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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4 11:5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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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세대 X와 8에 대한 평가는 각자 다 다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혁신이 없으니 다른 유저들 대부분 불만일거다’라는 의견에는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애플 제품군이 그 특유의 ‘애플 프라이스’ 정책 덕에 동급 사양의 타사 제품보다 꽤나 더 고가의 가격을 고수하는 점은 확실히 소비자 입장에서 불만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그 가격차를 부담해 가면서 애플 제품을 연이어 구매하는 유저들이 다들 무슨 대단한 혁신만을 쫓아 아이폰/패드, 맥 쓰는건 아니에요.
확실히 애플 제품이(특히나 모바일 기기쪽은 더더욱) 사용자에게 더 많은 제약을 거는 편이긴 하지만 그 안에서 나름 편리함도 제공하기에 ‘제약으로 인한 불편함+고가의 가격정책<하드웨어 제조사/운영체제 개발사가 알아서 사소한 부분들은 챙겨주는 편리함’ 이런 판단을 한 사람들이 애플 제품을 쓰는 겁니다. 반면 저 부등호를 반대방향으로 판단한 사람들은 애플제품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구요.
애플 제품들을 여럿 섞어 같이 사용해보면 기기간 연동에 대한 다양한 방법들을 애플측에서 막아놓고 한두가지 통로만 딱 자기네가 제공해주며 그것만 쓰게 강요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이걸 불만족스럽다 판단하는 유저는 애플을 선택하지 않겠죠. 그러나 이런 제약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따로 신경 쓸거 없이 편하다고 판단한 사람들이 애플을 씁니다.
애플 유저들이 아이폰/맥/아이패드/애플워치/에어팟 등등 애플 제품들을 여럿 섞어 쓰는 일이 많은 이유가 여기 있죠. 지금의 애플 유저들이 애플에게 요구하는 니즈는 어떤 대단한 혁신이나 참신한 신기술 같은 것도 물론 있긴 하겠지만 그보다는 지금 애플 생태계 안에서 누리고 있는 편리함과 안정감, 속편한 게으름을 좀더 잘 다듬고 수정해 확장시켜 주는 쪽을 더 원하고 요구하는 편입니다. 적당히 더 자유를 주면 좋을거 같긴 하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좀 더 잘 다듬어서 조금 더 편리하게, 한뼘 더 게으름 부릴 수 있게 만들어주길 원한다는 거죠.
그런 점에서 본다면 앞으로 애플이 신제품 발표시에 더이상 뭐 대단한 혁신 같은걸 보여주지는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다해도 애플 유저들이 애플을 쉽게 버리진 않을거에요. 정작 애플에게 중요한 것과 유저들이 크리티컬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애플 생태계 안에 길들여져 살아줄테니 나를 좀 더 게으르고 편하게 만들어보라는 이 니즈를 점진적으로 개선/향상시켜 나갈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일 겁니다. iOS11에서 그런 부분들이 많이 해소됐죠. 타 기기나 타 운영체제에서 손쉽게 되던걸 굳이 막아놨던 똥고집을 버리고, 많은 부분에서 유저 편의성을 개선시켜놨습니다. 오히려 이런 부분들이 애플 유저 대다수에겐 더 중요하게 와닿는단거죠.
페이스ID는 (굳이 이거 밀어주겠다고 터치ID 빼버린건 블투 이어폰 밀겠다고 이어폰 잭 뺀거마냥 과격한 횡포로 보이긴 하지만) 단순히 잠금해제 용도로 넣은게 아닐겁니다. 이상할 정도로 오버스펙의 프로세스를 때려박아놓고 그걸 안면 인식과 분석에 활용하는 것은 본인 인증을 위한 보안 문제도 있겠지만 향후 안면인식 정보를 활용하기 위한 준비작업+테스트로 보입니다. 용도불명의 장난감 수준으로 보이는 애니모지를 통해 사용자의 표정을 얼마나 상세하게 인식하고 분석하고 흉내낼 수 있는지를 테스트함과 동시에 유저들에게 천천히 인지시켜주겠다는 전략으로 보입니다. 아직은 그 성능이 어느 수준일지 미지수이고, 첫 세대인만큼 그닥 빼어난 수준은 아닐거 같긴 하지만 향후 몇세대의 개량을 거치며 만약 성공적인 기술발전과 안착을 이룰 수 있다면 이를 활용할 방법은 무궁무진하죠. 시선이나 얼굴 움직임, 표정에 따른 스마트폰 컨트롤 인터페이스를 시험해 볼 수도 있을테구요.
이미 존재하는 인공지능 비서 시리와 연계해 사용자 안면 인식 정보를 바탕으로 표정을 유추하고, 이 사용자가 어떤 기분일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정보를 수집하고 다듬어 분석할 수 있다면(이 모든 것을 해내는 것이 바로 인공지능이죠. 애플이 이번 A11 프로세스를 자랑하면서 내세운 게 표면적은 스펙도 스펙이지만 인공지능 엔진을 자랑해댄게 의미심장한 부분입니다) 스마트폰이 사용자의 현재 기분 정보까지 파악하는 시대가 곧 오게 될 수도 있습니다. 시리가 사용자의 기분에 따른 안부를 묻고, 이 사용자가 어떤 기분일때 어떤 노래나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지 축적된 정보를 바탕으로 애플 뮤직이 노래 추천을 슬쩍 해 줄 수도 있죠. 앱스토어에서 사용자 기분에 따른 앱 추천을 한다거나, 안면인식 정보를 바탕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합니다. 물론 이런 딥한 정보들을 서버로 보내 수집하는건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철저히 로컬 하드 단위에서 처리해야겠죠. 이번 세대의 X에서 별다른 특별한 기술은 보이지 않지만 미친듯한 프로세스 성능을 우겨 넣은 이유는 바로 이런 부분을 앞으로 추구해 나가겠다는 첫 걸음을 떼 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점에서 본다면 이번작이 다소 과격한 실험적인 제품이라 부정적 평가를 내릴수 있을지는 몰라도 딱히 혁신이 없었다고 보기는 힘들지 않나 생각도 듭니다. 혁신이란게 단 한세대만에 갑자기 완성된 신기술이 툭 떨어지는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기술을 다듬고 새로운 방법론을 적용해 조금씩 개선해 나가고 새로운 활용법을 연구해 보는 방향으로 몇세대에 걸쳐 이뤄질 수도 있는거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수명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OLED를 도입해 가격대비 액정 수명 문제의 불안을 안고 있다는 점과, 애플 코리아 특유의 개똥같은 사후처리 방식 때문에 X구매가 망설여지기는 하지만 다른 부분들은 그럭저럭 괜찮다고 봅니다. 가격이 어마무시하긴 합니다만 프로세스 성능을 봤을때 성능 면에서는 수명이 기존 세대 아이폰 보다는 좀 더 길게 노인학대 해가며 쓸 수 있을거 같아서요. 다만 액정이.... 1년 안에 번인 뜰거 같은데 왜 저걸 굳이 써서 수명을 줄였을까 싶은 불만이 크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