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출처 - <a target="_blank" href="http://occugaku.com/">http://occugaku.com/</a></span></div> <div><br></div> <div><b>남이 쓰던 책상</b></div> <div><br></div> <div>우리 집은 옛날에 엄청 가난해서 내가 갖고 싶은 게 있어도 하나도 사주지 못 하셨다.</div> <div>옷은 이웃집 애들이 입던 걸 물려 입었고, 간식은 별사탕 뿐이었다.</div> <div>그런 환경이었지만 제대로 의무교육은 받게 해주셨다.</div> <div>다만, 공부에 쓰는 것도 모두 남이 쓰던 걸 받은 거였다.</div> <div>태어나서 계속 남의 것만 썼기 때문에 딱히 불만은 없었지만,</div> <div>딱 하나 싫은 게 있었다.</div> <div>그건 바로 남이 쓰던 걸 받아 온 책상이었다.</div> <div>그 책상은 남이 쓰던 건데도 새것처럼 광택이 흘렀고</div> <div>서랍을 열면 목재의 향기가 스며나왔다.</div> <div>나는 그 책상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심심하면 괜시리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곤 했다.</div> <div><br></div> <div>책상을 받고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이상한 체험을 했다.</div> <div>평소처럼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오른쪽 다리에 차가운 게 닿았다.</div> <div>책을 읽던 중이라서 다리에 뭐가 닿는 건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div> <div>그냥 닿지 않도록 다리를 살짝 뺐다.</div> <div>조금 있자니 또 차가운 것이 닿았다.</div> <div>좀 기분이 나빠서 오른쪽 다리로 그 차가운 걸 안쪽으로 찼다.</div> <div>그랬더니 내 발끝에 물컹하는 이상한 느낌이 났다.</div> <div>시선은 책상 위의 책을 보고 있었지만 신경은 책상 아래 다리 끝에 집중시켰다.</div> <div>나는 오른쪽 다리를 살짝 움직이면서 그 물켱한 것을 확인했다.</div> <div>물컹한 것은 울퉁불퉁하고 여기저기 구멍 같은 게 있었다.</div> <div>부드러운가 싶었더니 딱딱한 부분도 있어서 뭔지 도통 알 수 없었다.</div> <div>발 끝으로 핥듯이 물컹한 것의 겉을 서서히 만지다가 마지막에는 윗부분에 도착했다.</div> <div>얇은 실 같은 게 가득 있단 느낌을 받은 순간,</div> <div>내 다리가 만지고 있는 게 뭔지 알게 되었다.</div> <div>살짝 몸을 굳혀 책상 아래를 보았다.</div> <div>거기엔 창백한 사내 아이가 있었다. 내 발끝은 그 아이의 머리에 닿았던 것이다.</div> <div>나는 깜짝 놀라 의자에 앉은 채로 뒤로 넘어갔다.</div> <div>하지만 얼굴은 계속 책상 아래에 있는 사내 아이를 향하고 있었다.</div> <div>사내 아이도 미동도 않고 날 보고 있었다.</div> <div><br></div> <div>일어날 수가 없어서 기듯이 하여 방에서 나왔다.</div> <div>바로 아버지에게 달려가 좀 전에 있었던 일을 울면서 말했다.</div> <div>하지만 아버지는 도통 믿어주질 않았다.</div> <div>만약 믿어 준다고 해도 새로 책상을 살 돈이 없으니 바꿀 수도 없다.</div> <div>결국 나는 초등학교를 다니며 내내 그 책상을 쓸 수 밖에 없었다.</div> <div>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면 다리에 차가운 것이 닿는 느낌은 가끔 들었지만 책상 아래를 보지 않도록 노력했다.</div> <div>아직 그 남자 애가 있으면 무서우니까.</div> <div>분명 있는 게 확실했지만 보지 않도록 노력했다.</div> <div><br></div> <div>중학생이 되어서 엄마에게 슬쩍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내가 쓰는 책상은 누구한테 받은 거냐고 </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물어보았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그랬더니 엄마가 좀 내키지 않는 다는 표정을 지으며</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그 책상은 이웃에 사는 와타루네 집에서 받은 거야"라고 알려주셨다.</span></div> <div>와타루는 나랑 동갑이고, 같은 유치원을 다닌 아이이다.</div> <div>초등학교에 입학하기 며칠 전에 와타루는 강에 떨어져서 죽었다.</div> <div>머리가 좋았던 와타루는 입학하기 전부터 공부를 했다고 한다.</div> <div>내가 사용하던 책상에서 공부하면서 앞으로 펼쳐질 학교 생활을 즐겁게 상상한 게 아닐까.</div> <div>사정을 알게 되고나니 책상 아래에 있는 와타루가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div> <div>와타루의 몫까지 공부해야지 하고 결심했다.</div> <div><br></div> <div>그 후에도 와타루는 계속 내 다리를 만졌다.</div> <div>나는 와타루가 다리를 만지면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격려하는 것만 같았다.</div> <div>와타루의 격려를 받으며 공부를 해서인지 나는 꽤 공부를 잘했다.</div> <div><br></div> <div>중학교에서 야구하는 게 유행하게 되었다.</div> <div>나도 같이 하고 싶었지만 야구 배트나 글러브를 살 돈이 없었다.</div> <div>나는 항상 그랬듯 아버지에게 부탁했다.</div> <div>그랬더니 아버지는 "조금만 기다려 봐"라고 하셨다.</div> <div>몇 개월이 지나자 아버지는 배트와 글러브를 주셨다.</div> <div>또 남이 쓰던 거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야구를 할 수 있게 되었다.</div> <div>나는 야구 멤버로 들어가서 마음껏 즐겼다.</div> <div><br></div> <div>그런데 어느 날 친구가 내 글러브를 보고 말했다.</div> <div>"그 글러브, 요시로 거 아냐?"</div> <div>요시로는 중학교에서 야구부에 소속되어 있던 친구이다.</div> <div>야구에 재능이 있어서,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주전 선수로 뽑힐 정도였다.</div> <div>그런데 최근 들어서 죽었다.</div> <div>집에 돌아가는 길에 강에 떨어져 익사했다고 한다.</div> <div>내가 사용하던 글러브가 요시로 것이란 걸 알고나니 결심했다.</div> <div>요시로 몫까지 야구를 즐기자고.</div> <div>그 때 문득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요시로와 와타루는 왠지 닮았다 싶었다.</span></div> <div>두 사람은 모두 요절한데다 사인도 그렇과, 죽은 장소도 같았다.</div> <div>그리고 두 사람의 유품을 내가 받았다.</div> <div>이런 우연이 가능한 걸까?</div> <div><br></div> <div>수 개월이 지나 다시 아버지께 부탁했다. 이번에는 tv 게임기를 갖고 싶다고.</div> <div>그랬더니 아버지는 평소처럼 "좀 기다려 봐"하고 말하셨다.</div> <div>2주 후에 아버지는 tv 게임기를 주셨다.</div> <div>또 남이 쓰던 것이었다.</div> <div>아버지에게 tv 게임을 받기 조금 전에 신문에 난 기사가 떠올랐다.</div> <div>온 몸에 한기가 들었다.</div> <div><br></div> <div>그 날 저녁 평소처럼 내 방에 앉아 공부를 하는데 말 끝에 무언가가 닿았다.</div> <div>수 년 동안 나는 죽은 와타루가 날 격려하는 거라고 생각했다.</div> <div>사실은 그게 아니었다.</div> <div>그것은 필사적으로 말해왔던 것이다.</div> <div><br></div> <div>나는 아직도 책상 아래를 볼 수가 없다.</div> <div><br></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