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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30 01:4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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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로메로가 재정의한 '좀비'라는 존재는 초창기 영화인 좀비 3부작부터 정치적 색채를 강하게 띄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정통 좀비영화의 주인공은 사회적 약자들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흑인과 여성이 대표적인 경우죠. 그리고 이건 좀비영화의 전통처럼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게 됩니다. 아직까지도 정치적 색을 많이 덜어낸 오랑영화로서의 좀비영화들에서도 여성이 주인공인 경우가 상당히 많죠.
소위 시체 3부작으로 불리우는 되살아난 시체들의 밤, 시체들의 새벽, 시체들의 낮으로 불리우는 좀비 3연작이 그것이죠.
부두교의 좀비가 아니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시체가 되살아난 좀비라는 개념을 최초로 만들어낸 좀비영화의 시초 "되살아난 시체들의 밤"은 매카시즘 광풍의 시절에 나타난 걸작 저예산 호러영화였습니다. 엄청난 저예산으로 초보자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이 영화는 자동차극장 등을 통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B급 호러영화들의 흥행가능성을 헐리웃에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죠. 주인공은 여성과 흑인이었고 이들이 맞이하는 충격적 결말 역시 좀비영화의 전통인 절망감과 비극적 엔딩의 시초가 되었죠.
최근 때깔좋게 리메이크되어 "좀비"라는 낯선 비주류 소재를 단숨에 메이저의 반열에 올려놓기도 한(리메이크작의 국내 개봉명이 바로 '새벽의 저주'입니다) "시체들의 새벽"은 자본주의에 대한 매서운 비판을 담고 있는 영화였습니다. 새벽의 저주에서도 언뜻 언급된 명대사인 "저들이 왜 이곳(쇼핑몰)로 몰려드는 것일까? 아마도 살아있을적의 기억에 따른 본능이겠지"란 대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아둔한 소비자층들을 완벽하게 비꼬는 대사였죠. 죽어서까지 본능적으로 찾아가는, 살아생전 가장 기억에 남은 장소가 기껏 쇼핑몰이라니요...아니, 무의미하게 정신없이 소비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습이 쇼핑몰 안을 이리저리 배회하는 시체들의 모습과 다를게 무어냐는 날선 비판이죠.(여기서부터 1편에서의 동업자와 갈라서게 되며 '되살아난 시체'라는 제목에 대한 사용권을 잃어버린 로메로 감독은 2편부터 자신의 좀비영화에 Living Dead대신 the Dead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리빙데드라는 제목으로는 정치색을 완전히 제한 오락영화인 Return of the Living Dead라는 별개의 시리즈로 갈라져 나가게 되죠. 아시는 분은 아실 국내 출시명 "바탈리언"시리즈가 그것입니다)
시리즈 3편인 "시체들의 낮"은 파시즘과 과학문명 등에 대한 애매한 비판을 하고 있지만 정치색은 많이 묽어지게 됩니다. 다만 시체3부작 중 가장 특수효과가 뛰어나 지금봐도 충분히 역겨울 정도의 화면을 보여주죠. 여기서 로메로는 좀비들보다 못한 인간 군상을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추며 인간vs좀비의 균형에서 서서히 좀비의 손을 들어주는 쪽으로 돌아섭니다.
여기서 잠시, 좀비영화의 히트로 인해 이탈리아에서 무분별하게 따라 찍어낸 이탈리안 좀비영화 이야기는 빼도록 하겠습니다.(이탈리아 영화계의 특징입니다. 마카로니 웨스턴처럼 해외에서 한창 인기를 끌던 좀비 장르를 따라 무차별로 찍어냈죠. 대부분은 쓰레기입니다만 간간히 오락영화로서는 괜찮은 것도 몇 있습니다)
사실 좀비영화의 정치색은 좀비의 아버지인 조지 로메로 외에는 별 신경쓰지 않았고, 이후 나오는 좀비 영화는 비록 여전히 비주류 B급 장르이긴 했으나 오락성 위주로 치우쳐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로메로의 시체 3부작이 호러장르의 위신을 높이는데(단순 쌈마이 오락영화가 아닌 예술성의 가능성을 보여줬으니까요) 지대한 공헌을 했었고 여전히 좀비영화의 시초이자 대부로 남아있었기에 초기 좀비영화의 전통은 오래도록 이어지게 됩니다.
리에니메이터(국내명 좀비오), 데드얼라이브(피터잭슨이 반지의 제왕과 킹콩 이전에는 이 영화가 대표작이었습니다. 영화사상 피가 가장 많이 나오고, 절단된 신체부위를 가지고 벌어지는 몸개그로 스플레터스틱-스플레터+슬랩스틱-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낸 개그좀비물이었죠) 등이 컬트적 인기를 끌기는 했지만 좀비영화는 꾸준히 B급, 비주류 장르로써 맥을 이어오고 있었습니다만, 영국산 변종 좀비영화인 "28일후"가 개봉하며 서서히 그 영역을 넓혀가기 시작합니다.
시체도 아니고, 뛰어다니거나 심지어 막 휙휙 날아다니는 새로운 좀비를 가지고 감각적 화면과 정치적 주제의식을 표현해낸 이 문제작은 좀비라는 비주류 장르의 주류로서의 가능성을 새롭게 인식시켜주는데 크게 한몫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드디어 "새벽의 저주"가 나오게 되죠. 여타 호러 장르들이 점점 '고문영화'의 성향을 띄며 일반관객들의 비위수준을 크게 향상시켜준데 힘입어, 사지절단과 식인카니발의 향연인 좀비영화가 드디어 헐리웃 주류영화계에 화려하게 데뷔하게 됩니다. 원작의 정치색을 거세시킨 대신 좀비를 달리게 만들어 스피디한 화면으로 호러로서의 박진감을 부여해주게 되죠. 물론 초기 좀비영화의 맛인, 막다른 골목에서 서서히 죄여오며 절망감을 안겨주는 느낌은 많이 덜해졌지만 좀비영화 특유의 절망감, 종말에의 공포, 인체손괴와 질병에 대한 공포를 현대적 감각으로 매우 잘 버무려 내며 좀비장르를 주류영화계의 뜨거운 감자로 만들어 줬더랬죠.
이렇게 넓혀진 지평을 통해 좀비영화는 다양하게 발전해 나갑니다. 세계 각국의 영화계에서 좀비라는 소재를 사용해 (혹은 그 이미지를 차용해) 새로운 영화들이 만들어졌으며 좀비장르 자체도 여러갈래로 세분화 되어 발전해갑니다. 개그 좀비물을 영국식 유머로 섞어낸 "숀 오브 더 데드(국내명 새벽의 황당한 저주)"라거나 스페인식 좀비영화로 스토리는 평이하나 '진짜 무서운 연출'을 보여준 "REC", 비록 감독은 바뀌었지만 전편만한 걸작으로 탄생된 "28주 후" 등 메이저급 영화들이 쏟아지고 B급 호러는 더 할 나위없이 풍성하게 만들어지게 됩니다. 좀비의 아버지 조지 로메로도 새로운 시체 시리즈를 이어가게 되는데 오락성이나 특수효과는 많이 떨어지지만 고전적 연출과 강한 정치적 풍자를 담은 "랜드 오브 데드"로 '걷는 좀비'의 진화를 이어가죠. 거기에 드라마까지 영역을 넓혀 '데드셋'이라는 5부작 드라마로도 만들어집니다..
좀비영화계를 거칠게 분류해 보아도 조지로메로의 '전통적 좀비'와 피터잭슨의 막강한 컬트적 인기를 통해 자리잡은 '피칠갑 개그좀비'(이런류 저예산 영화는 그래서 뉴질랜드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경우가 많죠...피터잭슨과 그의 데드얼라이브가 뉴질랜드 산이기에..), 한때 반짝하고 사라졌지만 루시오 폴치 등 명 호러감독들의 문제작이 남아있는 '이탈리안 좀비', 현대적 감성과 오락성으로 무장한 '달리는 좀비', 장르 특유의 정치성과 저예산의 장점을 살린 '제3세계 좀비'등 풍부한 스펙트럼을 보여줄 정도로 좀비영화는 큰 장르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애당초 좀비란 소재 자체가 워낙에 명확한 정의가 내려진 존재가 아니다보니 다양한 변종을 거치며 장르의 '특성'이라 불리울 만한게 별로 없긴 하지만, 좀비영화장르의 그나마 공통적인 특징을 꼽으라고 한다면 '사회적 약자의 역할이 매우 크다'는 것입니다.
아직까지도 많은 좀비영화에서는 여성, 흑인, 히스페닉, 히피 등이 주인공이거나 큰 역할을 차지합니다. 심지어는 역차별 받으며 구시대의 유물이 된 퇴역군인, 마초 폭주족 등도 중요 역할을 맡고, 반대로 화이트 컬러 도시민들은 무능하고 공동체에 혼란을 가져오는 존재로 비춰지죠.
또다른 특징을 꼽으라면 이러한 불안정한 인간군상을 섬이나, 건물, 혹은 좀비에게 이미 지배당하는 세상 속에 가둬두고 서로 마찰을 겪고 붕괴해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실 좀비영화의 주요 스토리가 이러한 갈등으로 이뤄져있기에 어찌보면 당연한 거죠.
좀비영화의 특징을 잘 정리해서 알고 싶다면 밸브사의 게임 "레프트 4 데드"를 추천합니다. 분명 좀비영화 매니아들이 만들었음이 분명한 이 게임에서 주인공 4명은 여성, 폭주족, 퇴역군인, 흑인 인텔리의 4명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외모만 봐도 구구절절한 스토리가 묻어나올법한 사회적 약자들이죠. 게임의 진행 역시 이 4명이 힘을 합쳐 좀비에게 지배당한 도시에서 탈출해나가며 누군가의 실수나 배신이나 두려움으로 붕괴되느냐 버티느냐의 싸움으로 이뤄져있습니다. 여러 좀비영화들의 특징을 잘 뽑아내 섞은 결과물이죠.
이상 어설픈 좀비영화 매니아의 야식시간이었습니다 우걱우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