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섹션 중 가장 상대팀을 자극했던 이탈리아전 카드섹션 이야기 입니다.
2006년 DC 국내축구 겔러리에 연재했던 글을 수정해 다시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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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섹션 이야기..5(AGAIN 1966)
AGAIN 1966 - 16강 이탈리아전.
16강에 오른 것은 우리에게 더할 수 없는 기쁨이었지만,
카드섹션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점점 부담이 되기 시작했어.
원래 계획이 첫경기 뿐이었기 때문에 늘 다음 경기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준비를 해야했거든.
한경기가 끝나면 곧바로 백지상태에서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식이었지.
매일 경기장 좌석 도면 붙잡고 씨름하다보니 이때 쯤 되었을 때는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
그냥 편하게 월드컵이나 보면 좋겠는데 뭔 맨날 종이에다 연필로 그렸다 지우개로 지웠다..
딱 '대한민국' 성공했을 때 그만 두는게 제일 모양이 날거 같은데 여기서 딱 그만하자. 이런 생각이었지.ㅋ
더군다나 담당이었던 애 하나가 개인 사정으로 이탈리아전 카드섹션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서 이번엔 나혼자 준비해야 했거든.
그래서 회장한테
'세번이나 했으니 이제 카드섹션 그만해요. 종이도 아깝잖아요.'
이랬다가 욕만먹었네. 딱 한번만 하자고 할 때는 언제고..ㅠㅠ
암튼 그정도로 점점 부담감이 커지고 있었어.
어쨋든 카드섹션 준비를 시작했는데 문구는 생각보다 쉽게 나왔어.
그때 아마 붉은악마 1호머플러였나. 북한 팀이 참가했던 월드컵을
상징하는 1966년이 새겨져 있었거든.
박두익의 골로 1:0으로 이탈리아를 침몰시켰던 대회.
이탈리아 하니까 그냥 바로 1966년 북한전이 떠오르더라구.
이걸 이용해서 카드섹션을 만들면 되겠다.
경기가 벌어지는 대전 구장은 전용구장인데다
좌석 배치가 글자를 새기기 편하게 되어 있어서 글자가 이전보다 이쁘게 나왔어.
오.. 이 미려한 글자체. 어디 카드섹션 알바 같은거 있으면 좋을텐데....--;
밤새 도면을 작성하고 경기가 벌어질 대전으로 내려가면서 기대와 함께 약간 꺼림직한 생각도 들었어.
이 카드섹션이 잘 된다면 좋겠지만
혹시 이거 괜히 북한 찬양, 고무 이런걸로 국보법에 걸려 잡혀가는건 아니겠지...?
지금 돌아보면 기우였지만 막상 또 그렇게 생각을 해보니까 걱정이 되더라고..
나중엔, 그래 뭐 잡아가려면 잡아가라 난 이거 꼭 보여주고 싶다.
이런 심정이었지. 될대로 되라. 뭐 이런.. ㅋㅋ
사실 이 카드섹션은 이탈리아를 노리고 만든건 아니었어.
오히려 이탈리아는 이 문구를 보더라도 무시할거라 생각했지.
이탈리아는 강팀이잖아. 우리는 약팀이고..
그리고 대체 1966년..이게 언제적 얘기야. 이거 보고 콧방귀나 뀔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이 카드는 우리 선수들과 관중, 그리고 언젠가는 북쪽에서 이걸 보게될지 모를 북한
사람들을 위한 카드섹션이었어. 아.. 국보법 걸면 걸릴 수 있겠구나..나 빨갱이 ㅋㅋ
근데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났어.
카드를 경기 하루 전에 설치했는데 그날 우리가 설치할 때
이탈리아 애들이 필드에서 훈련을 하고 있었거든. 걔들이 이걸 본거야.
카드를 의자에 붙여놓기 때문에 경기 전에라도 어떤 문구인지 확인할 수 있거든.
게다가 이게 언론을 통해 미리 알려지기 시작했어.
숙소에 돌아와 보니까 벌써 인터넷에 사진과 함께 떠 있더라고.
사진링크
http://www.fntoday.co.kr/bbs/download.php?table=bbs_223&idxno=26670&file_extension=jpg&filename=111.jpg 이탈리아 애들이 난리를 치기 시작했어.
뭐 이건 예의가 아니라는둥 경기장 개방 이전에 사람들이 들어와서 이런걸 설치하는건 규칙
위반이라는둥..FIFA 에 알려서 뭘 어쩐다는 둥...
TV인터뷰에 토티가 나와서 한골이면 충분하네 어쩌고 할 때도 얘들 약팀이랑
붙으면서 쓸데없이 오바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오바가 기본 컨셉인지 계속 철거하라고
압력을 넣더라고..
물론 우리는 그냥 못들은척 가만 있었지.
경기 당일.
하루 늦게 도착한 다른 담당자 애와 함께 경기장에서 대충 준비를 마치고
밖에 나가 대기를 하고 있다가 숙소에 잠깐 볼 일이 있어서 택시를 탔는데 전화가 왔어.
'야 지금 카드섹션 철거되고 있어!! 빨리 와봐!'
'뭐! 뭔 개소리야. 철거를 왜해? 아저씨 차 돌려요!!'
택시 급 유턴 끼이~~익~
입에서 단내가나도록 경기장 앞으로 달려갔어.
거기 있던 사람들한테 자초지종을 물어보니까 FIFA에서 철거명령이 내려왔대.
그래서 자원봉사자들이 카드를 다 떼내고 있다고 하더라고.
아 ㅆㅂ 안돼! 그걸 왜떼 걍 놔둬!
경기장 안으로 막 뛰어들어갔어.
그런데 들어가서 보니까 우리의 걱정과는 조금 다르게 일이 진행되고 있더라고.
경기진행을 담당하는 어떤 분으로부터 연락이 왔대.
이탈리아가 하도 난리를 피워서 살짝 안보이게 의자 밑으로 내려놓으라고만 했으니까 걱정 말라고..
내가 그걸 왜 떼겠냐고..나도 한국사람이라고...ㅎㅎ
갑자기 웃음이 나더라고.
찬양고무죄? 내가 지랄 옆차기를 하고 있었구나.
이날 한국 팀은 역사에 남을 명승부를 펼쳤지.
종료직전 설기현의 동점 골,
연장전 안정환의 골든 골...
수비를 모두 공격수로 교체하며 모든 걸 쏟아부었던 경기.
막강했던 대전 시민들의 응원...
경기 끝나고 계속 입에서 맴돌았던 단어. 8강... 와.... 8강...
다음 경기에는 스페인 잡으러 간다.
뒷이야기.
이날 카드섹션이 생각보다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내렸었나봐.
나중에 게시판 들어가 보니까 욕이 엄청나더라고..ㅋㅋ
무슨 우리가 북한도 아닌데 그걸 왜 썼냐부터 해서
66년이면 담배먹던 시절아니냐, 쪽팔리게 이게뭐냐.
FIFA규칙 무시하는 붉은악마 다 꺼져라.
1966 AGAIN이지 왜 AGAIN 1966이냐..영어도 모르는 초딩한테 카드섹션 시키지마라.
뭐 융단 폭격이더라고..^^
이 때부터 카드섹션이 나름 관심사로 떠오르며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지.
욕도 점점 많이 먹게 되고...^^
AGAIN 1966에 문구에 대한 변명을 굳이 하자면.
1966 AGAIN으로 하는게 더 자연스럽겠지.
근데 이렇게 된 이유가 또 있거든.
사실 이전까지는 카드섹션이 1층에서만 이루어졌어.
2층은 참여도가 좀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거든.
이날은 문구의 길이 때문에 1,2층을 모두 써야 했는데
윗층에 1966, 아랬층에 AGAIN을 쓰게 되면 혹시 2층 참여도가
떨어질 경우에 카드섹션이 망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한거야.
중요한건 1966이지 AGAIN이 아니잖아.
그래서 성공가능성이 높은 1966을 밑으로 내렸던거지.
1층은 확실히 살려야 했으니까.
근데 어쨌든 1,2층 모두 성공한 셈이니 이것도 괜한 짓 했다 싶다.
사진을 보면 윗층 AGAIN 중 첫번째 A자가 좀 참여율이 떨어졌었는데
여기가 일본에서 온 관객들이 많이 앉아있던 자리야.
왠지 잘 안들어줄거 같아서 부탁을 여러번 했는데 결국 안들더라고
왜냐면 그날 경기 시작 전에 전광판에서 일본의 16강전을 중계해 주고 있었는데
일본 골먹을 때마다 대전 경기장 관중들이 박수를 치고, 8강 탈락했을 때 기립하며 환호했거든..ㅋㅋ
그걸 다 보고 있었으니 카드섹션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안들었겠지..^^
어쨌든 이전까지만해도 도면 구하러 조직위나 뭐 이런데 가면 찬밥 취급이었는데
이날 이후로는 도면도 직접 복사해 주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아.
오래전 기억이라 가물가물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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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링크
http://www.fntoday.co.kr/bbs/download.php?table=bbs_223&idxno=26671&file_extension=jpg&filename=22.jpg 사진설명
첫번째 사진은 카드섹션 설치사진이고
아래는 위장철거(?) 후의 사진입니다. 카드는 의자 바닥쪽에 내려져 있습니다.
위장을 확실하게 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반대편 관중석에서 확인하며 찍어둔 것입니다.
사진에서 1966 글자를 잘 보면 출입구 부분에 흰색 천이 붙어있는데
카드설치가 불가능 한 곳이라 글자모양을 완성하기 위해 설치한 것입니다.
다음은 광주에서 벌어졌던 8강 스페인전 카드섹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