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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차단 상태
    기뮤식의노예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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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pony_91402
    작성자 : 기뮤식의노예
    추천 : 4
    조회수 : 615
    IP : 1.249.***.249
    댓글 : 1개
    등록시간 : 2016/08/15 16:10:50
    http://todayhumor.com/?pony_91402 모바일
    졸렬한 포니 번역)선셋 리셋 - 제 13장 : 불쾌한 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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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장 제 1장 제 2장 제 3장 제 4장 제 5장 제 6장 제 7장 P1 제 7장 P2 제 8장 제 9장 제 10장 제 11장 제 12장 p1 제 12장 p2





    제 13장 : 불쾌한 자각




    정신을 차려보니 선셋은 별로 특이한 구석이 없는 교실의 유일하게 놓여 있는 책상 자리에 앉아있었다. 매우 짜증스럽게도 책상과 의자가 연결되어있었다. 이러면 필기를 편하게 할 수가 없는데... 이렇게 목제 책상 위에 손을 올려두고 있을 때 선생님의 발굽소리가 교실 바깥에서 들려왔다.


    교실로 들어온 선생님은 분홍 알리콘 포니였다. 선생님은 군청색 정장 상의와 큐티마크도 안 가려질 정도의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콧등에 걸친 안경과 매우 잘 어울렸다.


    선생님은 교단 위로 올라온 뒤 완벽하게 숙련된 염동력으로 교편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여러 포니들의 모습과 커다란 하트가 분필로 그려진 칠판 정중앙에 교편을 딱딱 두드렸다.


    "여러분, 오늘은 둘이 어떻게 사랑에 빠지는가에 대한 수업을 하겠어요. 나중에 시험 볼 테니까, 수업 내용 필기를 해 두는 게 좋겠지요?"


    선셋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기 발치에 있는 가방 안으로 손을 뻗었다. 자신의 큐티마크가 그려진 책과 펜 하나를 책상 위에 꺼내놓고 필기할 준비를 마쳤다.


    "자. 사랑에 빠지는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이 수많은 이유들을 분석, 분류해보면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구별할 수 있죠. 두 가지 다 처음엔 순간 타오른 열정으로부터 시작되며, 잘만 유지하면 지속적인 로맨스적 관계라는 불길로 번져 오르게 됩니다."


    캐이댄스는 교편으로 첫 번째 그림을 지목하며 수업을 이어갔다. 힘이 매우 세 보이는 유니콘 하나가 등에는 구출한 공주를 업은 뒤 눈에 X자 표시가 그려진 용 한 마리를 위풍당당하게 짓밟고 서 있는 그림이었다.


    "첫 번째 유형은 상대방의 특정한 순간을 보고 반하는 경우입니다. 가령 예를 들어 A라는 포니가 있었어요. 근데 그 A가 그 순간에 딱 맞게 매우 인상적이고, 용감하고, 영웅적인 행동을 해 다른 B라는 포니의 심장을 격렬하게 두근거리게 했죠. 바로 이 때 열정이 타오릅니다. 아까 설명한 '사랑에 빠지는' 과정으로 넘어가는 거죠. 이 기간 동안, 대부분의 포니는 열정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그 상대의 모든 것을 다 알아내려고 합니다. 데이트를 하며 이 포니가 과연 내 마생을 걸만한 가치가 있을까를 계속 알아보며 지속적인 로맨스적 관계로 넘어갈 일종의 땔감을 찾는 셈이죠. 하지만, 그 땔감.. 즉, B의 입장에서 계속 사귀어야 할 계기가 부족했거나, 혹은 A가 겉멋만 든 머저리라고 판명이 났을 경우엔 열정은 빠르게 식고 말아요."


    한 그림에 대한 설명을 마친 캐이댄스는 또 다른 그림을 교편으로 지목했다. 두 포니가 벤치 위에 앉아 서로의 앞발목을 껴안고 있는 그림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이건 서로 알고 지내던 두 필의 포니가 서서히 서로를 알아가다가 어느 순간 서로가 잘 어울린다는 걸 깨닫고 열정이 불이 붙는 경우입니다. 이 유형은 대부분 사춘기 대에 들어서 소꿉친구에서 연마관계로 발전한 커플들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유형이지요.


    선셋은 손을 들었다. "질문좀요, 캐이댄스 선생님?"


    "선생이 아니라 박사라고 불러주세요. 캐이댄스 박사."


    고개를 끄덕이며 선셋은 질문을 마저 하기 시작했다.


    "아 네.. 그.. 있잖아요. 거리에서 처음 만난 상대를 보고... 첫눈에 반할 수도 있는 건가요?" 


    캐이댄스 박사는 교편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지긋이 선셋을 쏘아보며 입을 열었다.


    "사랑학 박사들이 그런 유형을 보고 입을 모아 하는 소리가 있죠. 개소리라고!"


    한 번 성난 일갈을 지른 뒤 캐이댄스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목소리는 정중했지만 거기엔 일말의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선셋 학생은 샤이닝 아머를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이퀘스트리아로 들어와서 눈에 차는 수말이 걔밖에 없어서 그랬던 거뿐이죠. 선셋 학생처럼 생판 알지도 못하는 상대의 생식기를 자기의 소중이로 쑤셔 넣는 것 밖에 모르는 인간은 보통 '걸레'라고 정의한답니다."


    선셋은 필기를 시작했다. "나.. 같은... 인간을... 보통.. 걸레라고.. 정의한다.."


    필기를 마치고 다시 칠판을 보자 샤이닝 아머가 캐이댄스 옆에 서 있었다.


    "역시 너보다는 캐이댄스가 훨씬 낫더라. 더 착하지, 더 열정적이지, 배려심도 많고, 사랑스럽고, 너보다 10배는 더 예쁜걸. 그리고 있지, 걔는 너처럼 도둑년도 아냐."


    "맞아. 너 따위에게 우리 오빤 너무 과분해!"


    세 번째 목소리는 교실 뒤에서 들려왔다. 선셋은 부리나케 뒤로 돌아 그 포니를 쳐다보았다. 선셋의 등 바로 뒤에 트와일라잇 스파클 공주가 선셋이 한때 훔쳤던 왕관을 머리에 쓰고 갖은 인상을 다 쓰며 선셋을 노려보고 있었다.


    "트- 트와일라잇..."


    "변명할 생각 하지 마!"


    눈앞에 앉아있는 인간에게 앞발굽 짓을 하며 트와일라잇은 크게 소리쳤다.


    "지금 네가 어떤지나 다시 한 번 돌아보지 그래?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란 말이야!"


    교실의 문이 갑자기 덜컥 열리더니 또 다른 방이 나타났다. 방 안의 가구는 단 하나, 크리스탈로 된 거울 뿐이었다. 그 거울을 보자마자 선셋의 얼굴은 공포로 일그러졌다.


    "아..안 돼!"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오랜만에 이퀘스트리아로 다시 돌아와서 어머니와도 다시 만났고, 친구도 생겼고, 마법도 다시 되찾았는데! 물론 선셋에겐 그걸 누릴 자격 따윈 없었지만, 이 모든 걸 또 한 번 버리고 다시 인간 세상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선셋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트와일라잇은 콧김을 푸륵 내뱉었다. 포니들만이 할 수 있는 감정표현이었다.


    "네가 여기에서 낭비한 시간마다 내 미래의 관짝에 못이 한 개씩 박혀가고 있다는 걸 몰라? 빨리 가! 여기서 모든 걸 망치기 전에 빨리 가라고!"


    왼편에서 목제 바닥을 밟는 발굽소리가 들려왔다. 셀레스티아 공주였다. 


    "지금껏 네가 말한 거짓들.. 내가 영영 알아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니? 머지않아 진실이 밝혀지게 된다면 처음 그랬던 것처럼 너를 성에서 내쫒겠다. 그러니 날 또 한 번 실망시키기 전에 알아서 자리를 뜨는 게 좋을 게다."


    "빨리 가. 너만 없으면 다들 만사형통이니까." 캐이댄스의 목에 입을 맞추며 샤이닝 아머가 덧붙였다.


    캐이댄스도 날개를 펴 샤이닝을 껴안았다. 양 앞발굽으로 끌어안은 뒤 선셋을 보며 캐이댄스는 말했다. "걱정 마. 샤이닝 아머는 너 대신 내가 잘 보살펴 줄 테니까. 아하하하~"


    "가. 당장." 트와일라잇이 명령조로 말했다.


    "잘 가 그럼," 캐이댄스가 꼴 좋다는 듯 말했다.


    "설마 또 한 번 내 기대를 배신할 셈이니?" 셀레스티아가 추궁하듯 말했다.


    "내 걱정 안 해도 돼!" 샤이닝 아머는 안심하라는 듯 말했다.


    선셋은 부들부들 떨며 자신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네 필의 포니를 돌아보았다. 곧, 선셋은 자기 큐티마크가 그려진 책을 들고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등 뒤를 찌르는 네 개의 시선을 느끼며 선셋은 터덜터덜 거울이 있는 방으로 걸어갔다. 거울 너머의 세계로 건너가기 전, 선셋은 뒤를 돌아보았다.


    네 필의 포니들의 눈이 막 말을 꺼내려는 선셋의 얼굴로 집중되었다.


    "정말.. 가야만 하는 거야? 다른 방법은 없겠어?"


    포니들의 얼굴이 일제히 일그러졌다. "없어!"


    --------------------------------------------------------------------------------


    선셋의 눈이 번쩍 뜨였다. 헉 하는 소리와 함께 악몽에서 깨어났다.


    숨을 고르며 선셋은 인간 시절.. 아니, 어쩌면 유니콘 시절보다도 더 강화된 시야로 어둠 속을 살폈다. 페가수스의 마력은 날개 두 짝과 함께 날카로운 감각도 선셋에게 주었다.


    눈동자에 맺힌 희미한 형상은 빠르게 뚜렷한 모양으로 바뀌어갔다. 눈앞에 보이는 건 가볍게 코를 골고 있는 캐이댄스의 잠자는 얼굴이었다.


    '윽.. 어쩌면 저렇게 잠자는 모습도 저렇게 완벽할 수 있지?'


    마음속으로 시기어린 말을 토해내고 난 뒤, 선셋은 한숨을 쉬며 아까 꾼 악몽을 다시 한 번 떠올려봤다.


    진짜 이상한 꿈이었다. 일단 캐이댄스가 거울 너머 크리스탈 사립의 인간 캐이댄스나 입음직한 섹시한 여교사 복장을 입고 있었던 건.. 아니... 이건 일단 나중에 생각하자. 중요한 건 꿈속의 포니들이 모두 입을 맞춰 선셋에게 인간 세계로 떠날 것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어머니가 꿈속에서 했었던 악담도 악담이지만, 더 충격이 컸던 건 트와일라잇이 선셋에게 했던 말들이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선셋이 이퀘스트리아로 돌아오고 나서 지금까지 외면했었던(혹은 외면하려고 노력했던) 진실들 뿐이었으니까.. 지금 와서 아무리 모든 걸 바로잡으려고 노력해도, 선셋의 존재는 트와일라잇의 미래를 바꿔버리고 말 것이다. 안 좋은 방향으로..


    그리고 캐이댄스.. 왜 선셋의 꿈에 캐이댄스가 섹시한 여교사 복장을 하고 강의를 하고 있었을까? 아마도 어젯밤 캐이댄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들어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물론, 나로써도 걔가 무지 귀여워 보인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 그래도 선셋 넌 걱정할 필요 없어. 걔가 전교생 앞에서 날 위해 사랑의 노래를 열창하는 것 같은 일을 하지 않는 한 사귈 생각은 없으니까. 물론 세상이 한번 뒤집힌다 해도 걔가 그럴 수 있을 것 같진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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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걔가 전교생 앞에서 날 위해 사랑의 노래를 열창하는 것 같은 일을 하지 않는 한 사귈 생각은 없으니까. 물론 세상이 한번 뒤집힌다 해도 걔가 그럴 수 있을 것 같진 않지만."




    그 말을 하던 캐이댄스의 화사한 미소가 떠올라 선셋의 표정도 약간 풀렸다.


    "진짜로 세상이 변해서 걔가 나한테 그랬다고 해도, 네가 걜 점찍어둔 이상 괜히 건드릴 생각은 없어."


    미소와는 별개로 신경 쓰이는 발언이긴 했다. 캐이댄스가 샤이닝 아머에게 약간이나마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걸 지금 용납해야할지, 화를 내야할지 선셋은 맘을 결정할 수 없었다. 아니지.. 애초에 샤이닝 아머의 매력에 반하는 건 개마의 자유인데 화를 낼 필요가 있기는 한가?


    '나보단 캐이댄스가 샤이닝 아머에게 더 맞을지도 몰라.' 선셋은 속으로 마지못해 인정했다.


    아무리 개심을 했다고 해도 선셋은 결코 아주 착한 포니는 못 되었고 본마도 그 사실을 알았다. 여전히 포니 관계에서 상대방의 우위를 점하려는 경향이 있었고, 참을성도 바닥이었던 데다가, 평화를 사랑하는 포니들 사이에선 이례적으로 다분히 폭력적인 성향이기도 했다. 반대로 캐이댄스는 상냥했고, 자상하고, 사랑스럽고, 남에게 곤란한 일이 있으면 무조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는 모든 분야에서 완벽에 가까운 포니였다. 만약 둘 중에서 누가 최고인지 투표를 한다면 그 결과는 뻔할 거라고 선셋은 생각했다.


    캐이댄스의 말을 듣고 나니, 선셋은 샤이닝 아머랑 캐이댄스가 앞으로 모종의 관계 발달이 있을는지 궁금했다. 캐이댄스는 수말이 꿈에 그릴만한 요소들의 결정체였으므로 샤이닝 아머가 먼저 대쉬를 할 수도..


    '아니, 이건 너무 나갔나..' 더 허튼 생각을 하기 전에 선셋은 고개를 저어 생각을 날려버렸다. 샤이닝 아머는 물론 귀엽긴 했지만, 캐이댄스 같은 성격의 포니가 보자마자 딱 마음에 들어할만한 수준은 아니었고, 게다가 걘 처음부터 위험을 감수하고 무작정 대쉬를 할 성격은 못 됐었다. 아마 선셋이 둘 사이에서 없어진다면 샤이닝 아머는 그저 트와일라잇 공주의 약간 소심하고 덕질좀 하는 큰오빠 수준으로 끝날 공산이 높았다. 그.. 자기보다 약간 못 나가는 바람에 다른 포니들에게 선뜻 이야기하기를 꺼리는 그런 식구 말이다.


    하지만 만약의 가능성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걸 아예 무시할 수는 없지.. 샤이닝 아머의 지금보다 더 밝은 미래를 고려한다면 말이다.


    이 외에도 선셋이 고려해야 할 요소는 많았다. 결국 캐이댄스가 망아지 트와일라잇과 망아지 돌보기 알바로 엮이게 되었는데 그에 따른 변수라던가.. 하지만 언제나 유추해보려는 시도는 깨질 듯한 두통으로 끝나기 마련이었는데, 그 이유는 언제나 똑같았다 : 바로 데이터가 부족했던 것. 거기에 덧붙여, 이미 샤이닝 아머와 캐이댄스는 친구 사이가 되었고, 선셋이 만약 이 세계를 떠나 샤이닝 아머와 그만 만나게 될지라도 캐이댄스는 여전히 샤이닝 아머를 만나고 다닐 것이다. 그로 인해서 트와일라잇의 미래에 일어날 변수도 상당했다.


    선셋은 갑갑한 신음을 흘렸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일주일 전부터 오늘까지 하는 일 없이 멀쩡한 시간선에 똥을 싸지른 것 밖에 한 일이 없는 것 같아서였다. 그것도 아주 집채만한 푸짐한 똥을 싸 놓은 거다.


    "좆같네 진짜.." 캐이댄스를 내려 보며 선셋은 한탄 비슷한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에 대답이라도 하듯, 캐이댄스는 웅얼웅얼 잠꼬대를 하더니 선셋에게 몸을 가까이 붙였다. 입과 입 사이가 거의 닿을 뻔 했다.


    의도치 않은 입맞춤이 일어나지 않도록 선셋은 빨리 고개를 돌려 천장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캐이댄스가 선셋의 귀를 살짝 깨물기 시작했던 것이다.


    "..잠꼬대를 해도 참... 물이나 마시러 가야겠다."


    캐이댄스가 잠을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부유 마법으로 올려놓은 뒤 선셋은 침대를 빠져나갔다.


    바닥에 발굽을 디딘 뒤 선셋은 표정을 약간 찡그리며 캐이댄스를 돌아보았다.


    "침대 위에서 껴안고 그러는 건 있다가 하자.."


    이젠 배게를 붙잡고 자근자근 물어뜯듯 입을 맞추는 캐이댄스를 보며 선셋은 중얼거렸다. 그리곤 침대 주변에 보호막을 얕은 두른 후 누가 그 보호막을 건드리면 자기도 알 수 있게끔 주문을 걸어둔 다음에, 선셋은 복도로 나와 주방 쪽으로 걸어갔다.


    다행히 주방은 낮에 비해 그렇게 어둡지 않았다. 주방 청소부들은 선셋을 보자마자 황급히 목례를 건넸고, 선셋도 이에 화답해주었다. 물론 속으론 이렇게 깍듯이 대우를 해주는 게 영 불편했지만 말이다.


    주방 안에 도달하자 안 그래도 불편한 기분이 더 불편해지고 말았다. 주방에선 약 6필의 요리사들이 분주하게 궁궐 관리마들과 야간경계 당직 근무자들용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그 한가운데 커피를 컵에 따르고 있는 어머니가 보였던 것이다.


    선셋의 네 다리는 땅바닥에 달라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어-어머니?"


    "선셋이구나."


    셀레스티아는 보통 포니가 쓰는 것보다 더 큰 잔을 마법으로 들어 올려 입가로 가져가며 질문했다.


    "이 시간에 여긴 어쩐 일이니? 보통 일출 전까진 일어나지도 않는 애가.."


    "저요? 그러는 어머닌... 아.."


    벽에 높이 걸린 시계를 보니 그럴 만 했다. 5시 55분. 어머니가 해를 띄우기 시작할 때였다.


    "그게.. 오늘은 좀 일찍 일어났네요."


    셀레스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보통 사이즈의 컵에 커피를 따라 선셋에게 건네며 입을 열었다.


    "뭐, 이것도 기회라면 기회겠구나."


    이렇게 말한 뒤, 셀레스티아는 만찬실을 앞발로 가리켰다.


    "어제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테니.. 따라오려무나."


    점잖게 이야기를 하시긴 했지만, 이건 분명 잠자코 따라오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선셋은 고개를 끄덕이며 어머니의 뒤를 따랐다.


    '그래도 깃털 고르기 하면서 이야기하는 것보단 낫겠지 이게..'


    선셋은 생각했다. 어제 캐이댄스가 선셋의 비밀을 토해내게 만드는 데엔 한 시간 정도밖에 안 걸렸으니, 셀레스티아가 진득하게 선셋을 마크하며 여러 가지를 물어봤다면... 아마 그 반도 안 돼서 선셋은 모든 비밀을 털어놓고 말았을 것이다.


    이미 친어머니나 다름없는 분이니, 거짓말이 쉽게 나올 리가 없었으니까.


    "날개를 단정하게도 다듬었구나... 사실, 자식에게 깃털다듬기를 가르치는 건 전통적으로 그 어미된 자의 의무였다만.."


    가슴이 찔려왔다. 비록 어머니의 어조는 평이했지만, 선셋은 죄스러워서 어쩔 줄을 모를 지경이었다. 어머니는 딸과 유대를 쌓으려고 하는데, 정작 그 딸은 자기가 벌인 짓을 아직까지 수습도 못 하고 어머니를 등한시하는 꼴이라니..


    "죄..죄...죄송해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선셋은 사과했다.


    태양의 공주는 서서히 고개를 저은 뒤 싱긋 웃으며 제 딸을 내려 보았다.


    "저런, 사과할 필요 없단다. 하긴, 몇 년 동안 방치해놓고 인제사 선뜻 그래주길 바라는 것도 과욕이라면 과욕일 테지."


    말을 마친 셀레스티아의 표정은 약간 굳어있었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선셋은 죄스러움을 약간이라도 덜어보기 위해 화제를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근데 어제 못 다한 이야기라는 게 뭐죠?"


    없는 자신감을 쥐어짜 선셋이 질문했다. 수심어린 표정이 아주 잠시 공주의 얼굴에 어렸으나, 이내 공주는 다시 잔잔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거 말이니?"


    공주는 별 것 아니라는 투로 말을 이었다.


    "새로 파견된 그리폰 대사가 이번 주말에 캔틀롯에 도착할 예정이란다. 회견 자리에 너도 참석하도록 해라."


    이건 또 무슨... 선셋은 되물었다.


    "잠깐만요. 외교관들과 면담은 보통 어머니 혼자 하시지 않으셨던가요?"


    임기나 혹은 수명에 구애받지 않는 불멸자 지도자를 둘 때의 장점중 하나는 다른 종족이나 국가를 상대할 때의 노하우가 죽지 않고 그대로 쭉 보존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셀레스티아는 외국에서 온 사절이면 그자가 나라를 대표하는 정상이든, 혹은 지시받은 말만 하는 꼭두각시든 간에 다른 포니를 시키지 않고 셀레스티아 혼자서 만나는 편을 선호했다. 사실이 이랬으므로 어머니가 선셋에게 회담 참여를 명령했을 때 선셋이 당황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렇긴 했다만.. 실질적인 회담은 내가 다 진행할 터이니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단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외국 사절에게 네 존재를 알리는 일이니까."


    '뭐야.. 그냥 하는 일 없이 얼굴만 비추고 오라고?'


    물론 이게 다른 국가들에게 어엿한 한 필의 공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중요한 일이라는 걸 마음속으로는 이해했지만, 선셋은 어쩐지 자신이 1:1 등신대의 화려한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근데 캐이댄스는 어쩌고요?" 순간 떠오르는 의문이 있어 선셋은 질문했다.


    "그 아인 환영회 자리에는 참석할 테지만, 본격적인 회담 자리엔 이퀘스트리아의 공주는 너와 나만 참석할 예정이란다."


    무엇이 더 짜증나는 일인지 선셋은 가늠할 수 없었다.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예정된 자신의 상황이 더 열 받는지, 아니면 진정 자격 있는 공주이자 선셋의 절친한 친구인 캐이댄스를 어머니가 또 홀대하는 것이 더 열 받는 일인지.. 물론 어머니가 캐이댄스를 고의로 막 대하는 게 아니라는 걸 선셋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걸 알고 있어도 여전히 영 아니꼬웠다.


    "마음에 걸리는 점이라도 있니?" 약간 우려하는 투로 셀레스티아가 물었다.


    몇 초간 생각에 담겨있던 선셋은, 아까부터 궁금했던 걸 어머니께 물어보았다.


    "왜 캐이댄스는 회담에 참여 안 하는 거죠?"


    셀레스티아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딸을 내려 보며 말했다.


    "내 그 아이의 능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다만, 너와 달리 정치적 경험은 아직 미숙하고 또... 그 아이의 성격은 조금 무른 구석이 있어서 그리폰들과 담판을 짓는 데엔 약간 부족함이 있어서 그러는 거란다."


    두 필의 공주는 일출의 발코니로 걸어갔다. 하지만 셀레스티아는 일출을 위해 자리를 잡는 대신, 선셋을 돌아보며 짧은 시간동안 망설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딸아. 혹시 내게.. 화가 난 거니?"


    고개를 저으며 선셋은 대답했다. "아뇨?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내가 너무 넘겨짚는 것일 수도 있다만..."


    얉은 한숨을 쉰 뒤 셀레스티아는 말을 이었다.


    "네가 변신충 식별 재판과 뒤이어 따라온 기자 회견으로 몸살을 앓고 난 이후로.. 행여나 나한테 앙금이 쌓인 게 있을까 걱정이 되어 물어보게 되는구나."


    '그렇다.'라고 동의하고 싶은 마음도 없잖아 있었다. 선셋 본마가 트와일라잇을 포함한 다른 모든 일을 어머니가 못 알아내도록 고의로 감춰가면서 쌓인 죄책감을 약간이나마 감출 수 있다면..


    하지만 선셋은 고개를 저었다. 역시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아뇨. 없어요."


    "그렇구나.. 음.."


    셀레스티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두 눈을 감으며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네가 알리콘이 되면 언제나 같이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단다. 소중히 얻은 날개를 다듬는 방법을 직접 가르쳐주고 싶었지.."


    태양의 공주의 얼굴엔 죄책감 어린 씁쓸한 미소가 어렸다.


    "...그래.. 네 처사를 고려하지 않은 이기적인 생각이었지.. 허나.. 난 이제 네 어머니 아니니? 딸과 함께 화목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욕심 아니겠니.." 


    선셋이 별로 말 하고 싶지 않은 주제로 대화가 흘러가고 있었다. 그냥 듣기만 해도 가슴이 천근만근 무거워져왔던 것이다. 그 반동인지 선셋은 셀레스티아의 말에 반박을 하고 싶어졌다.


    '내가 알리콘이 되기를 그렇게 바라셨다면, 왜 그때 절 쫒아내신거죠?!' 


    선셋은 속으로 외쳤다. 과거의 응어리진 원한에서 비롯된 마음의 외침이었다. 하지만.. 선셋은 잘 알고 있었다. 그 때 선셋은 두 말 할 필요 없는 되바라진 암말이었으며, 인간 세상에서는 이퀘스트리아 시절보다 더 질이 나빴던 최악의 인간었음을..


    "죄송해요."


    마음속에 담아둔 말을 외치는 대신, 선셋은 어머니께 사과했다.


    "잘못한 게 없거늘 왜 네가 사과를 하는 거니? 오히려 네게 무거운 죄책감의 멍에를 씌운 내가 사과해야 되는 것을.."


    이렇게 말하고 나서 셀레스티아는 딸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부비었다.


    "미안하구나.."


    선셋은 심란한 마음은 일단 내려놓은 뒤 어머니를 껴안았다. 


    좋았다. 귀환한 이후로 어머니와의 이런 시간을 선셋은 언제나 목이 타게 갈구해왔었다. 비록 상황이 여의치 않아 선셋 본마가 피하고 있었긴 했지만 말이다. 


    "사랑해요.. 어머니.."


    어머니의 기운을 복돋아주기 위해서였다. 그게 선셋이 지금 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이었으니까. 


    셀레스티아는 곧 포옹을 풀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너무 짧아서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셋은 다시 아까 꾼 꿈 생각을 했다. 아직 풀리지 않은 선셋의 양심의 딜레마가 그대로 형성된 듯한 악몽이었다. 이것에 관해선 캐이댄스와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었다. 이미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해봤지만 캐이댄스의 대답은 한결같았고, 선셋에게 있어서 그건.. 해답이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랑 선셋이 느끼고 있는 죄책감의 근원에 대해서 덜컥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었다. 불가능했다.


    하지만.. 넌지시 돌려 이야기를 한다면 어쩌면...


    "어머니. 물어볼 게 있는데요."


    자기가 누구보다 사랑하는 포니에게 어떻게 하면 진실을 감출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선셋은 운을 때었다.


    동녘을 바라보며 공주는 대답했다. "물론. 해보려무나."


    얼마간 더 생각한 후에 선셋은 입을 열었다.


    "그게 저.. 사실은.. 캐이댄스만 지금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게 아니에요.. 저도 그러거든요...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건 아는데 그게.. 제가 생각하는 데로 했다간 여럿에게 상처를 입힐 것 같아서요. 저도 포함해서요."


    다시 인간이 되서 캔틀롯 고등학교에 다닌다는 걸 상상만 해도 선셋은 눈앞이 캄캄해져오는 것 같았다.


    "흠.. 할 말은 그게 다니?"


    셀레스티아가 되묻자, 선셋은 고개를 끄덕였다. 더 자세한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할 수 없는 게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어쨌거나 어머니는 대답을 해 주시려는 눈치였다.


    "이미 해결책은 생각해 둔 것 같으니, 응원이 될 만한 말을 몇 마디 해주겠다.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은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행하라는 거다. 아무리 네 선택이 고된 선택이 될지라도, 초심을 잃지 말고 네가 뜻한 것을 꾸준히 관철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단다."


    공주의 조언을 듣고 고민이 좀 가시기를 기대했었지만... 오히려 선셋의 시름은 더 깊어지고 말았다.


    "..그러겠네요.."


    대꾸할 생각 없이 얌전히 대답한 뒤 선셋은 어머니가 태양을 띄우는 걸 말없이 지켜보았다. 새벽녘에 떠오르는 찬란한 햇빛을 보며 선셋의 눈가에도 반짝이는 눈물이 맺혔다.


    "고마워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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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이닝 아머네 집 아침 식사는 항상 분주했다. 아버지는 신문을 읽느라 바빴고, 어머니는 주방 일을 하느라 바빴으며, 여동생은 어머니가 새로 사온 슈가 봄이라는 시리얼을 먹은 뒤로 일종의 당분 과다섭취로 인한 각성상태에 빠져 완전히 들떠있었다.


    "오빠! 오빠! 다음 플리겐호른 공연 날이 언제야?"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트와일라잇이 물었다.


    할아버지가 가풍이라는 이유로 억지로 샤이닝 아머에게 아득바득 가르친 그 악기를 생각만 해도 샤이닝의 기분이 착 가라앉는 것 같았다.


    "몰라."


    트와일라잇은 이제 샤이닝 아머의 등 위로 기어올라 오빠가 언제 아침식사를 다 먹나 음식이 담긴 접시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언제 하는지 네가 알아서 뭐하게? 전에 한번 억지로 끌려갔다가 고막이 터질 것 같다고 징징대는 바람에 결국 엄마 아빠 등에 업혀 도로 집에 갔잖아?"


    "왜냐며~언, 오빠가 공연을 나가야 엄마가 내 보모 아르바이트를 알아보실 테고, 그렇다는 건 선셋 공주님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이야기잖아!"


    엄청 신이 난 투로 트와일라잇이 대답했다.


    마력으로 등에 무단으로 올라 탄 트와일라잇을 내려놓은 뒤, 샤이닝 아머는 입에 머금은 귀리를 씹어 넘긴 뒤에 트와일라잇을 내려다보았다.


    "네 보모를 맡은 건 선셋이 아니라 캐이댄스잖아. 게다가 선셋은 벌써 일주일에 2번이나 널 보기로 했었고.."


    "그건 그런데,"


    트와일라잇은 다 알았으니까 잠자코 있으라는 듯 한 쪽 발굽을 들었다.


    "그래도 캐이댄스 공주님이 오신다는 건, 선셋 공주님도 따라온다는 이야기잖아. 그런 다음엔 보통... 곤란한 사건 하나가 해결되고.."


    말을 마치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트와일라잇은 콧등에 주름을 잡으며 말했다.


    "음.. 마지막 명제는 아직 명확하지 않은데.. 뒷받침할만한 근거도 아직 부족하구.."


    못 이기겠군.. 샤이닝 아머는 히죽 웃으며 트와일라잇의 갈기를 쓰다듬었다.


    "그건 다음에 선셋이 캐이댄스랑 같이 올 때 네가 직접 알아보는 게 어때?"


    트와일라잇은 좀 잠잠해졌고, 샤이닝은 다시 아침이나 마저 먹기로 했다. 하지만 다른 데 신경을 쓸 틈도 없이 현관문 바깥에서 마력으로 시공이 뒤틀리는 소리가 났다.


    "잠깐만! 왜 샤이닝네 집에 온 거야?" 문 바깥에서 들려오는 건 분명 캐이댄스의 목소리였다.


    "안될 거 뭐 있어? 좋아하는 수말 얼굴좀 보겠다는데." 선셋이 마력 잠금장치를 본마의 마법으로 손쉽게 해제하며 하는 말이었다. 선셋은 고개를 불쑥 내밀며 어안이 벙벙해진 트와일라잇 가족을 살폈다.


    "모두 좋은 아침~ 들어가도 되죠?"


    나이트 라이트는 마시던 커피가 사례가 들려 캑캑거리고 있었고, 트와일라잇 벨벳은 재빨리 바닥에 넙죽 엎드려 절을 올렸다. 공주들을 보고 반색을 한 건 샤이닝 아머와 트와일라잇뿐이었다. "선셋 공주님!"


    "다-당연하죠 공주님들! 공주님들은 언제나 환영이랍니다!" 바닥 깔개에 얼굴을 거의 닦다시피 하며 벨벳 부인이 답했다.


    하지만 두 알리콘은 그 곳에 반 푼어치의 관심도 주지 않은 듯 했다. 오로지 쪼르르 달려온 어린 트와일라잇만 쳐다봤을 뿐. 트와일라잇 스파클은 선셋 공주의 앞발을 꽉 껴안았고, 선셋은 마치 딸을 바라보는 어머니라도 된 듯 흐뭇하게 웃으며 트와일라잇의 갈기를 쓰다듬어 주었지만, 그 두 눈에는 감출 수 없는 회한이 담겨있었다.


    "트와일라잇 안녕. 오늘 아침에 뭐 했어?"


    트와일라잇이 오늘 아침 먹은 시리얼부터 시작해서 거기에 포함된 당과 그 효과에 대한 설명을 주절주절 늘어놓고 있을 때, 샤이닝 아머는 여동생과 대화를 나누는 선셋을 쳐다보았다. 트와일라잇을 쳐다보는 선셋의 분위기가 전과는 약간 달랐다.. 무언가 셀레스티아 공주님을 연상케 하는 분위기가 서려있다고나 할까..


    그런 선셋은 마치.. 설명을 해보자니 좀 복잡하군. 진짜..


    선셋 쉬머는 모험소설 주인공이 현실에 구현된 듯한 포니였다. 몸집은 크고 억셌으며, 행동에 하나 망설임 하나 없이 자신감도 엄청났다. 이 반신 알리콘 공주의 첫인상만 살펴보자면 위압감이 든다는 말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트와일라잇 스파클과 대화를 하는 선셋의 모습은 평소와는 180도 다른 느낌이었다. 가령 어제처럼 적극적으로 샤이닝 아머랑 만리장성을 쌓...을뻔 했을 때의 모습이라던가..


    "저런, 아침부터 기운이 너무 넘치네? 우리 트와일라잇."


    캐이댄스 공주가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한창 열띠게 설명중인 트와일라잇과 듣고 있던 선셋 사이로 끼어들었다.


    "너무 넘쳐도 병인데.... 내가 살짝 빼 줄까?"


    부지불식간에 캐이댄스는 날개를 펴서 트와일라잇의 배를 간지럽히기 시작했고, 트와일라잇은 바닥에 데굴데굴 구르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핫! 캐...캐이댄스 공주님! 간지러워요!"


    선셋은 약간 뾰류퉁한 표정을 짓고는 집 안의 다른 포니들을 돌아보았다. 샤이닝 아머는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침을 꿀꺽 삼키더니 두 눈을 아래로 깔았고, 벨벳 부인은 아까 절하던 그 자세 그대로 바닥에 박혀있었다.


    "아이고! 아주머니. 안 이러셔도 되는데.."


    허겁지겁 벨벳 부인을 일으키며 선셋은 말했다.


    "진짜 부탁인데 이러지 마요. 아니 왜 손님을 상전 취급을 해요?"


    트와일라잇의 어머니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아래로 내리깔았다."


    "그..그래도 공주님들께 예의는 제대로 갖추어야... 우리 가족이 공주님께 입은 은혜가 엄청난걸요.."


    "아-아뇨.. 트와일라잇은 걘 그럴 자격이 충분하니까요 뭐.."


    간지럼을 끝내고 트와일라잇의 이마에 뽀뽀를 쪽 해주는 캐이댄스를 돌아보며 선셋은 대답했다.


    여전히 방 안에 있던 트와일라잇의 아버지, 나이트 라이트는 고개를 약간 숙이고 선셋에게 물었다.


    "실례합니다만 공주님. 무슨 일로 이 누추한 곳에 방문하신 건가요?"


    선셋이 무슨 말도 못하고 불편해하던 찰나에 캐이댄스가 그 말에 대신 대답했다.


    "뻔하지 않나요? 이 자리의 쉬머 공주님은 샤이닝 아머랑 '단 둘이' 학교에 가려고 일부로 마법까지 써 가면서 여기에 왔답니다~"


    "야! 그냥 친한 친구 두 필이랑 학교 가고 싶어서 그랬던 거거든? 내가 진짜 샤이닝이랑 단 둘이 학교가고 싶었다면, 왜 너까지 여기 데리고 왔겠냐고!"


    선셋은 어느새 불편한 것도 잊고 짜증을 팍 내며 캐이댄스의 말에 대꾸했고, 캐이댄스는 뭐가 어쨌냐는 듯 능청스럽게 두 눈을 옆으로 굴렸다. 몇 초간 캐이댄스를 째려보다가 더 이상 따지는 것도 귀찮았는지 선셋은 약간 풀린 표정으로 다시 샤이닝 아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저.. 샤이니... 학교갈 준비는 다 했어?"


    약간의 긴장이 실린 목소리로 선셋은 질문했다.









    매우 고맙게도 선셋이 총천연색의 불꽃 소환 마법으로 트와일라잇의 시선을 빼앗고, 캐이댄스가 트와일라잇을 껴안아 움직임을 봉쇄해준 덕분에, 샤이닝 아머는 10분 만에 무사히 아침밥을 마저 먹을 수 있었다. 준비가 다 끝난 세 필의 포니는 거리로 나왔다. 선셋이 중앙에 섰고, 샤이닝 아머와 캐이댄스는 나란히 그 옆에 서서 걸어갔다. 한참을 걸어가다가 선셋은 불쑥 샤이닝 아머에게 질문을 던졌다.


    "샤이닝. 이번 주말에 뭐 할 거 없지?"


    샤이닝 아머는 발을 헛디뎠다. 어떻게 그런 것도 모를 수도 있냐는 투로 선셋을 타박하기 시작했다. 


    "야..바..방금, 진담으로 한 이야기야? 이번 주 금요일은 금세기 최고의 명작 시리즈인 솔라워즈 에피소드 5가 캔틀롯에 개봉하는 날인데! 그래서 친구들이랑 학교 끝나자마자 보러가기로 약속까지 다 잡아놨구만!"


    샤이닝 아머는 숙고하지도 않고 말을 막 내뱉고 말았다.


    '말을 잘못했나?' 샤이닝 아머는 속으로 생각했다. 물론 솔라워즈는 대작임이 분명했으나 선셋은 SF취향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마법에 관해 전문 지식이 있는 포니들을 대부분 허구 속의 마법, 혹은 과학적 고증 오류들을 사사건건 걸고넘어지기 마련이었으니까. 특히나 선셋의 입 꼬리가 묘하게 일그러진 걸 보아할때 샤이닝의 발언은 별로 좋은 발언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샤이닝 아머는 (비록 가상이었다곤 하지만) 선셋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용 앞에도 뛰어들어보았고, 선셋도 침대 위에서 샤이닝 아머에게 이것저것(비록 정작 중요한건 안 했다곤 하지만.) 해 주지 않았던가.. 이쯤 되면 어.. 그냥 같이 가자고 해도 되지 않을까..


    "저..엄...선셋."


    망설임을 침을 꼴깍 삼켜 넘겨버린뒤 샤이닝 아머는 말을 이었다.


    "이..이..있잖아. 그.. 그때 할 일 없으면 어... 나랑 같이 가.. 가지 않을래.."


    싸늘한 살기가 등골을 타고 느껴져 샤이닝은 시선이 느껴지는 곳을 돌아보았다. 캐이댄스, 이퀘스트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포니가 살벌하게 눈을 치켜뜨고 샤이닝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게 최선이야 샤이닝 아머? 이게 정말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데이트 신청이야?"


    "야. 그게 뭐 어때서?" 선셋이 샤이닝 대신 약간 화가 난 어조로 대꾸했다. 그리고는 미소를 지으며 샤이닝 아머를 돌아보았다.


    "네 친구들이랑 같이 영화 보러 가자는 거지? 좋아 샤이니."


    영화? 영화가 뭐지? 샤이닝 아머가 이상한 말을 듣고 잠시 멍해있던 찰나..


    "뭐어? 이대로 승낙? 어디 그런 큰일 날 소릴!"


    캐이댄스가 길을 걷는 둘의 앞을 가로막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일단 샤이닝.. 물론 O&O를 하러가는 것 보단 솔라워즈를 보러 가는 게 더 나은 데이트 선택지이긴 해. 하지만! 선셋의 친구로서, 이런 자격미달인 데이트 신청은 절대로 허락해 줄 수 없어!"


    "언제부터 너한테 데이트 허락까지 받아야 됐었데?" 쟤가 뭘 잘못 먹었나 싶은 표정으로 선셋이 딴죽을 걸었다.


    그러자 캐이댄스는 고개를 하늘 높이 거만스럽게 쳐들고 두 눈을 감으며 격식 있는 어조로 말을 받았다.


    "이 몸은 사랑의 공주님이시랍니다."


    선셋의 눈동자를 쳐다보며 캐이댄스는 천연덕스럽게 말을 이었다. "참견할 권리가 있다는 이야기지요."


    "...그렇다 이거지? 근데 너 하나 까먹고 있는 거 알아?"


    선셋은 두 날개를 활짝 펴고 힘 있게 한 쪽 발굽을 앞으로 내딛었다. 대지는 흔들렸고 캐이댄스는 중심을 잃고 말았다. 선셋이 방출하는 마력으로 인해 주위에 어둡게 그늘이 져 오자 샤이닝 아머는 뿔에 마력을 모아 빛을 밝혔다.


    "이 몸은 알리콘이다. 크고, 사납고, 10초 만에 전 캔틀롯을 초토화시킬 수도 있는 마력을 가진 존재지. 그런데도 대담하게 나한테 데이트 신청을 했으니, 용기가 존나 가상해서라도 받아주는게 예의 아니겠냐고?"


    소규모의 지진이 잦아들고, 샤이닝 아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들 겁을 먹고 그 자리에서 덜덜 떨고 있었다. 하긴 그 누굴 탓하랴. 지금 선셋에게서 느껴지는 마력만 해도 샤이닝 아머의 마법 신경을 무겁게 억누를 정도인데.. 선셋의 육체적 능력도 물론 대단했지만, 선셋의 몸에 잠재된 마력에 비해선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압도적인 광경에도 불구하고 캐이댄스는 오히려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선셋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널 위해서라면 죽음도 불사할 포니가 더 잘 할 수 있는데도 볼품없이 말을 더듬는 꼴을 보니까 안타까워서 그런다, 왜? 그리고 작작좀 해! 주변 포니들이 몽땅 겁을 먹고 있잖아!"


    말을 마치며 캐이댄스는 발굽을 들어 선셋의 뿔을 한 대 후려갈겼다. 샤이닝의 뿔이 다 아파질 지경이었다. 그 일대를 뒤덮고 있던 선셋의 마력도 순식간에 공기 중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아얏!"


    비로소 정신이 든 작은 태양의 알리콘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행마로 붐볐던 거리는 순식간에 한산해져있었다.


    "죄송합니다.. 다들..."


    다들 도망치느라 여념이 없어서 사과를 들었는지도 모르겠군.


    "샤이닝 아머. 나 좀 봐봐."


    캐이댄스는 샤이닝 아머를 부른 뒤 선셋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 지금 선셋에게 할 말 있지 않아?"


    사랑의 공주는 샤이닝 아머에게 가까이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살벌하게 속삭였다. "단단히 충고하는데, 앞으로 말할 땐 생각이란 걸 좀 하고 말해...! 자, 선셋은 이미 승낙했으니, 이번엔 좀 더 잘할 수 있겠지?"


    이제 샤이닝과 선셋은 얼굴을 맞대고 서 있었다. 살짝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선셋이 먼저 말을 꺼냈다.


    "어쩔 수 없네 이거.. 샤이니. 이번 주말에 한가해?"


    "어.."


    말을 더듬자마자 뒤에 있는 캐이댄스의 미소가 순식간에 살기어린 눈총으로 바뀌었다.


    "치-친구들이랑 솔라워즈 보러 가려고 하는데, 괘...괜찮으면.."


    샤이닝 아머는 마른침을 삼켰다. 캐이댄스의 찌푸린 얼굴에 점점 주름살이 더 잡혀가고 있었던 것이다. 위험하다!


    "같이 가자! 좋지?!"


    "에헤헤, 물론 좋지. 캐이댄스랑 치어릴리도 데려갈게. 더 재밌겠지? 그럼?"


    옆에 선 캐이댄스는 실망에 찬 한숨을 내뱉고는 고개를 절래 절래 저었다.


    "뭐... 최선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제대로 하긴 했네."


    그리고 잠시 동안 심각한 표정으로 둘 사이를 쳐다보고 있다가 발굽을 앞으로 쫙 내밀더니..


    "이제 키스해!"


    샤이닝 아머는 또 한 번 얼어붙었다. 또 한 번 말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무-무-무슨 소리-"


    선셋은 고개를 홱 돌려 인상을 확 쓰며 뒤에 있는 사랑의 공주를 돌아보았다. "캐이댄스!"


    거기에 아랑곳 않고, 캐이댄스는 계속 찌푸린 인상으로 고개를 높이 쳐들더니 포니 가르치는 투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이미 한 번의 데이트로 서로를 잘 알게 된 사이니까, 다음 데이트를 약속하는 의미로 키스를 해야 하는 거야. 상호간에 육체적인 흥미는 여전하지만, 너를 위해서라면 이정도로 절제할 수 있다는 그런 의미로."


    살짝 짜증난 표정으로 선셋은 툭 대꾸했다.


    "...무지 시답잖은 이유로 함부로 키스하란 이야기를 했던 거면, 나 엄청 화냈을 거야. 알아?" 


    캐이댄스와 선셋이 약간의 실랑이를 벌이던 때, 샤이닝은 자신감을 약간 회복했다. 용기 있게 선셋의 앞으로 다가간 뒤, 선셋의 볼에 살짝 입맞춤을 하고, 바로 몇 발짝 뒤로 물러섰다.


    선셋은 깜짝 놀랐다. 그대로 굳어버렸다. 얼굴에 노을 같은 홍조가 폈다. 샤이닝 아머를 쳐다보았다.


    "지-지-진짜로 했어? 우와.."


    "그게.. 음.."


    선셋이 캐이댄스 쪽으로 다시 시선을 옮기자 샤이닝은 알아서 물러났다.


    "하아..."


    선셋은 한숨을 뱉으며 말을 시작했다.


    "정말 못 당하겠구만. 못 당하겠어..."


    골난 목소리로 투덜거리며 선셋은 마력으로 눈앞에 있는 두 포니를 감싸 자신의 두 날개 아래 넣고 껴안았다.


    "이제 잔소리할 시간 없어. 고명하신 캐이댄스 공주님의 끝내주게 긴 데이트학 강연 덕분에 순간이동으로 학교에 가야 겨우 지각을 면할 것 같으니까. 자자. 순간이동은 처음 겪어보는 포니한테는 엄청 해괴한 경험이니까, 샤이닝 넌 잔말 말고 내게 꼭 기대고 있어."


    "잠깐! 선셋! 기다-"


    캐이댄스가 몸을 뒤틀며 한 저항도 부질없게, 눈부신 섬광과 함께 셋의 모습은 거리에서 사라졌다. 이윽고 샤이닝 아머가 정신을 차렸을 땐, 순식간에 학교 정문 앞에 와 있었다. 학교 정문에 있던 학생들은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샤이닝 아머 일행을 쳐다보았다.


    "서-선셋! 좀 놔! 놓으라고!"


    선셋의 날갯죽지 아래에서 벗어나려고 용을 쓰며 캐이댄스가 외쳤다.


    "그러지 뭐..."


    얼굴 가득 이유 모를 홍조를 띈 캐이댄스를 뭐가 뭔지 모르겠단 표정으로 쳐다보며, 선셋은 말 몇 마디를 더 덧붙였다.


    "캐이댄스. 샤이닝 교실에 데려다주고 올게. 점심시간에 신치를 어떻게 해야 할 지 상의하자. 알았지?"


    "아..! 알았어!"


    이제야 문득 할 일이 생각난 듯, 캐이댄스는 빠르게 학교 쪽으로 달려갔다.


    -------------------------------------------------------------------------------------------


    벌써 여러 번 느끼는 거지만, 이번만큼은 캐이댄스는 자기의 털 색깔이 분홍색이라서 정말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온몸에 홍조가 일 정도로 창피해 죽겠는데 다행히 다른 포니들은 눈치를 못 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셋이 캐이댄스를 날개 아래로 껴안고 학교에 등교했다는 건 이제 2교시만 있으면 온 학교에 소문이 쫙 퍼질 것이다. 그 생각만 해도 캐이댄스는 눈앞이 암담해져와 책상 위에 놓인 쿠션에 머리를 파묻고 비척비척 가방에서 연금술 교과서를 꺼냈다.


    ...부끄럽기도 부끄러웠지만, 페가수스의 연애 문화에 무지한 선셋을 마냥 탓할 수는 없었다. 캐이댄스 본마도 어스 포니 마을에서 입양되고 자라 페가수스들이 데이트 풍습을 모르고 자랐으므로 원래 유니콘이었던 선셋이 알리가 없었다는 것도 이해는 갔다. 결국 세 종족의 연애 방식 및 풍습에 대해서 관심이 생겨 찾아보고 난 이후에야 선셋이 아까 한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늦게나마 알게 되었으니까.


    세 종족의 대결합 이전, 페가수스 종족은 전사 종족이었다. 그 시절 세 종족끼리 서로 으르렁거리기는 했어도, 페가수스들은 언제나 세 종족의 터전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지켜내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 결과 그들의 문화는 매우 보수적, 폐쇄적 성향을 띄게 되었고,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의 망아지들에겐 항상 주위를 경계하며 낯선 종족이나 생명체들은 반드시 몸에서 멀리하라고 가르쳐왔다. 페가수스에 있어 목숨보다 소중한 날개 아래 다른 포니를 들인다는 건 그 포니를 매우 신뢰한다는 굳은 맹세의 표시였다.


    그러나 통합이 시작되고 세 포니 종족이 한 깃발 아래 모이는 시절이 오자, 페가수스들의 관습에도 변화가 생겼다. 날개 아래 포니를 들이는 건 더 이상 신뢰나 보호의 표시가 아닌, '얘는 내거니까 건들지 말라.'라는 선언이었다. 그런데 그걸 등교 시간에! 학교 정문에서 저질렀으니!


    벌써부터 주변 포니들이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우리 아빠가 왕궁에서 일하시는데, 글쎄, 공주님 두 분이서 같은 침대에서 주무신데!"


    -"세상에, 했네! 했어!"


    물론 캐이댄스가 걱정하는 소문과 같은 일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로맨스스러운 방향으로는 말이다. 그리고 엔조이 식의 섹스를 캐이댄스는 극히 혐오했으니, 정신줄 놓고 선셋에게 몸을 던질 리도 없을 테고!


    하지만, 선셋과 한 침대에서 자는 건 엄밀히 사실만 따지자면 은근히 기분 좋은 일이가도 했다. 근육과 체지방, 윤기 나는 털이 조화된 탱탱한 몸통, 다리는 또 플뢰르 같은 모델 체형의 포니가 연금술 요법을 써서 억지로 낸 비리비리한 다리와는 차원이 다른 건강미가 돋보이는 잘 뻗은 다리였다. 그리고 포옹... 선셋의 품 안은 얼마다 따스하고 또 포근했던가. 그 튼튼한 품 안에 안겨있기만 해도 밤새 무슨 일 당할 것 없이 안전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건 캐이댄스와 선셋 사이에 미묘한 감정이 흐른다던가 하는 의미는 절대로 아니었다! 그저 선셋과 같은 침대에서 잤기 로니, 그게 캐이댄스가 선셋을 사려 깊고, 자상하고 또 반할 정도로 강인한 포니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진 않지만, 어.. 어쨌든, 선셋도 애초에 그런 의미로 같은 침대를 쓰자고 한 건 아니었으니까! 변신충의 위협이 없었다면 그런 제안을 하지도 않았을 거야. 암 그렇고말고!


    '게다가 걘, 똑똑하기도 하고..'


    캐이댄스는 속으로 선셋에 대한 생각을 쭉 이어나갔다. 고난이도의 마법을 소꿉장난하듯 쉽게 시전하는 모습을 보면, 이 세상과 인간 세상(선셋의 말이 진실이었다는 가정 하에)에서 두뇌와 마법으로 선셋을 이길 포니는 별로 없는 듯 했다. 심지어 인간 세상에서는 한 움큼의 마력도 없이 학교의 정상에 올라가 군림했었고 말이다.


    물론 선셋은 더 이상 그런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선셋은 몇 주일 전보다 확실히 더 좋은 포니가 되어있었으니까. 그런 선셋을 보며 캐이댄스는 단순히 괴롭히는 포니가 사라져서 느끼는 기쁨뿐만이 아닌, 어려운 일을 성취한 선셋에 대해 존경심 이상의 감정도 들던 차였다. 포니가 어디 그렇게 쉽게 바뀌는 생물이던가?


    "카덴차 공주님!"


    갑자기 교단에 선 교수가 캐이댄스 공주를 불렀다.


    "ㄴ..네? 무슨 일이시죠?"


    어머.. 그냥 출석을 부른 거였구나..


    "아.. 네! 저 왔어요, 슬러그혼 교수님!" 


    이윽고 수업은 시작되었고, 캐이댄스 입장에선 그게 차라리 다행이었다. 계속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던 절친한 친구에 대한 복잡한 생각은 잠시 잊고, 연금술 물약 조제에 필요한 재료의 정량을 재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수업 끝 종이 울리고 복도로 나왔을 때 까지만 이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캐이댄스가 복도에 나와 있는데 대놓고 루머를 속닥거리거나, 혹은 자기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보는 포니들은 단 한필도 없었다. 하지만.. 캐이댄스는 자기의 뒤통수에 학생들의 의혹 어린 시선이 박히는 걸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캐이댄스는 다음 수업이 있는 곳으로 재빨리 뛰어간 뒤, 자리에 앉아 1교시부터 자기를 괴롭혀오던 생각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바로 선셋 쉬머와, 그녀를 바라보는 자신의 동경 어린 시선에 관한 생각이었다.


    문제는, 캐이댄스가 선셋에 대한 동경을 멈출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선셋은 충분히 우러러볼만한 포니라는 걸 감안을 해도 말이다.


    그리고 사랑의 공주는 이 동경의 감정이 어떤 식으로 변화할지 예측할 수 없었다. 물론 동경은 지극히 당연한 감정이다. 동경하는 대상을 보며 서로 발전해나가는 순효과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다가 어느 순간 단순한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될 수도 있었고, 그건 진짜 크나큰 문제였다.


    -나는 선셋이 침대 위로 올라가는 걸 두 눈을 깜빡이며 지켜보았다. 선셋은 내가 조금이라도 따라 해봤으면 하고 셈이 날 정도로 잘 제어된 마력으로 나를 살포시 잡아 침대 위에 눕혀준 뒤 그 커다란 날개로 나를 포근히 덮어주었다.


    선셋의 부드러운 털이 내 등에 닿았다. 강인한 두 앞다리는 내 몸통을 감쌌고, 내 목덜미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끔 자기의 몸으로 튼실하게 감쌌다.


    코에서 나온 뜨거운 숨결은 내 갈기를 간지럽혔다. 선셋의 목에 밀착된 내 한쪽 귀에서는 선셋의 심장이 뛰는 맥박소리가 꾸준히 들려왔다. 이 때, 선셋은 갑자기 나를 꼭 끌어안았다.. 탄탄한 근육.. 거기에 더해 암말다운 곡선을 유지해 주는 약간의 체지방이 살과 살을 타고 내 신경에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는 이렇게 하룻밤 내내 선셋의 품에 안겨있었다. 이모님에게서 변신충들이 풀려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안도감, 평온함이 내 내면에 찾아왔다.


    정말.. 아름다운 밤이었어...


    ...황급히 선셋과 함께 한 첫날밤(?)에 대한 회상을 거두고, 캐이댄스는 심호흡을 하며 콩당콩당 뛰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아냐.. 아냐.. 이런 게 아니었을 텐데.. 캐이댄스는 애써 자기 자신을 설득시키려고 애를 썼다.


    무..물론, 안도감은 들었지. 하지만 아름다운 것 까지는 아니었고.. 그냥.. 안도감 정도?


    그래! 안도감과 편안함.


    그게 다였지.


    왜냐하면 선셋과 캐이댄스의 관계는 그냥 친구 관계이며, 그 이상으로 넘어갈 가능성도, 동기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다가 선셋은 이미 마음에 둔 포니 한 필이 있었다.


    서로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한 쌍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잠깐.. 캐이댄스는 잠시 자기가 무슨 생각을 했나 싶었다. 왜 그랬지? 캐이댄스는 책을 꺼내다 말고 선셋과 샤이닝의 관계에 대해서 숙고해보기 시작했다.


    캐이댄스가 샤이닝 아머에게 지난 일주일간 연애 상담을 빙자한 간섭질을 했으니, 캐이댄스는 샤이닝 아머에 대해서 어느 정도 꿰고 있었다. 그것도 외모나 겉으로 드러나는 성격 같은 시시껄렁한 것들이 아닌, 구체적으로 샤이닝 아머란 어떤 포니인가를 잘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샤이닝 아머는 자상하고 사랑스러운 수말이었다. 이런 수말의 진가를 알아보고 사귀게 된 포니야말로 진정한 행운아일 것이다.


    그리고 샤이닝의 상대, 선셋 쉬머는 이례적으로 독특한 포니였다. 당장 그 셀레스티아 공주가 후계자로 낙점 찍은 포니였고, 언뜻 보기엔 성질이 급하고, 열정적이고, 우직해 보였지만, 은근히 상처를 잘 받는 연약한 면모(어찌 보면 귀엽기까지 한)까지 두루 갖추고 있었다. 예를 들어 지난 밤, 캐이댄스에게 샤이닝 아머에게 관심 있냐고 물어봤던 때처럼..


    캐이댄스는 고개를 저어 생각을 날려버렸다. 두 포니의 교제 관계가 장래에 어떻게 될지 알아보려면, 이렇게 수박 겉을 핥듯 생각만 하면 안 된다. 구체적으로 목록을 만들어 비교를 해 봐야 됐다.


    그래. 도표를 만들어 봐야겠어. 샤이닝과 선셋의 특징을 면면히 분석해 비교 분석한 도표를..


    삽화 2.png

    이런 중요한 때에 공주의 발목을 붙잡는 요인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학교 수업은 얌전히 다 들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다행히 이번 수업이 끝나고 찾아온 3교시의 담당 교사는 제 기분이 내킬 때만 수업을 제대로 하는 선생님이었다. 오늘은 교탁에 앉아 말없이 책만 파고 있는걸 보아하니 확실히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았다. 다른 학생들이 교실에서 돌아다니며 떠들거나 아니면 책상에 고개를 박고 자고 있는 사이, 캐이댄스는 가방에서 연습장을 꺼내-


    "캐이댄스 공주님?"


    세련된 암말의 음성이 캐이댄스의 뒤에서 들려왔다.


    캐이댄스는 연습장을 꺼내 책상 위에 놓고 뒤에서 자기를 부른 암말을 돌아보았다. 화려한 색의 갈기에 길고 예리한 뿔, 푸른색 털가죽, 길고 날씬한 체형에 옷핀 큐티마크를 가진 암말이 쭈뼛쭈뼛 캐이댄스를 쳐다보고 있었다.


    "새시 새들스 맞지? 플뢰르 친구."


    처음 이 학교에 전학 왔을 때 캐이댄스는 플뢰르와 그 친구들과 만난 적이 있었다. 그 때 한번 이야기한 이후론 이 유니콘과는 줄곧 서먹서먹한 관계였지만, 저런 이상한 갈기를 달고 대뜸 공주님을 도와주겠다고 나선 포니를 쉽게 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네.. 그..그렇습니다. 공주님."


    캐이댄스는 한숨을 푹 쉬고 싶었다. 내가 공주님 붙이지 말라고 입이 아프게 말을 해도 애낸 안 듣는구나..


    "저.. 플뢰르랑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잠시.."


    선생 쪽을 잠시 돌아보았다. 누가 나가든 신경도 안 쓸 것 같았다. 그래서 캐이댄스는 새시의 뒤를 따라 플뢰르 드 리가 서 있는 복도로 나왔다. 복도에 서 있는 플뢰르 드 리도 새시와 마찬가지로 바짝 긴장한 눈초리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두 포니의 눈이 마주치자마자, 소위 캔틀롯 고교의 공주라는 포니는 바닥에 바짝 엎드려 싹싹 빌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공주님! 부디 용서해주세요!"


    정말 걔 맞나 싶을 정도로 평소에 보여주던 도도하고 거만한 태도는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었다. 눈에는 눈물까지 그렁그렁 매달려 있었고, 뜻밖의 상황에 캐이댄스는 두 눈을 끔뻑였다.


    "가..갑자기 왜 이래? 플뢰르! 대체 무슨-"


    "공주님 심기를 거스를 생각은 추호도 없었어요!"


    플뢰르는 앞발굽이 가루가 될 정도로 싹싹 비비면서 말을 이었다.


    "제발 사과를 받아주세요! 안 그러면 선셋 공주님이 절 노새로 만든다고 하셨고.. 그럼 가족들도 절 내쫒을 테고, 장래 모델로써의 커리어도 끝장난단 말이에요! 제가 다 잘못했어요! 그러니 제발-"


    "저 미안한데.. 무슨 일인지 차근차근히 이야기 좀 해줘?"


    바닥에 자빠져 있는 플뢰르 대신, 새시가 목례를 올리며 대신 설명을 시작했다.


    "선셋 공주님은 여기 있는 플뢰르와 수업 시간표가 약간 겹치시거든요.. 근데 지난 시간 때, 저희가..  '선셋 공주님이 드디어 샤이닝 아머에게 질려 상대를 갈아 치웠다.'라고 근거 없는 소문을 생각 없이 속닥거린 걸 선셋 공주님이 직접 들으시는 바람에 그만.... 그래서 선셋 공주님은 수업 시간이 끝나고 저희를 호되게 꾸중하시면서, 캐이댄스 공주님에게 예전에 누를 끼친 것까지 사과하고 오라고 명령하셨답니다. 안 그랬다간 저희에게 저주를 걸어.. 당나귀로... 영원히 바꿔버리신다고.."


    창백하게 겁에 질린 플뢰르의 표정과, 지금 이 뭐가 뭔지 모를 분위기만 아니라면 캐이댄스는 아마 그 자리에서 헛웃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선셋이 말로는 그랬을지언정, 실제로 그러지는 않을 거라는 걸 캐이댄스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건 좀 비약인가? 선셋이 캐이댄스를 한창 괴롭혔을 때엔 선셋이 직접적으로 캐이댄스에게 해를 입힌 적은 없긴 했지만, 전에 벅이 샤이닝 아머를 괴롭혔을 때 선셋은 캐이댄스가 말리지 않았다면 벅을 아주 맨 발굽으로 때려죽일 기세였다. 선셋이 작정하고 남에게 물리적 상해를 입히는 게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선셋의 폭력성에 대해 계속 숙고해보는 대신, 캐이댄스는 지금 눈앞의 일부터 집중하기로 했다. 그래서 캐이댄스는 살짝 웃으며 플뢰르에게 앞발굽을 내밀었다.


    "그나저나 예전에 누를 끼친 거라.. 플뢰르. 그건 네가 직접 설명해주겠어?"


    플뢰르는 캐이댄스의 앞발굽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캐이댄스의 내려 보는 듯한 시선 때문에 잠깐 멈칫거렸다. 지금 캐이댄스는 과거, 선셋이 캐이댄스를 내려 보던 것과 거의 비슷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아..그..그게요.."


    그리고 설명은 시작되었다. 전에 왜 플뢰르와 그 친구들이 캐이댄스가 캔틀롯 고등학교로 전학 오던 첫 날 보디가드가 될 것을 자처하고 나섰는지.


    "우리 딴에는 공주님의 편의를 봐드린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믿어주세요!"


    캐이댄스의 표정이 일그러지자, 플뢰르는 황급하게 해명을 시작했다.


    "공주님은 캔틀롯 출생도 아니셔서.. 이 학교에 다니는 다른 천박한 포니들을 때놓는 방법을 잘 모르실 것 같아서... 그래서..."


    "하지만, 공주님은 우리와도 어울리지 않으려고 하셨죠.."


    새시 새들이 옆에서 거들었다. 축 처진 표정에는 죄책감이 깃들어있었다.


    "그래서 공주님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의미로 공주님 곁에 인상 쓰고 붙어있는 대신... 어흠.. 다른 학생들에게 함부로 다다가지 말라고 공주님 몰래 경고를 해왔었고요.."


    "너희 때문이었구나. 다른 얘들이 나랑 말도 안 섞으려고 한게.."


    두 필의 포니는 행여나 날벼락이 떨어질까 몸을 잔뜩 움츠렸고, 사랑의 공주는 한숨을 내뱉었다.


    '어제 저녁 내가 큰소리를 좀 낸 것 때문에 선셋이 지금 애를 써주고 있구나..'


    원래대로라면 둘을 괴롭힌 선셋에게 화가 나야 정상이지만, 캐이댄스는 지금.. 어쩐지 마음 한편이 훈훈해져왔다.


    예전에 캐이댄스를 괴롭혀온 살아있던 악몽과도 같았던 암말이 또 한 번 몸소 나서서 캐이댄스의 명예를 지켜주었다. 이건 용을 한 방에 죽인 것도 아니었고, 연마의 입 안에 혀를 밀어 넣는 화끈한 광경도 아니었으며, 태양의 여신 앞에서 소리를 지르는 대담한 광경도 아니었지만.. 얼굴이 화끈해져 오는 걸 도저히 막을 길이 없었다.


    "괜찮으니까 일어나 플뢰르. 화 안 났으니까."


    캐이댄스의 용서에 플뢰르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앞으로 나랑 진짜 완만하게 지내길 원한다면 몇 가지 당부의 말을 해 둘게 있는데, 점심시간에 나랑 선셋이랑 너희 친구들이랑 같이 학교 옥상 위에서 만나지 않을래? 엿보는 포니 없이 거기서 이야기를 하고 싶거든."


    거기서 선셋에게 자기 성질을 긁었다고 괜스레 다른 포니들 괴롭히지 마라는 이야기도 해둬야지.. 캐이댄스가 모욕을 당한 걸 마치 자기가 모욕을 당한 것 같이 길길이 화를 내며 일부로 사과까지 시키다니.. 오묘한 기분이었다. 남에게 소리 지르면서 오는 죄책감은 어떻게 감당했으려나.. 


    아니.. 제발 죄책감 정도는 느껴주길.. 캐이댄스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랬다.


    노새가 될 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소식을 듣자 플뢰르는 아주 들뜬 것 같았다. 플뢰르는 사랑의 공주를 올망올망한 두 눈으로 쳐다보며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그래야죠 공주님! 새시와 어퍼 크러스트를 꼭 데리고 오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공주님. 용서해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이제 두 필의 유니콘들과 볼 일도 다 봤겠다. 캐이댄스는 교실로 들어가 책상위에 올라와있는 빈 연습장을 내려다보았다. 아까 계속 플뢰르와 새시에게 계속 정신이 팔렸던 통에 원래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기억해내느라 약간 애를 먹었다.


    '맞다.. 분석 도표를 그리려고 했었지..' 퍼뜩 생각이 든 공주는 연필을 하나 들고 종이에 여러 가지 사안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혹자가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할 것이다. 한때 캐이댄스 본마도 한 쌍의 연마들의 미래 상황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겼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언제까지나 사랑의 공주로 승천하기 전의 일... 승천 시 얻은 사랑에 대한 통찰력과 알리콘의 트인 시야로 관찰하면 누가 환상의 궁합인지 계산하는 건 반쯤 식은 죽 먹기였다.


    그래서 캐이댄스는 부지런하게 연필을 놀렸다. 우선 샤이닝 아머의 자발적으로 남을 돕는 태도와 선셋의 자부심을 대조했고, 선셋이 가지고 있는 그 주변 포니들에 대한 보호 본능과 샤이닝 아머의 연약함을 대조했다. 그리고 선셋의 자기주도적인 성격과 샤이닝의 수동적인 성격, 샤이닝의 매력과 선셋이 3년간 다른 포니들과 교류가 없었다는 점까지.. 어느덧 종이 한 쪽은 캐이댄스가 두 포니들을 관찰하면서 얻은 향후의 로맨스 관계를 예측할 자료들로 꽉 차 있었다.


    이렇게 해서 도출된 결과는... 결코 캐이댄스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선셋과 샤이닝의 관계가 지금까지 무난하게 진행되었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진행될 거라 가정해도, 선셋의 후광에 억눌려 샤이닝 아머의 존재감이 말소된다는 게 크나큰 문제였다. 둘이서 잘 될 확률은 86.3673%.. 그것도 샤이닝 아머가 선셋의 떳떳한 한 짝의 포니로 인정받을 자존심도 챙기지 못한 채 평생 불행하게 살아갈 공산이 컸다.


    그리고 둘의 상호 작용을 되짚어 봐도 걸리는 점이 많았다. 선셋은 지금 무슨 고민에 빠졌는지 샤이닝 아머를 약간 피하는 눈치였으며, 샤이닝 아머는 샤이닝 아머대로 자기가 자격이 없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선셋의 수명이 알리콘으로 승천하며 크게 연장된 것에 반해 샤이닝 아머는 여전히 필멸자 신세였다. 이 시나리오대로라면 선셋은 자기가 누군가를 좋아한 게 도리어 그 포니를 불행한 삶에 빠트렸다는 생각에, 샤이닝 아머 사후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고 영원히 외로운 삶을 살아가게 될 수도 있었다. 자기가 아끼는 포니들에게 상처를 주느니 차라리 이러는 게 낫다는 생각을 스스로 하면서 말이다.


    머릿속의 둘의 장래의 모습이 비극으로 끝나자 공주는 몸을 한번 부르르 떨었다. 이런 식으로 끝나서는 안 되는 건데...! 정말 소름끼치는 미래의 모습이라 바로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다.


    눈앞의 종이도 당장 찢어발겨 휴지통에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어쩌면 내가 잘못 계산했는지도..'


    캐이댄스는 떨떠름한 감정을 뒤로 하고 다시 도표를 쳐다보았다. 선셋과 만난 건 겨우 몇 주 전의 일이므로, 캐이댄스도 선셋을 다 파악했다고 장담하기는 힘들었다. 게다가 지금 선셋의 급격한 내면적 변화와, 그에 따른 불안정함 때문에 캐이댄스가 과도하게 넘겨짚고 있는 게 몇 가지 있을는지도 모른다. 거기에 더해, 샤이닝 아머의 가족도 미래 예측에 고려를 해봐야 했었다. 분명 트와일라잇 스파클과 선셋 쉬머 사이엔 기묘한 연결점이 있었다... 정확히 설명하긴 힘들지만, 지금 트와일라잇의 존재가 선셋과 샤이닝 아머의 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전부 다 처음에는 고려하지 않았던 요소들이었다.


    그리고 몇 가지 더, 셀레스티아 이모님의 존재가 두 커플의 향후 관계에 미칠 영향, 그리고 선셋이 이모님에게 자기가 남자친구를 사귀는 걸 필사적으로 감추려고 한다는 것도 고려대상에 추가해야 했다.


    선셋이 이모님이 자기 연애를 금지할 거라고 진지하게 믿고 있는 이 상황이 캐이댄스는 묘하게 짜증이 났다. 캐이댄스가 선셋 대신 남자친구를 사귄다는 누명을 뒤집어썼는데도 이모님은 아무 말씀도 안 하셨는데 말이다.


    물론 사랑의 공주로써 사랑을 하는 걸 이모님이 새삼스레 생각할 것도 없다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만약 이모님이 캐이댄스와 함께 샤이닝 아머를 직접 만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의문이었다. 셀레스티아 같은 오랜 세월을 살아온 포니라면 이런 가짜로 지어낸 관계 같은 건 금방 간파를 하시는 게 아닐런지..


    그리고 거기에 관해 또 어떤 생각을 하실런지.. 캐이댄스는 감히 가늠할 수 없었다.


    다른 한편으론, 이건 선셋이 어머니에게 진실을 이실직고하게 만들 기회가 될 수도 있었고, 잘만 되면 선셋이 지금 셀레스티아에게 품고 있는 공포와 적대감을 해소시킬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허위로 지어낸 관계를 보고 이모님이 크게 실망한 나머지, 캐이댄스의 사랑의 공주로써의 평판은 땅에 떨어지고 셀레스티아가 더 이상 캐이댄스를 신뢰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어... 별로 좋지 않은걸..'


    캐이댄스의 표정이 일순간 핼쑥해졌다.


    방지하려면 어떤 조치를 취하는 게 좋을까?


    선셋이 이모님께 사실을 말하도록 만든다는 건, 캐이댄스가 당초 선셋과 했던 '모든 게 다 정리되면 알아서 이야기 할 테니까 지금은 가만히 있어 달라.'는 약속을 어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선셋과 다시 험악한 사이로 돌아가는 걸 캐이댄스는 절대로 원치 않았다. 친구인 선셋을 잃어버리는 건 과거에 선셋이 캐이댄스를 한창 괴롭혔던 것보다 더 최악의 일이었다.


    물론 이건 셀레스티아 이모님이 샤이닝과 캐이댄스의 허위 관계를 간파했을 때의 가정일 뿐이다. 게다가 샤이닝 아머와 캐이댄스가 실제로 잘 맞는 궁합인지 아닌지도 아직 잘 모르지 않는가..


    캐이댄스는 인상을 쓰고 도표를 다시 돌아보았다. 선셋에 관한 정보는 오차가 좀 많을지는 모르지만, 샤이닝 아머는 상당히 알기 쉬운 포니였으므로, 자기가 한 분석에 별로 틀린 점은 없을 것이다. 캐이댄스는 최소한 이것만은 자신 있었다.


    그래서 캐이댄스는 연습장을 뒷면으로 돌린 뒤 그 빈 공간에 만약 자기와 샤이닝 아머가 사귀게 된다면(이모님의 예리함을 감안하면 절대로 어설프게 대비해서는 안됐다. 물론 실제로 일어날 일은 세상이 한번 뒤집어져도 없겠지만.)그 궁합은 얼마나 맞을지 계산을 시작했다. 이미 도출된 자료에 자기의 신상정보만 넣으면 됐으므로, 수업 끝 종이 울리기 전에 확률을 도출할 수 있었다.


    결과는... 엄청나게 심란한 결과였다.


    샤이닝 아머와 선셋의 장래가 그렇게 밝지만은 않다는 걸 알아냈을 때도 이정도로 심란하진 않았다.


    예측에 따르면, 샤이닝 아머와 캐이댄스는 98.7859%의 확률로 둘이 함께 크리스탈 궁전에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 운명이었다.  


    "아 진짜-"


    매우 아이러니하게도 이미 임자가 있는 포니가 캐이댄스와 완벽한 한 쌍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뒷장에 적힌 선셋과 샤이닝 아머의 염려스러운 장래와는 정 반대로...


    "대단하네 정말... "


    실소를 머금으며 사랑의 공주는 홀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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