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 target="_blank" href="http://cafe.daum.net/shogun" target=_blank><U><FONT color=#0066cc>http://cafe.daum.net/shogun</FONT></U></A>의 마법의활 님이 쓰신 글입니다.</P> <P> </P> <P>디오클레티아누스가 개혁한 로마 제국은 모든 게 순조로워보였습니다만..... <BR>적어도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보기에 심히 문제있는 화근거리가 하나 있었습니다. <BR><BR>그건 바로 기독교였습니다. 근데 여기서 우리가 알아볼 게 있습니다. <BR>1. 왜 그토록 기독교가 2세기와 3세기를 거치며 세를 더해갔을까? <BR>2. 왜 서부에서는 동부만큼의 전도가 되지를 않았을까? <BR><BR>자! 전에서도 그랬다시피 늘 명쾌한 답을 내주시는 한 인기 작가 한 분이 계십니다. <BR>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BR><BR>1. 제국이 잘나갈땐 자신감에 차서 별로 안 믿다가, 제국이 병드니까 신도가 많아졌다. <BR>건강할 땐 물리칠 수 있는 병균이 아플 땐 퍼지는 것하고 같다. <BR><BR>2. 서부에 그리스인들이 적어서. <BR><BR>..................???? 정말 그런가? <BR>사실 한 때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만. 그러나... <BR><BR>오늘 지하철에서 어떤 아저씨가 제 발을 밟아서 제가 아픈 "본질적인 이유"는, 제 발이 하필 건방지게 거기 있어서도 아니었고, 제 발에 통각 신경이 분포해 있어서도 아니었습니다. <BR><BR>그냥 그 아저씨가 어쩌다 한 눈 팔아서 제 발을 못봤을 뿐입니다. <BR><BR>다신교 체제와 철학 발전 자체가 모 작가님의 기대를 정면으로 배반한 체 점진적으로 발전하고 있었던 것은 이미 알렉산드로스의 헬라 제국 건설 때부터, 로마가 이탈리아 안에만 있을 때로 한참 거슬러올라가는 현상이었습니다. <BR><BR>아울러 헤브라이즘 자체도. 헤브라이즘이란 것도 몇천년 동안 고리탑탑한 말안통하는 유태인들의 모세 버전으로 있었던 게 아니라, 수많은 타학문과 상호 작용하며 존재했던 여러 시류들 중 하나였습니다. <BR><BR>"인간이 행하는 바를 도와주는 게 신의 역할이었다. 일신교 체제처럼 인간에게 무언가를 하라고 지시하고 가르치는 역할이 아니었다. " <BR>아쉽게도 이 얘긴 로마가 삼니움하고 싸움박질하고 있을 때부터도 점점 과거 얘기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BR><BR>철학자들은 사실 그리스 로마 신화로 대표되는 다신교란 거에 대해서 상당히 회의적인 생각들을 진작부터 하고 있었습니다. <BR>“.....도데체 신이라는 작자들이 맨날 하는 짓거리들 보면 이건 뭐......당최 인간이 배울 게 <BR>하나도 없잖아? 인간한테 뭘 하라고 당최 가르쳐주지도 않고 레이드 레벨만 높다고 신앙만 강요하는 그딴게 어떻게 신인가? “ <BR>(키케로도 이와 비슷한 견해를 피력한 바 있었지요. ) <BR><BR>그래서인지 그리스 철학자들이 암묵리에 동의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BR>저런 얼치기 바보 신들 위에 있는 “신들의 의지” 혹은 “신들의 여론”이라는 개념. <BR><BR>또라이 떨추 신들이 많긴 하되 신들의 대체적인 여론은 절대 선, 절대 공적 정의, 이런 거라는 개념입니다. 혹은.....혹자는 더 발전해서 “완전무결한 절대의 존재”가 하나 있다고까지 생각들을 했었습니다. <BR><BR>헌데 아카데미 안에나 머물러 있던 이 개념이 점점 담을 넘어 확장하기 시작한 건.. <BR>아이러니칼하게도 모 작가분이 그렇게도 칭송하는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체제, 즉 원수정 체제 덕분이었습니다. <BR><BR>원수정 성립에 따른 로마 사회 자체의 권력 구조 개편은 지중해 동부에도 꽤 큰 영향을 주고 있었습니다. 서부는 두말할 것도 없고.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후에는 그리스 인들을 통치하는 “단일한 바실리카, 단일한 바실레우스”가 오랫동안 등장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BR><BR>원수정 체제가 오래간 지속되면서, 종교나 신앙 체제도 어느 정도 재확립을 보게 됩니다. <BR>어느새 다신교 체제에도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같은 자가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 점점 고개를 들게 된 것이죠. <BR><BR>( 유피테르? 에이, 그 아저씨는 너무 결함이 많아서.....걸핏하면 애먼 처녀들이나 따먹질 않나, 지 애비 밀어내고 권좌 차지하질 않나, <BR>그래서인지 공화정 시대에도 얼굴 마담 역할이나 했지 절대 권위로는 한참 부족했습니다. ) <BR><BR>그래서 이미 다신교 자체가 벌써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시대로 오게 되면, "인간에게 무언가를 하라고 지시하고 가르치는 역할"을 자주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BR>사람들 자체도 다신교의 신들을 그전처럼 가벼운 의미로 떠올리지는 않게 되었구요. <BR><BR>또한 다신교의 신들보다 우위에 있는 "세계의 섭리." 비록 다신교의 신들 자체는 선하지도 도덕적이지도 않았지만, 다신교 사회를 움직이는 "뭔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 자체 - “대단히 공정한 선의지“란 게 그리스 아카데미 밖을 튀어나와 점점 학문하는 사람들 머릿속으로 침투하기 시작했습니다. <BR><BR>이미 헬레니즘 사회는 벌써 포에니 전쟁 전부터 기독교 포교를 위한 토대가 아주 천천히 쌓여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BR>끝내 헬레니즘 철학 및 다신교의 발전은 티베리우스 황제 말기에 이스라엘에서 태동하기 시작한 한 흐름을 마주치며 격렬한 화학 반응을 준비합니다. <BR><BR>5현제 시대부터 몇몇 철학자들이 저 대단히 공정한 선의지라는 것에 기독교의 하나님을 대입시키기 시작한 것입니다. 기독교 최초의 신학자격이며 신약 성서를 절반 이상 쓴 바울이 헬레니즘 철학과 헤브라이즘 전통 양쪽에 정통한 천재 엘리트였다는 것에 이미 전조가 있었지만요. <BR><BR>어떤 유명 작가분은 뭐 콘스탄티우스 황제 때 지식인들이 돈에 홀려 대거 기독교인이 되었다...어쩌구...하는데, 것도 사실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습니다. 철학자들이 기독교계로 투신하는 것은 초대 교회때부터의 흐름이었기 때문입니다. <BR><BR>(이쯤에서 생각나는 유명 작가분의 명언. 페리클레스 이후로 그리스 철학이 생산적인 발전을 멈추고 궤변만 발달했다고 하시는데 어쩌면 그렇게 막가는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지 참 궁금해집니다. ) <BR><BR>물론... 철학자들이 기독교 내용을 두고 그 신화적인 내용을 학문적으로 비판을 많이 하긴 했는데.. (비록 동료들 중 일부가 기독교계로 투신하긴 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본질적으로는 기독교에 호감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BR><BR>철학자들이 과연 무엇인가? 이것도 중요한 문제지만. 그들은 헤브라이즘 체계에서 선지자들이 했던 역할을 오래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끊임없이 도덕률을 내면화하라고 상류층을 질타하던 특수 계층!! <BR><BR>이 철학자들은 신분이나 지위와 관계없이 사회의 부조리한 면을 공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신분이었습니다. 조선 시대에 있었던 유생 계층을 방불케 했다고나 할까요. <BR><BR>누구는 열심히 일하는 황제들에게 되잖은 딴지만 건 귀찮은 잔소리꾼들이었다고 하는데, <BR>그건 사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 (이들 같은 경우는 기독교를 가장 매섭게 비판하기도 했는데,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에게 별로 좋은 점수를 받질 못했습니다. 그냥 간단한 이유로는 누가 싫어하는 과두정-공화정 체제에 호의적이었기 때문인 듯 합니다. ) <BR><BR>물론 철학자들의 주장은 당대에 그다지 세력을 얻지는 못했고, "중요한 참고 사항"에 머무는 정도였지만...... 그들은 늘 자신들이 이 타락한 사회에서 주도권을 잡기를 열망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제자들과 동료들에게서 예기치 않은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BR><BR>이 철학자들이 비판했던 어떤 신흥 종교의 일원들이, 그들의 정신적 계승자가 되는 사태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BR><BR>그러나 이건 일단 디오클레티아누스에게는 별반 관심 사항은 아니었습니다. 애당초 디오클레티아누스 자신이 그딴 유치한 신화나 철학 별로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의 아내와 딸도 준 기독교 신자로 통할 정도였고. 그런데..... <BR><BR>디오클레티아누스가 공포를 느낀 것은 바로 이 대목이었습니다. <BR><BR>이 신흥 종교의 조직 체계는 점점 발전하여, 3세기 말에 그 질서 정연함은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창안한 로마 제국 체제보다도 더욱 효율성을 자랑하기에 이르렀다는 바로 그점입니다. <BR>디오클레티아누스 자신부터가 행정 개혁과 조직의 천재였기 때문에 그는 이 신흥 종교 조직이 얼마나 무서운 힘을 지니고 있는 지를 꿰뚫어 볼 수 있었습니다. <BR><BR>(기독교 성직 체계는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 교단 체계로부터 영향을 받았을거란 얘기도 제가 알기론 있습니다. 로마가 3세기 때부터 전술 체계나 몇 가지 의례를 페르시아로부터 열심히 배우려 들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불가능한 얘긴 아닐거라 여겨집니다.) <BR><BR>페르시아의 성직 체계, 그리스 철학의 사고 방식이 던진 질문에 헤브라이즘 철학의 답을 끼워넣어 완성된 기독교. <BR><BR>디오클레티아누스가 공포심을 느꼈을 법도 합니다. 이 작자들이 그 담엔 뭘할라고 할 것인가.....로마의 신들에게 제사도 안 지내고, 그리고 황제보다 더 높은 존재도 있다 하며, 황제는 신이 아니다? 왠지 얘들, 장난이 아닌데? <BR><BR>그리고. 제가 모 작가분에게 경탄하는 이유는 모 작가분이 당대 로마인들의 사고 방식을 (실제 역사적 분석과는 관계없이.) <BR>그대로 재현한다는 그 것입니다. <BR><BR>디오클레티아누스도 모 작가분과 똑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BR><BR>1. 제국이 잘나갈땐 자신감에 차서 별로 안 믿다가, 제국이 병드니까 신도가 많아졌다. <BR>건강할 땐 물리칠 수 있는 병균이 아플 땐 퍼지는 것하고 같다. <BR>--> 이 망할 병균을 퇴치해서 제국의 건강을 회복시키자. <BR><BR>2. 서부에 그리스인들이 적어서. <BR>--> 그리스인들부터 혼뜨검을 내주도록 하자. <BR><BR>그래서 대박해를 했는데..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의 생각대로 상당한 효과를 봤습니다만 (대부분이 배교하고 신앙을 버렸으며, <BR>주교들은 알아서 산이나 사막으로 피신. 지방관들 중엔 적당히 얼렁뚱땅 넘어가는 자도 있어서 생각보다 유혈 사태도 적었습니다.) <BR><BR>그것이 4두 체제의 안정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는 것이 그가 퇴위하고 2년도 안되서 실증됩니다. <BR><BR>마지막 남은 SPQR의 자존심, 마지막 군단의 궐기가 그것이었습니다. <!-- --><!-- end clix_content --></P>
댓글 분란 또는 분쟁 때문에 전체 댓글이 블라인드 처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