로 돌아다닐 때 살아있는 짐승보다 음란해 지기도 한다.

     

    아마도 나는 수컷인 듯 싶다. 무생물인 주제에 무슨 성별을 따지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남자의 몸에는 별로 흥분하지 않는 것을 보니 수컷이 맞는 것 같다. 동기 중에 한 녀석은 남자목욕탕으로 팔려가 남자들의 사타구니 물기를 말리고 있다고 한다.

     

    끔찍한 일이다.

     

    그렇다고 여자목욕탕의 형제들이 부럽지는 않다. 지금 나는 그녀에게 완전히 만족하고 있고, 지금의 삶이 즐겁다. 나는 그녀의 육체 하나만으로 완전히 만족을 느끼고 있다.

     

    그녀가 샤워를 마치고 맨몸으로 나의 바람을 통해 머리카락을 말릴 때, 내가 애무하듯 쏟아내는 미풍이 그녀의 젖가슴을 부드럽게 간질일 때, 유두 끝에 방울진 물방울을 조금씩 증발할 때, 느껴지는 바람의 냉기에 젖꼭지가 긴장할 때, 나의 음란한 풍력이 그녀의 기름진 아랫배 둔덕을 지나치며 검은 방초를 거칠게 휘몰아 칠 때, 그녀와의 생활속에서 느낄 수 있는 그 감질나는 열락은, 제조일자가 얼마 되지 않는 내 짧은 인생에서 느낄 수 있는 두 번째로 황홀한 것이다.

     

    그러면 내가 느끼는 최고의 오르가즘은?

     

    아무리 그래도 나는 무생물인 만큼 보통 생명들과는 조금 다른 성욕을 지닌 것 같다. 그녀와의 동거생활 중 내가 가장 황홀함은 느끼는 때는 따로 있다.

    나는 그녀의 발이 좋다.

     

    그녀가 매니큐어를 열어 발톱에 색을 칠할 때, 나는 전원을 켜지도 않았는데 온몸에 과부하 전기가 찌릿찌릿 오르는 듯한 흥분을 느낀다. 그녀가 매니큐어를 칠하는 모습에 무작정 흥분하는 것은 아니다. 발톱에 매니큐어칠을 끝낸 그녀가 매니큐어를 빨리 마르게 하기위해 나의 바람을 사용할 때 내 의식은 극락으로 인도된다.

     

    혹시라도 그녀가 알몸으로 있다면 금상첨화. 그녀의 하체가 내 시선에 통째로 노출되고, 나의 바람이 그녀의 숨겨진 괄약근을 간질인다. 화룡점정, 그녀의 발가락 사이와 복숭아뼈를 바람으로 쓰다듬을 수 있다면 나는 당장 폐기 되어도 아쉬울 것이 없는 도원경을 떠돌게 된다.

    아마도 살아있는 생물이 무언가를 혓바닥으로 핥을 때 촉감이 그러할까? 나는 내 바람을 생물의 혀처럼 휘둘러 그녀의 발과 아랫도리를 탐한다.

     

    그녀가 지내는 작은 아파트를 수시로 들락거리는 놈팡이가 있다. 그놈은 그녀에게 사랑, 애정, 함께할 미래 등의 사탕발림을 늘어놓지만 멍청하고 단순한 전기주전자도 그 말이 새빨간 거짓말임을 알고 있다. 그놈이 그녀를 찾는 목적은 결혼과 미래가 아니라, 쉽게 열어주는 그녀의 몸뿐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남자에게 별다른 증오나 분노는 품고 있지 않다. 풋내 나는 숫처녀였던 그녀의 몸을, 고작 6개월 만에 색기 넘치는 여자의 몸으로 만들어준 것에 오히려 감사할 정도다.

     

    그녀에 대한 성적인 의미로써 내 최고의 라이벌은 그놈이 아니라 헤어드라이어다. 나와 비슷한 바람 속성을 가진 전자제품인데다가, 이놈은 열풍을 불 수 있는 특수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습게도 헤어드라이어는 나를 조금도 라이벌로 신경 쓰지 않는다. 헤어드라이어의 라이벌은 그 놈팡이 뿐이다. 헤어드라이어의 라이벌 의식은 지나치고 왜곡된 부분마저 있어 그놈을 극도로 증오하고 있다. 언젠가 반드시 그놈을 죽여 버리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무슨 수로 사람을 죽이나?

     

    한 여름 그놈이 그녀의 아파트를 다녀간 날이면 나는 밤새도록 헤어드라이어의 질문에 시달려야 한다. 그 두 사람의 육체가 알몸으로 엉겨 붙을 때 헤어드라이어는 욕실 선반에 처박혀 있어야 하지만, 나는 두 사람에게 바람을 내뿜으며 일등석에서 라이브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떤 속옷을 입고 있었어?’

    자세는 어땠어? 도중에 몇 번이나 바꿨어?’

    그녀의 반응은 어땠어? 얼마나 느낀 거 같아?’

    그놈이 그녀를 거칠게 다루거나 하지는 않았어?’

    좀 더 자세하게 말해봐.’

    빌어먹을 그놈이 다시 찾아오면 이번에는 반드시 죽여 버릴 거야. 꼭 죽일 거야!’

     

    지겹다.

    사실 나는 그놈이 오는 것을 은근히 기다리기도 한다. 그놈도 그녀의 발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놈이 오는 날이면 그녀는 좀 더 신경써서 발을 치장한다. 당연히 나로서는 그저 좋은 일이다. 그놈이 그녀의 발가락을 애무할 때 살며시 바람을 뿜어내는 것에는, 이해하기 힘든 도착적인 쾌감이 있다.

     

    나는 내가 선풍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주어지는 것 이외에 내 스스로 그녀의 무언가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고 만족하며 살고 있다.

    때로는 24시간 내내 그녀의 발을 독차지하는 망상을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망상은 망상일 뿐. 헤어드라이어가 그놈을 죽일 수 없듯이 내가 그녀를 독차지 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꿈은 이루어진다!!!!!!!

     

    이럴 수가!!! 믿기지 않는다.

    전자제품에게도 영혼이 있는 것인가?

    간절히 소원을 빌면 누구라도 이룰 수 있는 것인가?

     

    먼저 헤어드라이어가 자신의 소원을 이루고야 말았다.

     

    그 이유는, 비록 사랑스럽기는 하지만 많이 멍청한 우리의 그녀가, 드디어 자신은 그 놈팡이의 장난감이었음을 깨달은 것에 있다.

    한 달 전 그녀는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놈은 울면서 저항하는 그녀를 무허가병원으로 끌고 가 강제로 낙태수술을 받게 했다. 그날 밤 욕실 선반에서는 헤어드라이어의 무시무시한 살기가 뿜어 나왔다. 하지만 우리는 가전제품이다. 제아무리 살기를 뿜어도 사람은 죽일 수 없다.

     

    문제는 그녀가 낙태수술을 받고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그 멍청한 놈이 그녀의 몸을 품으러 다시 아파트를 찾은 것이다. 그녀는 침착하게 부드러운 미소 마저 지으며 그놈의 몸을 받았고, 정숙한 아내처럼 그놈의 목욕물도 받아 준비했다.

     

    그리고 욕조의 따뜻한 물속에 누워 콧노래를 부르는 그놈의 사타구니를 향해 전원을 켠 헤어드라이어를 집어던졌다.

     

    그놈은 신음조차 내지 못했다. 다만 헤어드라이어의 환의에 찬 비명소리가 온 아파트를 뒤흔들었다. 아마도 내가 그동안 체험한 그 어떤 즐거움보다 더 격정적인 쾌락에 빠졌으리라.

     

    헤어드라이어의 소원이 이루어지고, 얼마 안 있어 내 소원도 이루어졌다.

    어찌된 영문인지 그녀의 발이 내 프로펠러 코앞에서 흔들거리고 있다. 나는 벌써 나흘 째 그녀의 발을 향해 바람을 뿜고 있다.

    그녀의 발에 뭔가 알 수 없는 것들이 기어 다니기 시작했지만 나는 여전히 행복하다.

     

    noname01.jpg

    출처 http://jooc.kr/contest/note.detail.html?nn=1003681
    굶주린상상력의 꼬릿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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