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너를 만나러 가기 100미터 전 ></div> <div> </div> <div> </div> <div>드디어 너를 만나러 갈 결심이 들었어. <br />그래서인지 도무지 잠이 오질 않더라. </div> <div><br />그래서 아침 일찍부터 옷장을 열고 입을 옷을 골랐어. <br />무릎 위로 살짝 올라오는 파스텔 톤 원피스로 결정하곤 욕실로 들어가서 <br />아주 오랫동안 정성스레 샤워를 했어. <br /></div> <div>몸 구석구석, 손가락 마디 사이사이 손톱 사이까지 싹싹 씻어 좋은 향기만 남게 했어. <br />네가 가장 좋아했던 향수를 뿌리는 것도 잊지 않았고. <br />네가 선물해준 단화를 신고 밖으로 나와 미용실로 갔어.</div> <div> </div> <div> "예쁘게 해주세요"라는 내 주문에 미용실 원장은 호호 웃으면서 선을 보러 가는 길이냐고 물었어. </div> <div> </div> <div> "애인 만나러 가는 길이에요"하고 대답하니 활기를 띠더라고. </div> <div> </div> <div>봄기운이 만연한 날이었어. 저절로 마음이 설레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고 싶은, <br />그래, 너에게 가고 싶은 그런 날씨였어. <br />그녀 생각도 비슷했는지 "보기 좋네요, 정말" 하면서 웃더라고. <br /></div> <div>네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이 완성되었어. <br /></div> <div>어깨 근처에서 가볍게 굽이치는 머리 모양을 보니까, 정말 너하고 데이트하러 가는 기분이 들더라. </div> <div> </div> <div> 나는 지갑을 찾기 위해서 가방을 뒤적거렸어. 원장은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었지. <br />내가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는 걸 힐끔 보더니 "살이 많이 빠졌네요. 다이어트 하셨나봐요?"하고 물었어. </div> <div> </div> <div>"우리딸도 K대 다녀요. 몇 학번이에요?"라는 질문까지 듣고나니까 기분이 확 상했어. <br /></div> <div>이 여자, 꽤 참견하기 좋아하는 성격이구나 싶더라고. <br />밖으로 나와서 미용실 간판을 다시 확인했어. <br />유리창 안에서 나를 보고 있는 원장의 얼굴까지 머릿속에 넣었지. <br />저 여자 잊어버리지 말자고. <br /></div> <div>별다른 이유는 없었어. 그냥...알잖아, 내가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 질색하는거. </div> <div> </div> <div>버스를 탔어. <br />버스에 탈 때부터 나를 유심히 보고 있던 남자가 연락처를 물어보더라. <br />우습기도 했고 설레기도 했어. 나는 장난스럽게 "임자 있는 몸이에요"하고 대답해줬어. <br />남자는 당황하더니 곧 사과하고 자리로 돌아갔어. <br /></div> <div>무척 잘생긴 남자였는데도, 아쉬운 마음보다는 네 눈에도 내가 예뻐보였으면 좋겠다, <br />네가 나한테 고백했던 그날처럼 내가 어리고 예쁘고 귀여워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어. <br /></div> <div>나도 참 주책이지 정말? </div> <div> </div> <div>들고 있는 선물 상자를 내려다봤어. <br />리본이 너무 작게 묶였나? 나는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려봤어. <br />네가 여기 들어 있는 걸 마음에 들어했으면 좋겠는데. </div> <div> </div> <div>저기 너희집이 보여. <br /></div> <div>신호등 두개만 건너면 바로 너희 집이야. </div> <div> </div> <div>그 순간 경찰차 한대가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갔어. <br />깜짝 놀라서 선물 상자를 떨어뜨려 버렸어. <br />나는 안에 들어있는 선물이 엉망이 됐을까봐 울상을 지었지. </div> <div> </div> <div> 끼이익. 탁! </div> <div> </div> <div>경찰차가 갑자기 멈추더니 젊은 경찰관이 달려왔어. </div> <div> </div> <div>"괜찮으세요?" 하고 묻는 경찰관의 눈빛은 호감으로 물들어 있었어. <br />조금전 버스에서 만난 남자하고 비슷한 눈빛이었지.<br /></div> <div>나는 그 사람이 주워준 선물 상자를 받아가지고 "고맙습니다" 인사했어. </div> <div> </div> <div>"이 동네 사시나요?" 그가 물었어. 나는 도리질쳤지. </div> <div> 젊은 경찰관이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경고했어. </div> <div> </div> <div> "조심하세요. 요 근처에서 실종사건이 일어났거든요. 아가씨 또래의 여자분이 실종되었는데, K대 신입생이라고 하더군요. 혹시 뭐 아는 거 없으세요?" <br /></div> <div>나는 마찬가지로 도리질쳤어. <br />그의 눈에 내 반응이 귀엽게 보였는지, 픽 웃더라고. <br /></div> <div>그가 몇가지 질문을 더 하려는 순간 마침 신호등이 바뀌었어. 나는 신호등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어. </div> <div> </div> <div>너도 알거야, 내가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걸. <br />그리고 질문이 많은 사라을 싫어한다는 걸. <br /></div> <div>세상 사람들이 모두 너처럼 이해심많은 성격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div> <div> </div> <div>이제 길 하나만 건너면 돼. </div> <div>너에게 가기까지 이제 100미터 밖에 남지 않았어. <br />너는 모를테지만 종종 네가 생각나는 날이면 이 자리에 와서 네 방 창문을 보곤 했어.<br />건너지 못하고 흘려보낸 신호등만 헤아려봐도 수백, 수천번은 될 거야.</div> <div> </div> <div>내가 이 신호등을 건너기 위해서 얼마나 용기를 내었는지 너는 알까?</div> <div> </div> <div>빨간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길 기다리면서 손이 축축하게 젖어가는 걸 느꼈어. <br />아무래도 조금전에 상자를 떨어뜨렸을 때 안에 있던 포장지가 찢어진 것 같아. <br /></div> <div>어서 너에게 전해줘야 되는데. <br />나는 초조한 마음에 발을 동동 굴렀어. </div> <div> </div> <div>아, 드디어 신호등이 바뀌었어. </div> <div> </div> <div>나는 길을 정신없이 건너기 시작했어. <br />내 눈에는 오로지 너희 집 밖에 보이지 않았어.</div> <div> </div> <div>100미터, <br /></div> <div>90미터, <br /></div> <div>80미터, <br /></div> <div>70미터.....점점 줄어들고 있어.</div> <div> </div> <div>너한테 점점 가까워져가고 있는 거야. <br />마치 카운트다운을 하듯이 너와의 거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거지. </div> <div> </div> <div>두근두근. <br />콩콩.<br />심장이 뛰었어. <br />너한테 고백받았던 그 순간처럼 진정이 되질 않았어. </div> <div> </div> <div>네가 내 선물을 받고 나를 다시 받아주면 좋을텐데. <br />나를 다시 사랑해주면 좋을텐데. 우리, 화해할 수 있을까?<br /></div> <div>제발, 이걸 받고 네 마음이 돌아서기를.</div> <div> </div> <div> 딩동- </div> <div> </div> <div> 초인종을 눌렀어.</div> <div> </div> <div> "누구세요?" 하고 외치는 네 목소리가 들려. </div> <div> </div> <div> 얼른 머리를 정돈하고 펄럭거리는 원피스 자락을 똑바로 정리했어. </div> <div> </div> <div> 자, 이제 네가 걸어오고 있어. <br /> 슬리퍼를 질질 끌고 걷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려. <br /> 덜컥, 잠금장치를 푸는 소리도 들려.</div> <div> </div> <div> "네가...왜 여기있어? 어쩐 일이야?"</div> <div> </div> <div> 눈이 휘둥그레진 너에게 선물상자를 내밀었어.</div> <div> </div> <div> "그게 뭐야?"</div> <div> </div> <div> 나는 베시시 미소 지었어. <br /> 사귈 땐 한번도 내가 먼저 선물을 한 적이 없었는데, <br /> 이제 와서 선물을 하려니 조금 쑥스럽더라구. </div> <div> </div> <div> 너는 역시 착해. 난감해하면서도 내 선물을 받았으니까. <br /></div> <div> 네가 리본을 푸르기 시작해. <br /> 역시 리본을 좀 더 크게 묶을 걸 그랬나?</div> <div> </div> <div> "지연이가 실종됐어. 너 뭐 아는거 없어? 널 의심하는 건 아니고...전에 네가 지연이를 찾아갔었다면서. 애들이 그러는데 지연이한테 심한 말을 했다더라. 그렇다고 오해하지는 마. 경찰에는 말하지 않았어. 나는 솔직히 너한테 그런 면이 있다는 걸 못 믿겠거든. 애들은 그냥... 그런데 이건 뭐야? 케이크? 이 빨간건 또 뭐고."</div> <div> </div> <div> 상자 바닥까지 흥건하게 젖은 자국을 보고 네가 나를 쳐다봤어. </div> <div> </div> <div> 나는 잠자코 미소를 지으며 서있었어. <br /> 네가 뚜껑을 열기를 기다리면서.</div> <div> </div> <div>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div> <div> </div> <div> 네가 그년의 가슴을 참 좋아했는데. 상자가 좀 더 컸으면 좋았을 걸. </div> <div> </div> <div> 네가 좋아했던 그년 입술,<br /> 네가 좋아했던 골이 텅텅 빈 그년 머리까지 덤으로 가져왔으니까 기쁘게 받아주었으면 해. </div> <div> </div> <div> 그걸 받고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하는지 알아줬으면 좋겠어.</div> <div> </div> <div> 얼마나...사랑하는지.</div> <div> </div> <div><br />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