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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4 14:3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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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연설명] 과거 시험에서도 다양한 부정행위가 있었다.
대리시험인 차술차작(借述借作), 책을 몰래 숨겨가는 수종협책(隨從挾冊), 시험장에 드나드는 입문유린(入門蹂躪) 등등... 감시관들이 부정행위를 적발하러 돌아다녔는데 한번 걸리면 2번의 응시 기회를 박탈당했고 심하면 곤장을 맞거나 노동형에 처하거나 유배를 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시험에서 다양한 부정행위가 난무했는데 한명의 급제를 위해서 여러 명이 팀을 짜서 움직이는 경우도 많았다. 각자 예상답안이나 책을 들고가는 책행담(冊行擔), 작성된 답지를 필사하는 서수(書手), 몸싸움을 통해 좋은 자리를 선점하는 선접군(先接軍) 등이 하나의 접(接)으로 활동했다.
무엇보다 답지를 대신 써 주는 거벽(巨擘)이 가장 큰 문제였는데 유광억이라는 거벽은 부잣집 아들의 과거시험 대신 글을 써서 합격시킨 후 큰 돈을 벌고 스스로를 과적(科賊)이라고 할 만큼 유명세를 탔다. 한번은 어떤 과거를 봤는데 1, 2, 3등 모두가 유광억이 대리로 작성한 사실이 밝혀져 체포되었다.
그밖에 권력가들의 자제를 합격시키기 위해 문제를 유출시키거나 제출된 답안지를 바꿔버리거나 채점자만 알아볼 수 있는 암호를 답지에 적거나 심지어 감독관을 자신의 종으로 바꾸는 적도 있었다.
이후 노론과 소론의 당파싸움이 심해지면서 과거와 관련하여 상호 감시와 비판이 강력해졌고 이는 역설적으로 규율 강화, 처벌 강화로 이루어졌다. 숙종때 3대 부정입시사건인 기묘과옥, 임오과옥, 임진과옥의 3대 과옥을 거치면서 제도의 80%가 정비되었다고 한다. 숙종 이후 영정조 시기에 문화 부흥이 일어나게 된 요인 중 하나로 과거 제도의 정비가 한몫한 면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