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작은 호롱</b></div> <div><br></div> <div>초등학생 때, 종종 H세촌이라는 산 속의 마을에 놀러 다니곤 했습니다.</div> <div>매년 여름이면 사진 찍는 게 취미이신 아버지를 따라 마을에 놀러가서</div> <div>마을 곁에 있는 강에서 수영하며 노는 게 즐거웠습니다.</div> <div><br></div> <div>초등학교 4학년 때의 여름에, 언제나 그랬듯 아버지를 따라 H세촌의 강에 놀러 갔습니다.</div> <div>아버지는 강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div> <div>진귀한 꽃을 발견하셔서 사진을 찍으려고 타이밍을 재고 계셨습니다.</div> <div>그 날은 여름치고는 센 바람이 불어서, 원하시는 타이밍을 좀처럼 잡지 못 했던 겁니다.</div> <div>날씨도 그닥 덥지 않아서 헤엄을 치다보니 몸이 완전 식어서</div> <div>조금 이른 시각에 차 안에서 옷을 갈아입었습니다.</div> <div>아버지는 여전히 타이밍을 못 잡아서 렌즈 안만 쳐다보고 계셨습니다.</div> <div>저는 따분해져서 강의 원류 쪽으로 걸어 갔습니다.</div> <div><br></div> <div>매미 울음 소리와 졸졸 흐르는 강물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습니다.</div> <div>얼마나 오래 걸었을까요.</div> <div>문득 돌아보니 아까 있던 곳은 보이지도 않았습니다.</div> <div>괜시리 불안해져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div> <div>그때 콰릉콰릉하는 소리와 함께 구름이 몰려와 하늘이 어둑해졌습니다.</div> <div>똑똑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가 했더니</div> <div>갑자기 소나기처럼 비가 쏟아져 내렸습니다.</div> <div>깜짝 놀라 옆에 있던 나무가 우거진 곳으로 피신했습니다.</div> <div><br></div> <div>얼른 그쳤으면 생각하며 불안해하는데, 갑자기 제 등 뒤로</div> <div>졸졸하고 물이 흐르는 소리가 났습니다.</div> <div>뒤돌아보니 조금 수풀 우거진 곳에 작은 시내가 흐르고 있었습니다.</div> <div>잘 보니 뭔가 빛나는 것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div> <div>흥미가 생겨서, 가까이 가서 잘 살펴보았습니다.</div> <div>그것은 작은 호롱 같은 것이었습니다. 천천히 냇물을 따라 흘러가고 있었습니다.</div> <div>어디서 흘러온 걸까?</div> <div>또 호기심이 일어서, 이번에는 냇물 위로 올라가 보았습니다.</div> <div>하지만 수풀도 우거진데다, 비구름 때문에 날도 어두컴컴해서</div> <div>발 아래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아서 몇 번이나 넘어질 뻔 했습니다.</div> <div><br></div> <div>10분 정도 걸었더니,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div> <div>약간 숨을 헐떡이며 다가가보니 마을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div> <div>손에 호롱을 들고 모여 있었습니다.</div> <div>그 사람 중 한 사람이 제가 있다는 걸 알아채고 손짓을 하길래 가보니</div> <div>우산과 작은 호롱을 저에게 주더니 함께 축제를 즐기자고 했습니다.</div> <div>그러고보니 음악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div> <div>잘 보니 『○미야 신사』라고 적힌 돌로 만든 신사 입구가 있었고,</div> <div>안에는 가게가 늘어서 있었습니다.</div> <div>아이들이 즐겁게 여우 가면을 쓰고 뛰어놀고 있었습니다.</div> <div>괜시리 저도 즐거워져서 같이 축제에 참가했습니다.</div> <div>참가했다고는 해도, 아까 주신 호롱을 강에 흘러보내는 게 다였지만요.</div> <div>다른 사람처럼 호롱을 물 위에 두었습니다.</div> <div>그런데... 제 호롱만 조금 흘러가더니 뒤집어졌습니다.</div> <div>불은 후욱하고 희미한 소리를 내더니 꺼졌습니다.</div> <div>그 순간 그렇게 신명나게 들썩 거리던 소리가 일순간 사라졌습니다.</div> <div>시끄러운 텔레비젼을 끈 것처럼 갑작스러운 정적이 찾아왔습니다.</div> <div>깜짝 놀라 둘러보니, 조금 전까지 뛰어놀던 아이들도, 친절히 대해주던 할아버지도,</div> <div>즐겁게 웃던 부부모두 슬픈 표정으로 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div> <div>옆에 있던 할머니가 아무 말 없이 제 손을 잡더니 거기서 끌어내셨습니다.</div> <div>손을 잡힌 채 저는 따라 갈었습니다.</div> <div><br></div> <div>어디까지 가시려나 싶어 고개를 들었더니, 눈 앞에 제가 헤엄치던 강이 있었습니다.</div> <div>지그재그로 걷던 사이 돌아온 것 같았습니다.</div> <div>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제 손을 잡아주시던 할머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div> <div>무서워져서 강을 따라 도망치듯 뛰어갔습니다.</div> <div><br></div> <div>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아버지 차가 보였습니다.</div> <div>차 옆에서 아버지께서 절 찾고 계셨습니다.</div> <div>"아빠!"</div> <div>제 목소리가 들리자 안심한 듯 아버지께서 손을 흔드셨습니다.</div> <div>그러다가 갑자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으셨습니다.</div> <div>"손에 든 건 뭐니?"</div> <div> 그건 조금 전까지 축제하던 사람들에게 받은 우산이었는데</div> <div>우산으로는 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서 우산 살이 보였습니다.</div> <div>아버지께 조금 전에 겪은 일을 말씀드리자, 고개를 갸웃하며 말씀하셨습니다.</div> <div>"비는 한 번도 안 내렸는데?</div> <div> 게다가 이 주변에 축제 같은 건 없을 걸?</div> <div> 저기는 나무가 우거진 곳이라, 사람들이 모일만한 곳은 없을 텐데..."</div> <div>그럴 리가 없다고 저는 필사적으로 말했습니다.</div> <div>그러자 아버지가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느낌으로 어느 집에 데려가 주셨습니다.</div> <div><br></div> <div>그곳은 아버지께서 ○세촌을 찾아올 때 종종 들리며 차를 얻어마시던 댁이었습니다.</div> <div>그 집에 가서 제가 말한 축제가 정말 있는지 물어보자는 것이었습니다.</div> <div>댁에 계시던 중년 아줌마가 거실로 데려가 보리차를 주셨습니다.</div> <div><br></div> <div>아버지가 축제에 대해 여쭤보니, 탄식을 하시며 이야기해주셨습니다.</div> <div>"별 일이 다 있네요. 그건 아마 ×××일 겁니다.</div> <div> 추석 쯤이 되면 돌아가신 분의 혼령이 ○미야 신사에 모여서 축제를 벌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어요.</div> <div> 초등학생 때 저희 친구인 치이라는 아이도,</div> <div> 길을 헤매다 그 축제에 갔다고 하는 거에요.</div> <div> 거기서 호롱을 주기에 강에 흘려보냈더니 가라앉았다는 겁니다.</div> <div> 가라 앉았다는 건 그 사람이 아직 살아있다는 증표거든요.</div> <div> 그래서 동료라고 생각했던 주변의 혼령들이 상처를 입는다더라고요"</div> <div>들어보니 그 치이라는 분의 경험담이 제가 경험한 것과 똑같았습니다.</div> <div>헤매서 들어가기 전에 비가 내렸다는 점,</div> <div>시내를 따라 올라가 신사에 도착했다는 점,</div> <div>마을 사람의 손에 이끌려 되돌아 왔다는 점......</div> <div>"시내 같은 건 없지만, 제 증증조부님 시대에는</div> <div> 분명 ○미야 신사가 그 곳에 있었다고 합니다.</div> <div> 하지만 워낙에 작은 신사였고, 주변에는 보다시피 수풀이 무성하잖아요.</div> <div> 시간이 흐르면서 아무도 참배하러 가지 않게 되었대요.</div> <div>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div> <div>저는 이때서야 등골이 오싹해졌습니다.</div> <div><br></div> <div>거기서 떠들썩하게 축제하던 사람들 모두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div> <div>제 손을 이끌며 이곳까지 데려와준 할머니도......</div> <div><br></div> <div>짤랑하고 풍경 소리가 울려퍼졌습니다.</div> <div>아무 생각 없이 풍경이 있는 옆 방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소리쳤습니다.</div> <div>거기엔 불단이 있었고, 영정 사진이 있었는데</div> <div>바로 저를 여기까지 이끌어준 할머니와 똑같았습니다.</div> <div>"어, 토메 씨 돌아가셨나요?"</div> <div>아버지도 불단을 보며 놀<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라셨</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습니다.</span></div> <div>"네, 한 반 년 정도 전에요. 88살이었으니 천수를 누리신 거죠"</div> <div>향을 피우시는 아버지 곁에 앉아, 저는 영정 사진을 바라보았습니다.</div> <div>닮은 것 같기도 한데, 좀 다른 것 같기도 했습니다.</div> <div>얼굴을 똑바로 본 것도 아니라서 단정 지을 수 없었습니다.</div> <div>아니, 축제 기억 자체도 왠지 흐릿해서, 아무리 생각해내려고 해도 기억이 희미해졌습니다.</div> <div>다만, 음악 소리만 뚜렷하게 남아 있었습니다.</div> <div><br></div> <div>그 후 몇 년이 지났습니다.</div> <div>저 일이 있었던 이래로 저는 ○세촌에 두 번 밖에 가지 않았습니다.</div> <div>신사를 찾아보려고 했지만, 정확한 위치가 기억나지 않았습니다.</div> <div>마을 사람들도 자세히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div> <div>한 번 더 가보고 싶지만, 아쉽게도 ○세촌은 20년 이상 전에 댐에 휩쓸려 가라앉았습니다.</div> <div>그 마을 풍경을 볼 수 있는 건 아버지 사진 밖에 없습니다.</div> <div><br></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