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계약서</b></div> <div><br></div> <div>제 아버지 이야기입니다.</div> <div><br></div> <div>우리 아버지는 택시 우전수입니다.</div> <div>새벽 2시를 넘었을 때인데 40대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 한 명이 병원에서 탔습니다.</div> <div>행선지는 인근에 있는 다른 병원이었습니다.</div> <div>행색은 잘 차려입은 정장 차림이었고, 수상한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div> <div>차 안에서 그 사내는 A4 사이즈 서류를 꺼내더니 한 장 한 장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div> <div><br></div> <div>목적지였던 병원에 도착하자 그 사내는</div> <div>"운전수 아저씨. 죄송하지만 조금만 기다려주실 수 있나요?</div> <div> 금방 끝날 용건이라서요. 여기가 끝나면 다른 병원도 가야 하거든요"</div> <div>하고 말했습니다.</div> <div>아버지는 "알겠습니다"하고 승락하셨는데</div> <div>대신 무임승차를 막기 위해 짐을 두고 가라고 했고</div> <div>사내도 가방에 들어있던 봉투만 꺼내들고 나머지 짐은 모두 두고 내렸습니다.</div> <div><br></div> <div>사내가 택시에서 내린 후,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사내가 보던 서류가 궁금해서</div> <div>호기심으로 그만 보고 말았습니다.</div> <div>그 서류는 어떤 계약서 같은 것이었는데</div> <div>이상한 점이 이름 옆에 도장이 아니라 지장이 찍혀 있었던 점입니다.</div> <div>하지만 차 안이 어둡기도 했고, 사내가 정말 금세 돌아왔기 때문에</div> <div>자세한 내용은 보지 못 했다고 합니다.</div> <div><br></div> <div>사내가 황급히 병원에서 나오는 게 보여서, 택시 문을 열어주었습니다.</div> <div>그때 사내 뒤를 어느 여성이 따라오는 게 보였습니다.</div> <div>아버지는 그 여성의 분위기가 심상찮다 여겼습니다.</div> <div>사내는 "저 여자는 무시하고 얼른 출발해주세요"하고 냉정하게 말했습니다.</div> <div>아버지는 시키는 대로, 아니 반사적으로 차를 출발시켰고</div> <div>백미러도 왠지 무서워서 보지 못 했다고 합니다.</div> <div><br></div> <div>그 후 사내는 작은 소리로 "죄송합니다"하고 한 마디하더니 계속 침묵하며</div> <div>다른 병원 앞에서 내리더니 급히 병원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div> <div><br></div> <div>사내를 내린 후, 바로 택시 회사에서 무선 연락이 들어왔습니다.</div> <div>"급히 집에서 연락 달라고 가족분이 연락하셨습니다"라는 전언이었습니다.</div> <div>집에 연락할 것도 없이, 아버지는 부인(제 어머니)이 죽었을 거라 순간 예감했다고 합니다.</div> <div>그 이유는 제 어머니가 지병인 심장병 때문에 그리 오래 버티지 못 할 거라 의사에게 들었기 때문입니다.</div> <div><br></div> <div>아버지는 이 이야기를 10년 정도 지나서 이야기해주셨습니다.</div> <div>어린 저에게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 배려하신 거라 생각합니다.</div> <div>당시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 때문에 그 사내에 대해 깊이 생각지 못 했지만</div> <div>그 남성은 대체 누구였을까?</div> <div>그 서류 안에 엄마 이름은 없었을까?</div> <div>쫓아온 여성은 누구일까?</div> <div>그 "죄송합니다"라는 한 마디의 뜻은 무엇일까?</div> <div>지금에서야 그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고 합니다.</div> <div><br></div> <div>나도 나대로, 엄마 장례식에 본</div> <div>엄마의 시신에 있는 엄지손가락이</div> <div>살짝 붉은 색이었다는 걸 아버지에게 말씀드리지 못 하고 있습니다.</div> <div>10년 정도 지나면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div> <div><br></div> <div><br></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