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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panic_53086
    작성자 : 뿡분
    추천 : 27
    조회수 : 1888
    IP : 112.146.***.64
    댓글 : 1개
    등록시간 : 2013/07/19 23:49:49
    http://todayhumor.com/?panic_53086 모바일
    단편] 너를 만나러 가기 100미터 전
    < 너를 만나러 가기 100미터 전 >
     
     
    드디어 너를 만나러 갈 결심이 들었어.
    그래서인지 도무지 잠이 오질 않더라.

    그래서 아침 일찍부터 옷장을 열고 입을 옷을 골랐어.
    무릎 위로 살짝 올라오는 파스텔 톤 원피스로 결정하곤 욕실로 들어가서
    아주 오랫동안 정성스레 샤워를 했어.
    몸 구석구석, 손가락 마디 사이사이 손톱 사이까지 싹싹 씻어 좋은 향기만 남게 했어.
    네가 가장 좋아했던 향수를 뿌리는 것도 잊지 않았고.
    네가 선물해준 단화를 신고 밖으로 나와 미용실로 갔어.
     
     "예쁘게 해주세요"라는 내 주문에 미용실 원장은 호호 웃으면서 선을 보러 가는 길이냐고 물었어.
     
     "애인 만나러 가는 길이에요"하고 대답하니 활기를 띠더라고.
     
    봄기운이 만연한 날이었어. 저절로 마음이 설레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고 싶은,
    그래, 너에게 가고 싶은 그런 날씨였어.
    그녀 생각도 비슷했는지 "보기 좋네요, 정말" 하면서 웃더라고.
    네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이 완성되었어.
    어깨 근처에서 가볍게 굽이치는 머리 모양을 보니까, 정말 너하고 데이트하러 가는 기분이 들더라.
     
     나는 지갑을 찾기 위해서 가방을 뒤적거렸어. 원장은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었지.
    내가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는 걸 힐끔 보더니 "살이 많이 빠졌네요. 다이어트 하셨나봐요?"하고 물었어.
     
    "우리딸도 K대 다녀요. 몇 학번이에요?"라는 질문까지 듣고나니까 기분이 확 상했어.
    이 여자, 꽤 참견하기 좋아하는 성격이구나 싶더라고.
    밖으로 나와서 미용실 간판을 다시 확인했어.
    유리창 안에서 나를 보고 있는 원장의 얼굴까지 머릿속에 넣었지.
    저 여자 잊어버리지 말자고.
    별다른 이유는 없었어. 그냥...알잖아, 내가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 질색하는거.
     
    버스를 탔어.
    버스에 탈 때부터 나를 유심히 보고 있던 남자가 연락처를 물어보더라.
    우습기도 했고 설레기도 했어. 나는 장난스럽게 "임자 있는 몸이에요"하고 대답해줬어.
    남자는 당황하더니 곧 사과하고 자리로 돌아갔어.
    무척 잘생긴 남자였는데도, 아쉬운 마음보다는 네 눈에도 내가 예뻐보였으면 좋겠다,
    네가 나한테 고백했던 그날처럼 내가 어리고 예쁘고 귀여워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어.
    나도 참 주책이지 정말?
     
    들고 있는 선물 상자를 내려다봤어.
    리본이 너무 작게 묶였나? 나는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려봤어.
    네가 여기 들어 있는 걸 마음에 들어했으면 좋겠는데.
     
    저기 너희집이 보여.
    신호등 두개만 건너면 바로 너희 집이야.
     
    그 순간 경찰차 한대가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갔어.
    깜짝 놀라서 선물 상자를 떨어뜨려 버렸어.
    나는 안에 들어있는 선물이 엉망이 됐을까봐 울상을 지었지.
     
     끼이익. 탁!
     
    경찰차가 갑자기 멈추더니 젊은 경찰관이 달려왔어.
     
    "괜찮으세요?" 하고 묻는 경찰관의 눈빛은 호감으로 물들어 있었어.
    조금전 버스에서 만난 남자하고 비슷한 눈빛이었지.
    나는 그 사람이 주워준 선물 상자를 받아가지고 "고맙습니다" 인사했어.
     
    "이 동네 사시나요?" 그가 물었어. 나는 도리질쳤지.
     젊은 경찰관이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경고했어.
     
     "조심하세요. 요 근처에서 실종사건이 일어났거든요. 아가씨 또래의 여자분이 실종되었는데, K대 신입생이라고 하더군요. 혹시 뭐 아는 거 없으세요?"
    나는 마찬가지로 도리질쳤어.
    그의 눈에 내 반응이 귀엽게 보였는지, 픽 웃더라고.
    그가 몇가지 질문을 더 하려는 순간 마침 신호등이 바뀌었어. 나는 신호등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어.
     
    너도 알거야, 내가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걸.
    그리고 질문이 많은 사라을 싫어한다는 걸.
    세상 사람들이 모두 너처럼 이해심많은 성격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 길 하나만 건너면 돼.
    너에게 가기까지 이제 100미터 밖에 남지 않았어.
    너는 모를테지만 종종 네가 생각나는 날이면 이 자리에 와서 네 방 창문을 보곤 했어.
    건너지 못하고 흘려보낸 신호등만 헤아려봐도 수백, 수천번은 될 거야.
     
    내가 이 신호등을 건너기 위해서 얼마나 용기를 내었는지 너는 알까?
     
    빨간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길 기다리면서 손이 축축하게 젖어가는 걸 느꼈어.
    아무래도 조금전에 상자를 떨어뜨렸을 때 안에 있던 포장지가 찢어진 것 같아.
    어서 너에게 전해줘야 되는데.
    나는 초조한 마음에 발을 동동 굴렀어.
     
    아, 드디어 신호등이 바뀌었어.
     
    나는 길을 정신없이 건너기 시작했어.
    내 눈에는 오로지 너희 집 밖에 보이지 않았어.
     
    100미터,
    90미터,
    80미터,
    70미터.....점점 줄어들고 있어.
     
    너한테 점점 가까워져가고 있는 거야.
    마치 카운트다운을 하듯이 너와의 거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거지.
     
    두근두근.
    콩콩.
    심장이 뛰었어.
    너한테 고백받았던 그 순간처럼 진정이 되질 않았어.
     
    네가 내 선물을 받고 나를 다시 받아주면 좋을텐데.
    나를 다시 사랑해주면 좋을텐데. 우리, 화해할 수 있을까?
    제발, 이걸 받고 네 마음이 돌아서기를.
     
     딩동-
     
     초인종을 눌렀어.
     
     "누구세요?" 하고 외치는 네 목소리가 들려.
     
     얼른 머리를 정돈하고 펄럭거리는 원피스 자락을 똑바로 정리했어.
     
     자, 이제 네가 걸어오고 있어.
     슬리퍼를 질질 끌고 걷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려.
     덜컥, 잠금장치를 푸는 소리도 들려.
     
     "네가...왜 여기있어? 어쩐 일이야?"
     
     눈이 휘둥그레진 너에게 선물상자를 내밀었어.
     
     "그게 뭐야?"
     
     나는 베시시 미소 지었어.
     사귈 땐 한번도 내가 먼저 선물을 한 적이 없었는데,
     이제 와서 선물을 하려니 조금 쑥스럽더라구.
     
     너는 역시 착해. 난감해하면서도 내 선물을 받았으니까.
     네가 리본을 푸르기 시작해.
     역시 리본을 좀 더 크게 묶을 걸 그랬나?
     
     "지연이가 실종됐어. 너 뭐 아는거 없어? 널 의심하는 건 아니고...전에 네가 지연이를 찾아갔었다면서. 애들이 그러는데 지연이한테 심한 말을 했다더라. 그렇다고 오해하지는 마. 경찰에는 말하지 않았어. 나는 솔직히 너한테 그런 면이 있다는 걸 못 믿겠거든. 애들은 그냥... 그런데 이건 뭐야? 케이크? 이 빨간건 또 뭐고."
     
     상자 바닥까지 흥건하게 젖은 자국을 보고 네가 나를 쳐다봤어.
     
     나는 잠자코 미소를 지으며 서있었어.
     네가 뚜껑을 열기를 기다리면서.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네가 그년의 가슴을 참 좋아했는데. 상자가 좀 더 컸으면 좋았을 걸.
     
     네가 좋아했던 그년 입술,
     네가 좋아했던 골이 텅텅 빈 그년 머리까지 덤으로 가져왔으니까 기쁘게 받아주었으면 해.
     
     그걸 받고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하는지 알아줬으면 좋겠어.
     
     얼마나...사랑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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