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face="돋움">우리 아빠는 패션에 관심이 많으시다. <br>덕분에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엄마보다는 아빠랑 같이 자주 쇼핑을 다녔다.<br>물론 추구하는 스타일이 달라서 매번 티격태격 하지만...<br>예를 들어, 나는 목이 짧아 가슴이 확 파인 옷을 좋아하나 아빠는 기겁하시고<br>나는 휘날리는 긴 머리를 좋아하는데, 아빠는 언제나 깔끔한 단발을 추천하신다.<br><br>아무튼, 이런 우리 아빠는 내가 이십 대 초반이던 시절부터 내 외모에 관심을 보이셨다.<br><br>01.<br><br>"딸, 화장을 배워보는 것도 좋을 것이여."<br><br>원래 화장을 안 하던 내게 (입술에 립밤이나 립글로스를 바르는 게 다였다) 아빠가 어느 날 그런 말씀을 하셨고<br>거기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잠깐 한국에 나와 있던 중에 피XX 브러쉬 세트를 샀다.<br>브러쉬를 사기 직전까지도 가격을 보고 뭐 이리 비싼 게 다 있나 싶어 한참을 매장에서 우물쭈물하다가<br>외국에 계신 아빠께 확인 전화를 걸었었다.<br><br>"괜찮아, 좋은 도구로 배우면 좋지."<br><br>그렇게 전화를 끊은 뒤 생애 첫 메이크업 브러쉬를 샀... 아니, 아빠한테서 선물 받았다. <br><br>02.<br><br>솔직히 풀메이크업은 작년부터 하기 시작했는데,<br>이제야 '화장 전보다 후가 쬐끔 낫네'라는 생각이 든다.<br>손이 느려 (나는 메이크업계의 에릭) 화장을 마치는데 한 시간 (...) 가량이 걸린다는 점을 빼곤<br>아빠와 화장에 관해서 즐겁게 얘기를 나누는 편이다.<br>특히 요즘엔 자기 전까지 메이크업을 지우지 않고 있다가 (절대 귀찮아서가 아니다)<br>영상통화로 아빠께 얼굴을 보여드리며 이것저것 질문을 하곤 한다.<br><br>"아빠, 오늘 딸 쉐딩은 어때?"<br>"면도를 한 것이여?"<br>"...아니, 쉐이빙이 아니라 쉐딩 말이여."<br><br>이렇게 가끔 아빠의 전혀 예상치 못한 발언으로 (설마 개그는 아니었겠지) 웃는 날도 생기고.<br><br>03.<br><br>아빠가 나를 달래는 법.<br><br>"아빠, 아는 동생들이 내 화장은 티가 안 난대. (시무룩)"<br>"티 안 나게 자연스럽게 화장하는 게 힘들잖여. 잘하고 있어."<br>"응!" <br><br>04.<br><br>아빠가 나를 기쁘게 하는 법.<br><br>계속 메이크업을 한 상태로 영상통화를 하다가 며칠 전엔 노메이크업인 채로 통화를 하게 됐다.<br><br>"딸, 지금도 화장했어?"<br>"아니. 화장 다 지우고 방금 샤워하고 왔는데."<br>"그래?"<br>"후훗. 지금 내 얼굴이 화장한 것처럼 예쁘다는 그런 말인가? (능글능글)"<br>"ㅎㅎㅎ 그렇게 되겠네."<br><br>05.<br><br>아빠가 나를 부추기는 법.<br><br>"딸, 한국에 있는 동안 눈썹 관리를 좀 받아봐봐."<br>"어, 그럴까요?"<br><br>그렇게 브로우바에 가서 왁싱을 하고 아빠한테 끝났다며 문자를 보냈다.<br>아빠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시다며 사진을 보내달라 하시기에 마트에서 사진을 찍어 보냈는데...<br><br>"딸... 하기 전이 더 나았던 것 같은데... 예쁜 딸 눈썹을 왜 그렇게 만들었다냐."<br><br>실망하신 아빠를 보고 (나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고) 결국 그때 이후로 브로우바에 간 적이 없다.<br><br>06.<br><br>아빠가 나를 부추기는 법 2.<br><br>"딸, 한국에 있는 동안 이번엔 진짜 메이크업하는 법을 배워봐봐."<br>"어, 그럴까요?"<br><br>그렇게 여러 곳을 알아보다가 수업도, 가격도 천차만별이라는 걸 알고 대충 아빠께 설명해드렸다.<br><br>"아빠, 아무튼 개인 수업도 있나 봐. 이건 무시무시하게 비싸네."<br>"개인 수업 받을래?"<br>"아니, 이건 솔직히 너무 비싸고. 그룹 클래스 들어도 충분해요."<br>"그냥 배우는 김에 개인 수업 들어. 확실히 배울 수 있을 거 아녀."<br><br>그래도 돈이 아까웠던 나는 어찌 됐든 그룹 클래스에 등록했다.<br>아빠는 잘했다며 열심히 배우라 하셨고.<br><br>07.<br><br>마지막으로, 내가 아빠께 엄살을 부리는 법.<br><br>나는 생리통이 없는 편이다. <br>하지만 엄살이 심하다.<br>그래서 그날이 오면 아빠한테 온갖 엄살을 부린다.<br><br>"아빠, 아포."<br>"따뜻한 거 배에 얹어두고 있어. 밖에 될 수 있으면 나가지 말고."<br>"아빠, 여자는 왜 이런 걸까? 그냥 결혼하면 내 남편이 대신 해줄 수는 없는 걸까?"<br>"딸이 건강하다는 증거니까 너무 짜증 내지 마."<br>"아빠 다음 생엔 남자로 태어날래. 그리고 엄마 같은 여자와 결혼해야지."<br>"ㅎㅎ 그려."<br><br></font> <hr><font face="돋움"><br>새벽이니까 보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요?<br>뷰게엔 처음 쓰는 글이네요. 나름 뷰티에 관련된 에피소드만 추려서 적어봤어요.<br>실은 아빠랑 방금 통화하다가 아빠가 너무 잘생겨 보여서... 그만 이런 글을 썼습니다.<br><br>속만 썩이는 못난 딸이지만, 아빠 따랑해요.<br><br></fo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