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가끔 묘한 얘기를 한다
오빠. 바람에도 색이 있는 거 알아? 항상 그런 건 아닌데, 색 있는 바람이 불 때가 있어.
황사가 심한 날이었겠지.
아니야. 보통은 예쁜 분홍색이야. 어렸을 때부터 가끔 봤어.
아내는 작고 귀엽고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다
그런 얘기를 나눌 때도 아내가 그냥 마냥 귀엽게만 느껴졌다
그 날 이전까지는
아내와 함께 영화관에 가던 중이었다.
이상하게 오싹한 기분이 들어 건너편 건물을 보았는데
어떤 여자가 머리를 산발한 채 건물 꼭대기에 혼자 서 있는 것이다
온 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아슬아슬한 끄트머리에 발을 걸치고 몸을 천천히 흔들고 있었다
깜짝 놀라 조금 앞서 걷고 있던 아내를 불러 119에 신고하려던 순간, 나는 더욱 이상한 것을 보게 됐다
마치
여자의 산발한 머리카락을 누군가 와락 움켜쥔 것처럼 여자의 머리가 홱 꺾이더니,
그 손이 그녀를 왈칵왈칵 흔드는 것처럼, 여자의 몸이 끈 떨어진 연처럼 심하게 휘청거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너무나도 비정상적인 광경에 얼어붙은 나는
휴대전화를 그대로 든 채 입도 다물지 못하고, 아내를 부르지도 못했다
옥상 끄트머리에서 보이지 않는 뭔가에 의해 악몽 같은 춤사위를 보이던 여자는
마침내, 이제 질렸다는 듯 툭, 하고 건물 바깥으로 버려졌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아내에게 달려가 그녀를 껴안으며, 눈을 가리려 노력했다
그 때 아내가 말했다
어? 왜 갑자기 껴안아? 그런데 오빠. 내가 예전에 얘기했던 거 기억나? 바람에 색이 있다는 얘기 말이야.
지금이야. 지금 하늘 봐봐. 저런 건 나도 처음 봐. 굉장히 선명한 빨간색이네. 되게 빨간 바람이 불고 있어.
내가 가리고 있었던 덕분인지, 붉은 바람에 정신이 팔렸던 덕인지 아내는 그 사건을 뉴스에서만 접했고
경찰은 단순 우울증에 의한 자살 사고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날을 떠올리면 온 몸에 소름이 돋으며 등허리엔 식은땀이 나고 호흡이 가빠진다
아직까지도 아내는 가끔 산책길에 오늘도 예쁜 핑크색 바람이 불었어, 하고 말할 때가 있다
나는 소름이 돋은 팔을 뒤로 감추며 그래? 그거 예뻤겠네, 하고 반응할 뿐이지만
언젠가 아내가 또다시
피처럼 새빨간 색의 바람이 부는 것을 목격할지도 모른다
그것의 희생양이 우리 부부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