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526일을 맞이하는 9월 23일 오늘은 단원고등학교 2학년 4반 슬라바 학생과 2학년 7반 나강민 학생 생일입니다. 반 순서대로 소개합니다.
2학년 4반 슬라바 학생입니다.
슬라바는 러시아 출신입니다. 만으로 아홉 살 되던 2006년에 한국에 왔으니 길지 않았던 생의 절반은 태어난 러시아에서, 절반은 한국에서 보낸 셈입니다. 원래 러시아 이름은 뱌체슬라프 니콜라예비치 세르코프(Вячеслав Николаевич Серков)입니다. "뱌체슬라프"는 러시아어로 높은 사람, 귀한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슬라바 어머님은 작년에 동계 올림픽이 개최되었던 소치 부근의 조그만 시골 마을 출신이시라고 합니다. 부산에 여행 왔다가 한국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져서 아들 슬라바를 데리고 한국으로 시집을 오셨습니다.
슬라바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한국말을 잘 못 했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공부를 잘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운동을 아주 잘 했고, 특히 수영을 잘 했습니다. 국가대표 선수가 되려면 한국 국적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한국에 귀화했고, 그래서 9월에 주민등록증이 나오는 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슬라바는 "잘 생기고 엉뚱하고 재미있는 아이"라서 인기가 아주 좋았습니다. 집에서 슬라바는 열 두 살 어린 띠동갑 동생에게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형이었습니다. 언제나 꼬마 동생을 업고 다녔고, 부모님이 집에 안 계셔도 슬라바가 동생을 밥 먹이고 목욕시키고 꼭 껴안아 재웠습니다. 슬라바는 사실 부모님 안 계시는 집에서 동생이랑 둘이서만 노는 걸 좋아했습니다. 주말이면 부모님한테 "오늘은 어디 안 가?" 하고 물었다고 합니다. 가족끼리 찍은 모든 사진에서 슬라바는 조그만 동생을 등에 업거나 품에 안고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인 슬라바 동생이 제일 먼저 배운 한글은 "단원고" "유가족" 그리고 "슬라바"입니다.
슬라바 어머니는 4월 15일 저녁에 슬라바와 잠깐 통화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람 소리가 너무 심해서 제대로 대화를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참사 소식을 들었을 때 부모님은 슬라바가 워낙 수영을 잘 하니까 살아 올 거라는 희망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슬라바는 참사 5일째인 4월 21일에 "77번"이라는 번호표를 달고 부모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2학년 7반 나강민 학생입니다.
강민이도 슬라바처럼 체격이 좋고 운동을 잘 했습니다. 그러나 집에서 강민이는 아버지한테 애교도 잘 부리고 장난도 잘 치는, "덩치에 맞지 않게 귀여운 놈"이었다고 합니다. 아버지께 강민이는 소중하고 든든한 아들이자 인생 최고의 친구였습니다.
강민이는 운동을 잘 하고 좋아하는데다 성격도 좋아서 친구가 많았습니다. 친구들하고는 주로 학교 끝난 뒤에 축구나 야구를 하면서 놀았습니다. 강민이 아버지는 일 끝나고 퇴근하시다가 강민이가 친구들과 그렇게 놀고 있는 걸 보면 가서 같이 축구하고 야구하면서 놀아 주셨다고 합니다.
참사가 일어났을 때 강민이는 거의 한 달이 지나도록 물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잠수사님께 이야기를 들어보니, 물 속에서 강민이는 같은 반 친구인 2학년 7반 이근형 학생과 꼭 껴안고 있었다고 합니다. 잠수사님이 "엄마 아빠한테 가야지" 하고 달래자 강민이가 먼저 물 밖으로 나왔고, 몇 시간 뒤에 근형이도 곧 따라서 나왔습니다. 그렇게 강민이는 5월 8일 어버이날에 부모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강민이가 떠난 뒤에 아버지는 강민이가 너무 보고 싶어서 일하다 말고 화장실에 숨어서 우시기도 하고, 쉬는 시간이나 점심 때는 계속 강민이 사진을 보신다고 합니다.
안산 합동분향소 전광판 #1111 로 문자 보내 슬라바와 강민이 생일을 축하해 주세요. 가족에게 소중한 형, 든든한 아들이고 앞날의 희망이었던 우리 아이들, 아깝게 뺏겨 버린 삶을 잊지 말아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