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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lovestory_91563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350
    IP : 14.58.***.139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21/04/01 22:16:03
    http://todayhumor.com/?lovestory_91563 모바일
    [BGM] 나비 한 마리가 날아오른다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강희근, 산에 가서




    나이 스물을 넘어 내 오른 산길은

    내 키에 몇 자는 넉넉히도 더 자란

    솔숲에 나 있었다


    어느 해 여름이었던가

    소고삐 쥔 손의 땀만큼 씹어낸 망개열매 신물이

    이 길가 산풀에 취한 내 어린 미소의

    보조개에 괴어서


    해 기운 오후에 이미 하늘 구름에

    가 영 안오는

    맘의 한 술잔에 가득 가득히 넘친 때 있었나니


    내려다보아, 매가 도는 허공의 길 멀리에

    때 알아, 배먹은 새댁의 앞치마 두르듯

    연기가 산빛 응달 가장자리에 초가를 덮을 때

    또 내려가곤 했던 그 산길은

    내 키에 몇 자는 넉넉히도 더 자란

    솔숲에 나 있었다

     

     

     

     

     

     

    2.jpg

     

    나태주, 내가 사랑하는 계절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달은

    11월이다

    더 여유 있게 잡는다면

    11월에서 12월 중순까지다


    낙엽 져 홀몸으로 서 있는 나무

    나무들이 깨금발을 딛고 선 등성이

    그 등성이에 햇빛 비쳐 드러난

    황토 흙의 알몸을

    좋아하는 것이다


    황토 흙 속에는

    시제 지내러 갔다가

    막걸리 두어 잔에 취해

    콧노래 함께 돌아오는

    아버지의 비틀걸음이 들어 있다


    어린 형제들이랑

    돌담 모퉁이에 기대어 서서 아버지가

    가져오는 봉송 꾸러미를 기다리던

    해 저물녘 한 때의 굴품한 시간들이

    숨쉬고 있다


    아니다 황토 흙 속에는

    끼니 대신으로 어머니가

    무쇠 솥에 찌는 고구마의

    구수한 내음새 아스므레

    아지랑이가 스며 있다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계절은

    낙엽 져 나무 밑둥까지 드러나 보이는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다

    그 솔직함과 청결함의 겸허를

    못 견디게 사랑하는 것이다

     

     

     

     

     

     

    3.jpg

     

    박성우, 민달팽이




    그가 귀가를 한다

    저 민달팽이의 등은

    지나치게 가벼워서 무거워 보인다


    걷는다는 표현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바닥까지 처진 어깨가

    천천히 길을 밀고 나간다

    언제부터인가 그에게는

    늘어진 양 어깨가 다리였으므로

    빨래처럼 처진 몸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어깨에 신는 신발은 없으니, 당장

    닳아질 희망의 뒤축이 없어서 좋겠다 그에게도

    한때는 감미로운 집이 있었다

    아이스크림 같은 집


    너무나 달콤하게 흘러내린

    똥 같은 집

    똥집도 안 파는 포장마차 같은 집

    잠시 멈춘 그가 집을 지나친다

    어쩌다가

    아이들만 누수 시켜 놓은 집


    한사코 그의 목에 감겨 있는

    저 실없는 실업

    그의 목을 한껏 조이고 있다

     

     

     

     

     

     

    4.jpg

     

    양현근, 황태




    종묘공원 지하보도 입구에 노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마른기침과 함께 장이야, 멍이야 불러내고 있다

    가로 세로로 얽혀 포진하고 있는 그물에

    바짝 마른 무료가 굴러 떨어진다

    담쟁이덩굴이 싱싱했던 푸른 날을 살짝 들여다보는데

    여기 저기 속 다 퍼주고 맑은 날 시린 날 견뎌오며

    남은 건 휜 등뼈 불끈 드러나는 싱거운 몸뚱이 뿐


    우리는 너무 건조해졌어

    건조하다는 것은 더 이상 슬프지 않다는 말, 오래되었다는 말

    가슴과 가슴사이에 더 이상 물기를 지니지 않는다는 말이지


    배식시간을 기다리던 노인들이 무료급식소로 줄지어 몰려간다

    낡은 신발밑창에서는 평생 질척거리던 길이 조금씩 삐져나오고

    굽은 어깨 위로 간기 빠져 나간 파도소리가 넘실댄다


    붉게 끓는 한 낮

    제 몸의 물기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잎들은 그늘을 만들어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5.jpg

     

    오세영, 우화(羽化)





    서가(書架)를 청소하다가

    우연히 뽑아든, 빛바랜 시집 한 권

    먼지를 털고 지면을 열자

    팔랑

    나비 한 마리가 날아오른다


    작년 늦가을

    책갈피에 꽂아 끼워둔

    코스모스 꽃잎


    인디고 블루

    그 적막한 하늘

     

     

     

     

     

     

    통통볼의 꼬릿말입니다
    kYOH2dJ.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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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4/02 18:36:16  59.2.***.158  사과나무길  563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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