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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panic_93901
    작성자 : 할매검
    추천 : 19
    조회수 : 1695
    IP : 124.56.***.69
    댓글 : 2개
    등록시간 : 2017/06/10 04:26:46
    http://todayhumor.com/?panic_93901 모바일
    [단편] 피할수 없는 종말의 날.
    옵션
    • 창작글

    병진이는 오컬트 매니아였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비웃을 만큼, 맥락없는 이야기를 붙들고 세상에 종말이 올거라 말하곤 했다.


    재수없게도 난 고등학교 2학년이 되자마자 그와 짝궁이 되었다.


    약육강식의 학교에 그는 마치 스컹크같은 존재,


    성적 최하, 운동 최하, 성격 최악, 심지어 취향까지도...


    딱히 건드리는 사람도 없었지만 다가가는 사람도 없었다.


    "진호야, 이거 봐바. 지구가 곧있으면 멸망할꺼야. "


    그가 보여주는 낡아빠진 책의 한페이지에는 마치 거미, 혹은 낙지처럼 보이는 괴생명체의 조잡한 그림만이 있을뿐.


    "이게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를 만든 고귀한 존재야.. 우린 이분을 절대 거역하면 안돼...."


    개소리, 너무나 뻔한 개소리들을 난 한학기동안 참아야 했다. 그저 혹여나 돌발행동을 일으킬까 순수히 맞장구를 쳐주곤 했다.


    난 반장이었고, 그의 세계를 거역하는 순간 일어날 예측불가능한 반응이 무서워서였다고나 할까.


    그렇게 한학기는 순탄히 지나가는듯 했다.


    하지만 여름방학이 지난 후, 보충학습조차 참여하지 않았던 그는 그 '종말'에 더욱 심취한 듯했다.


    나쁜 눈때문에 두껍고 큰 안경알에 짓눌린 콧대는 핏기를 잃어보였고,


    그 렌즈 넘어서는 그가 가졌던 특유의 무기력함과 더불어 한켠에는 마치 무언가를 알아낸듯한 환희가 공존하고 있었다.


    나는 그 표정을 보고 순간 소름이 돋았지만, 딱히 말을 걸진 않았다.


    하지만 나의 노력이 우습게도 그는 나에게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진호야. 기쁜소식이 있어. 나.. 메시지를 받았어."


    "내가,, 그들을 보는날이 종말의 날이래."


    반년간 한번도 보지못했던 소름끼치는 그의 미소만이 그의 말이 단순한 허언이 아닌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그는 진짜 종말을 보는 예언자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신들린 점쟁이처럼.


    심지어 불량아들에게도 종말의 날을 설파하며 훈계하였다.


    대게는 말이 끝나기전에 흠씬 두들겨맞기 일수였지만.


    그는 두들겨 맞으면서도 오지않을 그 멸망의 날만을 지껄이며 자신을 밟고있는 우매한 인간들에게 일갈할 뿐이었다.


    그렇게 어느날부터 그는 학교의 패거리들에게 심한 꼴을 당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가 내가 기억하는 그의 모습.



    나는 지금 병실앞에 와있다.


    그 이후 연락한번 없었던 그로부터 연락이 왔기때문이다.


    " 혹시 진호니 ? 나 병진이 엄마야.. 병진이가 너한테 꼭 할말이 있다고 해서 이렇게 수소문해서 연락한다...."


    왜일까. 난 친하지도 않았는데. 아니... 어쩌면 상대적으로 가장 친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말을 끝까지 들은건 나 하나였기 때문에.


    병진이는 어느 공장에서 관리직으로 일하다가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고 한다.


    병진이의 어머니는 울음을 멈추지 않으시며 나에게 꼭 와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저녁의 병원은 그다지 외부인을 반기는 장소가 아니다.


    문고리가 너무나 차갑다. 손바닥이 얼어붙는것 같은 특유의 냄새와 느낌이 나를 감싼다.


    열고 들어가자 눈부분을 뺀 나머지 온몸을 붕대으로 감싼 .. 병진이인지 아닌지도 모를 어떤 사람이 날 반긴다.


    하지만 병원에 별로 와본적이 없는 나도 알만큼.. 그의 생명은 얼마남지 않았나보다.


    병진이의 어머니로 보이는 분과 간호사들이 굳은 얼굴로 꼿꼿하게 서있다. 


    " 지호아.. 아져구나"


    그 어떤 사람은 턱마저 붕대로 감싸져있다. 호흡기 너머 간신히 알아들을수 있는 말들..


    "나.. 바허.. 조마레날..."


    "뭐.. ? 종말의 날을 봤다고?"


    "어.. 조마레날.. 오느리아.."


    뭐 이런 되도 않는 말을 아직도 하는 건지 순간 한심한 생각에 난 그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오늘이야."


    내 눈을 의심하는 순간, 내 귀조차 의심하게 만드는 너무나 뚜렷한 그 말만을 남기고 병진이는 운명을 달리했다.


    "아.. 아이고 병진아!!!!!!!!!!!"


    병진이 어머니의 오열.  하지만 난 그저 멍하니 서있을수 밖에 없었다.


    그 후.


    병진이의 마지막을 지켜본 예의로 난 최선을 다해 병진이를 보내주었다.


    하지만 어느날 문득문득 기억난다.


    습관처럼 종말의 날을 기약하던 병진이와.


    그의 양쪽 눈사이에 크게 딱지가 진 거미 혹은 낙지 모양의 화상자국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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