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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9 23: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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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재산, 외모, 성격, 모든걸 가졌어요. 하지만 언제나 마음 한구석은 외로웠죠.”
그레그리오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말하는걸 슈는 수첩에 열심히 받아 적었다. 발렌티노는 소파에 누워 과일을 먹으며 가만히 듣고 있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너무 천재라 모든게 쉽고 재미없었던 거에요. 그래서 자신을 이해해줄 사람을 찾아 긴 세월을 방황했지만 역시 평민들은 멍청했어요. 세상을 부정적으로밖에 바라보지 못하는 1차원적인 동물이었던 거에요. 그러다가 주인공은 세이셸에서.. 아니, 몰디브? 아! 버진 아일랜드에서 특별한 소녀를 만나 첫눈에 반하게 됩니다. 그 소녀는 평민답지 않은 아름다운 외모에 바다처럼 깊은 생각을 하는 순수한 사람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잊혀진 왕족의 후손이었어요! 그러니까 평민들 사이에서도 빛이 났던 거죠. 둘은 그렇게 운명처럼 만나서 둘을 방해하는 혹독한 시련들을 이겨내고 결국 결혼하게 된답니다!”
짝짝짝짝
발렌티노가 포도로 끈적해진 손으로 박수를 쳤다.
“역시 대단해! 아름다워! 훌륭한 상상력이야! 너는 역시 작가의 소질이 있구나! 나는 이보다 더 멋진 스토리를 본 적이 없어!”
“혹독한.. 시련….. 결혼. 실례지만 여기서 어떤 시련이 나오는지 대략적으로 정해주실 수 있을까요? 구체적인 맥락이 있으면 어색하지 않고 자세하게 만들 수 있거든요.”
“제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그건 작가님이 고민해야할 문제죠. 그리고 독자로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게 더 재밌지 않겠어요?”
슈는 수첩을 다시 들여다보며 희미하게 한숨을 쉬었다.
“네.. 그렇죠. 지당하죠. 그럼 3개월 안에 완성해서 다시 뵙겠습니다.”
“아, 그리고 작가님, 혹시 책은 2부 출판하시나요?”
“네 그렇죠. 제 자식같은 것이니 한권씩은 소장하거든요.”
“죄송하지만 그냥 한부만 출판해 주실수는 없을까요? 몇억이나 들여서 만드는 책인데 만에 하나 잘못 퍼져서 평민들에게 복제판이 돌아다니는건 참을 수 없거든요. 절 닮은 대역으로 영화도 만들건데 이러쿵 저러쿵 하는 소문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책은 작가님이 쓰지만 훌륭한건 제 아이디어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제가 썼다고 할 수 있잖아요.”
슈는 얼굴이 뒤틀리는걸 필사적으로 참았지만 눈썹이 조금 꿈틀거리고 말았다. 그레그리오와 발렌티노는 이걸 놓치지 않아서 대놓고 얼굴을 찌뿌렸다. 슈는 딱딱한 얼굴로 그리 하겠다고 마지막 인사를 한 뒤 짐을 챙겨 나갔다. 문을 닫자 문 틈 사이에서 ‘방금 눈썹 꿈틀거린거 봤어? 평민주제에 책 좀 팔았다고 거만한것봐. 우리 아니었으면 겨우 밥이나 빌어먹는 주제에..’ 하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