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출처 - <a target="_blank" href="http://occugaku.com/">http://occugaku.com/</a></div> <div><br></div> <div><b>할아버지와의 비밀</b></div> <div><br></div> <div>나는 철이 들 무렵 영감이 강했다.</div> <div>말이 트이고 부터는 남들이 보지 못 하는 사람들과 놀곤 했다.</div> <div>사실 살아 있는 사람과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사람을 구분할 수가 없었다.</div> <div>생판 처음 보는 아저씨가 현관에서 들어와도 아무도 모르길래</div> <div><br></div> <div>'아저씨가 저기 서 있어' 라고 하면</div> <div>'그런 사람이 어딨니"라며 혼만 났다.</div> <div>그러다보니 혼나기 싫어서 조금씩 과묵해졌다.</div> <div><br></div> <div>하지만 유일하게 내 편이었던 사람이 있는데, 바로 우리 할아버지였다.</div> <div>같이 걸어갈 때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남자가 있었는데, 온 몸이 회색에 얼굴은 흙빛이었다.</div> <div>그리고 등에는 검은 것이 딱 달라붙어 있었다.</div> <div><br></div> <div>할아버지에게 '저 사람 싸웠나? 왜 검은 걸 지고 있지?"하고 물었더니</div> <div>"저런 거 빤히 보면 못 쓴다. 잘 구별해야지.</div> <div> 사람은 그림자가 있지만, 저런 건 그림자가 없잖이. 아직 살아는 있지만서도..." 라고 하셨다.</div> <div><br></div> <div>다시 잘 살펴 봤더니 정말 그림자가 없었다.</div> <div>그리고 뒤에서 바람이 불어왔는데도 향 냄새 같기도 하고 뭔가 썩은 내가 진동을 했다.</div> <div>스쳐지나갈 때는 냄새 때문에 토했던 기억이 난다. </div> <div><br></div> <div>그런 것을 수 없이 보면서 할아버지에게 여러가질 배울 때마다</div> <div>'여기엔 다가가면 안 돼'</div> <div>'저 사람에겐 다가가면 안 돼'</div> <div>라는 식으로 점점 터득해 갔다.</div> <div>그리고 할아버지 외의 사람에게는 말해선 안 된다는 것도.</div> <div><br></div> <div>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초 2, 3학년 쯤) 여름 방학이 되어서 엄마의 언니, 그러니까 이모 집에 놀러 가게 되었다.</div> <div>(그 무렵 할아버지는 이모 집에서 살고 계셨다)</div> <div>마침 동년배가 둘 있어서 즐겁게 놀았는데,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그러다 어느 날 대낮에 더위 때문에 코피가 났다.</span></div> <div><br></div> <div>이모 집에 가서 누워있으라며 어느 방으로 데리고 가려고 하던데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왠지 느낌이 왔다.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여긴 '다가가면 안 되는' 곳이라고.</span></div> <div><br></div> <div>싫다고 하긴 했지만 애가 하는 소리를 들어줄 리가 만무하다.</div> <div>혼자서는 못 있겠기에 뜰에 계시던 할아버지를 불러서 같이 자자고 했다.</div> <div>'뭔 일 생겨도 할부지가 있으니까 괜찮어'</div> <div>라고 하셔서 안심했다. 어느 틈엔가 잠들었던 것 같다.</div> <div><br></div> <div>얼마나 잤을까, 눈을 떴더니 이상한 한기가 들고 향 내음이 났다.</div> <div>큰일 났다, 무섭다고 생각이 들어 할아버지를 봤더니 푹 주무시고 계신다.</div> <div>깨우려고 했더니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div> <div>목소리도 겨우 새어나오는 정도였다.</div> <div>그래도 할아버지를 계속해서 불렀다.</div> <div><br></div> <div>그 때 천천히 장지문이 열리면서 나온 것.</div> <div><br></div> <div>목과 오른팔, 왼쪽 무릎에서 아래가 없고 전쟁 중에 입었던 건지</div> <div>매우 낡아서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화상으로 문드러진 것이 기어서 내 발목까지 왔다.</div> <div><br></div> <div>그것은 내가 덮고 있던 여름 이불을 천천히 당겼다.</div> <div>몇 번이나 할아버지를 불렀을까.</div> <div>"할아버지 일어나!" 하고 새어나오는 소리로 부른 순간</div> <div>"뭐시여?"하고</div> <div>날 보던 할아버지 얼굴은 타서 문드러지고, 피부는 찢어지고 한쪽 눈과 코가 없는...</div> <div>지금 내 이불을 당기는 그것의 얼굴이었다.</div> <div><br></div> <div>아마 순간적으로 기절했던 것 같다.</div> <div>하지만 '아직 멀었어...' 라는 낮고 묘한 웃음이 섞인 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렸을 때</div> <div>그것의 몸이 반 이상 내 몸에 올라타고 있었다.</div> <div>그것의 피와 내 땀이 섞여서 끈적거리는 끔찍한 감촉이 느껴졌다.</div> <div><br></div> <div>그때 갑자기 엄청난 박력으로 경을 외는 소리가 들렸다.</div> <div>울면서 옆으로 할아버지를 보았더니, 무서운 표정을 하고 정좌하여</div> <div>이쪽을 보면서 처음 듣는 경을 외우고 계셨다.</div> <div>그랬더니 그것이 혀를 차면서 "썩을 놈..." 같은 소릴 하더니 소용돌이 연기로 빨려들어갔다.</div> <div><br></div> <div>그 후엔 할아버지한테 엉겨붙어서 펑펑 울었다.</div> <div>울음 소리를 듣고 달려온 숙모에게 할아버지는 '악목을 꿨나보다'라며 얼버무렸다.</div> <div><br></div> <div>조금 진정이 되자 '그 경은 뭐야?'하고 할아버지에게 물었더니</div> <div>"이 할비도 모르겄다, 그냥 입에서 나온 소리여. 조상님이 살려줬나부다' 라고 하셨다.</div> <div><br></div> <div>그 후 둘이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뜰 잡초를 뽑았는데</div> <div>웬걸 내가 판 곳에서 나무 패가 나왔다.</div> <div>할아버지를 불렀더니 안색이 변해서 달려오시더니 전부 파내셨다.</div> <div>그랬더니 몇 개의 패에 뭔가 써 있고, 못이 잔뜩 박혀 있었다.</div> <div><br></div> <div>"넌 보지 말그래이. 만지지도 말고" 하시더니, 뒷 소각장에 가지고 가셨다.</div> <div>나중에 뭐라 쓰였던 거냐 물어봤더니 아이에 대한 원한이 빼곡히 쓰여 있었다고 한다.</div> <div><br></div> <div>초등학교 6학년 막바지인 봄에</div> <div>할아버지가 위암 말기인데,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마지막까지 할아버지는 모르시게 하라고 가족들이 그랬지만</span></div> <div>(지금 생각해보니 초등학생한테 너무한 부탁 아닌가)</div> <div>매일 혼자 병문안을 갔는데, 그 때마다 내가 못 참고 울음을 터트리니까 완전 들통났다.</div> <div>아니, 할아버지는 처음부터 자신이 머지 않았단 걸 아셨던 것 같다.</div> <div><br></div> <div>"이 할비가 저 세상 갈 때는 그 필요 없는 능력도 가지고 갈 팅께 할비 없어도 암 걱정 마라"</div> <div>라고 자상하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div> <div><br></div> <div>그리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십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div> <div>이상한 장소에 가거나 사람들에게서 향 냄새나 부패한 냄새를 맡아서 두통을 느낀 적은 있지만</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그 이상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span></div> <div><br></div> <div>이제 결혼하고 아이도 생겼는데</div> <div>장남이 어릴 때 나랑 똑같은 행동을 가끔 하는 걸 볼 때마다</div> <div>앞날을 생각하니 등줄기가 오싹한다.</div> <div><br></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