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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7 18: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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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실명제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국제적으로 망신당하고 비난받아야 하는 근거란 것은 없습니다.
물론 저 개인적으로는 실명제에 반대합니다. 이것은 아나키적이고 낭만주의적인 제 개인 성향에 따른 것으로, 지극히 제 주관적인 의견일 뿐입니다. (논제에서 벗어나기 싫지만 간단하게 이유를 밝히자면, 실명제란건 존재하고 있는 한 반드시 악용될 것이라 생각하고, 웹이라는 매체를 규제하려 드는 것은 의미없는 행동이라 생각하기에 죽이되든 밥이되든 유저에게 맡겨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명제라는 제도에 대해서는 누가 옳고 그르고를 따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어느정도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은 진리고, 모두가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규제의 강도를 정하는 것에 있어서는 정답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을테니까요. 실명제에 찬성하고 반대하는 이유에 대한 토론은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죠.
문제는 이것입니다. 인터넷 논객이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것만으로 검찰에 고소당해 징역을 살게 되는 시점에서, 방송장악 음모를 꾸미며 마지막 남은 성역인 웹을 잡기 위해 온갖 말도 안되는 법안을 들고 나와 국회에 던져둔 시점에서 그들이 들고 나온 '실명제'는 그 원래 취지와는 별개로, 그것을 들고 나온 이들의 시커먼 속마음이 훤히 보이는 행동이었다는 것이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실명제를 들고 나왔다고 무조건 비난받아야 할 근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해외 유저들은 겨우 조그만한 사이트의 별로 쓸만하지도 않은 서비스를 하나 이용하려고 무조건적으로 회원가입을 강요하며 그것도 주민등록번호라는 '국민 식별 시리얼 넘버'를 요구하는 한국의 제도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런것을 요구하는 국가가 거의 없기 때문이죠. 의아해 하는 해외 유저들에게 우리는, 무시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굳이 비난 받기도 싫다면 설명해줘야 할 필요는 있을겁니다. 우리는 이러저러해서 이렇게 시행하고, 이러저러해서 필요하다고 생각을 한다. 그럼 그들도 비난이 아닌, "아 그렇구나. 하지만 우리 생각엔 그건 과도한 규제인것 같다"의 자세로 나오겠죠. 그런데 한국 정부는 어땠습니까? 애당초 실명제의 문제를 '서로 다름'의 문제가 아닌 '옳고 그름'의 문제로 접근한 쪽은 한국 정부였습니다. 그들은 해외 사이트들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조차도 모를겁니다. 관심도 없습니다. 아니 애당초 그들은 실명제의 장점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습니다. 모릅니다.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에게 실명제란, "웹상에서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시행하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는 제도 중 하나"가 아니라 애당초 "웹상의 아고리언들을 탄압하기 위한 적절한 도구"일 뿐이었으니까요. 그 상황에서 태연하게 실명제를 구글에게 들이댔다는 점이 바로 비난을 받아야 하는 지점이죠. 애당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이해하지 못한채 칼을 뽑다가 망신만 당한 꼴이니까요.
저 또한 구글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구글을 무슨 대단한 인권단체로 보는 것도, 봉사단체로 보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 철학 지키면서 교묘하게 돈 참 잘 번다는 기술에 대한 감탄일 뿐이지, 그들이 절대 진리도 아니고 숭배해야할 신은 더더욱 아니죠. 하지만 이 다국적 거대 공룡기업이자 무시무시한 수완의 장사꾼인 이들에게 한국 정부가 한 행동은 어땠습니까? 일말의 준비는 커녕 해당 분야에 대한 이해조차 없이 무식한 몽둥이를 휘두르다 결과적으로 세계적인 망신을 당한 것일 뿐이죠.
죄송하지만 제가 한국 정부를 욕하는건 "내가 좋아하는 구글까면 사살" 이따위 이유가 아닙니다. 나는 한국 사람이고, 구글은 네트웍 연결된 피씨 앞에 앉았을때 잠시 사용하는 것 외엔 나랑 하등의 연관도 없는 먼나라 기업입니다. 그런 제가 한국 정부를 비난하는 이유는 "구글에게 잘못해서"가 아니라 "정부 스스로 실책해서 나라망신을 시켜서"이기 때문입니다.
말씀하신 것 처럼 구글은 대단한 장사꾼입니다. 아마 이번 건으로 세계적으로 자신의 명성을 날린 것으로 득의양양해 있을겁니다. 근데 그들의 콧대를 그렇게 세워준건 한국 정부의 자살골이었다는 거죠. 일개 기업이라고는 하나 대단한 전략가들인 그들에게 한 국가의 정부가 전략도 전술도 개념도 이해도 아무것도 없이 막 들이대다 망신만 당했습니다. 애당초 말도 안되는 걸 요구한 건 둘째치고, 말도 안되는 거라도 그게 말이 되어 보이게 포장하고 꾸미고 납득시키고 명분을 얻어내야하는 사람들이 바로 '정치인'들입니다만, 이들이 한게 뭐가 있습니까? 이들은 책략에서조차 '일개 기업'에게 완패하고 결과적으로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습니다. 세상사람들은 한국이 실명제를 사용한다는 이유보다 일개 기업에게 패배해 망신을 당한 것을 더 조롱하고 비난하겠지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습니다. 애당초 이건 실명제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이 상대하는 이들이 누구인지, 아니 자기들이 싸우고 있는 전장이 어디인지, 심지어 자기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말과 행동이 무엇이고 어떤행동인지 조차 알지 못한채로 덤벼들다 일국의 정부가 일개 기업에게 대패하고 돌아온 상황에서 이미 실명제가 무슨 문제일까요?
한국이 실명제를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국제적 망신과 비난을 받을 근거는 없습니다..만, 이미 그 망신과 비난과 조소는 실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구글의 뛰어난 전략과, 한국 정부의 바보같은 대응으로 인해 일어난 것입니다. 여기에서 논점은, 한국이 실명제 때문에 욕먹고 있다는 것이 아니란 거죠. 1차적으로는 실명제를 시행하려드는 그 시커먼 의도때문이고(이미 미네르바 구속으로 인터넷 탄압국가로 낙인 찍힌 상황에서 실명제를 들먹이는데 누구도 곱게 봐주지 않는게 당연하죠) 2차적으로는 스스로도 웹에 대한 개념도 없으면서 웹 최강 기업에 어설프게 들이대다 패한 대가로 개망신을 당한 것 뿐입니다.
아, 다시 생각해보니 이렇게도 말이 되겠군요.
인터넷 실명제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국제적 망신과 조롱을 당할 이유는 되지 않지만
(미네르바 체포와 언론 탄합 의혹을 받고있는)"우리나라가" 인터넷 실명제를 사용한다는 이유는 국제적 망신과 조롱을 당할 만한 이유가 충분히 될거 같아요. 현 시대, 현 정권 하에서는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