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일본 총독 사이토 및 일본 고관 암살 계획을 추진하다 사전모의가 발각되어 상해로 망명. 이후 임시정부에 참여하는 동시에 의열단에 입단 1922년 조선총독 암살계획을 세우고 압록강 철교를 건너며 경비경관 사살을 사살하고 신의주에서 세관검문소 보초를 때려눕히고 국내 잠입. 그러나 일제의 경계강화로 암살 미수 1923년 1월 12일 종로경찰서에 폭탄 투척. 이후 일본경찰이 추적해 오자 단신으로 두 손에 권총을 들고 총격전을 벌여 종로경찰서 유도사범이자 형사부장인 다무라 사살. 그 외 수의 일본경찰을 부상으로 입히고 남산을 넘어 도주. 그러나 도주한 곳이 또다시 발각되어 시내 4대 경찰서가 총동원되어 기마대와 무장경관 수백명이 포위. 이때도 쌍권총을 들고 총격전을 3시간 반동안 벌여 구리다 경부를 비롯한 10여명을 살상하였으나 결국 탄환마저 떨어지자 마지막 남은 탄환 한발을 가슴에 겨누고 벽에 기댄 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자결. 이후 유족들이 시신을 수습했는데 총 11발의 총상이 있었다고 함. 1발은 자결용이었으니 10발의 총알을 맞고도 싸웠던 것
한마디로 실존판 각시탈
이후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1992년부터 국가보훈처에서 선정/발표한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최초로 선정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