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기령은 크게 한숨을 쉬며 몇 번이고 읽었던 책을 다시 뒤적거렸다. 이장이 이 책을 자신에게 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책에는 역귀를 없애는 방법이 상세하게 나와 있었다. 게다가 주술이 통제를 벗어났을 때 사람들이 역귀로 변할 수 있다는 것과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까지 찾을 수 있었다. 그 방법을 모른다면 역귀를 잡는다고 설쳐봐야 애꿎은 경비대만 죽어나가는 것이 당연했다.</p> <p> <br>하지만 기령은 이장이 왜 방법을 알면서도 자신에게 이야기 해주지 않았는지도 알 것 같았다. 역귀를 잡는 방법이라는 것이 보통이라면 절대 할 수 없을만큼 끔찍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확히 안다고 해서 쉬이 쓸 수 있는 방법도 아니었다. 기령은 어금니를 악물고 고민을 거듭했다. 하지만 그 자신 역시 답은 하나뿐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br><br>“부대장 밖에 있나?”<br><br>기령의 호출에 곧 경비 부대장이 방안으로 들어왔다.<br><br>“예 대장님. 부르셨습니까?”<br><br> “그래. 마을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다보면 병자촌이 하나 있는걸로 아는데 맞는가?”<br><br> “예. 예전에 역병을 앓았던 사람이나 부모 잃은 아이들이 모여있는 곳입니다.”<br><br> “그래. 규모가 어느 정도되나?”<br><br> “애들까지 하면 사오십정도 될겁니다. 무슨일 있으십니까?“<br><br>부대장의 질문에 기령은 잠시 침묵을 유지하다가 입을 열었다.<br><br>“자네. 나를 얼마나 믿는가?”<br><br>갑작스러운 말이었지만 부대장은 곧바로 대답했다.<br><br>“대장님은 우리마을의 수호자나 다름 없습니다. 오래도록 마을발전에 힘써주시고 언제나 앞장서서 싸워주셨습니다. 그리고 대장님이 안계셨다면 저희 마을은 진작에 역귀 소굴이 되었을 겁니다. 최근들어 역귀놈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대장님은 분명 잘 해결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니 어떤 명령이든 어떤 작전이든 목숨을 걸고 따르겠습니다.“<br><br>그 말을 들은 기령은 결정을 내린 듯 부대장에게 명령을 내렸다.<br><br>“좋아. 자네처럼 나를 전적으로 믿어줄 사람들이 더 필요하네. 무예가 출중하고 입이 무거운 경비대원들을 비밀리에 모아주게. 그리고 내일 새벽, 아무도 모르게 마을 밖으로 나갈 준비를 시키게. 단단히 무장시키는것도 잊지말고.“<br><br>부대장은 목례를 한 뒤 밖으로 나갔다.<br><br><br><br><br>다음날 새벽 기령과 부대장을 포함한 이십여명의 사람들이 병자촌 앞에 모여있었다.<br><br>“정찰갔던 녀석들 말로는 거의 대부분이 어린아이거나 노인들이랍니다. 젊은이는 몇 없고 그나마도 병자들이라고 합니다.“<br><br>기령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 모두에게 말했다.<br><br>“지금 너희들이 여기 모인 이유가 궁금할거다. 하지만 난 너희들에게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도저히 못하겠다는 녀석들은 움직이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건데 이 일은 우리 마을을 위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다. 명백하게 선을 행하는것이니 조금도 의심할 필요 없다. 게다가 내말만 잘 따라준다면 너희들이 충분히 만족할 만한 보상을 약속하겠다.“<br><br>경비대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때 기령이 병사들 한명한명을 가르키며 말했다.<br><br>“거기 너. 어머님이 아프신건 잘 알고 있다. 이일만 잘 되면 어머님을 좋은 곳에 모시고 잘 보살펴드릴 수 있을거다. 그리고 너. 혼인을 앞두고 많이 힘들어 하고 있다고 들었다. 너 역시 새색시와 살 수 있는 좋은 거처를 마련할 수 있을거다. 이 녀석들뿐 아니다. 너희들 모두에게 부와 명예를 가져다 주마. 그리고 후대에 우리의 이름이 길이길이 남아 칭송 받을걸 약속한다.“<br><br>병사들의 기대감 어린 표정은 기령의 다음 말에 싸늘한 표정으로 바뀌었다.<br><br>“지금부터 마을에 들어가 어린아이들을 모두 산채로 잡아온다. 방해하는 노인과 병자들은 죽여도 좋다. 하지만 아이들은 절대 건들지 말고 모두 생포해 와야한다.“<br><br>어떤일이 있을지 대략 예상했던 부대장조차 그말을 듣고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br><br>“움직이지 않는다 해서 불이익을 주지는 않겠다. 하지만 날 믿고 따라 준다면 분명 후회하지 않게 해주겠다. 결심이 선자는 복면을 쓰고 나를 따라라.“<br><br>기령은 칼을 빼어들었다. 그리고 복면을 착용하고는 마을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누구하나 선뜻 입을 열지도 움직이도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물러선 것은 아니었다. 모두 그 자리에서 이리저리 눈만 굴려대고 있었다. 그 와중에 부대장이 가장 먼저 기령의 뒤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복면을 꺼내쓰고는 마을로 향했다. <br><br>그게 신호라도 되는양 한명 두명 그렇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주저하는 이도 있었고 고민하는 이도 있었지만 잠시 후 경비대들이 서있던 자리엔 그 누구하나 남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병자촌엔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고 해가뜨기 전에 사방에서 거대한 불길이 솟아올랐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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