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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best_63336
    작성자 : 이대리
    추천 : 15
    조회수 : 2137
    IP : 59.29.***.77
    댓글 : 5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4/10/08 12:02:59
    원글작성시간 : 2004/10/06 22:48:41
    http://todayhumor.com/?humorbest_63336 모바일
    ε★ 백마 탄 백수 [25]
    <FONT color="darkorchid"><span style="font-size:9pt"> <img src="http://hompy-img.dreamwiz.com/IMAGE/lee0172/f00001/f3m/@1.gif" align=left>
    <img src="http://hompy-img.dreamwiz.com/IMAGE/lee0172/f00001/f4m/@2.gif"> 제목 : <font size=4 color=blue face=바탕>백마 탄 백수</font>

    <img src="http://hompy-img.dreamwiz.com/IMAGE/lee0172/f00001/f4m/@2.gif"> 작가 : <font color=blue>이대리 ([email protected])</font>
    <img src="http://hompy-img.dreamwiz.com/IMAGE/lee0172/f00001/f4m/@2.gif"> 팬카페 : <a target="_blank" href=http://cafe.daum.net/2daeri><img src=http://hompy-img.dreamwiz.com/IMAGE/lee0172/f00001/f5s/@3.gif></a> </span></font>


    <hr>
    <font size=2>
    <center><font size=4 color=red>
    24편 재방송</center></font>



    최선책으로 눈부신 햇살 속에서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 그들에게 다정한 웃음을 건네며 화해 분위기 조성에 힘써봤다.


    『하.. 하핫.. 선생님.. 제가 원래는 이벤트업체에...』


    그러나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팔이 비틀림과 동시에 처절한 비명을 질러야 했다.


    『으아악!』


    흔들리는 퍼런 하늘 사이사이로 빌딩에서 고개를 내밀고 구경하는 사람들의 얼굴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으아악! 사람 잡네! 경찰 좀 불러줘요!』



    </b></font>

    <font size=2>

    <center><img src="http://hompy-img.dreamwiz.com/IMAGE/lee0172/f00001/f32m/2-1.gif"><img src="http://hompy-img.dreamwiz.com/IMAGE/lee0172/f00001/f77m/5-1.gif"> </center>



    경찰서 안은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손님들로 만원을 이루었다.


    뺑소니 치고 달아나다 걸린 택시운전사, 은행 앞에서 2인1조로 소매치기하다 잡혀온 청소년들, 한바탕 싸운 흔적이 얼굴에 또렷한 30대 부부와 노름하다가 끌려들어온 아저씨들.


    매일 밤 9시 헤드라인뉴스에 등장하는 1류 주인공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혹시나 카메라가 들이 닥칠까봐 고개를 푹 숙이고서 티셔츠로 얼굴을 뒤덮었으나 지나가던 형사1에게 출석부 같은 걸로 뒤통수를 한 대 맞고 도로 벗었다.


    잠시 후, 컴퓨터 앞에 앉아 독수리타법으로 타닥타닥을 연발하던 형사가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물어왔고 난 형사에게 속사정을 낱낱이 밝히며 석방을 요구했다.


    그는 따뜻한 미소로 친절하게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척 하더니 얼굴근육이 조금씩 일그러지며 금새 싸늘한 표정으로 식어버렸다.


    『강형사! 이 자식 강력계로 데꼬가!』


    『혀, 형사님. 정말이예요. 정말이라니까요.』


    『미친놈! 여자한테 점수 따려고 그 짓을 벌였다고? 어디 강력계 가서도 그 말이 나오나봐라!』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 형사에게 강력하게 호소해봤지만, 건장한 체구를 자랑하는 두 사내에게 이끌려 어둡고 음침한 지하실로 끌려가고 말았다.


    취조실 안은 마치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형사들이 용의자를 끌고 와 그를 진범으로 몰아가는 과정에서 온갖 육체적, 정신적 폭력을 행사하며 고문했던 그곳과 비슷한 풍경이었다.


    내가 장난 삼아 벌인 일이 얼마나 비극적인 참극으로 이어지는지 이제야 그 심각성을 느낄 수 있었다.


    테이블에 날 앉히더니 나랑 비슷한 목걸이를 차고있는 괴팍하게 생긴 강력계 형사가 핏발이 서서 터져 버리진 않을까 두려울 만큼 심하게 경직된 두 주먹에 가죽장갑을 착용하면서 이번 사건에 대한 진상을 캐물었다.


    『소속은? 한총련인가?』


    어둠 속에 어렴풋이 비치는 그의 턱은 회를 뜰 수도 있을 만큼 날카로웠고 눈은 내림굿을 받은 선무당의 눈까리마냥 기가 팍팍 들어 광채가 뿜어나고 있었다.


    『휘.. 휘트니스 소속인데요...』


    형사의 눈꼬리가 갑작스레 위로 치솟더니 터프하게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는 지퍼라이터를 찰칵 켠다.


    담배가 거꾸로 물렸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지만 이미 지퍼 불이 필터에 붙고 말았다.


    『이번 시위의 배후는... 켁켁! 이런.. 썅!』


    담배를 바닥에 과격하게 집어던지고 돌아선 그의 눈빛은 어둠 속에 빛나고 있는 짐승의 눈빛 마냥 빨갛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괜한 폼잡다 개쪽 당한 쪽팔림을 분노로 승화시켜 나에게 불똥을 튀기려는 것이었다.


    예상대로 그의 말투는 한층 더 업그레드 된 상태로 과격해졌다.


    『퉤! 이번 시위의 배후는 누구야! 말해! 빨리 말 안 해!』


    분노의 타액을 바닥으로 배출하더니 눈에 쌍심지를 켜고서 똑바로 대답 안 하면 쳐죽일 듯한 자세로 나를 깔아보는 형사에게 칼로 목을 위협 당하는 인질범처럼 헐떡거리며 대답해야했다.


    『프, 프로이벤트라고...』


    『뭐! 프로이벤트! 이런 개...., 좋아. 좋아. 순순히 불면 재미없지. 지금부터 나랑 좀 즐겨보자고.』


    윗도리를 훌쩍 벗어 던지고는 튼튼한 발을 의자 위에 척하고 걸치더니 바지를 양말 안으로 껴 넣는 액션을 취한다.


    런닝셔츠가 거꾸로 뒤집혀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었지만 차마 불난 집에 유조차를 몰고 돌진할 용기가 없어 참아야했다.


    핵무기 없는 이라크를 무차별공격으로 초토화시키고 나서 어거지로 핵을 찾아내려는 미국처럼 그도 육탄공격으로 날 반병신 만들고 나서 어거지로 진술을 받아내기 위해 준비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저 천하장사 이만기 다리보다 굵은 다리에 1mm만 살짝 빗맞아도 바로 개죽음 확정.
    이렇게 누명을 쓰고 개죽음 당할 순 없다.


    try와 BYC로 짝짝이 양말을 신고있는 그에게 울분을 토하며 사건의 경위를 밝혔지만 그는 어디서 개가 짓냐는 듯한 태도로 나에게 개죽음을 예고해주었다.


    『벼, 변호 받을.. 권리를 주세요!』


    끝까지 내 말을 믿지 않는 그에게 인권을 내세워봤지만 그는 사오정의 멘트로 대항했다.


    『뭐라고?』


    『아, 아니면..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뭐라고?』


    『그, 그러니까.. 미란다원칙이라고 해서 피의자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살려....』


    『뭐라고?』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말들을 총 동원하여 돌파구를 찾아보려 했지만, 사오정전술로 대항하는 막강한 그를 이길 길이 없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허리띠 간격을 한 칸, 두 칸, 세 칸씩 줄여가며 공격 준비태세를 마쳤다.


    『서, 설마.. 민중의 지팡이가 민중을 치진 않겠죠?』


    『썅! 오늘 귀가 왜 이렇게 안 들려!』


    그는 끝까지 사오정 전략을 써가며 섬뜩한 표정으로 어둠 속에서 시시각각 다가오기 시작했다.


    허걱! 민주주의 사회에서 아직도 이런 경찰들의 횡포가 잔존하고 있다니.


    공포에 찌들어 오장육부가 심히 오그라든 난, 나지막하게 살려달라고 애원해봤지만, 한강다리보다 튼튼해 보이는 그의 다리가 어둠 속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으앗!』


    『김반장님!』


    두 손으로 얼굴을 커버하며 비명을 질러대는데, 문밖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다급한 목소리에 형사의 발이 내 얼굴 1cm 앞에서 멈추었다.


    『뭔 일이야?』


    『데리고 나오랍니다.』


    남자의 말에 형사는 아쉽다는 듯이 얼굴에서 발을 조용히 내렸고, 난 아무 영문도 모른 채 그들에게 끌려 원점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렇게 원점으로 돌아오니 이벤트 업체에서 보내주었던 짝퉁 전경 10명이 온 몸이 초토화된 상태로 긴 의자에 나란히 앉아 '아이고 나죽네~'를 연발하며 신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비명횡사로 생을 마감할 뻔했던 난, 적지에서 아군을 만난 군인의 기쁨처럼 너무나도 반가운 나머지 소리를 꽥 질렀다.


    『형사님! 바로 저 아저씨들이 아까 제가 말한 이벤트 업체에서 보내준 사람들예요!』


    이제 나의 누명을 풀어줄 이들이 있기에 형사들에게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내 모습을 본 짝퉁 전경들이 얼굴을 어루만지며 소리친다.


    『저 사람입니다! 저 사람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요! 이봐! 당신 때문에 다들 병원에 입원하게 생겼잖아! 어쩔 거야!』


    허걱~! 이런 천인공노상을 수여받을 넘들! 한 배를 탔던 넘들이 물 속으로 다이빙해서 배를 뒤집어버려?


    어거지로 몸에 기스 낸 뒤, 눈깔 뒤집어 까고서 보상금을 요구할 불한당 같은 넘들! 남의 위기를 기회 삼아 한 몫 단단히 챙기려고 하는 너희들의 그 행동이 정녕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사회적 동물의 짓이더냐!


    연거푸 '아이고 나죽네'로 발악하는 그들과 지나가는 경찰들 허리에 매달려 있는 권총을 시간차로 주시했다.


    모두 연발로 쏴 죽여버리고 싶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어선 안 된다. 자칫하다간 꼼짝없이 저들의 치료비를 물어주게 될 것이다.


    나도 잽싸게 화내기 시스템을 가동해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댔다.


    『그게 내 책임인가! 고객의 성공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요즘 같은 불경기에 큰 건 하나 잡았다며 좋아하던 게 누군데! 그리고 그나마 그 정도에서 도망갈 수 있었던 게 누구 덕인데 그래!』


    순간, 옆에 있는 형사1에게 출석부로 한 대 또 맞았다.


    『아야!』


    우씨, 왜 나만 때리고 그래.


    『지금 당신들이 큰소리 칠 때야?! 당신들 때문에 의경들과 시민들이 얼마나 위험했는지 알기나 해! 200만원 때문에 그런 큰 일을 벌인 이벤트 업체나 여자친구에게 점수 따려고 그런 짓이나 벌이고 있는 놈이나 모두 똑같은 놈들이야! 다들 콩밥 먹고 싶어?!』


    지나가던 형사들이 인생 똑바로 살라면서 서류뭉치로 머리를 한 대씩 돌림빵으로 때리며 지나갔고 우린 눈알을 바닥에 깔은 채로 30분간 훈계를 들어야했다.


    자칫하다간 모두 구속수감 될 뻔했지만 모두들 전과가 없고 사건동기에 악의가 없었으므로 다행히도 벌금형만 선고받고 불기소로 풀려나게 되었다.


    결국 나의 1인 시위 작전은 벌금 150만원이라는 휘황찬란한 유종의 미를 거두며 일단락 되었다.


    비록 벌금 150만원의 벌금을 물게 생겼지만, 일이 이쯤에서 마무리돼 다행이었고 보라에게 그만큼의 점수를 얻게되었다는 확신에 스스로를 안심시킬 수 있었다.


    그래! 그깟 150만원은 잊어버리자! 내가 찾게 될 돈의 100분의 1도 안 되는 액수다. 까짓 거 돈 찾아서 일시불로 물어버리면 된다.


    귀신이 와도 기겁하고 달아날 만큼의 흉흉한 몰골과 옷차림으로 다리를 절뚝거리며 경찰서에서 빠져 나왔다.


    나오던 중에 내 옆에 누가 자꾸 따라오는 것 같아 옆을 바라봤었지만 그것은 나조차도 알아볼 수 없도록 망가진 끔직한 내 모습이었다.


    흐아, 번개를 연속으로 쓰리샷 당해도 이 정도는 안되겠다.


    혹시나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까 쪽팔린 마음에 얼른 택시를 잡으려 하는데 낯익은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꼴 좋다!』


    고개를 뒤로 돌려보니 경찰서 한쪽 모퉁이에 서있는 보라가 보였다.


    『어? 보라야. 너가 여길 어떻게..』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재빠르게 걸어오더니 어느새 내 앞에 바짝 붙은 그녀다.


    『한 대수. 너, 병신이지? 병신 맞지?』


    평소보다 높은 톤으로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엔 왠지 모를 분노가 실려있었다.


    『왜 그래. 보라야.』


    『솔직히 말해봐. 어제 내가 한 말 때문에 1인 시위 한 거지?』


    『아, 아냐. 나 원래 1인 시위 자주 했었어.』


    『씨퐁! 니가 불렀던 그 전경한테 다 들었어! 다 짜고 한 거였다며!』


    허걱! 100% 비밀보장하기로 했으면서 그걸 불다니!


    『보라야.. 그러니까 그건....』


    『너가 유치원생이냐! 아니면 두뇌가 꽉 막혀버렸냐! 해도 될 일과 해선 안 될 일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는 사고능력도 안 되냐! 왜 병신같이 앞 뒤 생각도 안하고 그런 일을 저지르냐! 그런 모습 보이고 나면 누가 좋다며 따라다니기라도 한 대냐!』


    그녀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허수아비처럼 보초를 서고 있던 경찰이 고개를 돌려 우리를 주시했다.


    『사랑에 눈이 멀어 두뇌가 꽉 막혀버렸는데 어떡하냐. 두뇌가 너로 꽉 막혀버렸는데.』


    『뭐! 너 정말로 날 좋아하는 거야? 평소에 안 하던 짓까지 해가며, 앞뒤 가리지 않고 이성을 잃어야할 정도로 날 좋아하는 거냐고!』


    점점 톤이 높아지는 그녀의 목소리는 분노가 아니라 흐느낌이었다.


    어리석은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단지 한 여자에게 관심 받기 위해 자신의 몸을 과감하게 버릴 줄 아는 한 남자의 용기 있는 모습과 이렇게까지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에, 그리고 자신의 말 한마디로 몰골이 말이 아니게 망가져 버려야 했던 내 모습이 감동스럽고 가엾어서 흐느끼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런 흐느낌을 남들과 다른 표정으로 다른 목소리로 표현하고 있는 것뿐이다.


    아무튼 오늘의 작전은 기대 이상으로 커다란 수확을 올리게 된 셈이다.


    이렇게 감동의 물결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때 영영 빠져 나오지 못하도록 거품으로 묻어버려야겠다.


    지금까지 수많은 여자들을 질질 짜게 만들었던 애틋한 눈망울로 슬픈 발라드를 연주했다.


    『그래. 한강에서도 고백했듯이 널 많이 좋아해. 그런데도 내 맘을 전혀 몰라주는 너에게 조금이라도 잘 보이고 싶어서 앞일 신경 쓰지 않고 이런 짓을 벌인 거야. 어쩌겠어. 내 심장이 내 두뇌가 그렇게 하라고 시키는데. 만약 저 경찰서 안에 오랫동안 갇히게 되었다해도 너한테만 관심을 살 수 있었다면 난 그걸로 만족할 수 있어. 너가 1초라도 흐뭇해하고, 1초라도 웃을 수 있고, 1초라도 기쁠 수만 있다면, 내가 버려야 하는 하루, 한달, 일년도 아깝지 않으니까.』


    『너란 인간 정말 이해가 안 간다! 나같이 성질 더럽고 과거까지 더러운 여자가 뭐가 그리 좋다고!』


    『그게 왜 더러운 과거야? 엄마 수술비 벌기 위해 다급한 맘으로 술집을 택해야했던 그 지난날들이 더러운 과거란 말야? 그럼 엄마는 죽어 가는데 더러운 과거 만들기 싫어서 엄마야 어떻게 되든 말든 자기 할 일만 열심히 하면 깨끗한 과거라도 된대? 설령 더러운 과거라고 치자. 세상에 그런 과거 한 두 개 씩 안 가지고 사는 사람들 있으면 나와보라고 그래. 또, 그런 과거 따위 가진 사람이랑 사랑하면 누가 집에 불이라도 지른대? 난 그런 거 절대 신경 안 써. 난 너의 지난 과거가 아닌 미래를 함께 열어가고 싶단 말야. 이제 내 맘을 좀 알아줬으면 해.』


    크아아... 이 돌발상황에서 이런 즉흥적인 애드립으로 대종상 남우주연상감 연기를 소화해내다니.


    한 대수, 이러다가 국민배우로 급부상 되고 장차 스필버그의 부름을 받고 할리우드로 스카웃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구나.


    『씨퐁, 그런 말하면 누가 멋있어 한 대냐! 멋 하나도 없다!』


    그녀의 눈물샘은 이미 촉촉이 젖어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혹시나 여린 감정을 들킬까봐 오히려 더 강한 척했고, 난 그런 보라의 억지스럽고도 귀여운 모습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피식 터뜨렸다.


    『왜 웃냐!』


    『아, 지나가던 개가 웃겨서. 저기 봐봐. 저 개야. 웃기지?』


    『분위기파악 못하는 놈.』


    『보라야, 이제 마음의 문을 여는 거지?』


    『내가 좌물쇠라도 걸어놨었냐? 이거나 이마에 붙여라.』


    그녀가 핸드백에서 대일밴드를 꺼내며 말했다.


    『괜찮아. 나 이런 거 안 붙여도 돼.』


    『씨퐁! 피 나잖아! 씩씩한 척 그만 하고 얼른 붙여!』


    『보라야...』


    『왜, 짜샤.』


    『칼라밴드야.』


    『내놔!』


    『보라야.』


    『왜!』


    『나 사실 온몸이 타박상이거든. 너희 집에 가서 좀 쉬면 안될까~』


    『우리 집이 피난처에 휴게실이냐! 걸핏하면 우리 집 가게?』


    『보라야.』


    『씨퐁, 왜!』


    『너랑 같이 있으면 금방 나을 것 같아서 그래.』


    『어후~ 닭살 같은 놈! 일 안 하냐?』


    『일보다 사랑이 우선이야.』


    『닭살 제조공장 같은 놈!』


    퉁명스럽게 내뱉는 그녀의 말투는 점점 다정하게 느껴졌고, 마라톤코스처럼 멀었던 그녀와 나 사이의 거리는 어느새 골인지점을 앞둔 400m트랙처럼 좁혀진 것만 같았다.


    그 동안 흘리고 버려야했던 땀과 피눈물과 자존심이 너무나도 존귀하고 거룩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집에 들어서자 금방 손님들이라도 다녀간 것처럼 집이 어수선해 보였다.


    혹시나 새로운 가구나 가전제품으로 바뀐 물건이 없나 내부를 쭈욱 둘러보았지만 모두 예전 그대로였다.


    허름한 냉장고, 프로펠러가 한쪽이 없는 선풍기, Gold Star라고 적혀있는 낡은 카세트.


    아직까지도 돈을 안 쓰고 있는 치밀함으로 봐서는 완전범죄의 선두주자임에 틀림없었다.


    『넌 여자가 어떻게 청소도 안하고 사냐?』


    『거기에 꼭 여자라는 말이 들어가야 하냐?』


    『넌 어떻게 남자도 아니면서 청소도 안하고 사냐?』


    『그래도 너처럼 먼지 수집은 안 한다.』


    『훙! 내가 뭐 게을러서 방 청소 안한 줄 아나 본데, 좀더 나은 쿠션에서 자기 위해 일부러 안한 거다.』


    『헛소리 그만하고 빨리 등이나 까봐.』


    마루바닥에 대자로 뻗어 티셔츠를 위로 걷어 올렸다.


    그러자 자세히 보지도 않고 입을 크게 벌리며 놀라는 그녀다.


    『왜? 심각해?』


    『인해전술 하는 인민군한테 밟혀도 이 정도는 안 되겠다.』


    『그렇게 심해?』


    『그래도 이 정도면 다행인줄 알아라! 너 물대포 맞고 떨어질 때 사람들 없었으면 땅바닥에서 헤드스핀 하다 전사했을 거다.』


    『아깝다. 국립묘지에 안치될 수 있었는데.』


    『국립묘지 좋아하네. 하수구에 안 묻히면 다행이지.』


    보라는 정성스럽게 내 등에 연고를 발라 주었고 난 바닥에 얼굴을 파묻은 채 보라의 얼굴을 지긋이 올려보았다.


    올려다 보이는 보라의 얼굴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포근한 모습이 담겨있었다.


    이렇게 사람이 한 순간에 달라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너 웅변솜씨 하나는 끝내주더라.』


    연고를 다 바른 보라가 낡은 선풍기를 작동시키면서 말했다.


    『하핫! 그것이 지금의 한 대수를 지탱하는 원동력이다.』


    『칫, 근데 그 기나긴 대사들을 어떻게 다 외우고 나갔냐?』


    『티비 방송 프로그램을 거꾸로도 외우던 나다.』


    『그래, 니 똥 칼라다.』


    갑자기 밀가루 반죽하듯이 등을 주물럭주물럭 문질러대는 그녀다.


    『악! 아파!!』


    『남자새끼가 엄살은!』


    『이제 그만 문대고 얼음찜질 좀 해주라.』


    『씨퐁, 여기가 안마소에 찜질방이냐. 바라는 것도 많네.』


    연고가 마르는 동안 터덕터덕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와 낡은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재즈음악에 장단을 맞춰 궁딩이를 번쩍 들었다 내렸다하며 굼뱅이 춤을 연습하고 있는데, 갑자기 등위에 차가운 물체가 올라왔다.


    『앗! 차가워. 이건 뭐야?』


    『얼음 없어서 냉동실에 있던 생선이랑 고향만두 올렸어.』


    『집에 얼음도 없어?』


    『뭘 그렇게 바라는게 많아! 팍! 팍!』


    『으악!』


    땡땡 얼어붙은 생선대가리로 내 등에 난타질을 가하다니.


    그 생선대가리는 망치대용으로 써도 될 만큼 높은 강도를 지닌 대굴통이구나.


    『한번만 더 불만스러운 모습 보이면 하이힐 신고 와서 밟아버린다.』


    우왓! 아무리 포근하게 변신해도 그 무서운 불씨는 24시간 훨훨 타오르고 있구나. 번갯불 같은 여자.


    등위에 온갖 잡동사니 냉동식품들을 번갈아 올려가며 냉동찜질을 한 후, 예전에 깍두기가 입었던 디스코바지와 필라티셔츠로 옷을 갈아입고서 발자국으로 디자인을 이루고 있는 옷을 세탁기에 돌렸다.


    덜커덕 덜커덕, 요란하게 돌아가는 세탁기소리를 들으며 펑퍼짐한 옷차림으로 그녀가 차려준 밥상 위에 마주보고 앉았다.


    『맛없어도 그냥 먹어.』


    『이야~, 진수성찬이네. 너한테 이런 여성스런 면이 있었다니.』


    『아부 그만 떨고 어서 드시지.』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고 있는 된장찌개 비슷한 국물을 한 스푼 떠서 입 속으로 낼름 넣어봤다.


    읔... 졸라 짜다!


    된장찌개가 아니라 소금찌개구나.


    셋이 먹다 둘이 죽어도 모를 맛을 기대했지만, 이건 중국 인구 중에 한 명만 죽어도 알 수 있는 듯한 천상의 맛이었다.


    『밥 먹다 말고 왜 인상 쓰냐? 맛없냐?』


    『아니, 등이 따가워서.』


    『밥 먹을 때까지만 참아.』


    『으, 응.』


    난 똥 씹은 표정을 감추며 먹느라 고문이었는데, 보라는 된장국에 밥을 말아서 배추김치와 함께 너무나도 맛있게 먹고 있다.


    밥 먹을 때, 마치 공주라도 된 것처럼 가식적인 모습으로 조심조심 먹는 여자들과는 달리 손가락으로 조개를 팍팍 건져내어 훌쩍훌쩍 알을 빼먹는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마지막 조개를 동그랗게 벌린 입 속에 훌훌 털어 넣더니 갑작스럽게 뭐가 생각났다는 듯이 입안에 있는 알을 꿀꺽 삼키며 묻는다.


    『너 아침에 시간 돼?』


    『그건 왜?』


    『나, 내일부터 우유배달 하는데 내가 워낙 길치라서 그러거든. 길 익힐 때까지만 따라다니면서 좀 도와달라고.』


    『뭐? 우유배달?』


    『왜! 너 배도 많이 나온 것 같던데 이번 기회에 살도 뺄 수 있고 좋잖아. 그리고 열심히만 해준다면 100만원은 없었던 걸로 해줄 수도 있어.』


    참나, 우유공장을 차려도 시원찮을 이 판에 우유배달을 한다고?


    이젠 별의 별 수법을 다 동원해서 완전범죄를 저지르려고 작정을 했구나.


    아직도 우리 사이의 거리가 많이 남아있는 것일까. 왜 자꾸 멀리 달아나려고만 하는 걸까.


    혹시 날 실험하려고?


    훙! 그렇다고 하더라고 이건 절대 못한다.


    안 그래도 센터 들어와서 맨 날 레슨 받고 영업하느라 짜증나고 힘들어 죽겠는데 여기서 또
    우유배달까지 했다가는 작전이고 뭐고 바로 과로로 쓰러지고 말 것이다.


    그리고 아침 8시에 일어나는 것도 고문인데 새벽에 기상하라고?


    영안실 냉동 칸에 처박히는 일이 있어도 절대 못한다!


    『뭐, 싫음 말고. 너 말고 도와줄 인간 많으니까.』


    『아후~, 좀 더 일찍 말하지 그랬어. 나 내일부터 새벽 반 학원 다녀야 하는데.』


    『너가 무슨 학원을?』


    『뭐 그냥 자격증 따는 학원이야. 이거 아쉬워서 어쩌지. 맘 같아선 학원 때려치고 너랑
    같이 우유배달하고 싶은데. 그렇다고 우유배달 때문에 내 꿈을 포기할 수도 없고 말야. 그런
    중요한 일이 있으면 진작에 말해주지, 왜 지금까지 꼼쳐두고 있었어. 사람 미안하게 말야.』


    『됐다. 말만 들어도 고맙다.』


    휴~ 겨우겨우 위기를 넘겼구나.


    좀만 순발력이 늦었어도 당분간 엄청 피곤해질 뻔한 순간이었다.


    그녀의 입에서 또 다른 말이 나올까봐 두려워 밥을 된장국에 말아 재빨리 원샷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밥그릇을 다 비운 그녀가 숟가락과 빈 밥그릇을 들고일어나며 말한다.


    『나 레슨 가봐야 하니까 그만 나갈 준비해라.』


    방금 탈수가 끝난 축축한 옷을 잽싸게 꺼내 입고 보라와 함께 집에서 나왔다.


    원래는 다리미질까지 하고 나오는 게 계획이었지만, 혹시나 우유배달얘기가 또 나올까봐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르기가 싫었다.


    『참, 보라야. 박부장한테 잘 좀 말해 줘라.』


    『같이 안 들어 갈 거야?』


    『이 상태로 어떻게 들어가냐.』


    『회사가 니 놀이터냐. 상황 따지면서 골라 나가게? 암튼 못 봤다고 할 테니까 너가 알아서 말해라.』


    『하핫! 고마워. 낼부턴 열심히 일할게.』


    『그걸 왜 나한테 말 하냐?』


    『너가 내 삶의 박카스니까.』


    『또 닭살 튀어나오겠다. 먼저 간다!』


    입을 삐죽이더니 등을 훽 돌리는 보라다.


    가벼운 츄리닝 차림으로 오늘 산 재즈음반을 들고서 점점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는 분명 지금까지 내가 만나온 수많은 여자들과 다른 여자였다.


    다가간 듯 하면 멀어져있고 또 가까이 다가간 듯 하면 저만치 멀리 달아나 있는 그녀.


    이젠 끝났겠지 하고 안심을 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있는 그녀.


    날 대하는 감정의 굴곡이 없이 항상 일직선으로만 달리는 그녀.


    그녀의 행동과 말투를 봐선 나에 대한 그녀의 속마음을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한가지 분명한 건 오늘 일로 우리 사이가 좀더 매끄러운 사이가 되었다는 것.


    이 확실한 작은 변화에 난 또다시 힘을 내고 파이팅을 외쳐야만했다.


    그래, 겨우 이 정도 활약에 의해, '대수야, 넌 정말 멋진 애구나. 나 이제부터 내 심장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널 사랑하기로 했어.'라는 연약한 말을 내뱉으며 쉽게 무너질 여자가 아니었다.


    아무래도 이번 작전은 장기전으로 돌입하게 될 것만 같다.


    그렇다면 체력을 리필시켜 체력 전으로 승부해야겠구나.


    좋다! 그 끝이 어딘지 끝까지 가보는 거다.


    필승을 다짐하며 축축한 옷차림으로 끄적끄적 집으로 향했다.


    얼음찜질을 하고 나니 몸이 한결 가라앉은 듯 했지만 내가 걸어가는 그 목적지엔 잠시 잊고 있었던 지옥의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다시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거워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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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nt size=6 face="궁서"> 컷~! </font></b> <img src="http://hompy-img.dreamwiz.com/IMAGE/lee0172/f00001/f10m/@8.gif"></center>


    <center>

    그동안 한없이 부족한 [백마 탄 백수]를 사랑해주신 회원님들 모두 감사합니다.

    아쉬운 소식이 하나 생겼는데 이 곳 유머 작가방이 곧 사라진다고 하는군요. ㅜ.ㅜ

    그동안 여러분들의 추천을 먹고 살았었는데 이젠 뭘 먹고 살아야할지. 훌쩍~!

    앞으로 저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혹시나 글을 게시판에 올리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미리 글의 출처를 남깁니다.

    <font size=2 color=red><b>출처 - http://cafe.daum.net/2daeri </font></b>

    오유님들 모두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계속 만날 수 있길 간절히 바랍니다.


    </center>
    <img src="http://hompy-img.dreamwiz.com/IMAGE/lee0172/f00001/f16m/suyoung92_103.gif"> <font color=#969ac2>나누어 줄수록 더욱 풍요로운 따뜻한 말 한마디가 용기를 주고 사랑을 전하게 됩니다. </font>


    <center>
    <img src="http://hompy-img.dreamwiz.com/IMAGE/lee0172/f00001/f191m/12-11.gif"></center>

    <!----------모자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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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리의 꼬릿말입니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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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10/10/26 23:58:02  121.181.***.102  스키스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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