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서로 몸을 부둥켜안았고 난 녀석의 콧구멍을 이탈한 코털을 보는 순간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푸하하합! 짜식, 멋지다. 멋져!』
포장마차에서 나와 우정을 재확인하기 위해 골목 담벼락에 나란히 서서 오줌을 갈겼다.
아~~ 이 배설의 즐거움.
THE DAY - 1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왔다.
오늘 내 성과에 따라 보라가 떠나느냐 안 떠나느냐, 대박을 찾느냐 마느냐가 결정될 것이다.
만에 하나 작전 미스테이크라도 하는 경우엔 사랑이고 복권이고 모든 게 물거품이 된다.
그러나 쫄아버린 면빨이 될 필요는 없다.
비장의 무기와 히든카드를 들고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센터에서 나올 때, 재즈복과 라켓, 장갑, 운동화를 하나씩 봉지에 넣고 나왔다.
그리고 명함 제작소에 주문해 둔 비디오방 평생 할인 쿠폰도 찾아왔다.
천천히 걸으며 어제 밤새도록 연습한 대본을 보며 마지막으로 멋지게 대사 연습하고는 목적지로 향했다.
이번 목적지는 어제 밤새도록 연구한 장소이다.
바로, 사람들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영등포역 앞이다.
역 앞이라는 걸 감안해볼 때 이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유동인구의 30%정도밖에 안 되겠지만,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 30%만 공략한다 하더라도 엄청난 인원이다.
어젯밤 밤새서 만들어온 커다란 플랜카드 세 장과 센터 내부사진과 봄날 아줌마 사진을 줄에 대롱대롱 매달았다.
웰빙 재즈댄스! 웰빙 스쿼시! 웰빙 헬스! 50%할인 대 잔치!
오픈 기념행사! 재즈복, 라켓, 장갑, 운동화 무료 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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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주워 온 탁자 위에 상품들을 일렬로 쫙 깔고 풍선들을 불어 공중에 몇 개 띄었다.
또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집에서 준비해 온 카세트로 신나는 음악을 크게 틀었고 마이크샾에서 대여해 온 엠프와 마이크를 장착했다.
그렇다. 오늘 돈도 신경도 무지하게 썼다. 갖가지 테크날라지를 적극활용하기 위해서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시선은 늘어갔고 발걸음을 멈추고 구경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게 되었다.
여 알바생 앞에서도 당당히 에로물을 빌리는 용기의 사나이 한대수지만, 사람들의 시선도 많아지고 혼자라서 졸라 쪽팔렸다. 꼭 신장 개업한 가게 앞에서 춤추는 도우미가 된 듯 한 기분이다.
그러나 잠깐만 쪽팔리면 대박인생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에 최대한 용기를 가졌다.
앗! 드디어 때가 온 것 같다.
얼굴에 철판 깐 용접공보다 더 두꺼운 철판을 깔고 나무 상자 위로 올라가 멘트를 시작했다.
『오늘 하루도 대한민국 경제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시는 시민 여러분. 10분만 저에게 투자해주십시오. 날씨도 더운데 잠시만 얼음을 해주시면 제가 10분 후에 땡 해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내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우렁차게 울려 퍼졌고 여기저기서 웅성웅성 하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여러분, 잠시 레크리에이션을 하고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왼 손을 들면 박수를, 오른 손을 들면 함성을 질러주십시오.』
왼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이번엔 오른 손을 번쩍 들었다.
역시나 함성소리들이 들려왔다.
하핫! 잘도 따라해 주는구나.
마지막으로 양손을 번쩍 들어 만세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사람들의 박수소리와 함성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두 팔을 번쩍 치켜든 상태로 열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이리저리 바라보는데 저 멀리 지나가던 사람들이 무슨 일 났냐며 달려오는 모습들이 보였다.
오케이. 일단 사람들 끌어 모으기와 시선집중에 성공했다.
『하핫!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본 행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잠시 카세트 음악을 크게 틀었다 끈 다음 어제 밤새도록 외운 대사를 시작했다.
헥헥, 혼자 다 하려니 엄청 빡세구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 최고의 강사진과 분위기를 자랑하는 휘트니스 스포츠클럽입니다. 요즘 많은 현대인이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더불어 신체적으로 순환기, 호흡기, 소화기계의 질병과 당뇨병, 고혈압, 심장병, 간경화증, 만성위염 등 성인병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대사회의 공포대상인 성인병은 운동 부족에서 온다고 하여 <운동 부족병>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운동과 관련된 생활에 무관심하며 살고있습니다. 운동 좀 하라고 조언하면 십중팔구 돌아오는 대답. "지금 제 상황에선 운동이 아니라 '노동'입니다." 하지만 그런 귀차니즘의 마음가짐으로는 평생가도 운동의 운도 시작하지 못 할겁니다. 그렇게되면 잘먹고 잘사는 웰빙 라이프에서 멀어지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여러분, 이제는 답답한 사무실에서 벗어나 활력을 찾아보십시오. 진정 업그레이드된 삶을 위한다면 하루빨리 운동을 시작해야합니다. 여성분들이여, 굶는다고 다이어트 저절로 되는 거 아닙니다. 저희 휘트니스에 오셔서 에너지 소비량을 바로 알고 체지방을 줄여나가는 과학적인 운동방법으로 다이어트 하시면 어느새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시게 될 겁니다. 그리고 남성분들, 요즘 인기를 얻고있는 몸짱 열풍에 합류하고 싶으시다면 저희 휘트니스로 오시기 바랍니다. 세 달만 체계적으로 하시면 알통공장 만들어서 나가실 수 있습니다. 혹시나 운동 3개월에 24만원 지출하는 거 아까워서 안 하시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24만원 투자해서 내 몸 건강히 만들면 운동부족으로 생기게 될 많은 병들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고 치료비 또한 절약할 수 있으며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수명도 늘릴 수 있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돈이 없어 못하시겠다는 분들, 지금 그렇게 무리해가며 돈 벌어봤자 나중에 그 돈 써보지도 못하고 건강 찾으려다가 치료비로 다 쓰게 될 겁니다. 그렇게 한번 잃어버린 건강은 아무리 큰돈으로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건강은 여러분들 스스로가 책임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분의 건강을 저희 휘트니스에서 찾아드리고자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특별행사로 스쿼시, 재즈댄스, 헬스를 한 묶음으로 묶어 3개월에 24만원에 접수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특별 이벤트로 여러분들의 편안한 휴식을 위해 영등포에서 가장 안락한 장소로 소문난 비디오방업체와 협력을 맺어 운동으로 피곤해진 여러분의 심신을 달랠 수 있게끔 평생할인권을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지금 신청하시는 분들에게 한해 스쿼시 라켓과 필라 운동화 및 재즈복과 헬스장갑도 하나씩 드릴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조건인데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망설이고 계신 분들이 계시리라 봅니다. 이런 좋은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는 현명한 사람들 되시길 바랍니다. 그럼 여러분의 현명한 선택을 기다리겠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이 앞으로 줄을 서 주시기 바랍니다.』
나의 청산유수 같은 연설이 끝나고서 나를 마주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환한 미소를 보이며 반응을 살폈다.
근데 모두들 죽은 듯이 조용했다.
설마, 이렇게 열심히 준비를 했는데.., 한 명도?
갑자기 모든 세포가 마비되어 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만약 여기서 승부를 못 본다면 더 이상의 승부는 없을 것이다.
점점 표정이 굳어가고 있을 무렵, 어디선가 박수를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박수소
리는 옆으로 앞으로 뒤로 퍼져나갔고 금세 영등포 역 주변이 박수소리로 웅장하게 울려댔다.
그리고 입을 다물고 있던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여보, 이참에 우리도 운동이나 한번 해볼까?』
『나도 봄날 아줌마 되 볼까요?』
『재식아, 나랑 같이 끊자.』
『야, 난 운동보다 영화가 더 좋다. 빨리 하자.』
사람들의 반응은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했고, '남들하고 싶어하는 건 나도 하고 싶은' 한국인들 특유의 따라하기 심리로 인해 그 열기는 더욱더 불이 붙어갔으며 줄은 점점 길어져 갔다.
아.... 드디어 성공인가.
한 대수. 이렇게 성공하는 건가.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리고 묘한 오르가즘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성취감이라는 건가. 첨 느껴보는 감정이다.
『모두들 정말 감사합니다. 이 무한한 은혜를 몇 개월 할부로 갚아드려야 할지. 흑흑.』
한 사람 한 사람 카드를 전표에 긁고 회원증을 만들어 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렇게 신용카드의 번호와 서명을 전표에 긁어 제출하면 부장님이 승인을 얻어서 바로 다음날 돈이 은행으로 입금되는 방식이다.
총 23명의 사람이 이 자리에서 바로 회원가입을 했다.
그 누구의 말대로 직접 가보지 않고 운동을 끊는다는 것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일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보란 듯이 많은 사람들을 가입시키는데 성공하고 말았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전략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고 승부에서 이겼으며 보라를 묶어두는데 성공한 것이다.
오늘 나의 성과로 박부장과 이팀장이 힘을 얻었고 그 만큼 센터 분위기가 다시금 활력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그 동안 요령만 피우던 내가 한방으로 모든 이미지를 만회하게 되었다.
이젠 어느 정도 여유도 생기게 되었고 센터 내에서 체면도 서게 됐다.
이렇게 상승세를 타게 됐을 때 그녀에게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
발이 묶인 그녀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대쉬해 하루빨리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돈의 일부를 받아내야만 한다.
혹시나 그녀가 돈을 다른 곳으로 빼돌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일단은 그녀와 아무 거리낌없는 사이가 되도록 빨리 친해지는 게 급선무다.
하루동안 데이트를 하면 금방 친해질 자신 있다.
그렇다면 데이트신청을 해야겠구나.
1회 레슨을 마치고 아무도 없는 헬스장에서 열심히 벤치프레스를 하고 있는 보라에게 갔다.
『보라야, 어때? 회원 좀 느니까 좋지?』
『능력도 좋구나. 그런 능력이 있으면서 왜 그 동안 썩히고 있었냐.』
『하핫! 진정한 무림의 고수는 함부로 칼을 빼지 않는 법이거든.』
『그럼 그 동안 칼 뺄 일이 없어서 백수생활 했었던 거냐?』
『거기서 백수얘기가 또 왜 나오냐. 그건 그렇고, 이제 계속 있을 거지?』
『약속은 약속이니 더 있어야지. 근데 나 그만두면 날벼락이라도 맞니? 잘하면 빚도 안 갚을 수 있을 텐데 왜 이렇게 악착같이 날 못 나가게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