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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조원규, 난간
난간이란 것에는
아득한 두근거림이 배어있다
밤과 낮 쉼 없이
바깥이 흘러오고 부딪고
또 밖을 속삭이기 때문이다
온 세상의 난간들을 만져보려고
나는 무슨 말도 못하며
적막해져 왔다 그러던 어느 날
온 세상과 사람이 난간인 것을 안다
난간 너머엔 부는 바람결 속에
난간 너머로 손을 뻗는 사람이 있다
박남희, 지퍼를 이해하는 법
나는 단추세대이지만 지퍼를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
어린 시절 노는데 미쳐있던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단추를 잃어버렸다
단추는 나를 버리고 어디론가 물방개처럼 돌아다녔다
처음에는 잃어버린 단추가
무척 궁금했지만 차츰 단추를 잊었다
그 후 어머니는 단추대신 지퍼가 달린 바지를 사주셨다
지퍼는 기차 철로 같아서 금방 칙칙폭폭 무언가 소리치며
어디론가 달려갈 것만 같았다
내 젊은 밑천도 그 속에 갇히면 조용했다
그런데 나이 들면서 지퍼가 나를 부끄럽게 했다
지퍼는 내 사춘기를 가두고 나를 팽팽하게 심문했다
내 사춘기는 지퍼 밖의 세상이 그리웠지만
나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칙칙폭폭 봄이 가고 있었다
어느 날 문득, 지퍼는 내 나이를 가지런히 채우고 있었다
내 나이는 지퍼 속에 갇혀서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지퍼 한쪽이 툭, 터졌다 그 속으로 어둑어둑 내 나이가 보였다
나는 갑자기 단추가 그리워졌다
단추가 드나들던 구멍이 더욱 다정하게 느껴졌다
지퍼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법은
단추를 이해하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동안 내가 잃어버렸던 단추들이
지퍼의 어긋난 이빨들과 내통하고 있었다는 것을 안 것은
지퍼가 아주 망가져 바지를 통째로 버린 후이다
김민정, 숲에서 일어난 일
어느 날 벤자민 고무나무 한 그루
나에게서 나에게로 배달시켰다
고르고 보니
키가 딱 아홉 살 소년만 했다
흔들리고 싶을 때마다
흔들기 위해서였다
흔들고 난 뒤에는
안 흔들렸다 손 흔들기 위해서였다
이게 이심인가 전심인가
몇 날 며칠을 기다리는 동안
마른 이파리들 저 알아서
저 먼저서 툭, 툭, 떨어져 내렸다
뒷짐 지고 산책이나 다녀올 일이었다
박현수, 책장을 접을 때
책장의
한 귀퉁이를 접을 때
당신은
송진내 나는 부름켜를 접고
투명한 수액을 접고
둥근 나이테를 접고
이슬 맺힌 가지를 접고
그 가지에 앉아
숲을 깨우던 푸른 새소리를 접고
빽빽하게 서 있던 열대림을 접고
숲을 감싸던
끈적한 공기를 접고
어두운 숲으로
비춰들던 햇살을 접고
가늘게 떨리던
지구의 숨결 한 자락을 접고
우주의 목숨 한 부분을 접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의 최후를 접는 것이다
최호일, 슬픔의 유래
우리는 대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만난다
어릴 적에는 스물 네 가지 색 물감 속에 들어 있다
손으로 잡으면 사라지기도 했고
얼굴에 묻히고 들어와 혼나기도 했다
천 마디 사랑 이야기를 새겨 넣은 쌀 한 톨을 들여다 볼 때가 있었는데
그는 사랑의 배면을 풍선껌처럼 부풀려서 어느 날
빵 터뜨린 다음 바람을 얻은 것이다
육체 안에 절망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종종 비누로 닦아보기도 하고
벽에 걸린 그림이 희미해 질 때까지
손목을 긋기도 하면서
우리는 항상 나란히 넘어진다
밤이 끝난 뒤 이별의 솜씨가 없는 사람이 라면을 끓일 때
그걸 본 사람은 알지만
멀리 있는 고양이 울음이 냄비 속으로
스프 대신 빠져 들어갈 때
우리는 라면이 몹시 끓고 있는 아침이라고 부른다
혹시, 그것을
다른 사람이 데리고 온 슬픔이라고 말하면 안 되나
포도송이처럼 둥글고 흔한
고양이 색깔의 슬픔이라고 기록하면 안 되나
죄송합니다. 댓글 작성은 회원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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