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span> </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span> </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 < 처음으로 사랑하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span> </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span> </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span> </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span> </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남편의 잠자리엔,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오늘도 낯선 여인이 함께였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고교시절부터 사랑했다는 남편의 첫사랑, 첫연인……,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스물셋 꽃다운 나이를 앞두고 세상을 일찍 떠난 여자.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그녀는 세상에 남은 미련을 남편에게 쏟아 붓고 있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그녀는 벌써 3년째 남편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적어도 내 앞에 나타난지는 3년째였다.</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아이러니하게도 남편은 그녀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다.</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그녀는 오직 내 눈에만 보였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남편의 눈에도, 아이들의 눈에도 보이지 않았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라이벌이라면 라이벌일 내 눈에만 보이다니,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처음 1년은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기에 모른 척 외면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다음 1년은 여자를 성불시킬 방법을 물색하며 보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그 다음 1년, 3년째에 접어들자 마음 밑바닥에서 증오심이 스물스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누구를 향한 분노인지는 모른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아이를 둘이나 낳고 가정을 꾸리고도 첫사랑을 못 잊는 남편을 향한 것인지,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그의 뒤에 찰거머리처럼 들러붙은 여자를 향한 것인지.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내 마음을 나도 종잡을 수 없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오늘,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나는 남편을 기다리다가 깜빡 선잠이 들었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정신을 차려보니 얼굴 위로 시선이 느껴졌다. 남편이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ang="EN-US">“여보. 왔어요?”</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남편은 소리도 없이 들어와선 나를 우두커니 내려다보고 있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조명이 꺼진 집안은 정육점의 냉동고 마냥 푸르고 붉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브라운관에서 쏘아져나오는 빛 때문이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냉막한 남편의 얼굴과, 당황한 내 얼굴 위로 무지갯빛 조명이 물결치듯 흘러갔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ang="EN-US">“회식 있다기에 더 늦을 줄 알았는데…….”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힐끗 확인한 벽시계는 자정을 조금 넘어서고 있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남편은 소파에 누운 채로 고개만 치켜 든 나를,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텅 빈 공간에 내버려두고 저벅저벅 계단을 올라서기 시작했다.</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ang="EN-US">“들어가서 자.”</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그 한마디만은 내버려둔 채로.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우리 부부는 각방을 쓴지 벌써 몇 년 째였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막내가 태어난 이후로, 우리는 단 한번도 한 침대에 든 적이 없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아니, 부부관계는 몇 차례 가졌을지 몰라도 밤새 서로의 곁을 지키는 건 불가능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남편은 특유의 무관심으로, 나는 고질적인 불안증으로.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그 순간, 갑자기 뒷골이 서늘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역시나, 현관에 검은 그림자가 서있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손님은 아닐 터였다.</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사람의 움직임을 포착해 불을 밝히는 센서등은 고요히 잠들어 있었으니까.</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여자는 어둠속에 몸을 담그곤 남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여자는 표백된 것처럼 그저 하얗기만 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백지장처럼 흰 얼굴에,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거뭇한 눈가,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검푸른 빛을 띠는 입술…….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몇 번을 보아도 소름이 끼치긴 마찬가지였다.</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어깨 너머로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치맛단 위로 손을 포개어 올린 그녀는 풋풋해보였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하기야, 스물셋 생일을 앞두고 죽었다고 하니까. 나보다 열 살은 아래일 터였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남편의 모습이 2층으로 완전히 사라지자, 그녀는 이제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죽은 자의 할 일이란, 그저 산 사람을 관찰하는 게 전부인 것처럼.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남편을 애달프게 바라보던 두 눈에 점차 혐오감이 깃들어갔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남편의 첫사랑,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그것도 죽어서도 남편을 잊지 못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귀신을 좋게 볼 리 없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한 지붕 아래에 한 남자가 있고,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그를 갈망하는 두 여자가 살고 있었다.</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드라마의 소재로 쓰일만한 부끄럽고도 자극적인 이야기였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가정의 평화가 지속되고 있는 이유는 오직,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그 두 여자중에 한명이 산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남편의 서재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동시에 여자의 모습이 홀연히 사라졌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2층 계단 꼭대기에서 나풀거리는 치맛자락이 보였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그녀는 벽을 스르륵 통과해 서재 안으로 들어갔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나는 벌떡 일어나서 불륜 형장을 포착하려는 여자처럼 초조하게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책이 빼곡하게 꽂힌 서재의 한 켠,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초라한 간이침대 위에 웅크린 그림자가 보였다. 남편이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곤히 잠들었는지, 낮게 코고는 소리가 방문 밖까지 흘러나오고 있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나는 문고리를 꽉 쥐곤 남편 곁에 누워있는 여자를 노려봤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여자는 남편의 등을 끌어안고, 그의 체취를 흠뻑 맡으며 누워 있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남편은 세상 모르는 얼굴로 곤히 자고 있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ang="EN-US">1인용의 비좁은 간이침대 위에 두 남녀의 육체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밀착되어 있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문고리를 잡은 손이 파들파들 떨리기 시작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귀신을 상대로 뭘 어쩌자는 거야. 무당을 불러서 굿이라도 할까?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여자의 입꼬리가 샐쭉하게 올라갔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나의 눈썹이 하늘을 향해 치켜 올라갔다.</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우리의 시선이 조용히, 그러나 격렬하게 마주쳤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ang="EN-US">“여보…….”</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남편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는 좀처럼 깨지 못하고, 웅얼대며 잠꼬대를 내뱉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나는 좀 더 목소리를 높여서 그를 채근했다.</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ang="EN-US">“여보, 안방으로 가요. 왜 만날 서재에서 자는 거예요?”</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ang="EN-US">“……응……누구야, 당신이야?”</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게슴츠레 뜬 눈이 나를 쳐다봤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나는 활짝 웃으면서 남편의 이마를 쓸어 넘겼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그래요, 나예요, 당신 와이프.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그러니까 우리, 방으로 가요.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안방으로 가서 함께 자요.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다른 부부들처럼 말예요.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한참이 지나도록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남편은 어느새 다시 곯아 떨어져 있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나는 입술을 깨물고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를 빠져나갔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여자는 여전히 남편 곁에 누워 있었다. 샐쭉 올라간 입꼬리로 나를 비웃으면서.</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소년시절의 감성에 젖어서 허우적대고 있는 남편을,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그런 남편의 뒤를 따라다니는 첫사랑의 영혼을, 나보고 어떻게 지우라는 걸까.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나에게 다른 선택은 없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그저 모르는 척 하면서 살아가는 수밖에는.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ang="EN-US">“은혜야 일어나. 지각하겠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아무렇지 않게 아침상을 차리고 아이의 등원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지만,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밤을 새다시피 한 내 속은 결코 평화롭지 못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ang="EN-US">10분간의 사투를 벌인 끝에, 아이는 천사같이 예쁜 눈을 깜빡이며 내 품에 안겨들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어린아이 특유의 달큰하고 따뜻한 체취가 콧속을 가득 메웠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밖으로 나오니 남편은 벌써 신발을 신고 있었다.</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ang="EN-US">“가는 거예요? 식사하고 가요. 해장국 끓였는데.”</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ang="EN-US">“늦었어.”</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매정하게 뿌리치는 남편의 등에 대고 “여보!”하고 외쳤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그러자 웬일로 남편이 우뚝 멈춰서며 물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ang="EN-US">“오늘 오랜만에 외식이나 할까?”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ang="EN-US">“아빠, 우리 뭐 먹으러 가요?”</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ang="EN-US">“은혜 먹고 싶은 거 생각해놔. 아빠 퇴근하면 먹으러 가자.”</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ang="EN-US">“나는 장난감 사러 가고 싶은데.”</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ang="EN-US">“그래, 장난감도 사자.”</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드물게 다정한 모습이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ang="EN-US">“엄마, 기분 좋아?”</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ang="EN-US">“왜? 그래 보이니?”</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ang="EN-US">“응. 계속 웃고 있잖아.”</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모든 일이 잘 풀릴 것만 같았다.</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좋은 예감. 행복한 하루가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집안을 쓸고 닦고,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그래도 시간이 남아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하고 잡지에서 본 옷을 사 입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데이트를 고대하는 사람처럼 시계를 힐끔대며 저녁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오후가 되어 애들이 집에 돌아왔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간식을 먹이고 말끔하니 씻겨서 외출복으로 갈아입혔는데도, 남편에게서 연락이 없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평소대로라면 돌아왔어야 할 시간이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ang="EN-US">“차가 밀리나보다.”</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차가 밀리면 늦는다고 연락할 사람이었다.</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ang="EN-US">“전화를 안 받으시네. 진동으로 해놓으셨나 봐.”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둘째의 짧은 인내심이 바닥났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외출복이 갑갑하다고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에게 사탕을 쥐어주며 속삭였다.</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ang="EN-US">“금방 오실거야. 오고 계실테니까.”</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하지만 10시가 되어도, 자정이 넘어서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아침의 다정한 인사를 끝으로, 그는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연락을 받은 건 새벽녘이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실종신고라도 해야겠다고 지갑을 챙겨서 일어나던 참이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천둥소리를 들은 듯 깜짝 놀라 빽빽 울어대는 전화통을 바라봤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끈질기게 울리는 놈의 수화기를 들어올려 귀에 대자,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ang="EN-US">“민철중 씨 댁이죠?”</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시계의 시침이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ang="EN-US">“사고가 있었습니다. 병원으로 급히 와주셔야겠어요.”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ang="EN-US">“무슨 일인가요? 집에, 집에……애들이 있는데…….”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ang="EN-US">“맡길 곳이 없나요? 아무튼 서둘러서 와주세요.”</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아이들을 데려오면 곤란하다는 투였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나는 이유에 관해 깊게 생각하지도 못하고 무작정 자는 애들을 깨워 병원으로 향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졸려서 고개를 못 가누는 둘째를 안고 응급실에 들어서자 남자 두 명이 먼저 다가왔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ang="EN-US">“민철중 씨 부인 되십니까?”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ang="EN-US">“네. 그이는……어딜 어떻게 다친 거예요?”</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난생 처음 보는 남자들 손에 아이들을 맡기고, 의사가 안내하는 곳으로 들어갔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손을 소독하고 마스크를 쓰고 겨우겨우 안으로 들어갔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누워있는 환자들을 보고 나서 이곳이 중환자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그곳에서, 남편은 죽은 듯 누워 있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코며 손등에 연결된 호스들이 눈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얼굴이며 목 언저리가 온통 피투성이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얼굴이 부어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남편은 아무리 불러도, 흔들어도 대답이 없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ang="EN-US">“운이 나빴어요.”</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남자가 말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ang="EN-US">“그 주차장이 평소에는 경비가 순찰도 돌고, cctv도 잘 돌아가는 곳인데, 그날따라 경비업체 휴가에다가 기계는 수리에 들어가서……조금 더 일찍 발견했더라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거라더군요.”</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ang="EN-US">“뺑소니인가요?”</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ang="EN-US">“아뇨.”</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ang="EN-US">“소매치기인가요? 퍽치기?”</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연이은 내 질문에, 그는 절레절레 고개만 흔들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ang="EN-US">“이 사람 도대체, 왜 이렇게 다친 거죠?”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ang="EN-US">“익스트림 스포츠처럼 뭉쳐 다니면서 재미로 폭력을 행하는 패거리가 있어요. 남편분께선 정말……운이 나빴어요.”</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일주일이 쏜살같이 흘러갔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의사는 고비를 넘겼다고 했지만 남편은 더 이상 호전되지 않았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의식도, 움직임도, 그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어쩌면 평생을 침대 위에서 기계에 둘러싸여 살아갈지도 몰랐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중환자실 앞 의자에 시체처럼 늘어져 앉아있는 내 옆으로, 누군가 다가와 앉았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말쑥한 인상의 젊은 여자였다. 그녀는 조심스레 무언가를 내밀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ang="EN-US">“저, 사모님. 장기기증에 관한 서류인데요, 한번 읽어보시라고 가져왔습니다.”</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나는 멍하니 그것을 받아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아이들은 모두 시댁에 가있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텅빈 집안에 홀로 앉아있으려니 숨이 턱턱 막혔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며칠 새 자는 것도, 밥 먹는 것도 잊고 지낸 탓에 긴장감이 풀리자 잠이 몰려왔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나는 소파에 기대어 앉은 채로 기절하듯 깜빡 잠이 들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얼마나 잤을까. 문득, 시선이 느껴졌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일주일 전 남편이 우두커니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던 그때와 똑같은 느낌이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그리움이 밀려왔다. 눈을 뜨기도 전에 눈물부터 주르륵 흘러내렸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ang="EN-US">“어디에 숨겼어.”</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젊고, 새된 여자의 음성은 질문이라기보다 흐느낌에 가까웠다.</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그 여자였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늘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남편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그 여자.</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그 창백한 얼굴이 코앞에 드밀어져 있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ang="EN-US">“어딨어!!!! 어쨌어?!!!!”</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그러더니 갑자기 내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분명,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었으니 촉감이 느껴지는 건 불가능할 텐데도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얼음장처럼 찬 손가락들이 목을 파고드는 느낌이 선명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 lang="EN-US">“어디에 숨겼어!!!! 내놔!!!! 내놔!!!!!!!!!”</span></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  <div></div></div> <div class="바탕글">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br /> 물에 빠졌다가 구출된 사람처럼 다급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br /> 이마에 맺힌 땀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div> <div><br /> 모두 꿈이었다. <br /> 여자가 내 목을 조른 것도, 야차처럼 무서운 얼굴로 비명을 질러대던 것도.<br /> 잠에서 깨자 숨통을 조여 오던 모든 것들이 사라져있었다. 너무나 끔찍한 꿈이었다.</div> <div> </div> <div> 땀으로 흥건하게 젖은 몸을 씻고 나왔을 때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div> <div> </div> <div> “주무셨어요?”<br /> <br /> 남편의 동생이었다. </div> <div> </div> <div> “아뇨. 어쩐 일이세요? 이 시간에.”<br /> “형이 깨어났대요. 저도 지금 병원으로 가고 있어요.” <br /> <br /> 그 길로 뛰쳐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br /> 병원 복도에 시댁 식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div> <div> </div> <div> “형수님, 거긴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었어요?”<br /> “네?”<br /> “멍이에요, 그거? 손자국 같은데?”<br /> <br /> 옷깃으로 목을 감추며 허둥지둥 화장실로 들어갔다. <br /> 거울에 비춰보니 시퍼런 멍이 도장처럼 찍혀 있었다. <br /> 분명히 꿈인 줄로 알았는데, 멍자국은 대체 뭐란 말인가. <br /></div> <div> 목을 조르던 얼음장같은 손가락, 여자의 스산한 음성이 떠올랐다. <br /> <br /> 나는 불안한 마음을 목의 멍과 함께 감추면서 남편의 병실로 들어갔다. <br /> 병실에 들어선 순간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div> <div> 정말로 남편이 깨어나, 침대에 비스듬히 앉아 있었다. <br /> <br /> 중환자실에서 아무 소득 없이 1인실로 옮긴 게 바로 엊그제였다. <br /> <br /> 나를 쳐다보는 남편의 얼굴은 너무나 멀쩡했다. <br /> 지난 일은 모두 꿈인 것 같았다. </div> <div> </div> <div> “여보, 나 기억나요?”<br /> “…….”<br /> “여보……?”<br /> <br /> 히죽.<br /> <br /> 남편이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br />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내 목 언저리였다. <br /> 목에 찍힌 손자국을 보며 웃고 있었다. </div> <div> 샐쭉, 올라간 입꼬리가 누군가를 연상시켰다. <br /> <br /> 그는 공포에 질린 나에게 다가올 작정으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br /> <br /> 한걸음, <br /> 두걸음……우리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쿵쿵 뛰었다. <br /> 이유모를 공포가 내 발목을 붙잡았다. <br /> <br /> “여보. 왜 그래요. 왜 웃어요? 왜……그 여자처럼…….”</div> <div> </div> <div> 달칵. </div> <div> 바로 그때 문이 열렸다.<br /> 시어머니였다. </div> <div> 그녀는 일어서있는 남편에게 달려와 얼른 그를 부축했다. <br /></div> <div> 아픈 사람을 혼자 서있게 하냐는 질책이 쏟아졌지만, <br /> 나는 멍한 정신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었다. <br /></div> <div> 그 순간 시어머니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남편은 과연 나에게 어떤 짓을 저질렀을까. <br /> 지금은 순한 양처럼 시어머니의 손길에 몸을 맡기고 있다지만, <br /> 조금 전의 남편의 눈빛은 그 여자와 똑같았다. <br /> 나를 바라보던, 그 혐오감 어린 시선. </div> <div> </div> <div> 여자가 남편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다음 순간, <br /> 남편은 기적처럼 의식을 되찾았다. </div> <div> 기뻐해야할 일이었음에도 저 남자는, 저 사람은 내 남편이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div> <div> </div> <div> 저건 그 여자다. </div> <div> </div> <div> 그 여자가 남편의 몸에 들어간 게 분명했다. <br /> 눈빛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div> <div> </div> <div> 남편이 잠들자, 시어머니는 조용히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div> <div> </div> <div> “내일 아침 일찍 오마. 죽이랑 끓여가지고 올 테니까, 아가 밤새 고생 좀 해라.”<br /> “……네, 어머님.”<br /> <br /> 시댁 식구들이 떠나고 나자 병실은 무덤 속처럼 적막했다.<br /> 싸늘한 냉기를 견디지 못하고 간호사실로 가서 담요를 받아가지고 와서 몸에 둘렀다.<br /> 남편의 심장과 이어진 기계에서 나는 규칙적인 소리가 자장가처럼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었다. <br /></div> <div> 나는 어둠 속에 웅크리고 누워서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복도의 불빛을 보고 있었다. <br />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br /> 잠이 드는 순간 남편의 손이 내 목을 조를 것만 같았다.  </div> <div> </div> <div> 바로 그때였다.</div> <div> </div> <div> 끼이익.</div> <div> </div> <div> 침대가 비명을 토해냈다.<br /></div> <div> 남편이 일어서고 있었다. <br /> 침대 아래로 내려선 그가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br /> 공포로 인해 숨이 턱턱 막혔다. <br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br /> <br /> 터벅터벅.<br /> <br /> 어딜 가는 거지?<br /> <br /> 공포로 인해 몸이 움직여지질 않았다. <br /> 문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br /> 저건 남편이 아니야, 그 여자야. 그러니 나를 죽이고 말거야. <br /> <br /> 나는 담요 안에 웅크리고 앉아서, 덜덜 떨며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br /> 십분이 지나도, 삼십분이 지나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br /> 밖에 잠깐 앉아 있는 거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br /> 그가 일주일만에 의식을 차린 환자라는 걸 뻔히 알고 있는 간호사들이 그렇게 내버려둘 리 없었으니까. <br /> <br /> 차츰 공포는 잦아들고,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br /> 마음을 다잡고 남편을 찾으러 가려고 일어섰다. <br /> 아니, 일어서려고 했다.</div> <div> </div> <div> 끼익.</div> <div> </div> <div> 문이 열리지 않았다면, 남편을 찾아 복도를 헤매고 있을 터였다.<br />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얼른 담요로 얼굴을 덮었다. </div> <div> </div> <div> 터벅터벅.</div> <div> </div> <div> 남편의 발소리였다. <br /> 담요 틈새로 고약한 냄새가 흘러들어왔다. <br /> 구역질을 하지 않기 위해 입을 틀어막아야 할 정도였다. <br /> 축축하면서도 비릿한 냄새였다. 마치 피 냄새 같은. </div> <div> </div> <div> 피?<br /> <br /> 스스로 떠올린 생각에, 기겁하고 말았다. <br /> 새벽에 병실을 빠져나가 한참만에 돌아온 사람이 피 냄새를 묻히고 왔다니.<br /> <br /> 남편이 잠든 걸 확인한 나는 조용히 핸드폰을 꺼냈다. <br /> 그리고 남편의 몸에 불빛을 조심스레 비춰보았다. 얼굴과 손은 깨끗했다. <br /> 그럼 이 냄새는 도대체 뭐지? 무심코 이불을 들춰본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br /> 남편의 발이 피 투성이었다. </div> <div> </div> <div> “……!!!”<br /> <br /> 바닥에도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br /> 붉은 발자국이 남편이 걸어온 자리를 따라 꼬리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br /> 손가락으로 자국을 문질러 냄새를 맡았다. <br /> 피 냄새였다. <br /> <br />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 화장시를 한움큼 뜯어서 물을 묻혔다. <br /> 그리고 그걸로 병실과 복도에 이어진 자국들을 벅벅 문지르기 시작했다. <br /> 젖어서 힘없이 찢어지는 화장지를 내팽개치고 가디건을 벗어서 자국을 문질렀다. <br /> 피로 된 발자국은 아직 굳어 있지 않았다. <br /> 덕분에 쉽게 지울 수 있었지만 이 발자국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모를 일이었다. <br /> <br /> 비상구의 계단까지 닦고 돌아오자 몸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br /> 남편은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곤히 잠들어 있었다. </div> <div> </div> <div> 그 여자는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br /> 그동안 잠자코 남편의 그림자로 사는 걸로 만족했으면서, <br /></div> <div> 왜 하필 이때, 위기가 찾아온 이때, 남편을 해코지 하는 걸까. <br /> 설마 처음부터 몸을 차지하려고 곁을 맴돌았단 말이야?</div> <div> </div> <div> 밤사이에 일어난 일을 알 리 없는 시어머니는 내 안색을 보고 잔소리를 늘어놓았다.</div> <div> </div> <div>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다. <br /> 눈 깜빡할 사이에 다시 밤이 찾아왔다.<br /></div> <div> 나는 어둠 속에 웅크리고 누워서 남편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br /> 하지만 나의 바람을 깨부수듯이 남편이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br /> 이내 터벅터벅, 맨발로 걸어가는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br /> <br /> 보름이 넘는 시간동안 남편의 외출은 계속되었다. </div> <div><br /> 흙을 묻혀오는 날도 있었고,<br /> 오물을 잔뜩 묻혀 오는 날도 있었다.<br /> <br /> 나는 엉망이 된 남편의 발을 닦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면서도, 안도하고는 했다. <br /> 환자복을 입은 차림으로 거리를 헤매고 다닐 게 눈에 그려지는 듯했지만, 그래도 안도했다. <br /></div> <div> 그래도 피는 아니니까. <br /> 그래, 피는 아니잖아.<br /> <br /> 보름이 되던 날이었다. <br /> 우연히 뉴스를 보았다.<br /> <br /> 최근 이 일대에서 연쇄살인이 벌어지고 있다는 뉴스였다. <br /> 언뜻 봐선 아무 연관성 없어 보였던 세 명의 피해자.<br /> 그들의 공통점이라곤 동호회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뿐이었다.<br /> <br /> 그 순간 형사의 말이 또렷하게 떠올랐다.</div> <div> </div> <div>‘익스트림 스포츠처럼 뭉쳐 다니면서 재미로 폭력을 행사하는 패거리가 있어요.’</div> <div> </div> <div> 세 명의 피해자. <br /> 그들이 목숨을 잃은 날은 남편이 피를 묻히고 돌아온 날과 정확히 일치했다.</div> <div> </div> <div> 끼기긱…….<br /> <br /> 침대 소리에 흠칫 놀라 눈을 떴다. <br /> 남편이 머리맡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br /> 아니, 그 여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br /> <br /> 남편의 첫사랑.<br /> 여자의 첫사랑.<br /> <br /> 지금 이 순간, 그들은 온전히 하나가 되어 있었다.<br /> 하나의 육체에 두 영혼이 깃들어 있었다. <br /> <br /> 여자는 의미모를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br /> 그녀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목을 졸랐던 그날보다 더한 무게가 나를 짓눌렀다.<br /> 그녀는 나약하게 주저 앉아있는 나를 비난하는 것 같았다.<br /> 너를 대신해서, 내가 정의를 실현하겠노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div> <div> </div> <div> 터벅터벅.</div> <div> </div> <div> 발소리가 복도까지 길게 이어졌다. <br /> 나는 벌떡 일어나서 남편을 따라갔지만 차마 붙잡지 못했다.<br /> <br />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br /> 그 여자가 밤마다 무엇을 하는지,<br /> 뻘건 눈을 굴리며 누구를 찾아 도시를 헤매다 돌아오는지, <br /> 눈치채버린 게 후회되었다. <br /> <br /> 나는 처음으로 밤새 여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br /></div> <div> 내내 갖고 있던 공포는 여전했지만, 그녀에게 꼭 할 말이 있었다.</div> <div> </div> <div> 하지만 날이 밝도록 남편은 병실에 나타나지 않았다.<br /> 혈압을 체크하러 들어온 간호사가 깜짝 놀라며 환자의 행방을 물었다. <br /> 병원에서 연락을 받은 시어머니가 사색이 되어 나타났다. <br /> <br /> 그것으로 끝이었다.<br /> 남편의 기이한 외출은 그것으로 끝났다. <br /> 그는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div> <div> </div> <div> 다음날, <br /> 나는, <br /> 마지막 피해자의 죽음이 뉴스에 보도되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br />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된 남자의 모습이 화면에 스쳐갔다. <br /> <br /> 그가 입고 있는 환자복을 멍하니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br /> </div> <div> </div> <div><br /> * *<br /> <br /></div> <div> </div> <div> “참 소름끼치는 일이야. 안 그래?”<br /> “뭐가?”<br /> “피해자가 가해자를 죽였다면, 그게 피해자일까 가해자일까.”</div> <div> </div> <div> 최 형사는 침묵을 지키는 동료 형사를 돌아보면서 말을 이었다. <br /> 동료 형사는 담배를 입에 물고 장례식장에서 빠져나오는 일가족을 바라보고 있었다.</div> <div> </div> <div> "그렇게 독한 마음으로 자길 때린 놈들한테 복수까지 하고 다녔으면서, 목을 맬 건 또 뭐야? 요즘 같아선 살맛이 안 난다. 언론에서 쪼아대지, 위에서 쪼아대지. 하룻밤 새에 목을 매달 줄 누가 알았겠어. 드디어 잡았다 했는데.”</div> <div> </div> <div> “이제 끝이구나 싶었겠지.”</div> <div> </div> <div> “그래도……애들이 둘씩이나 있는 가장인데. 와이프로 아직 젊고, 남은 사람들은 어쩌라고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div> <div> </div> <div> 동료 형사의 입이 가로로 길게 찢어졌다.</div> <div> </div> <div> “너, 결혼하고 싶냐? 애들 쳐다보는 눈이 아주 촉촉하다, 최 형사.” <br /> “그야……불쌍하잖아. 아빠가 겨우 의식을 되찾았나 싶었더니,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으니까.”<br /> <br /> 그 순간 검은 상복을 입은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br /> 발인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에 새벽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고, <br /> 덕분에 여자의 얼굴엔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br /> <br /> 형사는 거뭇한 여자의 눈가를 바라보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br /> 여자도 그를 알아봤는지 고개를 꾸벅 숙였다. <br /> <br /> 처음, 여자의 남편이 폭력사건의 피해자로 의식불명으로 발견되어 병원으로 이송됐을 때 <br /> 사건을 맡았던 담당 형사가 바로 그들이었다. <br /> <br /> “여기까지 어쩐 일로…….” <br /> “오늘 새벽에 발인이 있다기에 한번 와봤습니다. 마침 지나가는 길이었거든요.”<br /> <br /> 그는 여자의 눈치를 보면서 “애들 생각해서라도 기운 내십시오”하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br /> 여자는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으로 시신이 실린 운구차를 바라보고 있었다.<br /> <br /> “그이는 자살한 게 아니에요.”<br /> “네?”<br /> “그이는, 그 남자들한테 폭행을 당한 날 이미 죽은 거였어요.”<br />  <br /> 최 형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br /> 이 여자,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br /> 자기 남편이 사람을 넷이나 죽였다는 걸 인정 못하겠단 거야, 뭐야?<br /> 그 네 사람이 사람을 납치하고, 무자비한 폭력을 가해왔던 악인이라고 해도, <br /> 면죄부는 주어지지 않는다. 사람을 죽인 건, 죽인 거였다.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br /> <br /> “형사님은, 첫사랑을 기억하시나요?”<br /> “예??”<br /> <br /> 형사의 의문이 더욱 깊어졌다. <br /> 이 여자, 왜 이러는 걸까. 불행에 불행이 겹쳐서 머리가 잘못 돼버렸는지도 모르겠다.<br /> 그는 동료 형사를 찾아 두리번거렸지만, 또 그새 어딜 갔는지 보이질 않았다.</div> <div> </div> <div> “남자들은 원래 그런 건가요? 첫사랑은 잊혀지지 않는 건가요? 아님, 저 두 사람이 특별한 케이스인 걸까요……저는 모르겠어요. 이제, 함께 할 수 있으니까 행복할까요?”<br /></div> <div> “글쎄요…….”<br /> “쓸데없는 질문을 하려고 온 건 아니었는데……”</div> <div> </div> <div> 여자는 흘러내린 머리칼을 쓸어 넘기면서 형사를 똑바로 쳐다봤다.<br /> 광기보다는 체념이 깃든 얼굴이었다. 모든 걸 체념하기로 한 사람처럼. </div> <div> </div> <div> “이 말만은 꼭 하고 싶었어요. 남편은 결백하다는 걸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도, 손을 피로 더럽힌 것도, 모두 남편의 의지가 아니었다는 걸 누군가는 꼭 알아줬으면 했어요.”<br /></div> <div> “남편분이 범인이 아니라면, 누구라는 거죠? 알고 있는 거라도 있습니까?”<br /> <br /> 형사가 눈을 예리하게 빛내며 그녀를 추궁했지만, <br /> 여자는 이미 형사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br /> 어딘가를 응시하면서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을 뿐이었다.</div> <div> </div> <div> “이걸로 전 영영 저 여자를 이길 수 없게 됐어요.” </div> <div> </div> <div> 장지로 떠날 준비가 모두 끝났다. <br /> 죽은 이의 부인이 차에 오르기를 모두가 기다리고 있었다. <br /> 여자는 형사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작별인사를 건네었다. </div> <div> </div> <div> “이제 가나보네.”</div> <div> </div> <div> 어느새 나타난 동료 형사가 최 형사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div> <div> </div> <div> “어디갔다오냐?”<br /> “물 좀 빼러. 표정이 왜 그래?”<br /> “좀, 이상한 말을 들은 것 같아서.”<br /></div> <div> “어? 저 집, 애들이 좀 어리지 않았었나?”</div> <div> </div> <div> 동료 형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br /> 그는 운구차의 맨 앞자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div> <div> </div> <div> “아들이 상주였나보네.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데. 쯔쯧.”<br /></div> <div> “무슨 소리야?”<br /> “머리 긴 여자애랑 나란히 앉아있는 저 남자애 말이야. 아빠랑 똑같이 생겼네.”<br /> <br /> 최 형사가 미간을 구겼다. <br /> 무슨 헛소리야?  저집은 딸만 둘인데.<br /> 그가 물으려는 찰나 운구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br /> 거대한 몸집의 차량이 장례식장의 주차장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br /> <br /> 그 순간, 최 형사가 눈을 벅벅 문질렀다. <br /> <br /> 차가 커브를 도는 순간에 나란히 앉아 있는 소년과 소녀를 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div> <div> </div> <div> 이게 다 그 여자 때문이야. 쓸데없이 이상한 말을 늘어놓아서.<br /> 미망인의 기묘한 발언과 체념한 얼굴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듯했다. <br /> 그는 그 모든 걸 지우겠다는 작정으로 동료를 잡아 이끌었다. </div> <div> </div> <div> “오랜만에 술이나 한잔 하러 가자.” </div> <div> </div> <div> 그 한마디에, 동료는 <br /> “그래, 좋지”, 고개를 끄덕이며 좋다고 따라 붙었다.</div> <div><br /> </div> <div> <br /> <br /> <br /> <br /> </div> <div>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