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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0 19:5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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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A 구역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산불이 번진 것 처럼 온 마을이 붉은 빛으로 감돌았다.
사실 2주간의 길고 지루했던 이론 교육을 받으면서 병욱은 이제는 다 알 것 같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이제는 지루한 이론이 아닌 실제 상황을 접하고 싶어했었다.
그러나, 알고 있다고 믿던 병욱앞에 펼쳐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그는 어찌 해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그저 민혜를 바라볼 뿐이었다.
[선..배.. 이럴 수도 있는 건가요?]
민혜는 그 와중에도 태연하게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 있었다.
[당장은 할 수 있는게 없네.. 그냥 봐둬.. 이것도 교육이 될테니까.]
[선배님.. 무슨 소리에요.. 그래도 최선을 다해봐야죠..]
병욱은 무심한 민혜의 태도가 못마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신입인 자신에게 딱히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다시한번 민혜에게 간절한 눈길을 건넸다.
그 사이 마을 곳곳에 있던 붉은 점들이 하나 둘 반짝이기 시작하며 한 건물로 모이기 시작했다.
[당장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니까.... 못 믿겠으면 몇몇 찍어서 확인해봐..]
그 말에 정신을 차린 병욱이 급히 눈을 돌려 반짝이는 점 하나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잠시 뒤 다른 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다시...
몇번이나 붉은 점들을 주시하던 병욱이 파래진 얼굴로 다시 민혜에게 시선을 돌렸다.
[선배님... 뭐죠? 아무런 좌절도.. 불평도.. 없어요.... 평온해요...]
[그래.. 첩보가 있깄 했었는데... 여기였었네...]
민혜는 깊게 빨아들인 담배연기를 동그랗게 뿜어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혹시 존스타운이라고 기억나? 자살 심리학 예외편에서 다뤘던?]
[인민사원 집단 자살 사건 말씀이세요? 강요된 믿음에 의해서 발생한 자살은 심리적 접근으로는 해결 할 수 없다..아.....]
마침내 병욱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이내 절망적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는 건가요?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요. 뭐라도 해야 하는거잖아요. 경찰이라도 불러야죠..]
담배불을 손가락으로 튕겨 불을 꺼트린 민혜는 거의 울먹이고 있는 병욱을 바라보았다.
[경찰에 연락해서 뭐라고 하게? '여보세요.. 여기 집단 자살을 하려고 하니까 막아주세요.. 저희는 마음을 읽는 사람들이라서 의도를 볼 수 있어요..??' 그러면 경찰이 아.. 그러시군요.. 빨리 사람을 보낼께요... 그럴것 같아?
아니야.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거야.. 대신, 배운걸 응용을 해야지. 자 이제 불빛들이 모여들고 있지? 잘 봐봐.. 이상한거 없어?]
[음.. 잘 모르겠는데요?]
도저히 모르겠다는 표정의 병욱을 민혜가 안타깝게 쳐다보았다.
[이그... 저기 건물로 제일 늦게 모이는 불빛들 보여?? 뭔가 다른걸 모르겠어??]
한참 눈을 굴리던 병욱이 외마디 소리를 냈다.
[아.. 깜빡이지 않네요??]
[그래.. 다들 이미 마음을 굳히고 깜빡이고 있는데, 저긴 아직 깜빡이고 있지 않아.. 그건 아직 확신이 없다는 거지..그 중에 우리가 살릴 사람이 있어 이제 하나씩 확인해보자고... 나는 왼쪽부터 맡을게 넌 오른쪽부터 부터 맡아..]
한참을 눈이 붉어질때까지 점 하나 하나를 살펴보던 병욱이 소리를 질렀다.
[찾았어요.. 찾았다고요..]
[그래 상황이 어때? 생각한 방법은 뭐고?]
긴장한 목소리로 병욱이 설명을 시작했다.
[온몸에 멍이 들었어요.. 그리고 너무 무서워 하고 있어요.. 무서워서 도망칠 생각도 못하고요.. 그리고.. 또, 애완용 고양이가 있어요. 조금만 동기와 용기를 주면 될 것 같아요.. 고양이를 경찰서 쪽으로 뛰어가게 만들고, 경찰아저씨는...얼마전 가정 폭력 사건을 다시 생각나게 하면, 될 것 같아요..]
이야기를 다 들은 민혜가 빙긋 웃더니 다른 소소한 환경을 손을 보기 시작했다.
[좋은 생각이다.. 경찰이 한명 더 오고, 자기 딸과 비슷한 또래 비슷한 체형의 아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그 아이도 죽은 엄마처럼 따뜻하게 느낄 수 있다면, 어쩌면 이 모든 일을 막을 수 있을수 있겠다..]
다행히 모든일이 잘 풀렸다..
고양이는 갑자기 찾아온 배고품에 민준의 품을 벗어나 경찰서 앞 쓰레기통을 뒤지러 뛰어갔다.
그리고 멍든 민준이는 고양이를 쫓아왔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기 위해 흰 티셔츠로 얼굴을 훔쳤다. 그 때, 고양이를 쫓아내기 위해 나온 김경사는 민준이의 멍에서 아동 학대를 떠올렸다.
곁에 있던 최경위에게서 갑자기 엄마의 따뜻함을 느낀 민준은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고, 민준이를 달래던 최경위는 뜻밖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이런 행운이 겹쳐, 적절한 시간에 경찰은 현장을 급습했고, 많은 증거들과 함께, 모든 생명을 확보할 수 있었다...
[제법 괜찮은 아이디어였어.. 신입이 이렇게 많은 생명을 확보한건, 유례가 없는일인데?]
민혜의 칭찬에 병욱이 시선을 흐뜨리며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뭐야.. 이런걸로 그런 생각을 하는거야? 아니야..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아이.. 선배님.. 이건 그런게 아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