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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이 여전히 세기를 더하는 가운데 H대학병원 현관 앞에는 강 사무장과 성형외과 진 교수가 최 반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강사무장이 진 교수를 보며 말했다.
“괜한 짓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다고 중상 입은 환자를 나몰라 할 수 없잖습니까?”
최교수는 뭔가 확신에 찬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강사무장은 그래도 뭔가 아쉽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그...그래도 그게 흉악범이라서.... 비록 죗값을 치렀다고는 하지만…….”
“그렇지만 저희 병원입장에서는 손해 날 것 없습니다.”
최교수는 여전히 의미심장한 말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때서야 강사무장은 눈치챘다는 듯이 말했다.
“그 말씀은?”
“그렇습니다. 이 건으로 저번에 있었던 의료사고 건을 덮을 수 있다는 거죠. 이만한 사건이면 이슈가 될 사건으로 연일 언론사들이 북적 거릴 테니까요.”
“그러니까 우리는 인도주의적 입장을 표방하면서 챙길 건 챙기자는 거죠?”
“그렇습니다.”
“역시 과장님의 머리는 따라갈 수 없군요.”
“별 말씀을…….”
그때였다.
현관문이 후닥닥 열리며 하얀 가운을 입은 인턴 장 선생이 소리쳤다.
“교...교수님..... 봉합수술 준비완료 했습니다.”
“알았어.”
진 교수는 느긋하게 말했다. 그러자 장 선생은 시간이 없다는 듯이다 다그쳤다.
“피부조직 상태로 봐선 시급한 듯 싶은데요…….”
그러나 진 교수는 딴전을 피우며 말했다.
“그...그렇긴 하지만 경찰관 입회하에 시술해야하니까 조금 기다리자고.... 자네는 가서 환자 상태나 체크하고 있어.”
“이러다간 성 불구자가 될지 모르는데요?”
“글쎄! 시간이 지체돼 성공확률도 가름할 수 없는데 잘못되기라도 하면 자네가 책임 질 거야?”
그때서야 장 선생은 머뭇거렸다. 그러자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던 강사무장이 말했다.
“과장님 말씀대로 해요.”
“아...알겠습니다.”
그때서야 장 선생도 별 수 없는 지 머리를 조아리고 돌아섰다. 장 선생이 현관 안으로 사라지자 강 사무장이 은근히 물었다.
“가망이 없나요?”
“모험하기도 싫거니와 정의차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그 말씀은?”
“환자가 전자 팔찌를 차고 있더군요.”
“그...그래요. 그렇다면 과장님 말씀이 백번 맞는다고 봅니다.” 하며 강사무장은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리고 이내 뭔가를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하지만 생명에 지장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건 안심하셔도 됩니다. 누군지는 몰라도 응급처치를 확실히 해 출혈은 그리 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경찰조사에 그 사실은 까발릴 상황은 아니군요.” 하며 강 사무장이 은근히 말했다. 그러자 진 교수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낡은 승용차가 한 대 가 빗속을 뚫고 다가와 그들 앞에 멈춰 섰다. 강사무장과 진 교수는 서로 눈짓을 주고받은 다음 승용차로 다가섰다.
조수석 문이 열리며 최 반장이 내렸다. 강사무장이 다가서며 차분히 말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강택수 사무장입니다. 그리고 이분은 저희병원 정형외과 과장이신 진 기호 교숩니다.”
강사무장이 한 발짝 더 다가서며 머리를 조아리자 진교수도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자 최 반장 역시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아네. 영등포서 최 수호 반장입니다. 그리고 저희 직원들입니다.”하며 박 형사와 이 형사를 소개한 다음 본연의 자세로 말을 이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보다 일단 가보시죠.”하며 진 교수가 앞장섰다. 강사무장도 그렇게 하라는 듯이 오른 손으로 진 교수 뒤를 가리켰다. 최 반장은 고개를 조이라고 진교수의 뒤를 따랐다. 이어서 박 형사와 이형사도 최 반장의 뒤를 따랐다. 앞서던 최 반장이 강 사무장을 보며 물었다.
“그렇게 심각합니까?”
그러나 강 사무장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진 교수의 뒤를 따르며 말했다.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저의 진 과장님이 응급처치를 잘 하셔서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그럼 뭐가?”
그러는 사이 진 교수는 수술실 인턴 관람 실 앞에 섰다. 강 사무는 대답 대신 다가가 관람실 문을 열었다. 최 반장이 앞장서고 이어서 박 형사와 이 형사가 뒤따라 들어갔다. 그러자 강 사무장이 진 교수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진 교수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조아리고 들어섰다. 강사무장은 주위를 살핀 뒤 들어서며 문을 닫았다.
수술실이 내려다보이는 이층구조의 관람석은 극장식 긴 의자가 줄지어 놓여 있었다. 진 교수는 최 반장 일행을 앞좌석으로 인도한 다음 커튼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자 커튼이 양쪽으로 밀려나며 수술실 내부가 한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조명기구 아래 수술대에는 얼굴이 가려진 환자가 하반신을 드러낸 채 누워 있었다. 하지만 중요부분은 크고 작은 가재로 가려져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주위에 수술복 차림의 장 선생을 비롯해 인턴 두어 명과 간호사들 이 대기하고 있었다. 한쪽에 수술 장비 기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수술실 내부가 환하게 드러나자 진 교수가 근처 기둥에 매달려 있는 인터폰을 들었다. 그러자 수술대 근처에 서있던 간호사가 인터폰 수화기를 장 선생에게 건넸다. 진교수가 말을 했다.
“장 선생 경찰관계자가 도착했으니 내 지시에 따라 움직이세요.”
수술실의 장 선생이 대답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진 교수가 인터폰을 내려놓고 스피커폰 모드 버튼을 누른 다음 최 반장에 다가서며 설명을 시작했다.
“저희가 이 환자를 대한 건 06시 40분경입니다. 때마침 저와 저기 장 선생이 당직이어서 호출과 동시에 뛰어나갔죠. 그런데 모든 게 이상 했습니다. 중환자라면 119나 긴급호송차량을 이용해야 하는데 이 환자는 쓰레기 리어카에 쓰레기와 함께 누워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 리어카를 끌고 온 분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천변 정리 작업을 하다가 발견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데리고 온 사람이 청소부라는 건데? 확실하던가요?”
진 교수의 말을 진지하게 듣던 최 반장이 뭔가 심상치 않는 듯 물었다.
“네. 차림새로 보아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우선 환자의 상태를 살폈죠. 그런데.....”
“그런데요?”
최반장이 침을 삼키며 물었다. 진교수는 이런 최반장을 눈여겨보며 말을 이었다.
“사타구니를 움켜쥐고 있어서 손을 풀고 보니 성기가 잘려나가고 없었습니다.”
“뭐라고요?!”
설마했던 최반장과 박형사 이형사는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진 교수를 쳐다봤다. 그러나 진 교수는 평소 톤을 유지하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더 희안한 것은 움켜진 손을 풀어보니 그 속에 유리봉지가 들어 있는 겁니다.”
“유리봉지가요?!”
최반장이 놀라는 눈빛으로 말했다. 옆에 있던 박형사도 몹시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게 뭐였습니까?!”
“놀랍게도 환자의 성기였습니다!”
그러나 최반장과 두 형사는 놀라기 보다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엽기적 사건의 서막을 의식적으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본연의 자세를 잃지 않고 다그쳤다.
“그래서요?”
“일단 수술실로 옮겼습니다. 출혈부터 막아야 겠다는 생각에 말입니다.”
“상태는 어땠습니까?”
“놀랍게도 이미 출혈은 처치한 상태였습니다. 작은 핀셋으로 동정맥류의 혈관을 집어 놓았더군요.”
“그렇다면 가해자가 어느 정도 의학적 지식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게 추측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성기 접합수술 말씀인가요?”
진 교수는 애기를 하다말고 최반장을 보며 물었다.
“네.”
최반장은 당연한거 아니냐는 듯이 말했다. 그러자 진 교수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시도를 하려다 잠시 보류를 했습니다.”
“왜요?”
최반장이 진교수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진교수는 이내 말을 이었다.
“절단된 성기의 피부조직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식염수가 아닌 소금물에 담겨 있어 흐늘거려서 이렇게 반장님의 의견을 듣고자 연락드린 겁니다.” 하며 진교수는 최반장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자 옆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박형사가 나서며 말했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닙니까?”
“다른 이유라뇨?”
“6시간 이내면 가능하다고 들었는데요?”
그러자 진교수가 진지하게 말했다.
“전 환자의 귀천을 따지는 의사가 아닙니다. 그리고 형사님이 제시하신 시간은 생리식염수에 담가 밀봉했을 때죠.”
“그렇다면? 다른 방법은?”
최반장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진교수가 수술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성 전환 수술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뭐라고요! 저런 엿같은 얼굴로 여자가 된다고요?”
다혈질인 박형사가 막말로 쏘아부쳤다. 순간 진교수가 놀라 쳐다봤다.
“어이!”
최반장이 박형사를 노려봤다.
“죄송합니다.”
박형사 고개를 조아리고 물러났다. 그러자 진 교수가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수술비가 만만치 않아서......”
“그렇다면 다른 방법은요?”
“요도구만 밖으로 빼 봉합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시간을 지체하면 힘듭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할 수 없군요.”하며 최반장은 수술실을 내려다 봤다. 이어서 박형사가 내려다보며 푸념처럼 말했다.
“변태새끼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더니 결국 내시가 되는구먼.....”
그러나 누구 한 사람 토를 다는 사람이 없었다. 진 교수는 의사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 수술실을 내려다보며 지시했다.
“장 선생 들었지..... 내려 갈 테니까? 혈압 체크와 봉합수술 준비해......” 그리고 최반장을 향해 고개를 조아린 다음 말했다.
“그럼 전 이만 내려 가봐야 겠습니다. 자세한 것은 수술이 끝나는대로 제 방에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관람실을 나섰다. 강 사무장도 뒤따라 나갔다.
최반장과 박형사 이형사는 고개를 숙여 보이고 수술실을 내려다봤다. 순간 장선생이 안구 체크를 하려고 안면을 가렸던 가재를 치웠다. 그러자 험악한 오춘길의 면상이 드러났다.
“변태새끼! 내시가 된지도 모른 채 잘도 퍼 자고 있구먼.....”
박형사가 비아냥 거렸지만 그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그때였다.
최반장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었다.
“이...이거 왜 이래.... 진동으로 한 것 같은데.....”
최 반장은 몹시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최 반장입니다. 네 과장님..... 맞습니다. 자세한 것은 지금 당장 들어가서 보고 드리겠습니다.”
최 반장은 전화를 끊고 박 형사와 이 형사를 향해 철수하자는 손짓을 한다음 서둘러 관람실을 빠져 나갔다. 이어서 박 형사와 이 형사가 뒤따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