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병진이는 오컬트 매니아였다.</p> <p><br></p> <p>보통 사람들이라면 비웃을 만큼, 맥락없는 이야기를 붙들고 세상에 종말이 올거라 말하곤 했다.</p> <p><br></p> <p>재수없게도 난 고등학교 2학년이 되자마자 그와 짝궁이 되었다.</p> <p><br></p> <p>약육강식의 학교에 그는 마치 스컹크같은 존재, </p> <p><br></p> <p>성적 최하, 운동 최하, 성격 최악, 심지어 취향까지도...</p> <p><br></p> <p>딱히 건드리는 사람도 없었지만 다가가는 사람도 없었다.</p> <p><br></p> <p>"진호야, 이거 봐바. 지구가 곧있으면 멸망할꺼야. "</p> <p><br></p> <p>그가 보여주는 낡아빠진 책의 한페이지에는 마치 거미, 혹은 낙지처럼 보이는 괴생명체의 조잡한 그림만이 있을뿐. </p> <p><br></p> <p>"이게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를 만든 고귀한 존재야.. 우린 이분을 절대 거역하면 안돼...."</p> <p><br></p> <p>개소리, 너무나 뻔한 개소리들을 난 한학기동안 참아야 했다. 그저 혹여나 돌발행동을 일으킬까 순수히 맞장구를 쳐주곤 했다. </p> <p><br></p> <p>난 반장이었고, 그의 세계를 거역하는 순간 일어날 예측불가능한 반응이 무서워서였다고나 할까.</p> <p><br></p> <p>그렇게 한학기는 순탄히 지나가는듯 했다.</p> <p><br></p> <p>하지만 여름방학이 지난 후, 보충학습조차 참여하지 않았던 그는 그 '종말'에 더욱 심취한 듯했다.</p> <p><br></p> <p>나쁜 눈때문에 두껍고 큰 안경알에 짓눌린 콧대는 핏기를 잃어보였고, </p> <p><br></p> <p>그 렌즈 넘어서는 그가 가졌던 특유의 무기력함과 더불어 한켠에는 마치 무언가를 알아낸듯한 환희가 공존하고 있었다.</p> <p><br></p> <p>나는 그 표정을 보고 순간 소름이 돋았지만, 딱히 말을 걸진 않았다. </p> <p><br></p> <p>하지만 나의 노력이 우습게도 그는 나에게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p> <p><br></p> <p>"진호야. 기쁜소식이 있어. 나.. 메시지를 받았어."</p> <p><br></p> <p>"내가,, 그들을 보는날이 종말의 날이래."</p> <p><br></p> <p>반년간 한번도 보지못했던 소름끼치는 그의 미소만이 그의 말이 단순한 허언이 아닌것을 깨닫게 되었다.</p> <p><br></p> <p>하지만 그날 이후 그는 진짜 종말을 보는 예언자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p> <p><br></p> <p>신들린 점쟁이처럼. </p> <p><br></p> <p>심지어 불량아들에게도 종말의 날을 설파하며 훈계하였다.</p> <p><br></p> <p>대게는 말이 끝나기전에 흠씬 두들겨맞기 일수였지만.</p> <p><br></p> <p>그는 두들겨 맞으면서도 오지않을 그 멸망의 날만을 지껄이며 자신을 밟고있는 우매한 인간들에게 일갈할 뿐이었다.</p> <p><br></p> <p>그렇게 어느날부터 그는 학교의 패거리들에게 심한 꼴을 당하기 시작했다.</p> <p><br></p> <p><br></p> <p>여기까지가 내가 기억하는 그의 모습.</p> <p><br></p> <p><br></p> <p>나는 지금 병실앞에 와있다.</p> <p><br></p> <p>그 이후 연락한번 없었던 그로부터 연락이 왔기때문이다.</p> <p><br></p> <p>" 혹시 진호니 ? 나 병진이 엄마야.. 병진이가 너한테 꼭 할말이 있다고 해서 이렇게 수소문해서 연락한다...."</p> <p><br></p> <p>왜일까. 난 친하지도 않았는데. 아니... 어쩌면 상대적으로 가장 친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p> <p><br></p> <p>그의 말을 끝까지 들은건 나 하나였기 때문에.</p> <p><br></p> <p>병진이는 어느 공장에서 관리직으로 일하다가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고 한다.</p> <p><br></p> <p>병진이의 어머니는 울음을 멈추지 않으시며 나에게 꼭 와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p> <p><br></p> <p>저녁의 병원은 그다지 외부인을 반기는 장소가 아니다.</p> <p><br></p> <p>문고리가 너무나 차갑다. 손바닥이 얼어붙는것 같은 특유의 냄새와 느낌이 나를 감싼다.</p> <p><br></p> <p>열고 들어가자 눈부분을 뺀 나머지 온몸을 붕대으로 감싼 .. 병진이인지 아닌지도 모를 어떤 사람이 날 반긴다.</p> <p><br></p> <p>하지만 병원에 별로 와본적이 없는 나도 알만큼.. 그의 생명은 얼마남지 않았나보다.</p> <p><br></p> <p>병진이의 어머니로 보이는 분과 간호사들이 굳은 얼굴로 꼿꼿하게 서있다. </p> <p><br></p> <p>" 지호아.. 아져구나"</p> <p><br></p> <p>그 어떤 사람은 턱마저 붕대로 감싸져있다. 호흡기 너머 간신히 알아들을수 있는 말들..</p> <p><br></p> <p>"나.. 바허.. 조마레날..."</p> <p><br></p> <p>"뭐.. ? 종말의 날을 봤다고?"</p> <p><br></p> <p>"어.. 조마레날.. 오느리아.."</p> <p><br></p> <p>뭐 이런 되도 않는 말을 아직도 하는 건지 순간 한심한 생각에 난 그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p> <p><br></p> <p>"오늘이야."</p> <p><br></p> <p>내 눈을 의심하는 순간, 내 귀조차 의심하게 만드는 너무나 뚜렷한 그 말만을 남기고 병진이는 운명을 달리했다.</p> <p><br></p> <p>"아.. 아이고 병진아!!!!!!!!!!!"</p> <p><br></p> <p>병진이 어머니의 오열. 하지만 난 그저 멍하니 서있을수 밖에 없었다.</p> <p><br></p> <p>그 후.</p> <p><br></p> <p>병진이의 마지막을 지켜본 예의로 난 최선을 다해 병진이를 보내주었다.</p> <p><br></p> <p>하지만 어느날 문득문득 기억난다. </p> <p><br></p> <p>습관처럼 종말의 날을 기약하던 병진이와.</p> <p><br></p> <p>그의 양쪽 눈사이에 크게 딱지가 진 거미 혹은 낙지 모양의 화상자국만이.</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