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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panic_100780
    작성자 : 바젤넘버원
    추천 : 3
    조회수 : 1069
    IP : 14.32.***.121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19/09/20 16:09:01
    http://todayhumor.com/?panic_100780 모바일
    [잔혹동화] 기나긴 밤
    옵션
    • 창작글



    간첩으로 고발된 남자는

    병사들에게 붙들려 감옥에 갇혔습니다.

     

     

    병사들은

    남자가 장화 안에 감춘 비밀문서를 찾았고

    남자에겐 변명할 여지 따윈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간첩 일을 해온 남자는

    이 외롭고 고독한 생활이 끝나게 되어 내심 기뻤지만

    지독한 심문과 고문이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불로 달군 꼬챙이가 남자의 살갗을 파고들었고

    발가락과 발톱 사이에는 대못이 박혔으며

    손톱이 빠진 손가락에서는 고름이 흘러내렸습니다.

     

     

    하지만

    동료들의 이름을 대라는 심문관의 다그침에도

    남자는 절대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2주가 지났습니다.

     

     

    남자의 끔찍하게 부어오른 얼굴을 보며

    자신이 원하던 답을 얻지 못하리라 판단한 심문관은

    다음날 동이 틀 때 남자를 처형하라고 간수에게 이르고는

    감옥을 떠났습니다.

     

     

    싸늘한 감방에 홀로 남은 남자는

    오래간만에 찾아온 고요 속에서

    한시라도 빨리 동이 트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때

    오래전에 보았던 한 장면이

    남자의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태양이 바다 아래로 가라앉으며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모습이었습니다.

     

     

    해안길을 따라 목적지로 향하던 남자는

    버려진 낡은 배에 앉아 휴식을 취하며

    해가 지는 모습을 구경했습니다.

     

     

    태양의 끄트머리가 수평선과 맞닿자

    붉은 광선이 순간 파도  위로 번뜩이다 사라졌고

    그 모습을 본 남자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십 수 년도 더 지난 일이건만

    왜 이제야 그때 일이 떠오를까

     

     

    남자는 그 모습을 머릿속에서 치우려 애썼지만

    꿈같이 희미하던 그 기억은 더욱 뚜렷해져

    남자의 머릿속을 꽉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단 한 번이라도

    그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다면

     

     

    남자는 자꾸만 약해지는 마음에

    움켜쥔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한시라도 빨리 동이 트기를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잔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창가의 쇠창살 넘어 보이는 어둠은

    해를 삼켜버린 듯 밝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남자의 마음은 흔들렸습니다.

     

     

    결국

    간수를 통해 심문관을 부른 남자는

    동료들의 이름을 파는 대가로

    목숨을 부지하는데 합의했습니다.

     

     

    그렇게

    남자는 감옥에서 풀려났습니다.

     

     

    하지만

    감옥의 두꺼운 문이 열리자

    열린 문틈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에

    남자는 어리둥절하였습니다.

     

     

    감옥 밖으로 나온 남자는

    자신이 갇혀 있던 감방의 창가를 덮은

    검은 천막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남자가 감옥에서 동이 트기를 기다린 지

    하루 하고도 반이 더 지났던 것이었습니다.

     

     

    남자에게 고문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심문관은

    시간을 끌며

    남자의 마음이 약해지길 기다렸던 것이었습니다.

     

     

    잠시 후

    남자는 병사들에게 사로잡힌 동료들과 마주쳤습니다.

     

     

    남자를 발견한 동료들은

    울분에 찬 눈으로 남자를 쏘아보았지만

    남자에게는 그들을 마주 볼 용기가 없었습니다.

     

     

    남자는

    동료들의 저주 섞인 욕설을 뒤로하고

    서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뒤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간신히 해안가에 도착한 남자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를 보며

    석양이 지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때

    남자를 향해 다가오는 한 소년

     

     

    소년 또한

    지는 해를 보기 위해 해안으로 나온 것이었습니다.

     

     

    소년과 나란히 앉아

    소년이 가진 빵을 나눠 먹으며 석양이 지는 모습을 보던 남자는

    서서히 몸이 마비되는 걸 느꼈습니다.

     

     

    독이었습니다.

     

     

    소년은

    동료를 판 남자를 죽이기 위해 고용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독이 든 빵을 먹은 남자는

    싸늘한 죽음이 그의 심장을 죄어오는 순간에도

    수면 아래로 떨어지는 태양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생기 잃은 남자의 눈동자에 붉게 비추던 태양은

    곧이어 어둠 속으로 사그라졌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밤하늘의 별들이 반짝이기 시작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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