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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3 16:4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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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을 하는 분들이나 좋아하는 분들 입장에선 사람들이 유독 힙합 장르에만 그런 잣대를 들이댄다고 조금 억울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제 짧은 생각으론 거기엔 힙합 문화의 디스문화가 일조하지 않았나 싶네요.
락도 처음엔 반항의 음악이었지만 지금은 스펙트럼이 많이 넓어지며 정작 저항의 노래를 부르는 이들은 소수가 되고 주류 장르 중 하나가 됐죠. 지금은 락의 형식을 빌려 불러지는 소소한 개개인의 사랑노래 같은것도 대중들에게 아무런 반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시대입니다.
힙합도 언젠가는 이렇게 되지 않을까, 힙합이 점점 주류문화가 되면 힙합 또한 이런 길을 걷게 되는게 정상적인 일이리라 생각합니다만 아직까지 대중들이 힙합을 좀 경원시하며 바라보게 되는 이유는 힙합문화 속에 아직까지 많이 남아있는 날카로운 공격성 때문인것 같습니다.
음악으로 배틀을 벌이고 상대에 대한 공격도 허용되는 장르, 대중은 어떤 사람이 무대 위에서 다른 누군가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것을 지켜볼 때 마음 속에서 불편한 감정이 생겨납니다. 부정적인 행동은 부정적 심리반응을 불러오는게 당연한 이치니까요. 그럼 대중들은 그러한 비난, 공격, 날카롭고 받아들이기 까다로운 부정적 감정에 대해 스스로 판단을 들어가요. 이게 과연 ‘올바른 부정적 감정’인가, 좀 더 긍정적이고 생산적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필요악으로서의 부정적 감정인가를 판별하는거죠. 예를 들면 잘못된 사회 시스템에 대한 저항, 불우하고 결핍된 자신의 삶에 대한 한탄의 카타르시스, 불의에 대한 올바른 비판의 목소리, 아니면 처절한 삶을 살아낸 생존자들이 모여 처절하게 서로 자기 목소리를 높이며 혈투를 벌이는 현장, 뭐 이런 것들이라면 대중들도 그 부정적 감정을 기꺼이 감내해가며 수용합니다. 그러나 만약 스스로 납득하지 못할 부정적 감정이라면 반발하게 되는거죠.
대중들에게 힙합의 이미지는 공격적이고 날 선 음악 장르입니다. 래퍼들이 서로 무시무시한 말로 공격하는 ‘디스’가 힙합 문화의 주요 이미지 중 하나죠. 대중이 왜 아직 힙합을 평범한 음악장르 중 하나로 못 받아들이느냐 하는 문제는 힙합 장르 속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저 공격성이 대중들 뇌리 속에 힙합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일겁니다. 힙합의 시작점이었던 사회에 대한 저항, 자신의 결핍에 대한 울분과 분노, 이런 것에 대해서라면 대중도 그 공격성을 납득하고 받아들이겠지만 평범한 사랑노래를 하고 저항 정신 같은게 없는 상태에서 겉으로만 남을 디스하고 공격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대중들은 당연히 반발하게 될 겁니다.
디스도 문화의 일부분일 뿐이다, 그냥 겉으로 드러내는 일종의 쇼맨십이다, 이렇게 항변한다한들 대중들은 납득하지 못해요. 무대 위에서 온갖 화려한 쇼맨십을 보여주는건 뮤지션의 자유겠지만, 누가 누구를 무시무시한 독설로 ‘까는’ 행위는 대중이 단순 쑈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영역입니다. 부정적 행동은 타인의 부정적 감정을 야기하는 법이니까요.
결국 힙합장르가 지금처럼 대중의 높은 기대치를 극복하고 평범하고 흔한 여타 음악 장르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길 원한다면 그런 몇가지 특성들을 스스로 거세하는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락도 블루스도 수많은 저항, 울분, 한을 담아 생겨난 장르들도 결국 이런 과정을 거쳐 ‘주류 대중문화의 일부’로 편입된 것이니까요.
ps)뭐 저 개인적으론 힙합이 지금의 공격성을 고수하며 특색있는 마이너 장르로 남건, 공격성을 거세하고 말랑한 음악이 힙합씬 안에서 주류가 되어 주류 대중문화계로 편입되건 어느쪽이 옳고 그르다 뭐 그런 판단의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양쪽 중 어느 한 방향이 옳다, 다른 길은 틀리고 잘못된거다,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님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