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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5 14: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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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고유한 본성이 있다. 그 어떤 환경에서도, 그 어떤 변화에도 절대 변하지 않는 영혼.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들중에 열에 아홉은 악하게 변하지만 하나쯤은 결코 선한 마음을 잃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그건 그 사람이 강인해서가 아니라 본성이 전쟁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각 개인이 추구하는 삶의 의미라고 부른다. 그리고 내 삶의 의미는 무언가를 죽이는데 있다. 나는 항상 무언가를 죽여야 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뭐라고 부르더라? 쾌락살인마? 싸이코? 요즘은 사이코패스라는 말이 유행이던데. 뭐라고 불러도 좋다. 상관 없다. 내가 원하는대로 죽이는데 이유는 딱히 필요없다.
그러나 이런 나에게는 불행하게도 우리 부모님과 언니는 아주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이었다. 그들은 내가 어린 시절에 동네 강아지와 고양이를 죽이는것을 보며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걸 눈치챘고 나는 내 본질을 제대로 깨닫기 전에 “치료”되었다. 생명을 함부로 죽이면 안된다. 불쌍하다는게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죽이면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게 되고, 내가 살아가는데 불리하게 되며, 사람을 죽이면 내 자유는 구속될 것이다.
그래서 포기했다. 다른건 몰라도 사람은 절대 죽이지 말자고 생각했다. 나는 내 본질 대신에 다른 즐거움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공부도 열심히 했고, 친구도 많이 사귀었고, 남자친구도 생겼다. 주위의 사람과 어울리려고 노력했다. 부모님은 드디어 내가 착하게 변했다고 하시며 만족하셨다.
그러나 사실 내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즐겁지 않고 허무한 감정만 느껴질 뿐이었다. 그저 죽이고 싶었다. 그러면 간단히 행복해질수 있을텐데. 참고 또 참다가 아무도 몰래 길고양이를 죽이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도 슬슬 한계가 와서 내 속은 점점 폭발할것 같았다.
그러던 즈음 도시에 연쇄살인마가 나타났다. 벌써 5명도 넘게 살해했는데 범인은 꼬리조차 잡히지 않았다. 피해자는 주로 노약자나 여성. 전부 참혹하게 칼로 난자된 시체로 발견되었다. 나는 이 살인마에 흥미가 생겼다. 나는 이렇게나 참아가며 살고 있는데 너는 왜 멋대로 행동하는걸까. 그러면 안되잖아? 부러웠고 화가 났다.
남들 몰래 범행장소를 찾아다녔다. 외딴 집, 학교 체육창고, 으슥한 놀이터, 그늘진 골목 등. 그곳에서 미처 치우지 못한 핏자국을 살피며 어떻게 찔렀는지, 사냥감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상상했다. 내가 그녀석이었다면? 현장의 공기를 마음껏 흡입하며 짜릿한 감정을 느꼈다.
여기에는 예상치 못한 수확이 있었다. 모든 현장에는 어떤 희미한 향이 남아있었다. 세번째 장소까지는 설마 했지만 네번째, 그리고 가장 최근인 장소에서 특별한 냄새가 분명하게 났다. 피 냄새와 살짝 닮은 달콤한 무언가. 이건 향수일까? 어쩌면 범인의 본질일지도 모르지.
그리고 어느날 우연히 그 냄새를 또 맡았다. 육교 옆을 스쳐 지나간 남자에게서 분명하게 같은 냄새가 났다. 검은 모자를 쓰고 왼손에 검정 비닐봉투를 들고있는 남자. 그 남자는 빠른걸음으로 사람들과 자전거를 능숙하게 피하며 어느 골목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 남자를 놓치지 않기 위해 뛰어가며 생각했다.
사람은 죽이는건 안되지만 사람을 죽이는 사람은 죽여도 상관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