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의 여행기 <3>
주변의 모든 것들이 검은 물감을 부어버린것처럼 모든것들이 검게 생긴 마법의 숲. 이곳에서는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들이 햇빛이 비치는 시간동안 숨어드는 숲이다. 무엇 때문에 모든것들이 검은색을 띄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검은 땅에 시퍼렇게 파여있는 발자국들과 빛을 내며 날아다니는 벌레들만이 주변을 식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루나는 뿔 끝에 빛을 밝히며 여기저기 발굽이 찍혀있는 검푸른 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루나의등 뒤에 있는 티아는 루나의 목을 꼭 껴안고 아무 말없이 앞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용히 걸어가고 있던 둘의 근처에서 나뭇잎이 사부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저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움직인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빽빽한 나무들 때문에 사이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잔뜩 긴장한 자매는 잠시 멈추어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언니, 방금 확실히 이상한 소리 났었지?"
"응...무언가가 근처에 있는 것 같았는데..."
지금 바로 켄틀롯 전통 발성법으로 크게 소리질러 주변에 있는 것들을 쫒아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한다면 당장은 쫒아낼 수 있겠지만, 멀리 있는 다른 생명체들의 관심을 끌 것이 뻔했다. 루나는 자세를 잡으며 몸을 한번 떨고 콧김을 내뿜었다. 이렇게 긴장된 상황이라니! 루나는 겁이 나기도 했지만, 그만큼 재미도 있었다.
"언니, 내가 이런 기분 정말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했다는거 알고있어? 디스코드를 봉인하고 나서 거의 처음인것같아."
티아는 이런 상황이 정말 싫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이 깊은 숲 안에서 그런 말을 하는 루나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것이 원래 루나의 성격이라는것도 알고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루나를 제대로 지켜줄 수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자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뒤로 도망갈만한 길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자 한 무리의 파란 눈들이 이미 자매를 에워싸고 있었다.
"루나......"
"알고 있어, 티아. 꼭 잡고있어."
이제 루나는 당장이라도 튀어나갈듯 발굽을 구르기 시작했다. 아아! 이런 흥분을 언제 느꼈었더라? 몸 속에서 샘솟는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입에서는 자신감에 찬 웃음이 피어나며 한 쌍의 눈동자에 뿔을 겨누고 적이 움직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한참동안이나 가만히 자신들을 바라보고만 있자 맥이 빠져버리며 긴장감이 탁 풀려버렸다. 흥미를 잃어버린 루나는 계속 가만히만 자매를 바라보는 저 눈동자들에 대해 궁금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루나는 의기양양한 표정과 긴장된 자세를 풀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들을 보고 있는 눈동자들을 확인하며 말했다.
"나무 뒤에 숨어있지 말고, 빛 앞으로 나와라! 아니면 공격하겠다!"
"그쪽이야말로 자세를 풀고 항복해라.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식량만 내놓는다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나무 뒤에서 들려오는 대답을 들은 루나는 아주 잠깐 생각하는 듯 눈동자를 잠깐 굴렸다가 곧바로 등에 매고있는 가방 두 세트를 자신 앞에 내놓았다.
"루나..!"
등 뒤에서 작게 티아의 소리가 들렸다. 루나는 걱정 말라는 듯 티아 쪽으로 고개를 끄덕여주고 앞으로 걸어나오는 한 쌍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검은 피부에 등에 달린 날개, 작은 뿔, 커다란 눈동자. 루나가 찾고 있던 체인즐링들이었다. 체인즐링들이라는것을 확인 한 루나는 조금 뒤로 물러나주며 앞으로 나온 체인즐링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체인즐링, 하나만 물어볼게 있어. 왜 우리의 식량을 가져가려고 하는거야...? 이런건 크게 필요 없을텐데.."
여왕의 무리에 대한 사랑만으로 식량을 해결할 수 있는 체인즐링들이 이런 음식들을 먹는것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였다. 체인즐링들에게는 포니들이 먹는 일반적인 음식들보다 사랑의 맛이 더욱 달콤하기 때문이였다.
"그건 너희들이 알 필요 없다. 빨리 꽁무니나 빼라, 포니."
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는 체인즐링이 루나와 티아의 가방에서 이것저것 꺼내보며 말했다. 루나와 티아에게는 관심을 가질 시간도 없다는 듯, 무리들과 함께 바쁘게 안의 물건들을 확인한 다음, 가방을 등에 지고 바로 숲 안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리가 움직이자 무리의 바로 뒤에서 당연하다는 듯 루나와 티아가 붙어서 따라가기 시작했다.
"포니들, 왜 따라오는거지? 저기 저쪽으로 가란 말이야!"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길을 잃었는걸. 우리가 저 가방에 있는 것들을 제공해줬으니 길을 알려줄때까진 계속 따라갈꺼야."
무리의 대장 체인즐링이 잠깐 질린 듯한 표정을 짓더니, 뒤에서 따라오는 자매를 신경쓰지않고 곧바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티아, 걱정하지 말아도 된다고 그랬지? 체인즐링들도 착하단말이야."
작은 목소리로 루나가 말하자 티아는 '그러시든가'라고 궁시렁거리며 눈 앞의 체인즐링들에게 눈을 떼지 않았다. 티아의 궁시렁거림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말 없이 종일 걸어가던 일행 앞으로 밝은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체인즐링 무리의 대장 포니가 앞을 바라보며 흘러가듯 자매에게 말했다.
"저 앞에서부터는 체인즐링의 영역이다. 저곳에서 하루정도만 머물게 해줄거야. 그 이상은 안 된다."
"한 시간도 같이 못지내게 할 것 같더니...그렇다면 내일 이 숲에서 나오도록 도와준다는거야?"
"내가 데려왔으니 내가 책임지고 데려가야지...."
체인즐링과 함께 밝은 빛을 지나가자, 갈색 땅바닥이 발굽에 밟혔다. 자매는 갑자기 넓어진 시야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숲의 중심부로 보이는 이곳에서 모든 검은 숲들이 숲의 중심에서 둥굴게 경계를 이루어 자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마르고 풀 한 포기 없는 땅이 안쪽으로 계속 이어져있었고, 중심부 가장 안쪽에 지금까지 보았던 검은 색밖에 없는 숲이 아닌, 초록빛 나뭇잎으로 빛나는 작은 숲이 하나 있었다.
"너희 포니들이 검은 숲이라고 부르는 숲의 중심부다. 여왕님이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만드시고, 다른 이종족들이 볼 수 없도록 마법으로 숨겨놓으셨지."
이번에도 자매를 돌아보며 말하고 있지 않았지만 꽤나 자부심에 찬 목소리였다. 체인즐링 무리의 대장이 그렇게 말하자, 방금 전까지 피곤해하며 뒤따르기만 하던 체인즐링들도 목을 빳빳히 세우고 걸어가고 있었다.
"우와..참 대단하네요...체인즐링 씨."
"흠흠..이 숲은 여왕님의 우리 무리를 위해서 수십년동안 우리 몰래 만드신 새 보금자리다. 여왕님이 이전 보금자리에서 자주 다른 종족들의 침략을 받아오신것에 슬픔을 느끼시어 직접 만드셨다고 하지. 분명 우리 여왕님만한 통치자는 없을꺼야."
자부심에 찬 체인즐링의 자화자찬이 이어지자, 뒤에서 계속 뾰루퉁한 표정을 짓고 있던 티아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번에 켄틀롯의 포니들을 침략한 걸 보면 그리 좋은 통치자는 아니였던 것 같은데, 체인즐링?"
티아가 말을 꺼내자마자 앞에서 걸어가던 체인즐링 무리가 뒤를 돌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무리의 대장이 루나의 앞에 날아들며 화가 난 목소리로 자매에게 말했다.
"캬악! 너희들이 여왕님에 대해서 얼마나 알길래 그런 말을 하는것이냐! 그저....병에 걸리신 것 뿐이다!"
루나는 그 체인즐링의 말에 어제 꿈꾸었던 예지몽을 생각했다. 힘없이 왕좌에 누워 자신의 무리를 관리하려 온 힘을 다하는 그 모습은 누가 보아도 선군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켄틀롯 침략을 그저 병 때문이라고 이해하기에는 의심되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체인즐링, 나도 티아의 말에 동의할수밖에 없어. 그저 병 때문에 켄틀롯을 침공했다고? 그것에 대해서는 나도 해명이 필요해."
"그 병은 포니들의 군주인 셀레스티아 때문에 걸린 병이다! 이 새 보금자리로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잠에 들지 못하시던 여왕님이 '셀레스티아의 소중한 빛' 때문이라고 하셨다! 분명 셀레스티아가 태양을 통해 저주를 걸어 나쁜 짓을 벌인 것이다!"
셀레스티아의 소중한 빛'이라....왜 이 단어가 익숙한걸까..?
"체인즐링, 그건 억지다! 셀레스티아 공주는 그런 일을 계획하거나 하는 포니가 아니라고!"
루나는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오르려는 듯 했지만, 티아와 체인즐링간의 말싸움이 물리적 충돌로 벌어지려고 하자 둘을 말리는 일에 정신을 돌려야했다.
"둘다 그만! 티아, 잠깐만 진정 해 봐."
"어떻게 진정 할 수 있겠어? 저 체인즐링들이 ㄴ..."
자신에 대한 억측에 잔뜩 흥분한 티아가 '나'라고 말하려고 하자 재빨리 마법으로 티아의 입을 닫게 한 루나는 잠깐 숨을 고르고 체인즐링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음...우리는 켄틀롯에 있던 의사 포니에요...켄틀롯 침공을 겪었죠. 그래서 등 뒤에 있는 어린 포니가 화를 낸 거구요. 부모님이 그 때 조금 다치셨었거든요. 가끔 셀레스티아 공주님을 만나기도 해서 친하기도 하구요. 의사 포니로서 지금 여왕님의 병이 궁금한데, 제가 치료해볼 수 있도록 시도 할 수 있을까요?"
"흐..흥...! 켄틀롯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우리도 좋은 일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때의 일로 동족이 다쳤다면 그럴 만 하다고 생각이 드는군..그리고...너희들이 여왕님의 병을 볼 수 있게끔 여왕님께 이야기 해보겠다."
"아까의 무례를 용서해주신다니 감사하네요, 체인즐링."
루나는 앞에 있는 체인즐링들에게 정중하게 사과를 하고 잠깐의 소동을 정리했다. 중심부의 숲의 빽빽한 나무들에 가까워지자 멀리서는 보이지 않았던 나무 뿌리 사이사이에 개미굴처럼 작은 구멍들이 보였다. 여기저기 작은 체인즐링들이 구멍 사이사이에서 자매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고, 큰 체인즐링들은 자매를 경계하며 작은 체인즐링들의 머리를 다시 구멍으로 우겨넣고 있었다. 자매를 안내하던 체인즐링은 나무 사이에 있는 구멍 중 큰 구멍으로 안내했다.
"여왕님이 허락하셨다. 들어가도 좋다."
"어.....벌써 이야기가 다 된건가요?"
"당연하지. 아까 공기중에 마법을 날려보내 허락을 구했다. 무려 여왕님께서 직접 와 달라고 해주시더군."
자매는 체인즐링들만의 특별한 대화방식에 대해 생각하며 커다란 동굴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