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어려서부터 난 할머니 손에 키워졌다.</p> <p> <br></p> <p>부모님께서 사고로 일찍 떠나시는 바람에 시골 할머니 집에 살게 된 것이다.</p> <p> <br></p> <p>대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대략 몇년간을 그 오지나 다름없는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p> <p> <br></p> <p>다합쳐 봐야 20가구가 넘지 않는 그 작은 마을은 하나의 공동체였고 너무도 자유로웠다.</p> <p> <br></p> <p>어른들이 일하러 가면 아이들은 나이가 제일 많은 형누나들 통솔하에 제법 먼거리에 있는 분교로 통학했고</p> <p> <br></p> <p>학교가 끝나면 산과 들을 누비며 놀았다.</p> <p> <br></p> <p>부모님이 늦으시는 날엔 아무렇지 않게 옆집에 가서 밥을 얻어먹곤 했다.</p> <p> <br></p> <p>자유롭고 건강한 분위기에서 마음껏 자랄 수 있었지만 마을에는 아주 중요한 규칙이 있었다.</p> <p> <br></p> <p>해가 떨어지고 난 뒤엔 절대로 혼자 돌아다니지 말 것.</p> <p> <br></p> <p>그리고 늦은밤 누가 찾아오더라도 절대 문을 열어주지 말 것.</p> <p> <br></p> <p>이 규칙엔 아이도, 어른도 예외가 없었다.</p> <p> <br></p> <p>당시 시골마을 분위기에 맞지 않는 조금 의아한 규칙이었다.</p> <p> <br></p> <p>그 이유에 대해 물었을 때 동네 형들은 이렇게 말해주었다.</p> <p> <br></p> <p>“밤이 되면 ‘득신이’가 돌아다니거든.”</p> <p> <br></p> <p>생각해보면 할머니께서도 내가 말을 듣지 않거나 떼를 쓰면</p> <p> <br></p> <p>득신이가 잡아간다는 말을 해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p> <p> <br></p> <p>당시엔 그게 무엇인지 몰랐지만 아무튼 ‘굉장히 무서운 녀석...’ 이라는 생각을 했다.</p> <p> <br></p> <p>사실 다들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p> <p> <br></p> <p>호랑이라거나 귀신, 도깨비 등 이름만 다를 뿐 아이들이 떼를 쓸 때마다 어른들이 의례 사용하던 방법이니까.</p> <p> <br></p> <p>나 역시 철이 들어감에 따라 그걸 거짓말로 생각했지만 어른들이나 형, 누나들은 이상할 정도로 진지했다.</p> <p> <br></p> <p>해만 떨어지면 애어른 할것없이 모든 사람들이 집으로 들어갔고, </p> <p> <br></p> <p>혹여나 이동할 일이 있으면 세사람 이상씩 모여 다녔으며 어지간 해서는 다른 집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p> <p> <br></p> <p>그 덕에 밤만 되면 불빛하나 없는 마을은 그야말로 침묵에 잠겼다.</p> <p> <br></p> <p>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년에 한번꼴로 마을에는 꽃상여가 들어섰다.</p> <p> <br></p> <p>듣기로는 늦은밤 혼자 화장실을 가다가... 혹은 술취한채 늦게 집으로 돌아가다가 득신이를 만났다고 한다.</p> <p> <br></p> <p>그러다 보니 마냥 어른들의 겁주기 용으로만 생각할 수 없었다.</p> <p> <br></p> <p>언젠가 동네형에게 득신이에 대해 진지하게 물어본적이있다.</p> <p> <br></p> <p>“근데 형, 득신이가 진짜 뭐에요? </p> <p> <br></p> <p>대체 뭐길래 밤에 밖에도 못돌아다녀요? </p> <p> <br></p> <p>잘못 만나면 죽는다는건 아는데...”</p> <p> <br></p> <p>형은 주변을 조심스레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낮추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p> <p> <br></p> <p>“득신이란건 말이야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래.</p> <p> <br></p> <p>누군 혼을 빼간다고 하고 누군 저승으로 데려간다는데 뭐 다 같은 말이겠지.</p> <p> <br></p> <p>저 뒷산엔 오래전부터 득신이 한 마리가 살고 있어서</p> <p> <br></p> <p>밤만 되면 마을로 내려와 잡아먹을 사람을 찾는다는 거야.</p> <p> <br></p> <p>득신이라는게 사람을 홀려버리는 녀석이라 혼자다니면 절대 안되고</p> <p> <br></p> <p>두사람 세사람이 같이 다녀야 한 대.</p> <p> <br></p> <p>이거 괜히 장난하는거 아니니까 너도 명심해.</p> <p> <br></p> <p>우리 옆집 상철이 아저씨나 촌장님 막내아들 죽은거 너도 알지?</p> <p> <br></p> <p>시체가 갈가리 찢겨서 살덩어리 몇 개만 남았다잖아.”</p> <p> <br></p> <p>그 외에도 몇가지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p> <p> <br></p> <p>득신이 같은 괴물은 초대받지 않는 한 집으로 들어오지 못하니 집안은 안전하다는 것.</p> <p> <br></p> <p>그리고 사람이 가장 원하는 무언가의 모습을 한 채 사람을 꾀어낸다는 것.</p> <p> <br></p> <p>그러니 절대 유혹에 넘어가면 안된다는 것.</p> <p> <br></p> <p>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고전 설화에 나오는 두억시니, 혹은 어둑서니의 한 종류가 아닐까 생각한다.</p> <p> <br></p> <p>다만 누군가의 모습과 목소리로 꾀어내는 것은 창귀나 장산범과 비슷했다.</p> <p> <br></p> <p>아무튼 나 역시 어른들이나 형들의 말대로 규칙을 잘 지켰다.</p> <p> <br></p> <p> <br></p> <p> <br></p> <p> <br></p> <p>대학에 들어가기 전, 그러니까 고등학교 졸업을 목전에 둔 어느날이었다.</p> <p> <br></p> <p>이제 얼마뒤면 할머니를 떠나 대학 기숙사에 가야한다는 생각에 싱숭생숭하던 시기였다.</p> <p> <br></p> <p>‘독립해서 혼자 살면 좋기야 하겠는데, 할머니 혼자 적적하게 계실거 생각하니 좀 그러네...’</p> <p> <br></p> <p>할머니는 어릴때 돌아가신 부모님 대신 날 키워준 유일한 내 가족이었다.</p> <p> <br></p> <p>당연히 더욱 각별할 수 밖에 없었다.</p> <p> <br></p> <p>복잡한 감정에 잠을 이루기 어려웠지만 대학에 가고 나중에 직장에 취직하더라도 자주 찾아뵐거라 다짐하고는 늦게 잠이 들었다.</p> <p> <br></p> <p> <br></p> <p> <br></p> <p> <br></p> <p> <br></p> <p>‘똑똑똑’</p> <p> <br></p> <p>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난 힘겹게 눈을 떴다. </p> <p> <br></p> <p>묘하게 몽롱한 기분을 느끼며 귀를 기울여 보니 다시 한번 노크소리가 들려왔다.</p> <p> <br></p> <p>‘똑똑똑’</p> <p> <br></p> <p>“누구세요?”</p> <p> <br></p> <p>무심코 대답을 한 나는 번뜩 정신을 차렸다.</p> <p> <br></p> <p>우리마을에선 늦은밤 다른집에 찾아가거나 문을 두드리는 것은 금기다.</p> <p> <br></p> <p>그때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p> <p> <br></p> <p>“기철아....”</p> <p> <br></p> <p>오싹함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p> <p> <br></p> <p>아는 목소리였다. 오래전이라 기억이 희미했지만 확신 할 수 있었다.</p> <p> <br></p> <p>분명 돌아가신 아버지의 목소리였다.</p> <p> <br></p> <p>돌아가신 아버지가 내방 문을 두드리며 내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p> <p> <br></p> <p>“기철아. 애비다. 문 좀 열어다오...”</p> <p> <br></p> <p>정신을 차려야 했지만 그리운 목소리를 들은 순간 눈에 눈물이 맺혔고</p> <p> <br></p> <p>머리는 자꾸 몽롱해 졌다.</p> <p> <br></p> <p>무심코 문을 열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지만 감정이 소용돌이 치는건 막을 수 없었다.</p> <p> <br></p> <p>고개를 돌려버리려 해도 창호문너머 비치는 그리운 아버지의 실루엣에 자꾸만 눈이 갔다.</p> <p> <br></p> <p>“기철아. 밖이 춥구나. 어서 문좀 열어다오. 네 엄마도 같이 왔단다. 어서 열어달래도..”</p> <p> <br></p> <p>곧이어 나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와 함께 어머니의 그림자 역시 문에 비쳤다.</p> <p> <br></p> <p>난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고는 바닥에 엎드렸다.</p> <p> <br></p> <p>그동안 씩씩하게 자랐다고 자부했지만 안에서부터 무언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p> <p> <br></p> <p>당장이라도 문을 열고 나가 두 분을 마음껏 안아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p> <p> <br></p> <p>“기철아... 어서 열어다오... 우리가 보고 싶지 않았던 게냐?”</p> <p> <br></p> <p>‘정신차려... 저건 괴물이잖아...’</p> <p> <br></p> <p>그렇게 다짐했지만 터져 나오는 울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p> <p> <br></p> <p>그러는 동안 밖에 있는 목소리는 점차 격하게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p> <p> <br></p> <p>‘쿵쿵쿵!’</p> <p> <br></p> <p>“어서 열지 못해!! 밤새 여기 세워둘 셈이냐?”</p> <p> <br></p> <p>이번엔 귀를 막고 구석에 웅크렸다.</p> <p> <br></p> <p>만약 내가 조금만 더 어리고 철이 없었다면, </p> <p> <br></p> <p>아니 적어도 주변 사람들에게 수십, 수백번 주의를 받지 않았다면 정말 문을 열었을지도 모른다.</p> <p> <br></p> <p>그 순간은 누구든 이성적으로 생각 할 수 없다.</p> <p> <br></p> <p>가짜임을 알면서도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p> <p> <br></p> <p>난 귀를 막은채 이를 악물고 소리를 무시하며 수없이 되뇌었다.</p> <p> <br></p> <p>‘저건 가짜야. 저건 가짜라고. 두분은 돌아가셨어. 저건 그냥 괴물이야...’</p> <p> <br></p> <p>어느덧 문은 부서질 듯 흔들려대었고 목소리는 점차 이상해 지더니</p> <p> <br></p> <p>마치 여러명이 동시에 말하는 것처럼 들려왔다.</p> <p> <br></p> <p>“문열어!!!! 문!!!!! 문열어!!!!”</p> <p> <br></p> <p>또다시 공포심이 찾아왔다. </p> <p> <br></p> <p>밖에 있는 무언가가 당장이라도 문을 부수고 방안으로 들어올것만 같은 기분이었다.</p> <p> <br></p> <p>한참동안을 이불 속에서 덜덜 떨다가 아침이 되어서야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p> <p> <br></p> <p>밤사이 흘린 땀으로 온몸이 푹 젖어 있었고 피로감과 긴장감 때문에 완전히 녹초가 되어 그대로 앓아 눕고 말았다.</p> <p> <br></p> <p> <br></p> <p> <br></p> <p>“득신이가 왔다 갔구만....”</p> <p> <br></p> <p>이장님은 누워있는 내게 말했지만 난 대답하지 않았다.</p> <p> <br></p> <p>할머니께서 걱정스레 날 간호해 주고 계셨기에 괜한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기도 했지만</p> <p> <br></p> <p>우습게도 막상 지나고 나니 공포심이 물러가고 그리움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p> <p> <br></p> <p>어제 본 부모님의 그림자, 그리고 목소리. </p> <p> <br></p> <p>가짜일 뿐이라고 지워버리려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p> <p> <br></p> <p>그때 만약 문을 열었으면 부모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p> <p> <br></p> <p>자꾸 터져 나오는 나쁜 생각을 애써 무시 한 채 눈을 감았다.</p> <p> <br></p> <p>혹여나 꿈에서라도 나타날까 하는 헛된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p> <p> <br></p> <p>그 이후로 득신이가 다시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p> <p> <br></p> <p> <br></p> <p> <br></p> <p> <br></p> <p>시간이 흘러 난 할머니와 헤어져 대학교 기숙사에 들어갔다.</p> <p> <br></p> <p>“걱정하지 마요. 시간날 때마다 내려올게. </p> <p> <br></p> <p>밥도 꼬박꼬박 먹고 잠도 잘잘테니까 할머니도 건강히 계셔야되요? 알겠죠?”</p> <p> <br></p> <p>시간 날때마다 내려오겠다는 약속을 하고는 마을을 떠났다.</p> <p> <br></p> <p>첫 학기는 제법 바쁘게 보냈다.</p> <p> <br></p> <p>도시생활에 적응 하랴 학교생활에 적응하랴 간단치 않았다.</p> <p> <br></p> <p>그렇게 한두달 정도 지나 슬슬 학교생활에 적응해 갈 때 쯤, 마을 이장님의 연락을 받았다.</p> <p> <br></p> <p>[기철아. 큰일이다. 너희 할머니... 문을 여신 모양이구나...]</p> <p> <br></p> <p> <br></p> <p> <br></p> <p>고향집에 차려진 할머니 영정사진 앞에 쓰러져 오열하는 내게 이장님께서 말씀하셨다.</p> <p> <br></p> <p>“네 잘못이 아니란다. 그저 손주가 몹시도 그리우셨던 게지.... 죽은 아들내외 목소리는 그리 잘 참아내시던 분이 네가 떠나자마자 이럴줄은...”</p> <p> <br></p> <p>이장님이 말에도 난 나 자신을 용서 할 수 없었다.</p> <p> <br></p> <p>전화라도 한번 더 드리고 주말에 무리를 해서라도 찾아왔다면...</p> <p> <br></p> <p>그랬다면 할머니가 득신이에게 넘어가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p> <p> <br></p> <p>죄책감과 그리움과 슬픔이 뒤섞여 당장이라도 가슴이 터져나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p> <p> <br></p> <p>장례를 치르고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는 동안에도 뒤틀리는 감정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p> <p> <br></p> <p>며칠을 인형처럼 멍한 상태로 보냈다.</p> <p> <br></p> <p>시간이 지나 어느정도 마음이 정리된 나는 대학을 포기하고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p> <p> <br></p> <p>이곳에서 집을 지키며 마을일을 하면서 평생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p> <p> <br></p> <p>하지만 아직도 나쁜 마음을 버리지는 못하고 있다.</p> <p> <br></p> <p>만약 나중에라도 늦은밤 방문을 두드리는 노크소리가 들린다면 난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을까?</p> <p> <br></p> <p>그것이 부모님일지 할머니일지는 모르지만 행여나 가짜일 지라도 꼭 만나고 싶었다.</p> <p> <br></p> <p>만나서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말하고 할머니의 손과 얼굴을 쓰다듬으며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다.</p> <p> <br></p> <p>비록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p> <p> <br></p> <p>때문에 오늘까지도 혹여 그것이 내방으로 찾아오지 않을 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과 불안감을 가진채 잠자리에 들곤 한다.</p> <p> <br></p> <p> <br></p> <p> <br></p> <p> <br></p> <p>by. neptunuse</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