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정경과 따뜻한 빛의 화가>

렘브란트 말고 또 한 분의 네덜란드 황금시대 화가이다. 베르메르도 렘브란트처럼 빛의 화가이다. 하지만 그의 빛은 이번엔 고요한 실내 정경, 그 온유함에서 나오는 신비감으로 빛난다. <우유를 따르는 여인> 같은 그림을 보면 그것을 확연히 알 수 있다.

같은 시대의 화가들의 그림이 르네상스를 벗어나긴 했지만 아직도 소재나 화풍이 고풍스러웠다면, 베르메르의 작품은 지금 봐도 너무나 현대적인이라는 생각이 드는 그림이다. 작품의 주제가 요란하지 않고, 거기에 작품 수도 적다. 작품이 적으니 가난하게 살다간 것도 현대의 화가들과 좀 닮았다고 할까.

아니나 다를까, 그의 작품은 생전보다 19세기 사실주의가 일어나면서 평가받기 시작했는데, 그의 그림이 이미 사실성을 구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사소한 순간을 보여주는 그림이 내포하고 있는 영원성, 그건 실로 사실성 자체인 것이다.

<카메라 옵스큐라>

베르메르의 그림을 말할 때 카메라 옵스큐라를 거론하기도 하는데, 이를 기회로 카메라 옵스큐라라는 것을 알고 가자. 카메라 옵스큐라는 간단히 말해 암상자(暗箱子)이다. 캄캄한 암실 한 곳에 작은 구멍을 뚫어 사물의 빛을 그리로 통과 시키면, 반대 쪽에 사물의 모양이 찍혀 나온다.

그걸 따라 덧 그리면 사물의 그림이 된다. 17~19세기의 서양 화가들이 초벌그림에 더러 사용한 도구이다. 그러니 엄격히 말하면 옵스큐라를 통해 그림을 그리는 것은 변칙이다. 완벽히 화가의 눈으로 그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베르메르 얘기에 가끔 옵스튜라가 따르는 것은 그가 옵스큐라 유행 당시인 17세기의 화가이면서 그의 그림이 옵스큐라를 통한 것만큼이나 사실적이 간결했기 때문이다. 그의 뛰어난 사실성에 대한 반증이 된다.

<창가의 모델>

그의 작품이 대부분 창가에 모델을 세워 놓고 그린 것이다. 자연광을 받는 모델의 모습을 그리기 위함이었는데, 그 자리에서 <편지를 읽는 푸른 옷의 여인>과 함께 저 유명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그림도 탄생한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2003년)

그림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모델는 베르메르 집에 새로 하녀로 들어온 소녀이다. <블랙 위도우>의 여배우 스칼렛 요한슨이 그 하녀 역을 맡아 신비로우면서도 처연한 모습을 보여준다.

모델도 겸하게 된 하녀와 화가 베르메르 사이를 베르메르의 아내가 의심한다. 의심은 귀걸이에서 시작된다. 귀걸이를 걸기 위해서는 귀를 뚫어야만 한다. 귀를 뚫는 것은 결국 순결을 잃거나 순결을 바친다는 것을 상상케하며 베르메르 아내를 발작 직전까지 이르게 한다.

베르메르의 아내가 미쳐가는 과정이 명작 그림만큼이나 명작처럼 구성되어 나간다. 고요한 그림 속에서 관능과 정념, 그리고 피와 순수, 절제된 사랑 등 그림의 신비와 오묘함이 또 하나의 신비로운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 이야기 모두 베르메르가 사생활이 잘 안 알려진 화가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영화에서도 베르메르는 대단히 말수가 극히 적은 사람으로 나오는데, 베르메르 역에는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Manners maketh man”는 절창의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2015)의 주인공 콜린 퍼스가 맡았다.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고요하면서도 정갈하고 내밀하면서도 순수하다. 액션 영화 <블랙 위도우>의 여전사와 <킹스맨>의 액션 스파이를 완전히 잊을 정도로.

카메라옵스큐라 모습을 실제로 볼 수도 있다. 그것을 통해 베르메르가 사용하는데, 베르메르가 워낙 은둔자처럼 살았기에, 이것 또한 상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이야기이다. 혹자들은 베르메르 집이 좁아 카메라 옵스큐라를 둘 만큼 크지 못하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