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녀의 가정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증명이 되었다.
M의 휴대폰이 울렸다. 케이였다.
폰의 화면에는 케이의 애칭인 ‘유치한 ㅋ’라고 떠있었다.
M은 망설이듯 약간은 떨리는 손으로 폰을 집었다.
1초보다는 짧은 시간이지만 망설이는 것이 분명 느껴질 정도의 시간으로 폰을 엎어 탁자 위에 올려 놓았다.
이 짧은 찰나 M은 '케이가 자신의 전화를 받지 않으면 자신에게 문자를 보내올 것'을 짐작하고 폰을 엎어서 탁자 위에 올려 놓은 것이다.
M은 비열하게도 앞에 있는 지혜를 범죄의 공모자처럼 생각했지만, 실상은 지혜에게 또 다른 범행을 들키는 것에 대한 두려움뿐이였다.
자신이라고 지혜에 대한 최소한 예의를 차린다고 포장하는 M은 비열했다.
하지만 언뜻 보기에 ‘완벽한 범행의 현장’을 지혜는 순간적으로 잡았다.
“안 받고 뭐해요?”
지혜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빈정거림이 섞여있었다.
“음... 별로 중요한 전화가 아니라서요..”
M은 애써 웃음지어보려고 했지만, 그녀의 빈정거림속에 자신이 범행이 그녀에게 들킨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별로 중요한 전화가 아니면 제 앞에서 받으셔도 되요... 그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거든요\~”
그녀의 말투속에 역전에 대한 기쁨이 묘하게 싸여있었다.
“잠시 좀 전화받고 올게요...”
M은 이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 통화버튼을 눌렀다.
“어... 그래.. 왜?”
M은 애정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는 시큰둥한 목소리로 케이를 맞이했다.
복수심에서 말이다.
M은 자기 나름대로 케이에게 복수를 하고 있었다.
케이는 자신을 혼자 있게 만들고 서럽게 만든 M이 너무 미웠다.
케이는 하루만에 변한 그의 시큰둥한 태도에 미칠듯하게 가슴아프고 미웠다.
폭발하고 싶은 욕구를 참아냈다.
뒤이어 떠오른 케이의 생각은 자신을 이렇게 만든 M에 대한 복수였다.
M을 나락으로 떠러트려 그의 가슴이 아프길 원했다.
케이는 남자 동료와 술약속을 했다가 약속이 틀어졌다.
그 후 M에게 자신과 같이 있어달라고 요청을 했고, 이런 사실을 M이 알아 버렸다.
M은 치가 떨리도록 케이가 미웠지만, 그는 그녀에게 미움의 감정을 분출할 수 없는 ‘아는 오빠’ 같은 존재였다.
더 정확하게 어장의 물고기 같은 존재말이다.
M 과 케이는 이미 하룻밤을 보냈지만, 케이가 하룻밤의 꿈과 같은 일이었다고 좋게 포장했다.
일명 불장난 같은 것을 했을뿐이라고 단정지어버리고 ‘아는 오빠’로 계속 남아달라고 했었던 것이다.
K를 그렇게 자신의 하인처럼 만든 케이였지만, 케이는 지금 M이 하고 있는 소개팅과 통화하고 있는 M의 태도에 너무나 화가 났다.
자신이 그어 놓은 선을 저 남자가 빠져나가려고 한다.
자신에게 넘어오면 안되는 선! 자신이 그어놓은 자신의 울타리 같은 선!
이번에는 그 두번째의 선인 자기의 품안을 그남자가 넘으려고 하고 있다.
어장에 넣어준 물고기가 그 선을 벗어나 자신에게 상처를 주려한다.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과 상처를 받는 상황을 용납못했다.
자신은 상처를 주는 존재여만 했던 것이다.
자신은 온전히 말괄량이 여신이여야 했다.
상처를 주며 깔깔거리고 싶은 욕망과 상처받은 사람들로부터 온갖 경외심과 찬탄을 받고 싶은 욕구가 혼재한 말릴 수 없는 여신!
케이는 아픈 가슴을 진정시키고 그에게 물었다.
“뭐해.. 아직도 친구보고 있어?”
“어....”
“그래?... M이 가고 난 후 친구랑 약속잡았는데, 약속이 깨졌네?”
“음...어..."
“그런데, 엄마한텐 친구네 집에서 가서 자고 온다고 했는데...”
“어....”
마지막 ‘어...’라는 시큰둥한 말에 너무 화가난 케이는 비참한 맘이 들었지만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래서, 집에 가지 않고 오늘 M이랑 놀고 M 집에서 자려고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