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8
2010-11-09 11:59:55
4
[적대 세력 간 갈등으로 알아보는 한국 근현대사]
3. 독재주의자 vs 민주주의자
사실 우리나라의 '어떤 집단'들이 워낙 '빨갱이' 낙인을 남발하고 다니다보니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것이 '자본주의vs공산주의'인 것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으나, 사실 그 갈등은 곁가지에 불과한 겁니다. 정작 중요한 갈등들,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갈등들이 서서히 태동되죠.
저러한 '빨갱이 논리'를 등에 업고 서서히 권력욕에 물든 야수들이 눈을 뜨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정적들을 '빨갱이 낙인'을 찍어 제거해버리는 식으로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무리들이죠. 이는 사실 김구 선생으로 대변되는 민족주의자들이 힘을 잃은 뒤 부터 계속되어온 현상이며, 위에 언급한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 여기에 편승하여 살아남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죠. 이것이 6.25 전쟁을 거치며 더욱 굳건해져 그야말로 상대에게 '빨갱이' 한마디 씌우는 것으로 목숨까지 빼앗을 수 있을 수준이 되자, 이 논리(?)를 악용해 부와 권력을 가지려는 이들이 점점 늘어납니다. 이들은 (남한에서 대다수가 살아남은) 친일파들도 있었고, 미국에 빌붙어 '돈과 힘'의 맛을 보기 시작한 새로운 권력자들도 있었죠. 이것이 현실화 되어 나타난 것이 바로 이승만의 독재 야욕이었습니다.
여기서 놀랍게도, 시민과 학생들이 이러한 부당한 권력에 대항해 들고 일어나 결국 독재자 이승만을 쫓아내는 쾌거를 이룩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시작이었죠.
하지만 권력을 쫓는 무리는 집요하고 끈질깁니다. 독재자를 시민의 손으로 직접 물리쳐낸 기쁨도 잠시, 다시금 군부 독재의 역사가 시작되기 때문이죠. 박정희에 대해 좋게 평가할 수 없는 이유가 몇가지 있습니다. 그는 군부 쿠데타를 통해 불법적으로 정권을 획득했고, 이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정으로서의 정통성을 잃어버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박정희가 일본으로 부터 정당한 사과와 전쟁'보상'금을 받아내지 못하고, 그보다 금액조차 적었던 경제'원조'금 명목의 돈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대한민국의 대외적 정통성과 인식이 어떤 수준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지금 우리가 남미나 동남아의 일부 군부독재 국가들을 비웃으며 바라보는 수준의 시각과 동일했겠죠) 또한 군부 쿠데타의 좋지 못한 선례를 남겨 향후 수십년간 권력맛을 본 군인들이 지키라는 나라는 안지키고 자국민들을 학살해가며 자기 욕심 채우는 역사를 시작시킨 장본인입니다. 게다가 경제발전을 시켰네 뭐네 하지만 1인 독재의 무자비한 밀어붙이기 식 일처리와 부정부패의 방조는 지금에 와서 대한민국 경제를 정체시키고 심각하게 저해하는 원인이 되고 있죠.(잘못된 기업문화와 부정부패로 인해 IMF라는 치명적인 상황까지 맞이하기도 했었구요) -역사에 가정이란 없겠지만, 한국 경제의 부흥은 박정희가 없었더라도 충분히 온건한 방법으로 가능했으리라는 것이 제 사견입니다.
어쨌든 그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이들을 탄압하고 죽이며 흉악한 독재를 계속하다 어느 술자리에서 부하의 총탄에 쓰러집니다. 하지만 군홧발에 짓밟혀있던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다시 머리를 들려던 무렵, 저 유명하고 악랄한 살인마 전두환이 다시금 정권을 찬탈하죠. 그것을 막으려던 과정에서 광주의 시민들이 봉기했지만 이들은 당시 언론에게 "빨갱이"낙인을 받으며 공수부대가 투입돼 '학살'당하고, 오래도록 진실은 은폐된 채 광주 시민들이 고통을 겪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광주 민주화 운동이죠.(가끔 지역감정 들먹이면서 전라도 사람들이 한나라당에 표 안 주는 걸 뭐라 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세요. 100년 200년 전의 일도 아니고 겨우 몇십년 전 일입니다. 당시 희생된 열사들의 형제, 자매, 친구, 부모, 자식들이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데 그들이 자신들이 사랑하는 이를 학살한 전두환의 후예들에게 표를 줄 수가 있을까요?)
결국 전두환이 정권을 잡으며 독재와 민주세력간 싸움은 지리하게 이어집니다. 권력을 잡은 독재 세력은 툭하면 매카시즘을 빌려와 "빨갱이"논리로 상대를 탄압했지만, 결국에는 민주화세력의 꾸준한 노력끝에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6월 항쟁을 거쳐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합니다.
사실 6월 항쟁은 전세계 민주주의 역사에 있어서도 큰 본보기가 될만한 사건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결과가 결국 노태우의 당선으로 끝났다는 점에 있어서 의의를 많이 폄하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의 진짜 의의는 유례없는 평화적 시위와 수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냈다는 점, 그리고 그럼으로써 대통령 직선제를 획득해 냈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 말인 즉슨, 이 항쟁은 노태우라는 '적'을 무조건 몰아내라는 싸움이 아니라, 적과 아군이 동일한 입장에서 싸울 수 있는 '공정한 싸움터'를 보장하라고 싸운 것이기에 더더욱 민주적이었다 평가할 수 있다는 말이죠. 뭐, 결과적으로는 '직선제를 통해 독재자를 또 뽑아버린' 꼴이 되긴 했지만 말이죠ㅎㅎ
이 싸움은 노태우 정권의 종말과 함께 끝이 날 수도 있었던 것이지만, 김영삼의 배신과 독재시절 기득권을 공고히 해둔 세력들의 건재로 인해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김영삼과 신한국당으로 말이죠.
싸움의 결말은 엉뚱하게도, 김영삼 정권 말기에 터져버린 IMF로 인해 독재세력이 권력을 잃어버리며 결판이 납니다. IMF는 그간의 우리 경제의 문제점들이 쌓이고 쌓이다 폭발한 것으로 김영삼만의 탓은 아니다,라고 평가를 할 수도 있지만 결국 그 문제점들도 독재정권들이 쌓아온 것이기에 그 마지막 주자 김영삼 손에서 터진 것이 상징적이라 볼 수 있을 겁니다.
어쨌든 독재세력의 잔재까지도 드디어 물러나고, 처음으로 투표로 이뤄낸 민주정권의 창출...로 민주vs독재 세력 간 대결 패러다임은 이제 유행이 지나가나....했는데, 10년뒤에 좀비처럼 벌떡 관 뚜껑 열고 되살아나 2차전을 벌입니다만, 그 문제는 나중에 다루고 다음 갈등으로 넘어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