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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animation_384928
    작성자 : 윤소현
    추천 : 2
    조회수 : 571
    IP : 182.229.***.233
    댓글 : 1개
    등록시간 : 2016/04/20 22:38:21
    http://todayhumor.com/?animation_384928 모바일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 팬픽」 눈이 내리고, 환상이 깨질 때



     

     눈이 내리고, 환상이 깨질 때

     

     


     소녀는 꿈을 꾸고 있었다.


     자신이 잘 아는 소년의 꿈을. 그 소년과 함께 있는 자신의 꿈을.


     두 사람은 함께 있었고,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몸의 거리는 마음의 거리만큼이나 가까웠고, 따라서 밀착되어 있었다.


     두 사람은 아파트의 창가에 나란히 앉아 서로 어깨를 기대고 있었다.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춥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요 몇 년간 싸락눈조차 내린 적 없는 이 지방에서는 드문 일이다. 몇 년 만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오랜만에 내리는 눈은, 그동안 오지 못 해서 미안하다는 듯이 몇 년치로 증폭해서 펑펑 내리고 있었다. 완전히 폭설이다.


     눈은 엄청난 양으로 쏟아지고 있었지만, 떨어지는 궤도는 큰 흔들림이 없이 거의 직선이었다. 즉 사람들의 어깨를 움츠리게 하는 겨울의 거센 바람은 없다는 것이다. 춥지 않은 것은 좋은 일이다.


     소년은 소녀의 손을 부드럽게 잡고 있었다. 전해져오는 온기. 그 온기에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소녀는 충만한 행복감에 싸여 자신의 마음도 온기에 담아 보냈다. 틀림없이 전해졌을 것이다. 그 증거로,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두 사람이 창밖의 눈에서 서로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바꾸지 않았는가.


     소녀는 웃었다. 딱히 뭔가 재미있다거나, 누군가 왜 웃느냐고 묻는다면 바로 대답할 수 있는 이유가 있어서 웃은 건 아니다. 그저 웃었다. 몸이 아니라 마음으로 웃었다. 소녀와 동시에 소년도 미소를 지었다. 조금 멋쩍은 듯 쑥스러워하는 것 같은 미소긴 했지만.


     소년이 뭐라고 말을 했다. 시선을 창밖의 눈과 소녀의 얼굴로 번갈아 주며, 한눈에 봐도 부끄러워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태도로 조금 남자답지 못하게 우물거리며 말을 했다.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소녀는 짓궂게 웃으며 소년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큰 목소리로 똑똑히 말하라고 추궁했다. 소년은 허둥거리며 더듬더듬 운을 떼더니, 결국 마음을 단단히 먹고 사랑스러운 눈동자로 소녀의 눈을 바라보며 입을 크게 벌리더니,


     “일어나아─────!”





     쿵.


     “우무후냣?!”


     살풍경한 방 안에 단단한 물건끼리 부딪히는 소리와 괴상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아야야야…….”

     

     는 욱신거리는 머리를 감싸며 잠이 덜 깬 눈으로 몸을 일으켰다.

     

     어째서 내가 바닥에서 정신을 차렸는지 확인하려고 시선을 돌리자, 침대의 이불이 한쪽으로 쏠려 3분의 1쯤이 바닥에 닿은 채였다.

     

     “일어나! 일어나!”

     

    오호라, 그렇군. 침대에서 굴러떨어진 건가. 그 결과로 방바닥과 머리의 접촉사고가 일어났다 이거지. 그래, 잘 알았다. 다행이군.

     

     “일어나! 일어나!”

     

     ……이라고 할 줄 알았냐! 다행은 무슨 다행! 게다가 뭐야, 아까의 그 비명은? 우주 제일의 망신살이다. 여기에 아무도 없었다는 게 천만다행이야. 만약 누군가 조금 전의 그 꼴을 보기라도 했다면 난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을지도 모르거든. 참고로 여긴 7층.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에에잇, 시끄러워어─!”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켜 성큼성큼 걸어가, 돌에 손바닥 자국을 남기는 무림고수가 울고 갈 만큼 강한 힘으로 자명종 시계의 OFF 버튼을 쾅 내리쳤다. 시끄럽게 기상을 명령하던 시계는 한순간 바르르 떨더니 순식간에 침묵의 우물에 가라앉았다. 감히 시계 주제에 인간에게, 그것도 이 스즈미야 하루히 님에게 명령이라니. 1억6천5백 년은 멀었다고.

     

     이 시계는 이 살풍경한 방에 있는 몇 안 되는 물건 중 하나다. 언제부터인가 아침에 약하게 된 나는 어지간해서는 잠을 깨지 않기 때문에, 큰 목소리로 끈질기게 깨워줄 자명종 시계가 절실했거든. 일단 잠이 깨고나면 고맙긴 한데, 지금처럼 달콤한 잠을 강제로 깨운 직후에는 매우 기분이 나쁘다. 으으.

     

     “동네 꼬마한테 공부를 가르쳐주기도 하고 방 청소도 하고 매주 인테리어도 바꾸고 할 일이야 많지. 라디오는 가끔 듣지만. 그리고 자료 작성도 해야 했거든.”

     

     나는 크게 하품을 하며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닥이 꺼지지나 않을까 우려될 정도로 책이 가득 꽂힌 책장을 지나 방 문을 열고 나온다. 욕실에 가서 샤워를 하고, 키타 고의 세일러복을 입고,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했다. 먼저 양배추 한 통을 일정한 크기로 자르고, 인스턴트 카레를 밥에 부으면 준비 끝. 커다란 접시에 담아 거실로 갖고 나왔다.

     

     방 못지않게 살풍경한 거실에는 다행히 창문에 커튼은 달려 있다. 그리고 코타츠. 코타츠 탁자 위에 접시를 내려놓고 앉았다. 보통 이럴 때는 별 재미는 없더라도 리모콘으로 TV를 켜고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느긋하게 식사를 하는 걸지도 모르겠는데, 공교롭게도 현재 이 집에는 TV가 없다. 나는 개인사정으로 지금은 혼자 살고 있기 때문에, 집이라는 것에 그리 사치를 부릴 형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뭐, 그럴 성격도 아니지만. 그래도 TV를 느긋하게 보면서 식사를 한다거나 하는 일은 할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때도 있기는 하다.

     

     “어제 밤중에 잠자리가 조금 불편했거든. 그래서 TV를 켰더니 이상한 영화를 하더라. 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달리 할 일도 없어서 봤어.”

     

     나는 조용한 집에 혼자 앉아 말없이 천천히 하지만 꾸준하게 카레를 먹어치웠다. 예전에 이런 정보를 들은 적이 있다. 다이어트를 하려면 음식을 천천히 먹으라고. 음식을 먹은 뒤 포만감이 들 때까지는 2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천천히 먹어야만 음식을 덜 먹게 된다나? 하지만 난 매우 느리게 먹는데도 엄청난 양을 먹는데. 먹자마자 바로 소화가 되니까 위장에 먹은 게 쌓이질 않는 건 아닐까?

     

     산더미 같은 카레 접시를 깨끗히 비우고 부엌으로 돌아가 설거지통에 넣은 뒤 교복에 카레가 묻지는 않았나 확인한 뒤 현관으로 향했다.

     

     현관 옆에 위치한 전신거울 앞에 서서 자기 모습을 확인한다거나 하는 쓸데없는 짓은 시간낭비이자 지각의 원인이다. 서둘러 현관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 차가운 공기가 충만한 바깥으로 나왔다. 나오자마자 냉기가 얼굴을 찌른다. 요즘 날씨가 많이 추운데,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12월. 그것도 12월 24일이기 때문이다.

     

     12월의 차가운 바람이 날카롭게 불어와 내 짧은 머리카락을 흔들리게 했다. 꿈에 나올까 무서운 추위에 몸서리를 치며 천천히 학교로 향했다.

     

     

     

     ▣▣▣

     

     종업식은 이미 끝났고, 담임 오카베에게서 통지표를 받는 것으로 올해의 고교 생활은 끝이다.

     

     오카베는 어찌 된 일인지 창가 맨 뒷자리인 내 쪽을 슬쩍 보더니 종례도 하는 둥 마는 둥 교실을 나가버렸다. 뭐야, 저 교사? 그러고 보니 며칠째 저러던 것 같은데. 핸드볼 인생에 회의를 느끼기라도 했나. 그런데 왜 이쪽을 보는 거야. 머잖아 또다시 진로상담 시즌이 찾아오니만큼, 작년에 1학년 대상 진로상담 때의 기억이 나는 걸지도 모르겠다. 기억을 되살려보면 1년 전의 나는 진로상담에서 지극히 평범하게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어쩐 이유인지 교무실이 뒤집어졌었던 것 같다.

     

     불성실 담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오늘이 내 청소당번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동아리방에는 좀 늦겠는걸.

     

     내 앞자리에 앉은 남학생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입을 꾹 다문 채 심각한 표정─내 표현을 빌자면 바보 같은─으로 빠른 보폭으로 교실을 나가는 것을 지켜본 뒤 나는 청소도구함에서 빗자루를 꺼내 다른 청소당번들에게로 향했다. 아무도 대화를 나누지 않는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청소가 시작된다.

     

     청소는 금방 끝났다. 이게 다 내가 부지런히 움직인 덕분이라고. 교실 정리를 마무리하고 같이 청소당번을 맡은 여자아이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했지만 다들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시선을 돌린다. 작년 학기 초부터 쌓아온 내 악명과 이미지 때문일까. 터무니없는 오해다. 아주 가끔은 나도 모르게 그만 기세가 넘쳐서 살짝 폭주할 뿐이지 나도 그렇게까지 비상식적인 존재는 아니라고. 뭐, 내게는 SOS단이 있으니까 굳이 평범한 여자애들과 필요 이상 친해질 필요는 없기는 하다. 나는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더는 아무 말 않고 교실을 나섰다.

     

     오늘부터 겨울방학이 시작된다. 따분한 수업을 받지 않아도 되는 건 좋지만, 방학 동안에는 SOS단원들을 자주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게 느껴진다. 방학이 끝날 때까지의 긴 시간을 하루하루 손꼽게 되겠지.

     

     문예부실로 향하는 복도 계단에 첫 발을 디디며 오늘의 일정을 머릿속으로 점검했다. 작년 오늘에는 동아리방에서 전골을 해서 다들 나눠먹었었지. 명예고문인 츠루야도 불러서 분위기가 아주 좋았었어.

     

     하지만 올해에는 악당 학생회장이 눈을 번득이고 있는 만큼, 나도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기로 했다. 상관없다고, 전혀 아쉬울 게 없으니까. 동아리방이 가장 좋기는 하지만 파티는 다른 곳에서도 할 수 있으니까.

     

     싸구려티가 물씬 나는 복도를 걸어 컴퓨터 연구부를 지나 문예부실이라는 간판이 삐딱하게 걸린 동아리방에 도착했다. 예고도 없이 문을 벌컥 열었다.

     

     “늦어서 미안!”

     

     사실 그렇게 늦은 것도 아니지만. 그냥 예의상 해본 소리다. 노크를 하는 예의는 어떻게 된 거냐고 묻는 너, 시끄러워! 행동으로 하는 예의와 말로 하는 예의는 다른 거라고!

     

     나는 눈을 반짝이며 동아리방 안을 둘러보았다.

     

     평소대로라면 쿈은 코이즈미 군과 마주앉아 아날로그 게임을 하고, 유키는 창가 자리의 철제 의자에 앉아 등신대 독서인형처럼 조용히 책만 읽을 테고, 미쿠루짱은 메이드복 차림으로 차를 탄 뒤 남자 단원들의 게임을 지켜보는 것 정도였을 텐데 오늘은 좀 달랐다.

     

     “어? 미쿠루짱, 왜 메이드복으로 갈아입지 않은 거야?”

     

     쿈과 코이즈미 군과 미쿠루짱이 한데 모여 가까이 앉아 있었다. 웬일인지 메이드복으로 갈아입지 않은 미쿠루짱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더니 겨우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히익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돌렸다. 역시 귀여워…가 아니라, 으음, 그렇게까지 겁먹을 건 없는데. 내가 그렇게 무섭게 말을 했나?

     

     “됐어, 됐어. 어차피 오늘은 곧 나갈 거니까.”

     

     나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폭신폭신한 방석이 깔린 단장석으로 걸어가 털썩 앉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동아리방을 둘러보다가,

     

     “어라?”

     

     창가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유키는?”

     

     내가 그렇게 물음과 동시에 동아리방 안의 공기가 무겁고 찐득하게 눌러붙는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진 것 같았다. 쿈은 침묵, 미쿠루짱은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떨궜다. 코이즈미 군에게서도 평소와 같은 느긋한 스마일 페이스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늘도 친척에 관련된 문제로 자리를 비우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코이즈미 군이 순식간에 표정을 풀며 대답했다. 으음, 어쩐지 평소와 달리 굳은 미소인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몸이 아프거나 괴로운 상황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그래…….”

     

     나는 눈을 내리깔며 말꼬리를 흐렸다.

     

     사실 유키는 며칠째 학교에 나오지 않고 있다. 언제부터였더라…. 그러니까, 12월 18일부터였다. 오늘로 꼭 1주일. 유키에게는 휴대전화가 없어서 이쪽에서 연락을 할 수도 없다. 코이즈미 군에게 매일 연락을 하는 모양이긴 한데… 왜 코이즈미 군이지? 나한테 연락하면 되는 거 아니야? 나는 단장이고, 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유키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고. 나한테 연락을 하면 좋을 텐데. 뭐, 쿈이 아니라는 건 왠지 마음이 놓이지만…….

     

     콜록콜록.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왜 그러시죠?”

     

     몇 미터 떨어진 책상 앞에 앉은 코이즈미 군이 이쪽을 돌아보며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감기에 걸리신 것 아닙니까?”

     

     “아니, 그런 거 아니야. 멀쩡하다고. 난 감기 같은 거 걸린 적 없어.”

     

     “그렇겠죠. 당신이라면….”

     

     기묘한 여운을 함축한 듯한 분위기에 나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밝고 씩씩하고 건강한 게 내 장점이니 감기에 걸릴 리 없다고 말하는 건 그다지 이상한 게 아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고, 어쩐지 알고 싶다는 생각도 안 드는 묘한 공기가 내 피부를 따갑게 찌르고 있었다. 뭐지 대체?

     

     모두가 이상하다. 같은 반 애들의 분위기도 어쩐지 겉도는 느낌이지만 이 동아리방의, 단원들의 분위기는 더욱 이상하다. 오늘 하루에 한정된 이야기도 아니다. 언제부터였지, 그래, 유키가 없을 때부터 쭉 이래왔던 것 같다.

     

     물이 목에 걸린 것 같은 답답하고 불안한 느낌을 억지로 떨쳐내려 단장석에서 벌떡 일어서며 손뼉을 쳤다.

     

     “자자, 다들 주목!”

     

     굳이 새삼 주목하고 할 것도 없이, 동아리방은 적막 그 자체였지만. 아니, 적막이 아니라 침울인가?

     

     나는 모여 앉은 세 사람에게로 다가가며 기세 좋게 말했다.

     

     “유키가 없다고 다들 그렇게 기운빠져 있을 필요는 없어. 유키는 어른스러우니까, 복잡한 일이 있다 해도 혼자서도 잘 해결할 거야. 그보다 오늘은 시내탐색을 하는 날이니까!”

     

     물론 오늘의 일정에 대해서는 미리 말해둔 게 하나도 없다. 괜찮아, 괜찮아. 늘 이러니까. 스스로 할 말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단원들에게 오늘 방과 후의 일정을 묻기로 했다. 이제 와서 무슨 소리냐고? 시끄러워. 나는 분명히 배려심을 갖고 일정을 물어보았다. 중요한 건 그 사실뿐이라고.

     

     “코이즈미 군, 모처럼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혹시 선약이라도 없니?”

     

     “─없습니다.”

     

     작년에는 좀 더 과장스럽게 대답했던 것 같은데, 올해에는 단답형이네.

     

     “미쿠루짱은?”

     

     “히익… 아, 아뇨. 없어요. 없어요….”

     

     확연히 두려움에 떨며 고개를 떨구고 대답하는 미쿠루짱. 내게 시선을 돌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냥 물어봤을 뿐인데. 쟤는 왜 저렇게 겁먹는 거지?

     

     내면을 짓누르는 무게감이 더욱 커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코이즈미 군은 창밖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미쿠루짱은 호랑이 선생님에게 혼나는 초등학생처럼 겁먹은 듯 책상만 내려다보고, 쿈은 입을 꾹 다물고 좀처럼 본 적 없는 굳은 표정으로 내 어깨 언저리를 노려보고 있는 것 같다.

     

     “쿈, 너는?”

     

     움찔. 내가 부름과 동시에 몸이 작게 떨렸다.

     

     “쿈?”

     

     “─없어.”

     

     그렇게 말하며 쿈은 고개를 들어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상한 눈이었다. 정말로 이상한 눈이었다. 그 눈동자에 담긴 감정을 읽어낼 수 없었다. 아니, 알고 있다. 나는 이런 시선을 뭐라고 하는지 알고 있다… 이런 시선을 뭐라고 하더라… 뭐였지? 그러니까… 그러니까…….

     동정, 연민.

    “좋아, 그럼 다들 나가자.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될 것 같지 않지만 오늘도 힘내자고!”

     

     결국,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 한 채, 그런 말밖에는 할 수 없었다.

     

     

     

     ▣▣▣

     

    날씨는 아침보다 더 추워져 있었다. 그래도 옷을 두껍게 입으니까 좀 낫네. 답답하긴 하지만.

     

     내가 앞장서고, 그 뒤를 쿈, 코이즈미 군, 미쿠루짱 순으로 따라오는 4인조 그룹은 평소와 같이 키타구치 역 앞 찻집으로 들어갔다. 아아, 실내는 따뜻하니까 좋다아.

     

     내가 2년 가까이 전에 점찍어둔 뒤 쭉 애용하고 있는 테이블로 자리를 잡고, 종업원이 주문을 받으러 오자 코이즈미 군이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카페오레를 주문했고 쿈도 메뉴판을 건성으로 내려다보며 “같은 걸로”라고 말했고 미쿠루짱이 밀크코코아를 주문한 뒤 내가 블루 하와이를 주문하려─ 어?

     

     “어? 너?”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음표를 연발했지만 여종업원은 쟁반을 다소곳이 든 채 내게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 그 대신 맞은편에 앉은 쿈에게 미소를 보냈다.

     

     내 목소리에 고개를 들고 주문을 받으러 온 사람을 확인한 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키미도리 선배.”

     

     “안녕하세요.”

     

     청초한 인상의 3학년은 화사한 꽃 같은 미소를 지었다. 쿈이 테이블에 손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난 채, 무슨 이유인지 다급하게 매달리듯 키미도리 에미리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했다.

     

     “키미도리 선배… 당신은…… 이 상황을─.”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키미도리 에미리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반론을 허용하지 않는 냉정한 목소리가 날카롭게 선언한다. 그 손가락이 어딘지 섬세한 동작으로 천천히 올라갔다.

     

     “당신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손가락은 쿈을 향해 일직선으로 향해 있었다. 쿈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는 것과 상관없이 그 손가락은 차분한 동작으로 내려지고, 키미도리 에미리는 고개를 살짝 숙인 뒤 그대로 등을 돌렸다.

     

     그때서야 다른 두 단원의 반응을 살펴볼 정신이 들었다. 나는 오로지 쿈밖에 보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미쿠루짱의 표정은 쿈과 다를 것이 없었다. 하지만 코이즈미 군은 평소의 보기 좋은 미소 따위는 본 적도 없다고 말하는 듯한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시선이 쿈을 향했다. 쿈도 코이즈미 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5초. 10초.

     

     “뭐야?”

     

     결국 내가 목소리를 내자 두 사람은 눈싸움을 중단하고 미리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컵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뭐가 그리 급한지 거친 동작으로 원샷.

     

     그리고 2초 뒤, 채 식지 않은 카페오레 1인분이 테이블 위를 비행했다.

     

     

     

     ▣▣▣

     

     멍청한 쿈이 바보 같은 짓을 한 덕분에 약간의 소동이 벌어졌다. 카운터에 있던 점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부리나케 달려와 수선을 떨고, 뒤늦은 상황파악 뒤 재빨리 돌아가 찬물을 가져오고, 그 잠시 뒤에는 테이블을 도배한 카페오레의 제거 작업이 이루어졌다.

     

     “정말이지 바보 쿈! 뭐 하는 거야! 그 정도 뜨거운 걸 가지고! 기합으로 마셨어야지! 보라고, 코이즈미 군은 멀쩡하잖아.”

     

     내 타박을 잔뜩 받으면서 쿈은 몇 번이나 찬물로 입을 헹구었다. 당연히 혀를 데었겠지. 정말이지, 바보라니까.

     

     배려심을 듬뿍 발휘해 참을성 있게 기다려준 뒤 나는 카운터에서 빌린 이쑤시개 4개를 내밀었다.

     

     “자, 둘씩 팀을 나눌 거야. 사람도 넷이고 하니 딱이잖아.”

     

     코이즈미 군이 가장 먼저 손을 뻗었고, 그 뒤 미쿠루짱과 쿈이 시선을 교환하더니─뭐야─ 미쿠루짱이 다음으로 손을 뻗었다.

     

     “표식이 없는 거네요.”

     

     코이즈미 군이 깨끗한 이쑤시개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아, 저도요.”

     

     하얀─아니, 누런색인가? 아무렴 어때─ 이쑤시개를 들어 보이는 미쿠루짱.

     

     나는 제비를 잡고 있던 손을 폈다. 볼펜으로 칠해진 이쑤시개 두 개가 내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어머, 더 뽑을 필요도 없네.”

     

     나는 이쑤시개를 쿈에게 흔들어 보이면서 짐짓 사악해 보이는 미소를 만들어 보였다. 바보 같은 표정으로 당황할 줄 알았는데 믿을 수 없는 것이라도 본 것처럼 표정이 굳어지더니 시선을 피했다. 뭐야, 나랑 한 조인 게 그렇게 불만이야?

     

     이쑤시개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찻집의 자동문을 나섰다. 따뜻한 실내에 있다가 추운 겨울 저녁으로 나오니까 춥다아….

     

     “미쿠루짱과 코이즈미 군은 저쪽으로 가. 우리는 이쪽으로 갈게.”

     

     방향을 지시하자 미쿠루짱은 조신하게, 코이즈미 군은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려다가─ 코이즈미 군이 쿈에게 시선을 보냈다. 뭐야 또?

     

     “그녀를… 부탁합니다.”

     

     무거운 목소리로 말하는 코이즈미 군. 그대로 등을 돌려 빠른걸음으로 작아져갔다. 미쿠루짱이 코이즈미 군의 보폭에 맞추려 종종걸음을 하는 것이 점점 작게 보이더니 까만 점이 되어 사라졌다.

     

     “우리도 가자.”

     

     나는 우두커니 선 채 미쿠루짱과 코이즈미 군이 사라진 방향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쿈의 손목을 끌고 발걸음을 옮겼다.

     

     

     

     ▣▣▣

     

     쿈과 나란히 걸으면서, 나는 왠지 조금 긴장하고 있었다.

     

     쿈과 한 조가 된 건 1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몇 번이나 했던 제비뽑기 중 처음이다. 어쩐지 기쁘달까… 조금 두근두근거렸다.

     

     “어, 붕어빵이다.”

     

     몇 미터 앞에 차려진 포장마차에서 붕어빵을 열심히 굽고 있는 모습이 멀리서부터 눈에 들어왔다. 여기까지 고소한 냄새가 풍겨온다. 으음, 그러고 보니 어쩐지 무척 배가 고픈데.

     

     “쿈, 붕어빵 먹자.”

     

     내가 손가락으로 포장마차를 가리키자 쿈은 몇 초간 진지하게 생각에 잠기듯 서 있더니,

     

     “……그래, 네가 사는 거냐?”

     

     “뭐어? 쩨쩨하게 붕어빵 몇 마리 가지고. 네가 사. 한 20개 정도로. 어차피 다음에 모일 때도 지각할 거잖아. 벌금을 미리 내는 셈치라고.”

     

     “그럼 내가 사주면 다음 벌금은 안 내도 되겠네?”

     

     “아니, 그냥 일찍 오고, 늦어서 벌금을 냈다고 쳐. 늦으면 또 벌금이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그렇게 말하면서도 쿈은 선뜻 지갑을 꺼냈다.

     

     뜨끈뜨끈한 온기가 느껴지는 붕어빵 봉지를 들고 함께 거리를 거닐었다. 이 추운 날씨에도 굴하지 않고 나온 길거리 판매 액세서리를 구경하기도 하고, 편의점에서 뜨거운 캔커피를 사 마시기도 하며─돈은 쿈이 냈다─ 그야말로 그리스도의 탄생을 핑계로 놀러다니는 수많은 거리의 커플들과 같이─ 어, 지금 뭐라고?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고개를 홱 돌리는 나.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크리스마스 이브에, 남녀 단둘이… 이러는 거, 완전히 데이트잖아? 분위기도 그렇고!

     

     슬쩍 쿈에게 시선을 돌리니, 좀처럼 본 적 없는 진지한, 뭔가 큰 어려움에 부닥쳐 고민하고 있는 것 같은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나는… 쿈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생각해보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상한 관계였다. 누구보다도 가까우면서도, 마지막 한 발짝을 좁히지 못 하는 그런 관계. 그것은 누구 때문일까? 나? 쿈? 생각해봐야 결론이 나오는 문제가 아니고, 나온다 해도 상관없는 이야기다.

     

     진지하게, 정말로 진지하게, 부끄럽다느니 웃긴다느니 하는 생각은 접어두고,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나는 쿈과 함께 이렇게 있는 것이 기쁘다. 그럼 다른 사람은 어떨까. 타치구치… 아니, 아무리 비교대상일 뿐이라지만 바보 타니구치는 좀 그렇고. 그래, 잘생기고 머리 좋고 예의 바른 코이즈미 군이라면 어떨까.

     

     쿈이 아니라 코이즈미 군과 함께 있었어도 나는 이런 감정을 느꼈을까?

     

     ─정답이 나왔다.

     

     코이즈미 군보다 잘생기지 않더라도,

     

     코이즈미 군보다 머리가 좋지 않더라도,

     

     아무리 내가 바보라고 타박하고 힘든 일을 시키며 괴롭힌다 해도,

     

     나는,

     

     쿈을…….

     

     갑자기 느리지만 묵직한 겨울바람이 불어왔다. 반사적으로 눈을 감은 내 얼굴에 뭔가 차가운 것이 날아와 닿았다. 바람이 그치고 눈을 떴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요 몇 년간 싸락눈조차 내린 적 없는 이 지방에서.

     

     순식간에 눈을 난생처음 보는 것 같은 엄청난 감동에 사려잡혔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본 적이 있는지 의심될 정도로.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추운 날씨임에도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도무지 진정이 안 된다. 아아, 내가 왜 이러지.

     

     내 옆에 서 있는 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수히 박힌 별을, 찬란히 빛나는 달을,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을, 영원의 끝까지 펼쳐져 있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입술이 움직여 말을 자아낸다.

     

     “유키(雪)…….”

     

     쿵.

     

     가슴이,

     

     철령 내려앉았다.

     

     왜?

     

     왜?

     

     왜?

     

     ‘나’를 이루는 조각 하나하나에 금이 가고, 당장에라도 허무히 무너져버릴 것 같은 공포감이 느껴졌다. 목을 타고 넘어간 침이 불에 달군 납덩어리가 되어 식도를 불태우고 위장을 찢는 것 같은 것 같은 극심한 고통. 이 괴로움은 어디서 오는 거지?

     

     왜?

     

     “눈(유키 雪)… 내리네.”

     

     정말로, 단 한순간 만에 모든 괴로움이 사라졌다.

     

     “…왜 그래? 어디 아프냐?”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듯한 쿈. 나는 얼굴이 다시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손사레를 쳤다.

     

     “으응, 아니… 그냥, 그래, 눈 내린다고.”

     

     “……내가 한 말이잖아.”

     

     바람을 타고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다. 얼굴에 닿으면 분명히 차가웠지만 왠지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우리는 어느새 번화가의 한가운데를 함께 걷고 있었다. 넘쳐나는 사람들, 그러니까 주로 커플들, 사방을 밝게 비추는 간판불빛, 거리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크리스마스 캐롤.

     

     정말이지….

     

     분위기가 좋아도 너무 좋잖아…….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니, 커플들에게는 정말 좋은 날이네….”

     

     넘쳐나는 커플들을 바라보며 말하는 쿈.

     

     그 말에 아무 생각도 없이, 정말 아무 생각도 없이 저절로 입이 움직였다.

     

     “저기, 쿈!”

     

     “어?”

     

     자, 잠깐.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야? 뭘 할 작정이야? 어떻게 할 작정인데? 뭐라도 말해야 한다. 이렇게 불렀으니 뭔가 적당한 말을 해야… 하지만….

     

     무슨 말을 할지 생각조차 안 하고, 아무런 계획도 없이 입이 멋대로 움직인다.

     

     “있지, 화이트 크리스마스라고? 이렇게 좋은 날을 그저 남을 부러워하면서 헛되이 보내긴 싫지 않아?”

     

     “어? 무슨─.”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나. 이 멍청아. 멈춰, 멈추라고! 이 바보야! 아아, 멈추고 싶은 건지 어떤지도 잘 모르겠다. 제어가 되지 않는다.

     

     “난 그러고 싶지 않아. 화이트 크리스마스라고, 그리스도가 준 선물이란 말이야.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르는 이런 기회를 그냥 지나쳐보내고 싶지 않아. 있잖아, 쿈, 오늘을 좋은 날로 보내지 않을래? 커플이 되지 않을래? 나와─.”

     

     아아, 이제야 깨달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를. 거짓말이 아니다. 오늘만은 나 자신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솔직해질 수 있다. 몇천 년 전에 인류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말하며 죽어간 사람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다. 무슨 기적이 일어나도 이상할 게 없다.

     

     입을 벌리고 놀라움을 그대로 드러내는 쿈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나와─ 커플이 되지 않을래?”

     

     그리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솔직하게, 단도직입적으로,

     

     “나… 너를…, 좋아하니까…….”

     

     ─말했다.

     

     사방이 빛과 캐롤, 연인들로 넘쳐나는 거리. 그 한가운데에서 나와 쿈은 서로를 마주보고 있다. 시선을 돌릴 수가 없다. 당장에라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며 펑 하고 터질 것 같은데도 시선을 피할 수가 없다.

     

     대답을 듣기가 두려웠다. 가슴이 미친 듯이 뛴다. 겨울인데도 더운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쿈은 놀란 표정에서 누군가가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기라도 한 것처럼 굳어 있다. 재생 버튼이 눌러지고, 그 표정이 움직인다. 그 얼굴이 고뇌하듯 숙여졌다. 가슴속에 납덩어리가 쿵하고 떨어졌다. 안 돼, 기뻐 보이는 표정은 아니야. 심장이 거칠게 뛴다. 내 심장이 내 것이 아닌 것만 같다.

     

     쿈은 몇십 초, 어쩌면 몇 분이나 바닥으로 시선을 떨구고 그렇게 서 있었다. 발밑이 무너지는 것처럼 거대한 공포심이 나를 사로잡는다. 괜찮아, 아직은. 나는 필사적으로 자신을 타일렀다.

     

     아직은 괜찮아, 아직 대답을 들은 것도 아니니까….

     

     쿈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역시…… 안 되겠어.”

     

     …………어?

     

     “역시… 이건 아니야…… 잘못되어 있어…….”

     

     그의 목소리가 괴로운 듯 메마르게 들린 것은 내 착각이었을까.

     

     오른팔이 강한 힘으로 끌어당겨졌다. 쿈이 내 팔을 잡고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따라와.”

     

     “어? 쿈? 자, 잠깐만─.”

     

     “가자고…!”

     

     쿈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드레스 샵 등이 즐비한 상점가였다. 쿈이 향하는 방향에는 쇼 윈도 안에 전신거울을 배치한 가게가 있었다. 쿈은 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를 끌고서.


     “거울… 봐.”


     쿈이 내 어깨를 붙들고 끌어당겨 세웠다. 그 앞에 있는 것은 아마 전신거울이겠지. ‘이겠지’라고 말하고 있는 이유는 내가 재빠르게 눈을 감았기 때문이다.


     눈을 뜨면….


     거울을 보면…… 안 될 것 같았다…….


     “눈을 떠….”


     눈은 굳게 감고 있는데도, 거울을 보지 않고서는 여전히 내 어깨를 아플 정도로 꽉 움켜잡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없는데도, 나는 뭔가를 호소하듯 필사적으로 말하는 그의 표정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눈을 떠…. 자신의 모습을 봐…. 자신이 누구인지 똑바로 바라봐…. 이건 잘못되어 있어. 뭐가 잘못되서 이렇게 된 건지 나는 모르지만… 난 널 돕고 싶어. 그래서 이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했다. 원래대로 돌아와. 이런 건 네가 아니잖아….”


     싫어…….


     싫어… 보고 싶지 않아… 확인하고 싶지 않아…… 지금 내가 눈을 뜬다면…… 눈을 뜬다면…… 모든 게 끝나버릴 것 같아… 두려워…… 너무나도 무서워…… 무서워…….


     ─나는,


     뭘 두려워하고 있는 거지?


     “눈을 떠…….”


     안 돼. 그러지 말아줘. 강요하지 말아줘. 나는 이대로가 좋아. 지금처럼이길 바랐어.


     무서워…… 깨져버리는 것이…… 산산조각으로 깨져버리는 것이…… 제발 부탁이야, 그러지 마. 강요하지 말아줘. 이건─.


     단장 명령이야─.


     “넌─, ───가 아니야!”


     그 말이 마치 기다리던 신호이기라도 했던 것처럼,


     ‘나’는,


     눈을 떴다.


     “…………………………아?”


     사물을 자세히 보기에 부족함이 없는 밝은 햇살이 상점가의 유리에 반사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눈앞의 의류판매점 유리창 너머에 세워져 있는 것은 커다란 전신거울.


     그 거울에, 비통하고 참담한 표정으로 거울 속의 나와 눈이 마주치는 것을 피하듯 시선을 내린 그와,


     아주 잘 아는 모습의 소녀가 비치고 있었다.


     “………………아?”


     거기에는 ‘내’가 있었다.


     “……아?”


     거울 속의 ‘내’가 경악으로 눈을 크게 떴다. 그 표정이 삽시간에 ‘무너졌다’. 검은 두 눈동자에 물기가 어리는 것이 보였다. 그걸 보고서야 나는 눈시울이 너무나도,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뜨겁고 아리다는 것을 느꼈다.


     “이제… 알겠어…?”


     거울 속의 가 쥐어짜듯 말했다.


     “뭣 때문이었는지… 네가 또다시 작년 12월처럼 된 건지…… 잘은 모르지만….”


     이를 악물고, 너무나도 비통하게 슬픔에 찬 얼굴로,


     “난 널… 이렇게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어….”


     거울 속의 내게서 시선을 피하며, 파르르 떨며 천천히 말했다. 내 어깨를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어깨가 조금, 아니 너무 아팠다. 너무도, 너무도 슬프게 아파왔다.


     머릿속은 온통 하얬다. 온통 눈으로 뒤덮인 산처럼. 땅과 식물과 풍경이 온통 하얗게 뒤덮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찾을 수 없게 된 눈 덮인 산처럼, 내 사고도 하얗게 변했다.


     믿을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인정할 수 없었다. 나는─ 나는─ 나는!


     가슴속에 있던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지고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며 허망하게 텅 비어버렸다.


     거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진실만을 비춰줄 뿐이다.


     그 진실은 한치의 걸러냄없이 투명하게, ‘나’를 똑바로 보여주고 있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나는─.


     나는…!


     내 어깨를 꽉 붙든 그의 손을 뿌리쳤다. 그렇게 아플 정도로 세게 잡고 있었는데도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쉽게 풀렸다. 몸의 구속이 풀림과 동시에 주변 경치가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내가 달리고 있는 것이다. 이상하게 뺨이 뜨겁다. 날씨가 이렇게 더웠던가? 간판이, 사람이, 가로수가, 개별적인 인식을 할 틈도 없이 빠르게 뒤로 쌩쌩 지나쳐갔다. 불과 몇 분 전에 지나쳐온 길일 텐데도 마치 백일몽에서 지나치듯 본 경치처럼 한없이 낯설게, 두려울 정도로 낯설게 느껴졌다.


     여기는 어디지?


     뺨이 뜨겁다. 이상하게 뜨겁다. 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있음에도 식혀질 기미가 안 보인다. 눈도 뜨겁다. 너무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더 뜨거워진다. 뜨거움이 눈을 타고 뺨으로, 턱으로 곡선을 그리며 내려왔다.


     나는 왜 여기에 있지?


     숨이 가쁘다. 너무 가쁘다. 모든 걸 잃고 텅 빈 줄로만 알았던 가슴속을 어둡고 무거운 것이 가득 메웠다. 가슴이 무겁다. 답답하다. 숨조차 쉴 수가 없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거리의 혼잡한 소음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온 것 같았다. 누군가를 찾아, 누군가를 향해, 누군가의 이름을 필사적으로 애타게 부르짖고 있었다. 갖은 소음과 먼 거리의 장애를 뚫고 간신히 내게 도달해 임무를 마친 그 목소리의 호소를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뿌리쳤다. 달리는 속도가 높아졌다. 다리를 움직이고 있다는 제대로 된 자각이 없었기에 이러다 다리가 꼬여 구를 것만 같았다. 심장이, 폐가, 다리가, 당장 멈추지 않으면 죽는다고 경고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 없었다.


     ─나는.


     얼마나 멀리까지 달려온 걸까.

     

     나는 달리기를 멈추었다.

     

     내게 세계는 어두웠다.

     

     어둡고 차가운 존재였다.

     

     힘이 없었다. 비틀거리며 목적지도 없이 땅만 내려다보며 아무렇게나 걸었다.

     

     걷고, 걷고, 또 걸었다.

     

     걷고, 걷고, 또 걸었다.

     

     고개를 들었다.

     

     익숙한 거리가 보였다.

     

     내가 조금 전 그에게서 도망쳐나온 그 상점가였다.

     

     기력을 짜내 걸었다.

     

     거울이 있는 쇼 윈도우가 몇 미터 앞에 있었다.

     

     앞에 섰다.

     

     “………….”

     

     앞에 섰다.

     

     나는 거울 앞에 서 있다.

     

     “………….”

     

     고개만 돌리면 볼 수 있는데도,

     

     “………….”

     

     그러지 못 하고 있다.

     

     “………….”

     

     는,

     

     거울을 보았다.

     

     “………….”

     

     하늘에서 내려온 눈송이 하나가 눈동자 언저리에 닿았다.

     

     차가움이 느껴졌다.

     

     그리고,

     

     “…………아…아…….”

     

     그것은 곧 주체할 수 없는 뜨거움이 되어 내 볼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아……아아…아…….”


     거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진실만을 비춰줄 뿐이다.


     그 ‘진실’은 한치의 걸러냄없이 투명하게, ‘나’를 똑바로 보여주고 있었다.

     

     짧은 머리, 작은 체구, 가지런하지 못 한 앞머리, 하얀 피부, 선이 가는 얼굴선, 까만 눈동자…….

     

     는,

     

     나가토 유키였다.

     

     

    untitled-1_bleble210_rnswnlineage.jpg

     

     

     

     

     

     

     사랑받고 싶었다.

     

     “…유키?”

     

     사랑받고 싶었다.

     

     “……유키? 뭐 하는 거야? 유키?”

     

     사랑받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유키? 유키, 너… 이상해…. 장난치지 마….”

     

     그래서,

     

     “장난치지 말라니까! 유키, 뭐야? 대체─.”

     

     그녀가 되고 싶었다.

     

     “저기, 장난이지? 장난치지 말라니까….”

     

     그녀가 되고 싶었다.

     

     “유키, 안 돼, 유키, 유─.”

     

     사랑받고 싶었다.

     

     “유키이이이이이─────!!”

     

     사랑받고 싶었다.

     

     사랑받고 싶었다.

     

     사랑받고 싶었다.

     

     “나는………….”

     

     사랑받고─ 싶었─다.

     

     “나는…… 스즈미야… 하루히.”

     

     

     

     눈이 내리고, 환상이 깨질 때

     ─ FIN ─

     

     



    윤소현의 꼬릿말입니다
    리니지 듀크데필 서버 야옹이동영상[듀크데필], 불법선거근혜[듀크데필], 세월호잊지마[듀크데필]이라는 아이디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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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4/20 22:45:00  120.136.***.228  犬夜叉  265983
    [2] 2016/04/20 22:52:56  123.111.***.133  McRyu  555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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