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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lovestory_91516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3
    조회수 : 261
    IP : 14.58.***.139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21/03/24 11:17:15
    http://todayhumor.com/?lovestory_91516 모바일
    [BGM] 마음은 찬 허공에 흐득인다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도종환, 비 내리는 밤




    빗방울은 장에 와 흐득이고

    마음은 찬 허공에 흐득인다

    바위 벼랑에 숨어서

    젖은 몸으로 홀로 앓는 물새마냥


    이레가 멀다하고

    잔병으로 눕는 날이 잦아진다


    별마다 모조리 씻겨 내려가고 없는 밤

    천리 만길 먼 길에 있다가

    한 뼘 가까이 내려오기도 하는

    저승을 빗발이 가득 메운다

     

     

     

     

     

     

    2.jpg

     

    박태일, 너희는 말 많은 자식이 되어




    너희는 말 많은 자식이 되어

    울산으로 부산으로 떠나고

    잘 살아야지 못 먹고 못 입힌 죄로

    사십 오십 줄엔 재산인 양 너희를 바랬어도

    자식도 자라면 남이라 조심스럽고

    어제는 밤실 사돈댁이 보낸 청둥오리 피를 받으며

    한목숨 질긴 사정을 요량했다지만

    무슨 쓰잘 데 있는 일이라고

    밤도와 기침까지 잦다


    몸 성하거라 돈은 정강키 쓰되 베풀 때는 헤푸하거라

    누이는 자주 내왕하느냐 큰길 박의원에서 환 지어 보낸다

    술 먹는 일도 사업인데 몸 보하고 먹도록 해라


    그리고

     

     

     

     

     

     

    3.jpg

     

    정진규, 옛날 국수 가게




    햇볕 좋은 가을날

    한 골목길에서 옛날 국수 가게를 만났다

    남아 있는 것들은 언제나 정겹다

    왜 간판도 없느냐 했더니

    빨래 널 듯 국숫발 하얗게 널어놓은 게

    그게 간판이라고 했다

    백합꽃 꽃밭 같다고 했다

    주인은 편하게 웃었다

    꽃 피우고 있었다

    꽃밭은 공짜라고 했다

     

     

     

     

     

     

    4.jpg

     

    손택수, 지렁이




    잠깐 스쳐 가는 소낙비인 줄 알았다면

    이렇게 아스팔트가 녹아나는 도로변까지

    나오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너는 어쩔 수 없는 미물이다, 생각하는 순간

    지렁이 한 마리 밟지도 않았는데 꿈틀한다

    언젠가 불에 데인 흉터처럼, 열이 많은

    내 몸을 아스팔트 바닥 삼아 기고 있는 흉터처럼

    속살까지 뜨겁게 달아오른 무리들

    제 안의 남은 수분 속에

    한여름의 열기를 다 빨아들일 듯

    끝없이 말라비틀어져 가는 무리들

    한방에선 해열제로 쓴다고 했던가

    열 먹고 죽어 열을 푸는 약이 된다고 했던가

    이열치열 지극히 뜨거워져서 아픈 몸을 서늘하게 식히는 것

    어디 그것이 한방에서만의 일이겠는가마는

    마디마디 몸을 지지며 염천을 향해 기어간다

    회초리 자국 같은 붉은 화상 자국이 꿈틀꿈틀

    내 앞의 길을 쓰라리게 휘감고 있다

     

     

     

     

     

     

    5.jpg

     

    전영관, 주소록을 다시 만들며




    해마다 정월이면

    수첩을 사서

    주소록을 다시 만든다

    출석을 부르듯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생각한다

    버려지는 이름들

    버려지는 주소와 전화번호

    새로 올리는 이름들

    새로 올리는 주소와 전화번호

    누군가도 내 이름을 이렇게 버리고 있겠지

    누군가도 내 이름을 이렇게 새로 올리고 있겠지

    버려지지 않으려고

    갈림길에서 떨고 있던 이름

    다시 끼워 넣으면

    불씨 한 점 가슴에 안은 듯

    내 두툼한 수첩 주소록 호주머니가 따뜻해진다

     

     

     

     

     

     

    통통볼의 꼬릿말입니다
    kYOH2dJ.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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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3/24 15:03:12  210.223.***.78  풀뜯는소  265234
    [2] 2021/03/24 20:18:31  59.2.***.158  사과나무길  563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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