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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4 10:2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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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말입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방관자나 다름없죠.
하지만 드러나지 않는다고 행동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인터넷 논쟁이 소모적이고 답없이 그저 다들 '싸우고싶어 싸우는' 것 같아 보이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저는 사실 넷 상에서의 논쟁이 다른 누군가를 설득하고 내 의견 밑에 굴복시키기 위한 목적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사실 논쟁을 통해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은 다름아닌 자기 자신이겠지요. 누군가는 논쟁을 거쳐가며 "내 말이 정말 옳나? 남에게 이렇게 주장할 만큼 탄탄한 근거를 가지고 있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를 가질 수도 있을테고, 누군가는 자신의 주장의 논리적 뒷받침을 만들기 위해 자료를 찾고 스스로 공부를 합니다. 혹은 누군가는 어느새 논리는 사라지고 그저 자기 자신이 남에게 질 수 없다는 자존심만 남아 고집과 아집으로 똘똘 뭉쳐버리기도 하겠죠. 저 또한 인터넷 논쟁에 뛰어들어 이러저러한 말들을 내 뱉으면서 때로는 흥분해 과격한 표현이나 욕설까지 쓸 때도 생기지만, 그럴때마다 '토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에 빠져듭니다.
'앵똘레랑스를 용인하는 순간 똘레랑스는 무너진다'며 자위하기도 하고, 스스로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며 나 자신이 토론에서 남을 강압하고 짓누르려 드는게 아닌가 괴로워하기도 하고 말이죠.
사회를 바로잡으려, 아니 사회를 내 생각대로 바꿔보려 노력하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봐야만 합니다. 내가 과연 어디에 서 있는가, 나는 과연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는가, 하는 것 말이죠. 때론 자신이 믿고 있던 절대적인 기준이 흔들리고 의심될때도 있습니다. 스스로의 정체성마저 무너질듯한 고민으로 한숨도 못자고 밤을 지새울때도 있죠. 하지만 스스로를 그렇게 괴롭히고 채찍질하지 않으면 결국 우리가 그렇게 욕하는 반민주세력과 달라질게 하나도 없어요. 지금은 우리가 민주주의를 부르짖더라도, 만약 우리 민주세력이 다시금 권력을 잡고 민주주의를 바로세우더라도 그때는 우리 스스로가 변질될 위험도 충분히 있구요. 안 그럴 자신이 있다구요? 수많은 386 변절자들이 젊은시절 독재에 항거할때에도 '나이먹고 우리가 권력잡으면 내가 저 짓 해먹어야지'미리 준비했었을까요?
저는 마음 속에 '민주주의'와 '인본주의' 단 둘만을 흔들리지 않을 가치로 세워두고 나머지 자잘한 방법론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스스로 고민하고 의심합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 스스로 내린 평가나 나의 입장에 대해서도 이게 과연 옳은지 아닌지 계속 되새김질 해보구요.
이런 고민들조차 행동하지 않는 말뿐이라 볼 수 있을까요?
아니면, 저는 IT 노동자들의 노동인권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만 나서서 노조를 만들거나 크게 행동하는 것은 없습니다. 일단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가 있으니까요. 저 혼자 뿐이면 모르겠지만 제 가족들에 대한 부양이 걸려있으니까요. 지금은 때가 아니고, 내가 좀 더 힘을 키운 뒤에는 뭔가 행동해 보겠다고 계획은 가지고 있습니다. 이게 비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최소한 저는 저 스스로 불의에 타협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일처리가 잘못되었다면 당당하게 맞섭니다. 그러다 불이익 본 적도 많았구요. 이게 너무 개인적이고 작은 일이라고 생각되시나요?
세상은 수 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져있습니다. 그리고 한사람 한사람이 스스로 바뀌는 것으로 세상도 변하게 됩니다. 어찌보면 각자가 자기 스스로를 돌아보고 올바르게 살겠다고 결심을 하는 것들이야말로 가장 큰 행동일지 모릅니다. 굳이 세상을 나홀로 다 갈아엎고, 다른 사람들을 내 말에 따라 설득해 넘어오게 만들고, 이것만이 '행동'인 것은 아닙니다. 겉으로 드러나는게 없다고 해서 바뀌는게 아무것도 없을까요? 아무도 행동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요?
저는 요즘 '진보의 방법론'에 대해 고민중입니다. 진중권씨가 꺼낸 논제죠. 수구세력은 매번 자신을 포장하는데 능숙해서 그 시커먼 속을 허울좋은 껍데기들로 뒤집어 쓰고 사람들의 호응을 얻어내는데 왜 진보세력은 알찬 알맹이를 가지고서도 아직도 유행지난 방법론들을 고수하며 사람들에게 '낡은' 이미지만을 선사하나...란 이야깁니다. 진보의 사상적 순수성이 어쩌고 저쩌고!!하면서 울컥 들고 일어날 골수 진보주의자들의 말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시대가 바뀌었고 일반 대중들에게 진보-보수간 갈등이 철지난 옛이야기가 아님을, 지금 당장 시급한 이야기임을 알리는게 중요하다는 점에서 크게 공감했었거든요.
개인적으로 취미로 그림도 그리고 영상도 만지고 하면서, 때마침 인터넷으로 인해 1인 미디어의 시대가 도래한 참에 진보도 이런 부분을 어찌 잘 이용할 방법이 있지 않을까를 고민중입니다.
죄송하지만 글쓴분이 제시하신 '행동'의 방법이라곤 결국 집회 하나 외에는 뭘 말씀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집회도 민주시민에게 주어진 가장 강력한 자기 주장의 표현 방법이자, 정당하고 합법적이며 적극적인 '행동'이기는 하지만 개개인이 스스로의 사상과 생각을 정리하고 되돌아보며 소수가 모여 의견을 나누는 것들 역시 강력하고 적극적인 '행동'에 속합니다.
모두의 의견을 모으고, 다른 이들의 호응을 얻고, 주장이 변질되거나 흐지부지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민하고 토론하는 과정없이 무작정 길거리로 나선다고 해서 그 집회가 힘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집회가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뒷받침 되어 줘야 한다는 이야깁니다.
불편과 불이익을 감내하면서까지 각종 집회에 참석하고, 심지어 1인시위까지 펼치시는 분들의 용기와 노고는 분명 칭송받을만한 행동들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이러한 고민을 품고 사는 사람들더러 비겁하다 욕할 수 있는 문제일까요?
글쓴분은 대체 어떠한 고민을 했고, 어떠한 행동을 했길래 다른 사람들 더러 '행동하지 않는 비겁한 사람들'이라고 그리 쉽게 단정을 지으시는 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