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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5 18: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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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같은 꿈을 꾼다.
큰 정원을 한 가운데에서 주변을 한번 둘러보고 금환일식으로 어두워진 하늘을 한번 바라본다.
그리곤 아름답게 가꾸어진 화단 건너, 장미꽃으로 장식된 나무 터널을 지나면, 우아한 물길이 나온다.
그리고 물길을 따라 올라가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만큼 아름다운 조각상들로 이루어진 분수가 있다.
분수를 돌아 오른쪽 길로 돌아서면, 향긋한 꽃내음의 그녀가 나의 곁을 스쳐 지나간다.
나는 그녀를 불러 세우고 싶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못내 아쉬워 하며 정원을 돌아나온다.
늘 같은 패턴에 그녀에게 말 한마디 건네려 마음으로 수백번 외쳐보지만, 어김없이 나는 그녀에게 다가설 수가 없다.
아니 없었다. 적어도 어제까지는.
영문은 모르겠지만, 오늘 꿈속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정원의 입구에 서 있었다.
멍하니 서 있다가, 갑자기 어두워 지는 하늘을 깨닫고 나는 서둘러 분수를 향해 달려갔다.
그런 뒤 오른쪽 길로 돌아 서서 그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잠시 뒤 그녀가 빠르게 나를 스쳐갔고, 나는 그녀를 부르며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나를 발견한 그녀는 이내 나를 무시하고는..
잠깐.!
방금 사람이 있었다..
분명히 누군가가 분수대로 뛰어 들었다.
그리고 분수는 마치 커튼이 펄럭이듯 펄럭였다.
나는 무작정 분수를 향해 달려갔고,
투명하게 반짝이는 물 속에 발을 내딛었다.
그런데, 전혀 차갑지가 않았다.
물을 전혀 느낄수가 없었다.
손을 뻗어 조각상에 가져다 대자, 조각상이 펄럭였고, 그사이 작은 불빛이 반짝였다.
'상당히 이상한 꿈인데?'
나는 용기를 내어 조각상 사이를 들추고 안으로 들어갔다.
조각상 너머의 공간에서는, 놀란 눈의 두 사람이 무엇인가를 열심히 두드리고 있었다.
그들에게 다가가려는 찰나, 번쩍하는 섬광과 함께 두명의 검은옷을 입은 사내가 나타났다.
[저희와 함께 가주셔야 겠습니다.]
"네? 이거 꿈이 장르가 너무 이상한거 아닌가요?"
[자세한 내용은 선구자께서 말씀해 주실테니 질문은 잠시 보류해 주십시오]
미처 대답을 하기 전에 그들이 나의 팔을 붙잡았고, 하늘이 빙글 도는 것 같더니
몸이 무한히 길어지면서 실처럼 가늘어 졌다.
속이 뒤틀려 토할것 같은 느낌이 들 때쯤에 이미 내 몸은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고,
나는 어떤 나무가 심겨져 있는 서재에 들어와 있었다.
"놀라셨겠군요.. 저는 브랜든 입니다. 여기서는 저를 선구자라고 부르기도 하죠.."
한 노인이 말을 꺼냈다.
"아... 네 그렇군요... 근데 제가 만들어낸 꿈 치고는 상당히 기괴하네요.."
"놀라실만 합니다.. 약간 정정을 해 드리자면, 지금 당신은 제 꿈속으로 초대되어 오셨습니다."
기괴한 꿈속의 기괴한 노인의 말에 나는 정신이 멍해졌다.
"하하.. 제가 이렇게 상상력이 넘치는 사람인줄 처음 알았네요..."
노인은 내 말은 무시하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저희는 일종의 꿈을 관리하는 사람들이죠. 꿈을 이어주고, 꿈속 이야기들을 관리하고, 타인의 꿈에서 약간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아 그러셨군요.. 저는 사실 베트맨입니다. 어둠속에서 사람들을 돕죠."
나의 빈정거림에도 노인은 흔들리지 않고 하던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을 하다보면, 사람들이 충원되어야 할 필요가 있죠. 그리고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제한적이구요..그래서 선생님을 지켜보다가 이렇게 모셔오게 되었습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보니, 잠시 가졌던 흥미는 이내 사라졌고, 꿈속의 그녀에게 말한마디 건네보지 않고 꿈을 이렇게 전개시켜버린 나에게 화가났다.
'하아...여기서 어떻게 나가지... 다시 제대로 된 꿈으로 돌아와서 그녀를 만나야하는데..'
"선생님의 의견은 충분히 들은 것 같군요.. 저희 이야기에 관심이 없으시면 이 파란 텀블러에 있는 물을 드시면 됩니다.. 그럼 좋은 밤 되십시오."
"아 네.. 뭐가되었든 이번 꿈은 빨리 깨어나고 싶군요... 한번 마셔보죠.."
.
.
.
.
알람 소리에 눈이 떠졌다.
역시나 똑같은 꿈이었다.
항상 꾸는 정원을 걷는 꿈..
갈증이 느껴졌다.
손을 더듬여 테이블에 있는 텀블러를 들어 물을 들이키자 정신이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하아.. 오늘은 늦지 말아야지..'
그런데, 눈앞의 텀블러가 낯설다.
'Dreamers? 이건 어디서 났지? 어제 갔던 바가 그랬었나?'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다시는 그 정원에서 깨어나지도
그녀의 향긋한 꽃내음도 맡을 수가 없었다.
다시 평화로운 일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