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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history_7936
    작성자 : 리볼버오셀롯
    추천 : 5
    조회수 : 1099
    IP : 175.201.***.52
    댓글 : 2개
    등록시간 : 2013/03/05 17:46:23
    http://todayhumor.com/?history_7936 모바일
    (펌)비잔티움 제국사(24) - 성상 파괴 운동

    http://cafe.daum.net/shogun의 푸른 장미님이 쓰신 글입니다.

     

    레오 3세가 소아시아 주둔군 지휘관의 세력을 이용하여 황위를 찬탈한 것은 그가 32살 되던 해였다. 그는 717년 3월 25일 군대를 이끌고 황금문을 통과했고 바로 그날 하기아 소피아에서 황제 대관식을 치렀다.

    레오 3세

    아랍군이 717년에서 718년 사이에 콘스탄티노플을 포위 공격했으나 그 공격은 무위로 끝났다. 레오 3세가 군대를 이끌고 육상에서뿐 아니라 해상에서도 ‘그리스의 불’을 이용하여 사라센 함대를 물리쳤던 것이다. 콘스탄티노플 주민들은 호데게트리아(길의 인도자이신 성모)가 도시를 구했다고 믿었는데 포위 기간 중 성 루가가 그린 것으로 알려진 호데케트리아 성화를 든 행렬이 테오도시우스 성벽을 따라 행진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레온 3세 시대의 비잔티움 제국. 717년경. 줄이 그여진 지역은 아랍의 침공을 받던 곳을 나타낸다.

    레오 3세의 즉위로 비잔틴 역사상 최대의 종교 분쟁인 성상 파괴 운동의 막이 올랐다. 726년 레오 3세가 근위대를 시켜 대궁전 정문에 걸려 있던 거대한 그리스도의 성화를 철거하게 하면서 갈등은 시작되었다. 이 그림은 콘스탄티노플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성화였으며 레오 3세는 이 성화를 철거하는 것이 제국 내의 모든 성상들을 파괴하는 운동의 첫 시도로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성상을 숭배하는 것은 우상숭배의 한 형태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성상을 숭배하는 무리가 작업을 저지하고 나서면서 충돌이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근위대 지휘관이 목숨을 잃었다. 분노한 근위대는 성상 숭배자들의 지도자 테오도시아를 살해했다. 테오도시아는 성녀로 추대되어 성상 숭배자들의 수호 성인이 되었으며 성상 숭배자들은 그녀에게 교회를 지어 헌납했는데 그 건물은 현재 귈 자미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테오도시아 성당(귈 자미)

    레오 3세의 행동들은 육군과 해군 모두의 반란을 야기했지만 그는 그런 반란들을 쉽게 진압했다. 레오 3세는 730년 제국 내의 교회와 수도원에 성상을 두는 것을 금하는 칙령을 내려 자신의 성상 파괴 정책을 공식화했다. 그는 741년 6월 18일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성상 파괴 운동으로 인해 제국은 내란으로 분열을 겪고 있었다.

     

    레오 3세의 성상 파괴 정책은 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콘스탄티누스 5세에 의해 계승되었는데 콘스탄티누스는 하기아 소피아에서 세례를 받을 때 똥을 싸서 비잔틴 연대기 작가들 사이에서 ‘코프로니무스(똥)’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콘스탄티누스 5세

    콘스탄티누스 5세가 즉위하고 6년이 흐른 뒤 콘스탄티노플에 무시무시한 역병이 창궐했는데 연대기 작가 니케포루스에 의하면 콘스탄티노플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죽음의 도시로 변했다. 주민들은 역병이 성상 파괴 정책에 대한 하느님의 진노의 표시라고 여겼다. 콘스탄티누스 5세는 그리스와 에게 해의 섬들에서 데려온 사람들로 도시를 다시 채워야 했다. 그러나 비잔틴 시대 콘스탄티노플의 인구는 유스티니아누스 재위기의 수준으로 회복된 적이 없었다.

     

    콘스탄티누스 5세는 754년 성상숭배를 금지하는 종교회의를 다시 개최하면서 우상숭배 반대 운동을 재개했다. 그는 더욱 강력하게 성상 파괴 정책을 밀어붙였고 특히 콘스탄티노플 내의 교회들에 대한 압박이 심해서 많은 성직자들이 그리스나 카파도키아의 황야로 도피했다. 공포정치가 시작되어 도피하지 않은 이들은 투옥되었고 고문과 신체 절단을 당한 후에 투옥되는 사례들도 가끔 있었으며 이들 중 다수가 처형당했다. 젊은 성 스테파누스의 <전기>는 그와 432명의 다른 수도승들이 콘스탄티누스 5세 재위 기간 동안 콘스탄티노플에서 투옥되어 고문당한 내용을 기술하고 있으며 결국 그들 모두 처형당했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성 스테파누스

    콘스탄티누스 5세는 775년 9월 14일 불가르군과 싸우기 위해 출정했다가 사망했다. 그의 아들 레오가 다음 황제가 되어 부친의 성상 파괴 정책을 계속 이어갔다. 레오의 아내 이레네는 아테네인으로 독실한 성상 숭배자였지만 남편에게는 그런 사실을 숨겼다. 레오 4세는 780년 성상 숭배자들에 대한 박해를 재개하여 교회와 수도원의 보물들을 몰수하고 수많은 수도사들과 수녀들을 투옥하고 고문했다. 바로 그해에 그는 불가르군을 상대로 한 원정에 나섰고 도중에 병에 걸려 780년 9월 8일에 세상을 하직했다.

    레오의 아들 콘스탄티누스가 황위를 이었다. 새 황제가 아직 10살이 안 되어 어머니 이레네가 섭정을 맡았다. 이레네는 즉시 성상 복구에 나섰으며 정부와 군대에서 성상 파괴주의자들을 축출하고 성상 숭배자들을 그 자리에 앉혔다. 그녀의 그런 정책으로 동쪽 국경에서 두 차례의 반란이 일어나 아랍군이 소아시아를 침범하는 빌미를 제공했으며 한편으로는 그리스의 슬라브족이 폭동을 일으켰다.

    여제 이레네

    이레네의 성상 복구 노력은 787년 9월 24일 니케아에서 열린 제7차 공의회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한 달 후 위원회는 성화는 경배는 하되 숭배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 아래 성상 복구 법령을 선포했다. 이레네는 또한 레오 3세가 모독하고 더럽힌 성 에우페미아 기념성당도 복구하였으며 성 에우페미아의 열렬한 신도들이 찾아낸 유해의 일부가 그곳에 다시 모셔졌다.

     

    콘스탄티누스 6세가 황제의 자리에 오를 나이가 되었어도 이레네는 섭정의 권력을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군사 정세가 어렵게 돌아가고 있었고 790년 소아시아 군대가 반란을 일으켜 섭정 종료를 요구했다. 그해 12월 이레네는 눈물을 머금고 섭정 자리에서 물러나 콘스탄티누스 6세에게 전권을 위임해야만 했다.

    콘스탄티누스 6세

    그러나 결국 그녀는 아들 콘스탄티누스 6세를 설득하여 자신을 공동 황제로 임명하도록 만들었다. 그녀는 권력을 독점하기로 결심하고 797년 8월 15일 자신의 근위병들을 시켜 아들을 잡아다 대궁전에 감금시킨 뒤 바로 그날 장님으로 만들었다. 그런 다음 콘스탄티누스 6세와 그의 두 딸을 수도원으로 보냈으며 콘스탄티누스 6세는 그곳에서 바로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이레네는 제국의 단독 통치자가 되었지만 그녀의 극악무도한 범죄는 비잔틴 세계를 충격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이에 대한 연대기 작가 테오파네스의 글을 보면 “열이레 동안 태양이 검게 변하여 빛을 비추지 않았으며 바다의 배들은 항로를 잃고 사람들은 입을 모아 황제께서 눈이 멀어 태양도 빛을 거두어 갔다고 말했다. 이렇게 권력은 황제의 어머니 이레네에게 넘어갔다.”

     

    800년에 교황 레오 3세에 의해 서로마의 황제 자리에 오른 샤를먀뉴가 제국의 동과 서를 합칠 왕가의 결합이 될 이레네와의 결혼을 청하기 위해 콘스탄티노플로 사절단을 보냈다. 그러나 사절단이 도착하고 얼마 안 되어 궁전에서 쿠데타가 일어났고 이레네는 폐위되었다. 802년 10월 31일, 전직 재무장관이었던 이가 새로운 황제로 추대되었는데 그가 바로 니케포루스 1세다. 이레네는 콘스탄티노플에서 추방되어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니케포루스 1세

    니케포루스 1세는 9년이라는 재위 기간의 대부분을 아랍, 슬라브, 불가르와의 전쟁으로 보냈다. 마지막 원정에서 그는 아들 스타우라키우스와 함께 불가르족의 왕 크룸과 맞붙게 되었다. 그는 811년 초여름 불가르의 수도 플리스카를 점령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해 7월 26일 비잔틴 군대는 아드리아노플 근처에서 함정에 빠졌고 기병 몇 명만 도망쳤을 뿐 불가르군에게 몰살당했다. 니케포루스 역시 목숨을 잃었는데 발렌스 황제 이후 전장에서 유명을 달리한 비잔틴 황제는 그가 처음이었다. 불가르군은 황제의 목을 베어 그 해골 안쪽에 은을 입혀서 맥주잔으로 만들었으며 크룸은 그 잔을 승리의 상징으로 삼아 죽을 때까지 썼다고 한다. 스타우라키우스 역시 심한 부상을 당했지만 구조되어 콘스탄티노플로 이송되었고 황제 자리에 올랐다. 그는 812년 1월 11일에 눈을 감았으며 그 석 달 전에 매제 미카일 랑가베에게 황위를 넘겨주었다.

    비잔틴 군대를 공격하는 9세기 불가리아군을 형상화한 비잔틴 시대의 기록화

    스타우라키우스

    미카일 1세의 재위 기간은 겨우 스무 달이었다. 813년 6월 21일 아드리아노플 근처에서 크룸에게 패배한 그는 아르메니아인 장군 레오와 함께 겨우 도망쳐 콘스탄티노플로 돌아왔다. 하지만 레오에게 황제 자리를 빼앗겼고 수도원에 유폐되어 그곳에서 7년 후 생을 마감했다.

    미카일 1세 랑가베

    813년 7월 22일, 새 황제 레오 5세가 하기아 소피아에서 대관식을 치렀다. 그 닷새 전 크룸이 콘스탄티노플을 포위 공격했으나 결국 물러나면서 퇴로에 트라키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 이후 헤라클리우스 성벽 앞에 레오 성벽이라는 새 방어벽이 세워졌다. 이로 인해 콘스탄티노플이 포위 공격을 당할 때마다 가장 취약한 지점이었던 블라케르나이 지구의 방어가 강화되었다.

     

    성상 파괴주의자였던 레오 5세는 평화를 되찾자마자 성상에 대한 금지를 재개했다. 그는 815년 4월 하기아 소피아에서 종교회의를 개최하여 787년의 7차 공의회에서 선포된 법령들을 무효화하고 754년의 성상 파괴주의적 종교회의의 법령들은 비준했다. 그의 정책은 성직자들과의 갈등을 야기했고 그 결과 그는 콘스탄티노플의 많은 수도원들을 폐쇄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이 스투디온 수도원으로 이곳의 수도원장 테오도루스는 추방되었는데 그는 성상 파괴주의자 황제의 손에 이미 두 번이나 추방을 당한 적이 있었다.

     

    820년이 저물 무렵 레오 5세의 귀에 오랜 전우인 아모리아인 미카일이 반역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소문이 들어왔다. 레오는 미카일을 대궁전으로 잡아들인 후 크리스마스이브에 감옥에 가두고 사형선고를 내렸다. 그러나 크리스마스에 성가대로 변장하고 침입한 미카일의 친구들이 궁전 예배당에서 레오 5세의 목을 벴다. 황제의 암살로 미카일은 궁전 감옥에서 나와 황제가 될 수 있었는데 손에 수갑을 찬 채로 황제 옷을 입고 옥좌에 앉았다. 대장장이가 불려와 그의 수갑을 잘라낸 뒤에야 그는 호위를 받으며 하기아 소피아로 가서 테오도투스 총대주교에 의해 미카일 2세로 등극했다. 같은 날 레오 5세의 시신은 히포드롬에서 대중의 조롱거리가 되었으며 그후 그의 아내 테오도시아가 시신을 수습하여 한 섬에 묻었다.

    미카일 2세

    황위에 오른 미카일 2세가 처음으로 한 일 중 하나는 투옥된 수도사들을 모두 풀어주고 추방된 이들을 다시 불러온 것이었는데 콘스탄티노플로 돌아온 추방자들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은 스투디온 수도원의 테오도루스였다. 돌아온 테오도루스는 생의 마지막 5년 동안 스투디온 수도원장으로 재직했고 그 시기에 스투디온은 현대 역사가들에 의해 ‘동로마의 클뤼니(중세의 교회 개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베네딕트회의 수도원)’로 불리게 된 명성을 확립했다. 스투디온의 수도사들은 시인, 찬송가 작곡자, 학자, 고문서 필사가, 사본 채식사, 성화 화가로 명성이 높았다. 테오도루스는 수도사들이 자신의 일에 정진하도록 하였으며 맡은 일을 마치면 독서로 교양을 높이기를 바랐다. “일하는 시간인가? 그럼 일에 매달려라. 휴식 시간인가? 그럼 공부하라.” 그가 한 말이다.

     

    미카일 2세는 829년 10월 2일 세상을 떠났고 그의 아들 테오필루스가 즉위했다. 테오필루스는 821년에 공동 황제로 임명된 직후 ‘미인 대회’에서 신부로 점찍은 테오도라와 이미 결혼한 상태였다. 테오도라는 미카일에게 다섯 딸을 차례로 안겨준 후 비로소 첫 아들 콘스탄티누스를 낳았지만 콘스탄티누스는 어린 나이로 세상을 하직했다. 840년 1월 19일 테오도라는 마침내 건강한 아들을 얻었는데 후에 미카일 3세가 될 이 아들은 세례를 받은 직후 공동 황제로 임명되었다.

    테우필루스 황제와 그의 신하들

    테오필루스는 재위기의 대부분을 아랍군과의 전쟁으로 보냈으며 아랍군을 상대로 한 첫 원정은 829년과 830년에 있었다. 830년의 원정에서 그는 아랍 영토인 킬리키아(소아시아의 남동쪽, 키프로스의 북쪽 해안)까지 쳐들어가는 쾌거를 이루어 콘스탄티노플로 돌아온 후 개선식을 진행했다. 연대기 작가들은 개선식 때 황제의 행렬이 지나는 길에 꽃잎이 뿌려졌고 콘스탄티노플이 “신방처럼 장식되었다.”고 기록했다. 그후 테오필루스는 육지 성벽을 보수하고 마르마라와 골든혼의 해안 성벽도 대대적으로 강화하였으며 그곳의 방어탑들에 새겨진 그의 이름이 그 증거가 되고 있다.

     

    테오필루스는 성상 파괴주의자였으나 선황처럼 적절한 관용을 보였다. 반면 테오도라는 독실한 성상 숭배자로 자신이 모시는 성상들을 남편이 보지 못하게 감춰야 했다.

     

    테오필루스는 842년 1월 20일 이질로 숨을 거뒀는데 그가 39살 되던 해였다. 그는 마지막 성상 파괴주의자 황제로서 후세의 연대기 작가들에 의해 억울하게 매도당했으며 유명한 연대기 작가 테오파네스는 테오필루스가 공정한 황제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테오필루스가 백성들의 복지에 관심이 많았음을 나타내는 많은 일화들을 전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황위에 오른 미카일 3세는 겨우 두 살의 나이였다. 미카일의 어머니 테오도라가 섭정으로 임명되었으며 그녀의 남동생 바르다스가 도움을 주게 되었다. 독실한 성상 숭배자여썬 테오도라와 바르다스는 성상 복구의 때가 도래했다는 생각으로 845년 3월 초 우상숭배자들을 중심으로 종교회의를 개최했다. 이 회의에서 754년의 성상 파괴주의적 법령들은 폐지되고 대신 787년의 7차 공의회의 결정들이 채택되었다. 845년 3월 11일 일요일 하기아 소피아에서 비잔틴 교회와 수도원에 성상들이 돌아온 것을 축하하는 감사 의식이 열렸다. 이 의식은 그리스정교회의 축일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미카일 3세

    야만족들이 사방에서 호시탐탐 제국을 손에 넣을 기회를 노리던 시기에 비잔틴 세계를 분열시켰던 성상 파괴 정책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이 시기에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콘스탄티노플의 인구는 현격히 감소했고 주민들은 안전을 위해 성벽 안쪽에서만 모여 살았다. 그러나 암흑의 시대에도 문화의 빛은 스투디온 같은 수도원의 학자들과 예술가들에 의해 계속 이어졌으며 16세기 초반까지도 꺼지지 않아 비잔틴 제국보다 반세기를 더 살아 남았다. 스투디온의 금욕적인 수도사 하나가 비잔틴 제국의 황혼기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는데 종교적 행복감에 취해서 쓴 글이 분명하다.

     

    어떤 야만인도 나의 얼굴을 보지 못하며 어떤 여자도 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천년 동안 쓸모없는 사람은 스투디온 수도원에 들어온 적이 없으며 여성은 아무도 수도원 뜰을 밟지 못했다. 나는 궁전과도 같은 방에서 산다. 정원과 올리브 숲과 포도밭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 내 앞에는 우아하고 무성한 사이프러스들이 있다. 한편으로는 시장을 가진 거대한 도시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들의 어머니요 인간 세상의 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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