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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23 12:3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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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미국입니다. 제 일기장에서 퍼온 글을 옮깁니다. 일기이니 그냥 가볍게 읽어 주세요.
며칠 전 옆 동네 마트를 갔다가 1.8리터 우유가 3달러 넘는 걸 보고 여긴 왜 이렇게 비싸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오늘 문득 한국에서 사 먹던 우유 가격이 생각났다. 한 통에 4천원이 넘었었지. 물가가 이러니 내 월급은 절반인데 생활은 더 윤택한 것이다. 그래서 자꾸 기타를 사고 있다... 깁슨과 마틴이 반값인데 내가 기타를 안 살 수가 없지 않은가. 각설하고, 물론 여기가 시골이라 미국 중에서도 물가가 싼 편이라고 한다. 또, 아마 여기 월급도 대도시 학교들보다 조금 적은 편일 것이다. 퉁치면 영일 듯. 어쨌거나 경제적인 면만 따지자면 한국은 월급을 두 배 준다 하는 사람이 없으면 나에게 미국에 비해 좋은 점이 없다.
그렇다고 미국 물가가 마냥 싼 것은 아니다. 의식주 비용은 모두 싸다. 집 렌트도 싸고 식재료도 싸고 옷도 싸다. 하지만 인건비는 엄청나게 비싸다. 마트에서 파는 고기 채소 과일 등은 싼데 식당 가서 먹는 밥은 매우 비싸다. 외식 한 번 하자면 음식값도 비싸지만 주문 받고 물 따라주고 음식 나르는게 다인 종업원에게 몇 달러씩 팁까지 줘야 한다. 고급 기타는 싸지만 고장난 기타 고치는 공임은 비싸다. 내가 하루종일 붙잡고 낑낑댈 거 아니면 어쩔 수 없이 전문가에게 거금 주고 맡겨야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사실 이게 당연한 것 아닌가? 자본가가 가진 자본, 건물과 기계와 농장에서 나오는 것은 렌트와 공산품, 농산품이고 노동자와 자영업자가 하는 노동의 대가는 식당 서비스나 기술자 공임 같은 인건비 위주의 품목들이니 말이다.
우리는 부잣집 아들이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건물 한 채보다 식당에서 서빙하는 종업원의 땀과 미소가 더 값진 것을 안다. 따라서 소비자는 후자에 더 많이 지불해야 한다. 재산 많은 사람이 버는 돈 보다 일하는 사람이 돈을 더 많이 버는 것이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 아닌가. 평등. 노동의 소중함. 착취와 부도덕이 아닌 땀방울로 버는 돈. 미국에 엔지니어링 배우러 와서 (엔지니어링은 아직 모르겠고) 돈의 가치를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그런데 정작 미국인은 소득 격차 크다고 불만이 많다. 한국에 근 삼십 년 살면서 반공 교육 열심히 받다가 자본주의의 낙원인 미국에 와 보니 여기 미국이 프롤레타리아 빨갱이 나라인가 싶다.
여기 미국 오래 산 한국 사람들 중에는 가끔 요즘 한국 실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돈도 얼마 못 받고 고용 혜택도 없는 알바를 왜 하는지, 등록금이 버거울 만큼 가난한 사람이 왜 대학에 가는지, 지적 재산권 보호하지 않고 불법을 저지른 학생들에게 합법적으로 고소하는 로펌을 왜 비난하는지, 미국에서 이 좋은 나라에서 오래 산 사람들은 잊었거나 모르는가 보다. 미국 거리에 현대차가 다니고 삼성 엘지 티비가 벽에 걸리는 것을 지켜보며 한국이 그저 잘 살게 되었구나 하게 되었을 것이다. 한국 대기업의 감탄할 만한 성장률의 이면에는 가정을 포기한 정규직의 야근과 그 두 배쯤 될 비정규직과 하청업체 직원들의 피눈물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내가 하지 않으면 내가 당하게 되는 착취의 연쇄가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사회가 한국에선 어디든, 회사에도, 대학 강의실에도, 동아리에도, 심지어 초등학교에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