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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0 1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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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약간 내용을 좀 정확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는데요.
사실 다라프림은 1953년에 특허만료가 된 약품임. 다만 복제제품이 없었고, 상품성에 대비해 FDA승인까지 막대한 투자비용에 비해 복제품을 만들만한 가치가 없었기 때문에 대체제가 없던 상황이었음. 이걸 마틴 슈크렐리가 자신의 튜링제약회사에서 이 제품의 미국 내 생산 및 판매권리를 산 다음. 원래 가격의 50배로 올려버린 것임.
근데 여기까지만 보면 마틴 슈크렐리가 불쌍한 환자의 고혈을 빨아대는 진짜 나쁜 놈이 되는데 그 이면에는 좀 다른 내용이 있음. 마틴 슈크렐리가 다라프림 약값을 올려서 청구한 대상은 보험사 및 대형 병원이었어서 실제 환자에게 간 부담은 그렇지 크지 않았으며, 보험이 없는 사람들 - 정확히 얘기하면 보험에도 가입되지 못하고 약값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 - 에게는 1$씩에 판매하겠다는 정책을 썼음. 간단하게 얘기하면 약값을 올리긴 했는데 그 오른 값을 환자가 아니라 보험회사와 병원에게서 받겠다는 얘기였음. 또한, 높인 가격으로 얻는 이득은 모두 희귀병과 감염병 연구개발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음.
다만, 그렇다고 해도 엄청난 가격 폭등은 많은 사람들에게 심리적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이런 약값 폭등이 실질적으로 병원의 재정 부담을 가중시켰고, 약 부족 사태도 야기되었다는 문제는 있었음. 또한 마침 이 시점이 미 대선 시점이라 보다 더 시끄러워졌던 면도 있었음. 또한 마틴 슈크렐리가 처음부터 제약회사의 카르텔 안에 있던 사람이 아니라 갑툭튀한 해지펀드 매니저가 제약회사를 어느날 툭~ 하고 샀다는 점 때문에 다른 제약회사들이 백안시했던 점도 여론이 나빠지는데 영향을 주었고, 결정적인건 청문회에 불려나온 마틴 슈크렐리가 되게 삐딱선을 타며 의원들의 질의를 받아넘겼고 의원들을 무시하는 발언을 한 게 언론을 통하면서 어그로를 거하게 끌었음.
사실 제약회사가 자기들이 독점한 약값을 확 올려서 폭리를 올리는 경우는 미국에서 흔한 일인데, 화이자는 2015년 자신이 만드는 약의 가격을 최대 42% 인상했으며, 밸리언트사는 튜링사처럼 심장질환 관련약인 니트로프레스와 이수프렐의 특허를 사서 가격을 각각 212%와 525%까지 올렸음. (웃긴건 이것도 다라프림 값 올린 때와 비슷) 이런게 가능한 건 미국은 약값을 정부가 아닌 제약회사에서 맘대로 매길 수 있기 때문임. 다라프림 인상 사태도 비록 도덕적으로는 지탄받았지만 미국 법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합법적인 일임.
그리고 본문 글에서 호주 학생들이 만든 다라프림 대체제도 이거 FDA 승인까지 받으려면 엄~청나게 오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감. 게다가 다라프림은 에이즈, 말라리아, 톡소플라즈마의 치료에 쓰이는데 이 약의 처방 빈도가 1년에 온 미국에서 8,000번 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시장이 작음. 그러다 보니 시장성이 없어서 복제약을 만들겠다는 회사도 없기 때문임. 아마 이 학생들도 그런 것들을 다 검토해 보고 오픈소스로 풀었을 것임. 아니라면 제약회사랑 협정 맺고 약 팔아서 떼돈벌었겠지.
하여간 이 이야기는 단순히 "거대악 제약회사와 거기 맞선 선한 10대들" 의 싸움이 아니라 미국 제약시스템의 어두운 일면과,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더라도 상품성과 채산성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의 단면을 보여주는 일화라 할 수 있음.
아, 참고로 이렇게 거하게 전 미국을 상대로 어그로를 끈 마틴 슈크렐리는 다라프림 때문이 아닌 다른 금융사기죄가 유죄가 되어 징역 7년에 벌금 8천만원, 그리고 80억 상당의 재산 몰수 형을 받고 지금 감방에 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