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style="font-family:dotum;font-size:13.3333px;">나는 77번 일개미다.</div> <div style="font-family:dotum;font-size:13.3333px;">아니 정확히는 78번이었던가? 언제부터인가 나조차도 내 이름을 잊어버렸다.</div> <div style="font-family:dotum;font-size:13.3333px;">우리 여왕님은 99번 개미까지는 이름을 모두 붙여주셨지만 숫자가 3자리로 넘어가자 </div> <div style="font-family:dotum;font-size:13.3333px;">그다음부터는 외우기 귀찮아졌는지 모두 뭉뚱그려 개미라 부르기 시작했다. </div> <div style="font-family:dotum;font-size:13.3333px;"> <br></div> <div style="font-family:dotum;font-size:13.3333px;">그래서 우리는 누가</div> <div style="font-family:dotum;font-size:13.3333px;"> <br></div> <div style="font-family:dotum;font-size:13.3333px;">"어이 개미"</div> <div style="font-family:dotum;font-size:13.3333px;"> <br></div> <div style="font-family:dotum;font-size:13.3333px;">하고 부르면</div> <div style="font-family:dotum;font-size:13.3333px;"> <br></div> <div style="font-family:dotum;font-size:13.3333px;">"네?" "저요?" "저 말인가요?"</div> <div style="font-family:dotum;font-size:13.3333px;"> <br></div> <div style="font-family:dotum;font-size:13.3333px;">하며 전부 뒤돌아보는 해프닝을 항상 벌이곤 한다. </div> <div style="font-family:dotum;font-size:13.3333px;">우리는 모두 그냥 개미일 뿐이다.</div> <div style="font-family:dotum;font-size:13.3333px;"> <br></div> <div style="font-family:dotum;font-size:13.3333px;"> <div>여왕님이 처음 이 단칸방에 터를 잡았을 때는 먹을게 하나도 없어 허리띠를 졸라맸다고 한다.</div> <div>그때 어찌나 허리띠를 졸라맸는지 개미허리가 됐다는 농담을 여왕님은 자주 던지시곤 했다.</div> <div> <br></div> <div>더 이상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여왕님이 다른 곳으로 떠나려고 마음먹은 날 </div> <div>신기하게도 방구석, 우리구멍 가까운 곳에 수북이 쌓여있는 설탕산이 생겼다고 한다.</div> <div>그래서 우리 여왕님은 설탕을 먹이 삼아 이 단칸방에 살기 시작했다.</div> <div> <br></div> <div>이 단칸방엔 인간 한 명이 우리랑 공존하고 있다. </div> <div>그 인간은 늘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거나 가끔 우리가 일하는 걸 관찰하는 게 하루의 전부였고 </div> <div>우리랑 공존하는 게 마음에 드는지 가끔 설탕산이 줄어들면 채워주곤 했다. </div> <div>우리처럼이나 그 인간의 하루 역시 단조로운 편이었다.</div> </div> <div style="font-family:dotum;font-size:13.3333px;"> <br></div> <div style="font-family:dotum;font-size:13.3333px;"> <div>특이한 점이라면 그 인간은 매일 저녁때 나가 오렌지 하나를 사들고 와서 먹는다. </div> <div>처음엔 설탕처럼 인간이 우리에게 오렌지를 나눠주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했었지만</div> <div>인간은 절대 우리에게 오렌지 한 알갱이조차 주지 않는다. </div> <div>몇몇 무모한 우리들이 오렌지를 가져오려고 시도해봤지만 인간에게 전부 끔찍하게 살해당해버렸다.</div> <div> <br></div> <div>문제는 여왕님의 귀에 인간이 오렌지를 들고 온다라는 소문이 들어가게 된 뒤부터였다.</div> <div>여왕님은 이제 설탕은 물렸다며 오렌지를 가지고 오라 독촉했고 </div> <div>그렇기에 우리들은 매일 목숨을 걸고 도전했지만 </div> <div>결과는 지금까지 오렌지 한 알갱이조차 얻지 못하고 전부 인간에게 죽고 말았다.</div> </div> <div style="font-family:dotum;font-size:13.3333px;"> <br></div> <div style="font-family:dotum;font-size:13.3333px;"> <div>갑자기 머리 위로 거대한 산 그림자 하나가 드리웠다. </div> <div>어느새 다가온 인간이 우리가 일하는 것을 내려다보고 있었다.</div> <div>나는 잠시 죽음을 체험한 것처럼 가슴이 서늘했다. </div> <div> <span style="font-size:10pt;">저 인간이 발로 살짝 누르기만 해도 우리들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span> </div> <div>하지만 인간은 나와 동료 우리들이 설탕 나르는 작업을 멍하니 구경할 뿐이었다. </div> <div> <br></div> <div>그러다 인간의 손가락이 움직였다.</div> <div>혹시 찍어누를까 봐 나는 움찔했다.</div> <div> <br></div> <div>"하나 둘 셋..."</div> </div> <div style="font-family:dotum;font-size:13.3333px;"> <span style="font-size:10pt;"><br></span> </div> <div style="font-family:dotum;font-size:13.3333px;"> <div>하지만 허무하게도 인간은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우리의 수를 셀 뿐이었다.</div> <div>다행히 인간이 구경만 할 모양이라 생각한 나는</div> <div>잠시 놀라서 멈췄던 발걸음을 황급히 놀리기 시작했다. </div> <div>나 때문에 대열이 망가진다면 우리들은 뒤죽박죽이 되고 말 것이다.</div> <div> <br></div> <div> <div>그렇게 우리는 인간과 기묘한 동거를 하며 살고 있다. </div> <div>그리고 날이 갈수록 오렌지에 대한 여왕님의 히스테리는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div> <div> <br></div> <div>인간은 저녁때면 나가서 약 올리듯이 꼭 오렌지를 하나씩 사들고 왔고</div> <div>절대로 우리에게 오렌지 한 알갱이조차 주는 법이 없었다.</div> <div> <br></div> <div>그렇다고 인간이 우리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그런 것도 없었다.</div> <div>인간은 성실하게 설탕을 제공했고 오렌지를 가지러 도전하는 우리를 제외하면 </div> <div>그 외엔 죽이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div> <div> <br></div> <div>마치 오렌지만 건들지 말라 경고하는 것처럼...</div> <div> <br></div> </div> <div>"작업 보고 설탕 작업조는 어떻게 되었나"</div> <div> <br></div> <div>감독관이 말하자 총괄자가 앞에 나가 보고했다.</div> <div> <br></div> <div>"설탕 작업조는 오늘 치 작업을 모두 완료하고 휴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div> <div> <br></div> <div>"음 그래 수고했다."</div> </div> <div style="font-family:dotum;font-size:13.3333px;"> <br></div> <div style="font-family:dotum;font-size:13.3333px;"> <div>작업관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div> <div>거기엔 한쪽 다리를 두 개나 잃어버린 채 자꾸 옆으로 쓰러지면서 </div> <div>꽁무니를 질질 끌고 오는 우리 한 마리가 있었다.</div> <div> <br></div> <div>"오렌지 작업조는..."</div> <div> <br></div> <div>감독관의 말이 끊겼다. </div> <div>그는 이미 걸어오는 우리의 상태를 보며 사태를 파악했을 게 틀림없다. </div> <div>더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잠시 망설이던 감독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길게 한숨을 쉬며 물었다.</div> <div> <br></div> <div>"어떻게 됐나"</div> <div> <br></div> <div>그 우리는 숨을 헐떡이며 힘겹게 한 글자씩 내뱉었다.</div> <div> <br></div> <div>"저 전멸했습니다. 인간이 우리를 전부 죽여버린 뒤 태워..."</div> <div> <br></div> <div>그 우리는 그대로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div> <div>감독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div> </div> <div style="font-family:dotum;font-size:13.3333px;"> <br></div> <div style="font-family:dotum;font-size:13.3333px;"> <div>"오늘도 여왕님이 난리를 치게 생겼군"</div> <div> <br></div> <div>골치가 아픈지 더듬이를 흔들어 대던 감독관은 곧 가버렸고 </div> <div>나는 내 좁은 방으로 들어왔다.</div> <div> <br></div> <div>나는 방 안에서 인간에 대해 떠올렸다.</div> <div> <br></div> <div> <div>그 인간에게 우리는 뭘까? </div> <div>왜 우리에게 설탕을 주는 걸까?</div> <div>왜 설탕은 되면서 오렌지는 안되는 걸까?</div> <div>대체 그 인간에게 오렌지란 무슨 존재일까?</div> <div> <br></div> <div>많은 의문이 내 머릿속을 스쳤지만 해결되지 못할 걸 알고 있었다.</div> <div>우리는 인간이랑 대화할 방법이 없었고 </div> <div>인간 역시 우리랑 대화하고 싶어 할 거 같지 않았다.</div> <div> <br></div> <div>나는 눈을 감았다. </div> <div>내일도 제발 설탕 작업조에 들어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div> </div> <div> <br></div> <div> <br></div> <div>다음날 </div> <div> <span style="font-size:10pt;">감독관은 잠이 덜 깨서 더듬이를 비비고 있는 우리들을 걷어차며 작업조를 나누기 시작했다.</span> </div> <div>나는 최대한 또렷한 표정을 지으며 감독관의 입을 바라보았다.</div> <div> <br></div> <div>'제발 제발 제발 오늘도 설탕조가 되길'</div> <div> <br></div> <div>감독관이 날 가리켰을 때 나는 군침을 꿀꺽 삼켰다.</div>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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