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제가 2006년 DC인사이드 국내축구 겔러리를 통해 연재했던
2002 월드컵 붉은악마 카드섹션 팀 후기 입니다.
몇년동안 잊고 있었는데 벌써 이 후기를 올린지도 5년이나 지났더군요.
그때는 DC에만 올렸었지만 한번 쯤 다른 게시판에도 올려보는건 어떨까 생각이 들어
이렇게 소개해봅니다.
DC에 올린 글이다보니 어투도 반말이고 조금 과격한(?) 단어들이 있어
이걸 새로 다시 써야하나도 고민해봤는데 당시의 느낌을 가능하면 살리고
어색한 부분만 지금에 맞게 수정하거나 필요한 설명을 추가하는 정도로 하였습니다.
조금 불편한 표현이 있더라도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야기는 제가 처음 카드섹션을 시도했던 1999년 수원과 부산의 챔피언 결정전부터
2002월드컵 터키와의 3-4위전까지 이어집니다.
하루, 이틀에 한편정도 올리는 것이 목표이긴 한데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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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섹션 이야기 1
이번에는 카드섹션 이야기나 해볼까 해.
첫편은 그냥 뭐 옛날얘기고 두번째 부터는 월드컵때 했던 카드섹션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쓸꺼야. 화려한 카드섹션 뒤에 감춰진
찌질하고도 없어보이는 준비상황들을 알려줄께...ㅋㅋ
우리나라 프로축구장에서 카드섹션은 언제 시작됐을까?
혹시 80년대에 있었는지 모르겠다만 있더라도 구단 같은데서 한 것일테고
적어도 팬들이 주도적으로 만들어낸 카드섹션은
99년 챔피언 결정 2차전. 수원과 부산의 경기가 처음일꺼야.
99년의 수원은 사실 사기팀에 가까웠어.
홈에서는 안양한테 딱 한번진게 전부였고 원정에서도 한 절반쯤은
이겼을꺼야. 지금도 97년의 부산 팀과 함께 K리그 최고의 팀으로 꼽히고 있는것이
99년의 수원이지. 자세한건 자료를 찾아보도록하고.
암튼 이러다보니 2위와도 승점이 챔피언전을 치르는게 무의미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벌어져버렸는데 엄청난 관심을 모았던 98년에 비해 99시즌이 맥이 빠져버린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지.
99년 수원의 성적을 보면 K리그 10개 팀 중 최다 득점, 최소실점 이었고
골득실차가 무려 +32였어. 그러니 수원 팬들의 기세가 얼마나 등등했을까? ^^
암튼 당시 4위 부산이 플레이오프를 거쳐 결승에 올라오게 됐어.
결승 2차전. 수원 종합운동장.
이날 수원에서 역사적인 첫번째 카드섹션이 기획되었지.
당시 그랑블루 운영진에서는 두가지 응원방안을 놓고 논의중이었어.
하나는 두루마리, 대형통천, 홍염+연막탄, 카드섹션을 전후반에 적절히 분배해 시도하자는 거였고
다른 하나는 초반에 차례로 다 터트려서 기선제압을 하자는 거였는데
기선제압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지.
우리가 이미 K리그의 진정한 챔피언이라는걸 시위라도 하려는 듯 전에 없던 물량공세를
준비하는 분위기였어.
다른건 다 괜찮은데 문제는 카드섹션이었지.
이건 아예 시도조차 해본적 없는거였으니까.
그리고 카드섹션이라는게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실패할 경우 안하니만 못하거든.
일단 시도한다면 반드시 성공시켜야만 하는 거였어.
암튼 일단 디자인을 어떻게 할것인가를 정해야했는데 글씨를 넣거나
복잡한 무늬를 넣는 아이디어는 모두 포기했어.
욕심 버리고 성공 자체에 초점을 맞춘거야.
그래서 C석 5000석에 블럭별로 흰색과 파란색 카드를 번갈아 배치하는 것으로 했지.
카드섹션에 쓰일 종이를 사러갔는데, 단면 종이가(한쪽은 파란색 다른 쪽은 흰색)색깔도
진하고 딱 마음에 들었는데 너무 비싼거야.
가격이 일반 종이의 두배쯤 하더라고 아 씨바 돈도 없고 표팔고 남은 돈 모아서 하는건데 수백만원씩
어떻게 써. 구단이 부자지 써포터가 부잔가?
그리고 뒷면이 흰색이라 뒤집어 드는 사람들이 나오면 실패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래서 흰색 종이는 그냥 제일 싼거, 파란색 종이는 좀 불만족 스럽지만 하늘색이 나는 양면종이로
7000장을 구입했어.약간 넉넉하게.
챔피언전 당일날이 됐는데 이걸 어떻게 나눠줘야하나,
입장을 마친 후에 한장씩 돌려야하나 아니면 좌석에 미리 테입으로 붙여야하나 고민이 됐지.
처음하는 것이다보니 전혀 감이 안잡혔어.
결국 두번째 방법으로 하게됐는데 이방법은 나중에 월드컵을 넘어 현재까지도 계속 쓰이는
방식으로 굳어지게 돼.
경기 시작 전에 미리 들어가 애들 풀어 붙여놓고 경기를 기다리는데 걱정이 되는거야.
이거 사람들이 제대로 들어줄까.
이리저리 자리 옮긴다고 색이 섞여버리진 않을까..
뭐 경험이 없으니 긴장의 연속이었어.
선수입장이 시작되고 드디어 카드섹션 시작.
개선행진곡에 맞춰 5000여개의 카드가 올라오고
수~원삼성 구호에 맞춰 카드를 접었다 폈다...
지금 생각하면 평범한 방식이지만 당시엔 이걸 성공시켰다는 그 자체가 엄청난 감동이었어.
하하! 봤냐? 이런거 본 적 없지? 우린 이런 이런 것도 하는 애들이야!
침묵하는 부산 서포터를 보며 경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었지.
아 카드섹션을 우리 힘으로 경험도 없이 해내다니..
이건 역사적인 날이야!
다들 오늘의 카드섹션 이야기를 하겠지?
암튼 우리끼리 엄청 흥분했었어.
하지만 이날의 카드섹션은 샤샤의 어이없는 주먹슛과 함께 관심에서 완전히 사라졌지....
남은건 샤샤의 강펀치와 난장판이 되어버린 게시판 뿐..
시즌 내내 잘해놓고 엄한놈 뻘짓과 찐따심판 판정 덕택에...
허탈했지. 정말 어느 게시판에서도 카드섹션 얘기는 한번도 안나오더라고..^^
그렇게 나의 첫번째 카드섹션은 조용히 잊혀져버렸어.
재미없지?
월드컵 카드섹션 이야기는 좀 덜 지루할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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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99년 카드섹션을 찍은 거의 유일한 사진입니다.
누가 찍었는지는 알 수 없고 디카가 보편화된 시절이 아니어서 화질도 많이 떨어지네요.
다음은 2002월드컵 첫번째 경기인 폴란드전 카드섹션. Win 3:0에 관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