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뇽하세요.
새벽에 잠이 안와서 이것저것 하다가, [자존감이 낮아지게 만드는 회사] 라는 글(타 사이트)을 접하고,
제 경험담이 생각나서 적어보고자 합니다.
살이 빠질 기미가 안보이므로, 음슴체할게용.
약 2년 전이었음.
회사에 팀장급 개발자를 구하던 와중에 40대 초반인 경력직 개발자분이 오시게 됐음.
바로 옆 회의실에서 면접을 보시고, 또 사장님과 상담을 할 때만 해도, 굉장히 말도 잘하시고
무언가 한 마디 시켜놓으면 술술 늘어놓는 그의 언변에, 엄청난 기술의 소유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 했음.
하지만 어느 IT회사도 마찬가지겠지만, 뚜껑은 열어봐야 알고, 실력은 직접 시켜봐야 알기 때문에
모두들 쉽사리 판단하지 않는 분위기였음.
이런 곳의 특성상, 여러가지 아는 거 많고 다 해 봤다는 사람치고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 없기 때문에
조금 특이하기도 했던 그 분의 경력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음.
이것도 할 줄알고, 저것도 할 줄 알고, 이것도 해 봤고, 저것도 해 봤고.
막힘없는 그의 언변에 사장님은 채용을 결정하셨고, 곧 출근하셨음.
내 자리에서는 면접실로 오고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잘 보이기 때문에 나는 어렵지 않게 그의 얼굴을 보았음.
모든 면접과 상담을 끝나고 나오는 그 사람의 얼굴.
나는, 사람을 잘 본다거나, 눈썰미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나름 몇 년간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뭔가 보이긴 했음.
첫 인상이 영 좋진 않았음. 뭐라 설명할 순 없지만 아,, 오래 못 가겠구나,, 이런 느낌?
그 분의 직함은 '팀장'이 되셨고, 며칠 후부터 출근을 하기 시작하셨음.
흡연과 커피를 주로 즐기셨고, 흡연을 위해 자리를 자주 비우셨음.
희안하게도 점심식사 시간이 끝난 후 1시간 동안은 항상 자리에 없음. 늘 그랬음.
점심식사를 마치고 업무를 시작하려고 팀장님을 찾으면 항상 자리에 없었음.
처음엔 은행을 간다거나 잠깐 볼일을 보러 간다고 하길래 그러려니 했는데,
그 이후론 이유도 없이 그냥 자리에 없었음. 나중엔 나보다 직급도 높으신 분이라 아예 관심을 끊었는데,
문제는 사장님이 찾을 때도 안계시니 조금 당황스러울 때도 있었음.
사장님은 그런 것을 문제시하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사장님도 그냥 그러려니 하셨었음.
그런데, 들어오시고 또 2~3시간 정도는 흡연하러 나가셔서 자리 안 계시고, 혹은 자리에 계셔도 꾸벅꾸벅 졸고 계신 게 자주 목격이 됨.
늘 칼퇴도 하시고, 출근시간도 정시가까이 되서 오시는데, 항상 피곤하신가?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됨.
(추후 알게된건, 점심시간마다 1시간씩 비우신건, 점심식사시간을 풀로 채우고, 혼자 +1시간 동안 운동하고 오심..)
딱히, 성격적 결함이나 또라이기질은 없었음. 오히려 팀원들과 잘 화합해서 일을 잘 하고자 하셨음.
그런데 문제는 나의 롤을 대하는 데에서 문제가 생김.
내가 이 회사를 오고 사장님께 들었던 가장 인상적인 말이 있음.
회사업무의 특성상 나의 롤에 대한 의미가 희미해질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나 혼자 그 롤을 차지하고 있지만,
사장님께서는 절대 없어서도 안되는 자리이고,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해 주셨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존재라고, 주변에서 조금 소홀하게 하더라도 서운해 하지 말라고 하셨음.
설령, 이 말이 진심이 아니라도, 날 잡아세우기 위한 변명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그저 고마웠음.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는 참으로 힘이 되는 한 마디여서 그 말 때문에라도 그뒤로도 나는 사장님을
조금더 성의있게 대할 수 있었음. 회사에 대한 애정도 조금 만들어지기도 했고.
그래서 그 자부심 하나로 자리를 지킬 수 있었음. 그 롤이 방대한 회사로 옮길 수도 있었지만 좋은 점이 많은 회사이기 때문에
그만두긴 싫었음.
그런데 나의 이런 자부심을 이 팀장님은 자주 뭉게주었음.
한 번은, 남자분들 흡연하는 장소로 나를 불러서 데리고 갔음. 굳이 담배피는 곳으로 데려가서 내 앞에서 담배를 뿜으며
딴에는 편하게 얘기한답시고 자세를 잡으며 얘기를 시작했음.
그래도 최대한 나도 마음을 열고 얘기를 시작했는데. 나는 기분이 불쾌해졌음.
- oo씨가 하는 일이 정확히 뭐야?
+ 아, 저는~, A도 하고, B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C까지 커버를 합니다. 근데 아직 이 회사에서 C까지 필요로 한 경우는 없었기 때문에
아직은 A와 B를 중점으로 하고 있어요.
- 음.그렇구나. 않게 나는 oo씨가 어디까지 관여하고 있는지 잘 몰라서, oo씨한테 어디까지 일을 줘야할지 잘 모르겠어. 혹시 내가 oo씨한테
너무 과한 업무를 주거나 맞지 않은 일을 주거나 할 땐, 주저하지 말고 내게 말해줘~ 그럼 같이 머리맞대고 하면 되니까~
+ 아~ 네..ㅎ
...여기까진 괜찮았음. 뭐 주거니받거니 하는 정도였음. 근데 그 다음에 이런 말을 붙임.
- 근데 지금 oo씨가 하는 거는, 보통 대형 XX회사 같은 경우는 그냥 신입들 오면 몇 달 훈련시키는 의미로 일 던져주고
적응시킬려고 시키는 게 보통이거든~ 그래서 경력 조금 쌓이면 그런 일은 잘 안 해~ 왜냐면 그냥 노가다거든~
너무 쉬운거라 조금만 배우면 어렵지 하는거라~ 보통 졸업하고 막 들어온 애들 바로 시키는 일이야~
근데 그걸 oo씨가 한다고 하니까, 뭐 다른 의미가 있겠지~ 난 잘 모르겠지만.
뭐하자는거지? - 이런 생각이 들었음.
이런 얘기를 내게 굳이 하는 이유가 뭘까. 그래서 내가 지금 겁나 쉬운 일 하고 있고 그거 별거 아니다. 이런건가?
근데 저 맥락의 말을 방향만 틀어서 계속 하는거임.
문제는 저 싫말들을 사장님하고 함께 회의하는 자리에서도 하고, 다른 사람있는 자리에서도 하고, 업무회의가 아닌 사적담소 나누는 자리에서도 함.
나는 표정관리 잘 못함.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이야기가 들리면 그냥 고개를 숙이고 수첩만 뒤적거리거나
다른 생각을 하며 표정관리에 노력을 했음. 내가 그 자리에서 표정이 얼그러지는 게 보이면,
그 팀장의 말을 인정하게 되는 거 같아서, 나 스스로 인정하기 었음. 무엇보다 내 롤은 그 팀장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었음.
하지만 그 팀장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주기 싫었음. 어차피 오래 일할 사람 같지 않아 보이는데 긴 이야기 하기가 싫었음.
그냥 말 섞기 싫었음. 뭘 찾아 사무실을 헤매도 도와주기 싫었고, 뭘 물어봐도 도와주기 싫었음.
그랬더니 자연스럽게 그 팀장과 멀어지게 되었고 팀장은 더 이상 그런 얘기를 꺼내진 않았음. 속으로 생각하든 말든 상관없었음.
그냥 최대한 마주보고 얘기안하는 게 나으니까, 그 땐 그런대로 그렇게 지냈음.
하지만 고맙게도 사장님은 그 팀장의 그 말을 부정하시고 매번 정정해주셨음.
- o팀장이 생각하는 건 좀 아닌 거 같아요. oo씨가 하는 부분은 그렇게 보일 순 있을지 몰라도 그리 간단한 부분이 아니에요.
전체적인 뼈대를 구성하는 게 그리 쉬운건 아니에요. 그럼 o팀장은 그거 해 보셨어요?
라고 했더니 팀장대답 - 아이 저는 그거 하는 사람은 아니구요~ 전체적인 총괄을 하고 관리를 하기 때문에 어쩌고 저쩌고...
이때부터 개소리로 들림. 해본적도 없으면서 그동안 여기저기 다니면서 봐왔던 것들에 대해 주절주절 나부린 꼴임.
팀장의 실력은 3개월도 가지 않아 바닥이 드러났음.
회의 중 요점의 맥락을 잘 짚지 못해 엉뚱한 발언을 한다거나 (거래처가 와있는 상황에서)
A 개발을 맡겼는데 못하겠다고 이 A 개발 말고 다른 C 개발 하겠다고 , 다른 건 잘 할 수 있다고..
처음에 A개발을 위해 채용된 거였는데 갑자기 3개월만에 뒤집음. 이건 사장님이 거절하셨음. 우리 회사 C개발 할 사람 넘친다고.
혹은,
업무적인 것외에 사내에서도 조금 민망한 일이 많았다.
화장실에서 볼일 볼 때, 화장실 문을 열어놓고 볼일을 본다던가..
사무실에서 졸 때 코를 심하게 곤다거나..
우리 회사는 직급높은 사람이 직급 낮은 사람에게 심부름을 시키거나, (공적인 자리에서)말을 놓거나 하는 경우는 절대 없음.
사장님이 싫어하심. 꼭 사원인 나에게도 존댓말을 사용하심.
이런 부분은 입사당시 꼭 안내를 하시는 부분임. 회사 분위기를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라고까지 얘기를 해 주셨다지만
번번히 사원 및 팀장 이하 직원들에게 반말을 하며, 이것저것 가져오라며 심부름을 시킴.
그럴 때마다 공교롭게도 사장님이 항상 계셨음. 두어번 사장님이 메일로 따로 주의를 주셨다고 함.
특히 화장실 출입에 관한 부분이나.. (여직원들이 사장님께 살짝 말씀을 드렸었음.. 조금 민망한데 어떡해야되냐고.)
혹은 "누구야, 가서 스테이플러 좀 갖구와봐" 이런 경우... 사무용품 멀지 않은 곳에 있음. 근데 꼭 시킴.
각자 맡은 업무가 있기 때문에 방해되는 것을 사장님이 좀 싫어하심.
심지어 사장님은 사원에게 간단한 회의를 요청하실 때도, 바쁘다 그러면 괜찮을 때 얘기해달라고 정중히 말씀해 주심.
한마디로 우리 회사랑 좀 안 맞았음.
입사당시, (이건 좀 개인적인 부분이지만...)
사업을 하다가 잘못되서 빚이 조금 있고, 현재 조금 힘들다 라는 얘기를 했다고 하심.
그래서 일을 더 열심히 해야한다고 하셨었음.
그래서 사실 모두들 조금 기대를 했음. 열심히 해 주시겠구나, 하는 마음이 있었음.
당장 회사에서는 그 A개발에 대한 준비를 한창 하고 있었고, 어느 정도 상급개발자 PM역할을 해 주실 분을 기다리고 있었음.
그 분의 경력이나 말로 전해들은 경력은 충분히 우리를 기대하게 만들었고 모두들 전력질주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는데.
사실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음.
결국, 3개월만에 그만두게 되셨음.
그 팀장님을 주축으로 시작됐던 프로젝트도 길을 잃고 무너졌음.
회사 자체 개발이라 실망시킬 클라이언트는 없었지만, 대신 우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길을 잃고 헤맸으며,
거기에 따른 필요이상의 희생이 있었음. 회사로선 손해가 조금 컸음. (다른 프로젝트도 해야했기에 굉장히 힘들었음)
암튼..
나중에 알고보니, 제대로 개발자로 일한건 얼마 안된걸로 알게 됨.
여차저차하다가 대형 프로젝트를 많이 하셨지만 실질적 개발보단 팀원관리, 업무일정관리와도 같은 전적pm역할을 더 많이 하셨던 분임.
그래서 규모가 작은 우리 회사와는 조금 롤에 대한 갭이 있었음.
근데 면접때는 자기 실력에 대해서 부풀려놨으니...
규모가 작은 우리 회사에서 뭐든 대형프로젝트 기준에 맞춰 얘길하니 다들 먼소리야, 하고 있었음.
예를 들어, 데이터보안을 하게 되면 작업기간이나 작업비용은 어찌되나에 대해 얘길하고 있으면,
자기 혼자, 대형프로젝트에서 일했을 때 이야길 함.
나는 그 분야가 아니라서 정확한 용어를 기억하진 못하지만, 그 분야사람도 아닌 내가 들어도 먼소린가 싶은데,
정작 당사자들은 어안이 벙벙해함.
결국 다른 팀장님이 말을 끊고, "아니 지금 우리 회사 규모를 알고 얘기하시는 거에요? 우리가 알고 싶은 대형프로젝트 DB보안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이 일에 대한 DB보안에 대해 궁금한 거에요" 라고 바로 잡아주니,
"아.. 그럼 뭐, ..." 하며 말을 못함.
어쨌든..
그냥 기억이 나서 끄적여봤음.
그 분은 지금 어디서 무슨 일을 하실까.
그 나이에 큰 회사는 못갈거라고 본인도 걱정하셨는데.
갑자기 생각이 나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