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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lovestory_92135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1
    조회수 : 381
    IP : 14.58.***.139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21/07/18 21:13:16
    http://todayhumor.com/?lovestory_92135 모바일
    [BGM] 포크레인은 지나간 날들을 파내려갔다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오장환, 나 사는 곳




    밤늦게 들려오는 기적 소리가

    산 짐승의 울음소리로 들릴 제

    고향에도 가지 않고

    거리에 떠도는 몸은 얼마나 외로울 건가


    여관방의 심지를 돋구고

    생각 없이 쉬고 있으면

    단칸방 구차한 살림의 벗은

    찬술을 들고 와 미안한 얼굴로 잔을 권한다


    가벼운 술기운을 누르고

    떠들고 싶은 마음조차 억제하면

    조용조용 잔을 노늘 새

    어느덧 눈물방울은 옷깃에 구르지 아니하는가

    "내일을 또 떠나겠는가"

    벗은 말없이 손을 잡을 때

    아 내 발길 대일 곳 아무 데도 없으나

    아 내 장담할 아무런 힘은 없으나

    언제나 서로 합하는 젊은 보람에

    홀로 서는 나의 길은 미더웁고 든든하여라

     

     

     

     

     

     

    2.jpg

     

    나희덕, 그러나 흙은 사라지지 않는다



    학교를 떠났다기보다는

    그 공터를 떠난 거라고 말하고 싶다

    교사 뒤켠 버려진 공터가

    나를 숨 쉬게 하고 견디게 했기에

    앉은뱅이걸음으로 드나들며 열두 계절을 보냈다

    뿌리지 않아도 돋아나는 싹을 바라보며

    내가 뿌린 인간의 씨앗들을 떠올렸고

    민들레 흰 솜털을 털어내며

    가볍고도 촘촘한 목숨의 길을 생각했다

    키를 넘는 수풀, 그 무성함이

    소멸을 향한 빠른 걸음이 아닌가 싶어

    젊음이 지나가는 속도가 와락 두려워지기도 했다

    포물선을 그리며 튀어 오르던 메뚜기들을

    가늘게 뜬 눈으로 바라보던 가을날도

    웅웅거리며 묻고 있는 눈보라에게

    쉽게 대답할 수 없던 겨울날도 다 지나갔다

    내가 떠나도 공터는 남으리라

    생각했는데, 공터가 나와 함께 사라졌다

    내가 짐을 꾸리는 동안

    포크레인은 지나간 날들을 파내려갔다

    구덩이가 깊어질수록

    그 옆에는 작은 산이 하나 자라났다

    패이는 것과 쌓이는 것

    그러나 흙은 사라지지 않는다

    티끌과도 같은 날들이 먹구름으로 밀려온다

     

     

     

     

     

     

    3.jpg

     

    천양희, 못질을 하며




    낡고 허물어진, 여기저기

    크고 작게 못질을 한다

    바르고 곧은 것들만 골라

    모진 세상 사방에

    자꾸 못질을 한다


    나에게는 나의 운명이

    못 뒤에는 몇 개의 못들이 박히고

    상처난 자리 떼우듯

    군데 군데 못질을 하노라면

    무수히 박혀

    되 아무는 상처의 어디

    지은 죄 얼굴 가리고 숨어 있다


    목수(木手)여

    생전(生前)에 박아두었던

    못 하나 빼어들고

    지은 죄, 지은 죄라며

    우리의 죄 위에도 못질을 하라

    불현듯 눈을 뜨고

    마침내 십자가(十字架)를 볼 수 있도록

     

     

     

     

     

     

    4.jpg

     

    이용악, 뒷길로 가자




    우러러 받들 수 없는 하늘

    검은 하늘이 쏟아져 내린다

    온몸을 굽이치는

    병든 흐름도 캄캄히 저물어 가는데

    예서 아는 이를 만나면 숨어버리지

    숨어서 휘정휘정 뒷길을 걸을라치면

    지나간 모든 날이 따라오리라

    썩은 나무다리 걸쳐 있는 개울까지

    개울 건너 또 개울 건너

    빠알간 숯불에 비웃이 타는 선술집까지

    푸르른 새벽인들 내게 없었을라구

    나를 에워싸고

    외치며 쓰러지는 수없이 많은 나의 얼굴은

    파리한 이마는 입술은 잊어버리고자

    나의 해바라기는

    무거운 머리를 어느 가슴에 떨어트리랴

    이제 검은 하늘과 함께

    줄기줄기 차가운 비 쏟아져 내릴 것을

    네거리는 싫어 네거리는 싫어

    히 히 몰래 웃으며 뒷길로 가자

     

     

     

     

     

     

    5.jpg

     

    이성부, 귀향




    해마다 봄으로 떠난 사람들이

    낯붉히며 도망가듯 떠난 사람들이

    이제는 하나씩 돌아온다

    죽지 하나가 찢겨진 채

    그리하여 그들은 돌아온다


    모르는 땅의 헤매임이란

    얼마나 더디고 더딘 꿈이었던가

    만나는 사람마다 만남을 알 수 없는

    깊은 슬픔 속에 주저앉고 마는

    모르는 땅의 모르는 몸들


    그리하여 그들은 돌아온다

    그들을 떠나 살게 한 어둠 속으로

    과거 속으로, 혹은 당겨지는 미래 속으로

    사랑의 한 점

    진한 언어를 찍기 위하여

    그들은 보다 힘차게 돌아온다

     

     

     

     

     

     

    통통볼의 꼬릿말입니다
    kYOH2dJ.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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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7/19 09:01:26  59.2.***.158  사과나무길  563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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