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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lovestory_80716
    작성자 : Freemason
    추천 : 3
    조회수 : 804
    IP : 121.153.***.79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17/01/07 22:19:38
    http://todayhumor.com/?lovestory_80716 모바일
    고전100권읽기로 유명한 세인트컬리지학생의 기사.

    가장 적절한 우리 학교에 대한 표현은 아마 '특별한 리버럴 아츠 칼리지'쯤이 되겠다. 미국에서도, 그리고 최근 몇 년간 급격히 한국에서도 특별한 커리큘럼으로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 커리큘럼이란 바로, 4년간 고전 100권을 읽는 커리큘럼이다. 

    가끔 '4년간 고전 100권만 읽는 학교'로 소개가 되기도 하는데 그건 틀린 설명이다. 우리 학교는 4년간 고전 100권'만' 읽고 졸업하는 학교가 아니라, 4년간 고전100권'을' 읽고, (앞으로 설명하게 될) 그 외 등등의 공부를 하고 졸업하는 학교이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가 한국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된 계기는 한겨레출판사에서 나온 <내 인생을 바꾸는 대학>이란 책 덕분인 것 같다. 이 책에 나온 것을 시작으로 몇 년 뒤 베스트셀러가 된 <리딩으로 리드하라>라는 책에서도 세인트 존스가 언급이 됐고 그 후로 가끔씩 교양 다큐 프로그램들에도 나온 적이 있다. 그리고 며칠 전 EBS 다큐 프라임에 세인트 존스가 또 한 번 소개됐고 많은 한국의 고등학생들, 그리고 학부모들의 관심 대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세인트 존스는 정말로 수업 시간에 말을 안 하면 학생을 쫓아내는 학교인가? 많은 분들이 상당히 궁금하실 것 같다. 그런 방식으로 어떻게 학교가 생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들 것이다. 

    우선 답을 얘기하자면, "그렇다, 쫓겨난다"이다. 정말로 세인트 존스에선 학생이 수업시간에 말을 안 하면 쫓겨날 위기에 처한다. 부끄럽지만 나 역시 조용한 한국 학생의 전형이었기 때문에 쫓겨날 위기에 처해 딘(Dean, 학장)과 개인 상담을 밥 먹듯이 했고 결국에 우리는 '베프(베스트 프렌드)'를 먹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세인트 존스에서의 수업은 이 두 가지, 주고 받는 수업이 아니다. 바로 마지막 종류의 수업(修業)이다. 이 수업은 닦을 수(修)를 쓴다. 학업이나 기술을 익히며 닦는다는 뜻이다. 세인트 존스의 수업은 바로 이 학업과 기술을 익히고 닦는 수업이기 때문에 교실에 해바라기처럼 교수님과 칠판을 바라볼 수 있는 1인용 의자 책상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쳐다보는 무섭고 거대한 직사각형 테이블이 있는 것이다.         




     세인트 존스의 수업은 100% 토론 수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포의 직사각형 테이블에 학생들이 둘러 앉아야만 한다고 얘기했다. 노트와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처럼 코를 책상에 박고 하는 공부를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 토론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날 수업에 읽어 와야 하는 책을 읽고 와서, 서로 화목~하게 이야기를 나누면 된다. 문제는 그 읽어와야 하는 책이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셜록홈즈> 같은 추리 소설도 아니고, 읽고 있으면 눈에서 하트가 뿅뿅 가슴이 콩닥콩닥 뛰게 만드는 <트와일라잇> 같은 연애 소설도 아니라는 거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세인트 존스에서 읽는 책은 (이미) 많이들 알고 계시지만 고전이다. 내가 이 학교에 오지 않았다면 '나와는 한 평생 관련 없을' 리스트에 넣어 놨을 법한 분들과 책들!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Physics)>, 플라톤의 <국가론(Republic)>, 칸트의 <순수이성비판(Critique of pure reason)>, 뉴턴의 <프린키피아(Principia)>,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The principle of relativity)> 그 외 등등. 여기서 수업을 위해 읽어가야 하는 책들은 그 난이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뭔가 책 이름을 열거해 놓으니 "칸트? 헤겔? 뉴턴? 저렇게 어려운 원서들을 읽고 토론을 하려면 학생들이 얼마나 똑똑해야 하는 것일까"하는 의문과 좌절을 가지실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여기에 바로 세인트 존스 수업, 즉 토론 수업의 핵심이 있다. 똑똑해야 어려운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 것이 아니다. 똑똑하지 않기 때문에 토론 방식의 수업을 하는 것이다. 책이 너무 어려워 다들 모르는 것 투성이니 강의 형식이 아닌,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토론'식 수업이 우리의 유일한 배움의 길인 것이다. '진리'가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다면, 더 이상 '진리'에 대해 토론을 할 필요가 없는 것과 같은 논리다. 


    그러면 "교수가 없고 튜터가 있다는 말은 무슨 소린가?"하는 궁금증이 드실 것 같다. 튜터는 말 그대로 'Tutor'다. 'Tutor'라는 단어는 보통 개인 지도 교사, 과외 선생님 정도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대학 수업에 개인 지도 교사라. 뭔가 미심쩍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세인트 존스에서 말하는 튜터는 정말 말 그대로 개인 지도 교사를 말하는 게 아니다. 세인트 존스의 튜터들 역시 다른 대학들의 교수님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다른 대학에서 '교수님'으로서 수업을 가르치다 오신 분들도 계시고 다들 그만큼의 학위를 가지고 계신다.

    그렇다면 왜 교수님을 교수님이라고 하지 않고 튜터라고 하나? 그 이유는 이렇다. 우리가 교수님을 튜터라고 부르는 이유는 세인트 존스에서는 교수님의 역할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교수님은 강의를 해 주시지만 튜터는 학생과 함께 공부하신다. 학생들을 리드하는 위치에 있기는 하지만 학생들에게 자신의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주제, 책에 대해 좀 더 많은 시간 동안 고민을 해 온 '선배'의 느낌으로 함께 의견을 공유하는 사람이 세인트 존스의 튜터다(그래서 심지어 많은 학생들이 교수님으로 다른 대학에서 강의를 하다가 오신 튜터들보다 곧장 세인트 존스에서 교수의 직업을 시작하신 튜터들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세인트 존스의 수업은 그 자체가 100% 토론 수업인 데다 자기주도적으로 학생들이 서로 '대화'를 통해 배움을 얻는 수업이다. 때문에 수업에서 말을 안 한다는 것은 전쟁터에서 군인이 칼을 가지고는 왔는데 칼집에서 빼지 못하고 있는 것과 다름 없고, 강의를 들으러 온 학생이 몸은 다 왔는데 머리 속의 뇌를 놓고 온 것과… 다름 없는 것이다.

    그러니 학교가 말 안 하는 학생을 쫓아낸다면 어쩔 수 없구나…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또 아니다(반전의 묘미). 내가 그런 학생이거든!(웃음) 나는 겸손을 넘어선 자기비하와 수동적 교육을 받아 온 사람이라서 1학년 때부터 아주 조용한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학교에서 안 쫓겨나고 잘 살아남았다(이것만큼은 겸손을 넘어선 자기비하적 성격인 내가 자랑할 수 있을 만큼 뿌듯하다).

    "오~ 얘는 말을 안 하는데 어떻게 안 쫓겨나고 살아 남았나?"하는 궁금증이 마구마구 커지실 것이다. 내가 세인트 존스에서 4년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생존 기술을 하나 하나 다 말하고 싶지만, 그러자면 책 한 권은 나올 것이다. 

    따라서 간단히 핵심만 먼저 말해 보자면, '말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배움의 자세'에 가장 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즉, 말을 안 하더라도 "학생이 세인트 존스의 토론식 교육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나", "더 많은 것들을 배우기 위해 수업 시간에 입을 열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고 있나" 등을 학교에서 판단한다.

    그럼 다음 질문이 나올 것이다. "어떻게 학생 하나하나를 학교에서 다 판단하나?" 그 판단은 바로 또 다른 세인트 존스의 큰 특징이자 자랑, 돈 래그(Don Rag)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이루어진다. "오? 돈 래그는 또 뭐시여?" 그건 이제 다음 편에 설명 드릴 예정이다. 하지만 힌트만 흘려보자면, 돈 래그는 '학기말 학생을 방 안에 앉혀 놓고 그 학생의 수업을 담당한 튜터들이 모여 앉아 그 학생에 대해 뒷담화(?)를 하는 것' 정도로 설명할 수 있겠다.


    시험이 없는 대신 세인트 존스에는 학생들을 벌벌 떨게 만드는 다른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돈 래그(Don Rag)'라 불리는 아주 특별한 학생 평가 제도다. 우선 어원부터 파헤쳐보면 돈(Don)은 영국에서 건너 온 단어로 옥스포드,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교수'를 뜻하는 단어다. 래그(Rag)는 영어 동사로 '꾸짖다, 책망하다, 타박하다'는 뜻이 있다. 즉, 돈 래그(Don rag)는 교수가 꾸짖는다는 뜻이다. 누구를? 당연히 학생을!

    따라서 돈 래그는 말 그대로 교수가 학생을 꾸짖을 수 있도록 학교에서 마련해 준 공식적인 자리라고 할 수 있겠다. 한 학기 동안 학생이 들었던 수업(4~5개)을 담당한 튜터(지난 기사에서 설명했지만, 세인트 존스에선 교수를 튜터라고 부른다)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인다. 그래서 그 학생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바로 돈 래그다.


    그럼 학생들이 돈 래그에 벌벌 떠는 이유가 뭘까? 그 이유는 너무 단순하다. 나에 대한 "객관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기 때문이다. 상상 속의 내 모습과 남이 보는 실제 내 모습의 차이를 알게 되면 어떤 때는 충격을 받기도 하고, 어떤 때는 즐거워지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객관적인 내 모습과 맞닥뜨린다는 건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이처럼 안 그래도 무서운 돈 래그를 더욱더 무섭게 만드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돈 래그의 스타일이다. 이 돈 래그는 '청문회' 스타일이 아니라 '뒷담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학생을 앉혀 놓고 "너 왜 수업시간에 항상 아는 척 만해? 얌마!"하는 것이 아니라 튜터들이 모여 앉아 그 한 명의 학생에 대해 자기들끼리 얘기를 하는 것이다. "이 학생은 내 수업에서 맨날 아는 척만 해요", "아 그래요? 그 학생, 내 수업에선 맨날 졸기만 하던데?" 주인공인 학생은 그 자리에 있음에도 투명인간 취급을 당한다. 

    이런 학생을 투명인간 만드는 돈 래그는 세인트 존스에서 개발한 신개념 학생 고문(?) 방법이다. 왈핀(Walpin) 부총장은 "다른 미국의, 또는 이 세상 어떤 대학교들에도 없는 걸로 알고 있고, 있다면 세인트 존스에서 가져간 시스템"이라고 말하셨다. 이러니 학생들이 벌벌 떨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교수들이 어떻게 학생 하나하나의 성향까지 다 알지?" 하고 의아할 것이다. 사실 교수들이 자기 수업의 학생들을 다 알고 파악하고 있다는 건 우리나라나 미국의 큰 대학들에선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인문중심대학, 즉 리버럴 아츠 칼리지(Liberal arts college)들은 종합 대학(University)에 비해 소규모 학교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 학교는 그런 리버럴 아츠 칼리지 중에서도 특히나 학생 숫자가 작다. 그렇기 때문에 돈 래그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작길래? 세인트 존스는 1학년부터 4학년까지 합쳐서 400명도 안 되는, 심지어 고등학교보다도 작은 커뮤니티다. 1학년은 보통 120명 안팎으로 입학을 하지만 4학년까지 올라가는 학생은 겨우 절반 정도 되는 60~70명이다. 지금 내 학년(4학년)인 'class of 2014'도 73명밖에 안 남았는데 몇 해 전과 비교해 봤을 때 그나마 제일 큰 시니어 클래스라고 다들 뿌듯해 한다. 하여튼 이렇게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올라가는 과정에서, 그 도중인 2, 3학년 때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고 절반 정도의 학생들만 생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돈 래그는 학생을 불러다 놓고 평가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학생이 자신의 수업에서 각자 어떻게 하는지 튜터들이 뒷담화(?)를 하고 나면, 투명인간 취급 받던 학생에게도 드디어 말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 튜터들이 한 얘기 중 자신을 잘못 판단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에 대해 코멘트를 달기도 하고, 더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면, 제일 중요한 돈 래그의 핵심, 결정의 시간이 온다. "이 학생이 다음 학기로 진급하는 것에 모두가 동의하나?"라는 질문에 의견을 종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한 명의 튜터라도 반대를 하게 되면 일이 커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 곧장 쫓겨나는 것은 아니다. 문제가 되는 경우의 학생들은 조건을 달고 다음 학기 진학을 하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이 학생은 다음 학기에 진학할 수 있지만 더 나은 페이퍼를 쓰기 위해 라이팅 어시스턴트(writing assistant)를 찾아가세요" 하는 식의 조건이 붙을 수 있는 것이다(라이팅 어시스턴트는 글쓰기를 도와주고 교정을 봐 주는 친구다. 수학, 음악, 언어, 글쓰기 등등 과목 별로 어시스턴트(assistant)라고 도우미 학생이 있다. 학교에서 그 분야를 잘 하고 있는 학교 학생들을 고용해 그 분야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친구들을 도와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1학년 때는 학생이 말을 좀 안 듣거나 고치라는 부분을 고치지 않아도 "그래, 아직 처음이니까" 하며 봐준다. 하지만 2학년 2학기 돈 래그에서 더 이상의 관용은 없다. 그래서 이 돈 래그는 특별한 이름이 붙는다. 'Enabling Don Rag'라고 해서 'enable'이란 단어는 '-을 할 수 있게 하다'라는 뜻이다. 즉, 학생이 세인트 존스에서 수업을 계속 할 수 있게 할지 말지를 모든 튜터들이 모여서 결정하는 특별한 돈 래그다.

    2학년이 끝날 때, 3학년 진학 전 이 특별한 돈 래그가 있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이제 2년 정도 있었으니 세인트 존스 커리큘럼에 적응을 했을 법한 때라는 것. 둘째, 다른 학교로 편입을 하려면 이 시기가 가장 적절한 시기이기 때문이고, 셋째, 가장 중요한 이유로서 3, 4학년 수업이 1, 2학년 때와 다르게 엄청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튜터들은 2학년 돈 래그를 더욱 더 객관적인 입장에서 판단하려고 노력한다. 특히나 3, 4학년 수업은 칸트, 헤겔, 하이데거 등 아주 심오한 철학 책 등은 물론 과학, 수학 수업에서는 맥스웰, 뉴턴, 아인슈타인 등을 한꺼번에 배우기 때문에 수업들이 많이 힘들어진다. 그런데 3, 4학년으로 진급시켰다가 학생이 못 버티거나, 수업에서 자꾸 문제를 일으키고 분위기를 해치게 되면 더 복잡해지기 때문에 그 학생을 위해서도, 다른 학우들을 위해서도 옳은 결정을 내리는 게 중요해지는 것이다.


    특별 돈 래그에서는 1학년 때와는 다르게 돈 래그가 연달아 두 번 열린다. 첫 번째 돈 래그에선 원래와 똑같이 학생과 학생의 수업을 맡은 튜터들이 모여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두 번째 돈 래그에서는 학생이 전혀 참여할 수 없고, 많은 수의 튜터들로만 이루어진 돈 래그 위원회가 따로 모여 2학년 학생 전원을 대상으로 하나 하나 판단하게 된다. 

    첫 돈 래그에서 별 문제 없이 만장일치로 통과된 학생의 경우 빠르게 넘어가지만, 만약 한 명의 튜터라도 어떤 학생의 3학년 진학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면 그런 학생들의 케이스가 이 두 번째 돈래그에선 더 중요하게 다뤄지게 된다.

    그 후 문제가 되었던 학생이 학업을 계속하게 할지 말지에 대해 (총장을 포함한) 튜터들 모두가 투표를 하게 된다. 근데 그 투표마저 통과를 못하게 되면 그 학생은 총장에게 불려가 총장과 면담 후, 다시 최후의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2학년 특별 돈 래그를 통과하지 못해서, 또는 2년간의 빡센 공부에 지쳐서, 2학년 후에는 제법 많은 학생들이 휴학을 결정하기도 한다. 또 (자진해서) 다른 학교로 편입을 가는 학생들도 많다. 그래서 3학년이 되면 클래스 인원수가 월등히 줄게 되는 걸 느낄 수 있다.


    렇다면 "2학년 특별 돈 래그까지만 무사히 통과하면 한숨 놓을 수 있나?" 그건 또 아니다. 나 역시 2학년까진 큰 어려움 없이 돈 래그를 마쳤다. "어렵다는 3, 4학년 과정을 거칠 능력이 나에게도 있다고 생각하신 거겠지? 야호!"하면서 자뻑(?)에 빠져 3학년에 진학했다. 그러나 1학기를 마치고 돈 래그 결과 결국 마지막 관문이라는 총장에게 불려가는 상황에까지 이르고 말았으니….

    내 경우는 이랬다. 3학년이 되자 정말 소문대로, 아니 소문보다 훨씬 더 수업들이 힘들어진 것이 큰 요인이었다. 비중이 너무 커진 수학, 과학 과목 때문에 문과 성향이던 나는 "2년간 세인트 존스가 (철학, 문학만을 공부하는 학교인 척) 나를 속였다!"하고 통탄을 해댔다(괜히 학교 탓). 

    3학년은 정말 차원이 달랐다. 매일 매일의 수업이 도전의 연속이었다. 하루같이 좌절을 겪었고 힘들어 하며 3학년 한 학기를 보냈다. 그리고 드디어 1학기를 마무리짓는 돈 래그를 하게 됐다. 평소와 다름 없이 격려도 받고, 가혹한 평을 받기도 하며 구구절절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콘퍼런스(Conference)의 개념은 돈 래그와 반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돈 래그는 여태껏 튜터들이 '객관적으로' 학생을 판단해 왔고 학생이 나중에야 말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콘퍼런스는 처음부터 학생 본인이 판단한 자신의 수업에서의 모습을 각각의 수업 튜터들에게 발표하는 형식이다. 그 발표를 듣고 난 후 튜터들이 만약 학생이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지적을 하거나 동의를 한다. 

    콘퍼런스의 핵심은 학생이 이제 얼마나 자기 자신에 대해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게 되었느냐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은 스스로 학습, 발전이 가능하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 콘퍼런스를 마지막으로, 세인트 존스에서의 돈 래그는 마침내 끝이 난다. 

    4학년 때는 (학교 측에선) 이미 3년간 갈고 닦았으니 이제 학생은 충분히 스스로 발전할 능력이 생겼다는 뜻에서, 또는 (학생들 말에 의하면) 이제 4학년이나 됐으니 더 이상 조언을 해줘 봤자 안 고칠거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이래저래 더 이상은 돈 래그가 없는 것이다


    하여튼 여기까지가 세인트 존스의 특별한 학생 평가 제도, 돈 래그에 대한 설명이었다. 졸업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돌이켜 보니 돈 래그는 나에게 있어 그 어떤 세인트 존스의 튜터들보다도 무섭고 엄격한, 객관적인 선생님이었다. 예상치 못한 칭찬과 격려를 주다가도 너무나 가혹하게 나를 꾸짖고 눈물을 쏙 빼게 만들기도 했고, 다시 내가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나를 돌아보게 이끌어주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학생들에게 돈 래그가 이런 것은 아니다. 나처럼 돈 래그를 통해 혹독하게 당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내 주변의 미국 친구들은 물론 대견스럽게도 한국 후배들까지 나보다 훨씬 더 잘하고 있고, 돈 래그를 아무렇지 않게, 칭찬 폭탄을 받으며 너무나 쉽게 통과하는 친구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 진짜 좋겠다'하고 부럽기도 했고, '나만 왜 이렇게 힘들지'하면서 한편으론 내 스스로가 참 바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지난 기사에서 우리 대학에 없는 두 가지, 강의 그리고 교수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하지만 세인트 존스에 없는 한 가지가 또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수강신청이다. 왜 수강신청을 할 필요가 없는가? 바로 1학년부터 4학년까지의 수업 스케줄이 이미 다 짜여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즉, 잊을 만하면 다가오는 수강신청 시즌의 '컴퓨터 앞에 붙어 앉아 빛의 속도로 하는 광클릭' 스트레스가 없다는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학생에게 수업 선택 권한이 없다는 단점이 있기도 하다는 말이다. 이번 기사에서는 어떻게 4년간의 대학 수업이 고등학교 수업들처럼 스케줄이 다 짜여 있는지, 그 수업들은 어떤 종류들인지, 그에 따른 장단점은 무엇인지에 관해 이야기를 해 보겠다.

    세인트 존스는 '대학 4년간 고전 100권을 읽는 것이 커리큘럼의 전부인 학교'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4년간 고전 100권을 읽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커리큘럼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 자주 세인트 존스에 오고 싶다는 학생들로부터 메일을 받는데 "책 읽기를 너무 좋아한다, 그래서 세인트 존스를 죽기 살기로 오고 싶다"는 말들을 많이 듣는다. 열정이 넘치는 모습이 참 보기 좋기도 하지만 동시에 세인트 존스의 일면만을 보고 섣불리 열정을 불사르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물론 학교에 지원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루소, 흄 등의 책들이 적혀 있는 세미나 리딩 리스트를 봤지만 사실 그걸 보고 있어도 뭘 몰랐다. 그저 '오- 멋진 이름이다. 간지나는데? 나조차도 이름을 알 정도니 좋은 책들이겠지' 하는 날라리 사고방식만을 가지고, 나는 모든 수업이 100% 토론 형식이라는 점, 그리고 교과서가 아닌 원전을 읽고 공부한다는 것이 좋아보여서 무작정 온 것이었다.

    그렇게 뭣도 모르고 덜컹 세인트 존스라는 외계 행성에 떨어진 나는 엄청난 책벌레 친구들 속에서 끊임없이 "나를 읽어줘"하고 달려드는 고전들의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리며 매 학기를 보냈다. 어떻게 보면 입학을 한 후로는 내가 학교에 오기 전 쓰고 있던 세인트 존스라는 콩깍지가 한꺼풀씩 벗겨져 나가는 과정이었다. 제일 처음으로 깨달은 것은 '내가 생각했던 고전'과 '진짜 고전'의 차이였다.


    고전을 읽는다고 했을 때 '<리어왕>, <오만과 편견> 같은 책들? 재밌겠다~' 하고 생각하던 내 뒤통수를 세인트 존스는 따악- 때렸다. "그게 고전의 전부인 줄 알았지? 히히히!" 하고 말하며. 내가 생각했던 셰익스피어, 제인 오스틴 등의 책들도 다 고전이긴 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고전들은 그 영역이 아주 광범위하다는 것이다.

    즉, 셰익스피어, 제인 오스틴의 책들은 (굳이 따지자면) '문학 고전'에 속한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책 등은 '철학 고전'에 속할 테고, 뉴턴, 아인슈타인, 코페르니쿠스의 책 들은 '수학&과학 고전'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사실 이렇게 고전의 종류를 정확히 구분지을 수는 없다. 수학, 과학, 철학은 다 얽히고 설켜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명을 하기 쉽도록 일단 나눠 본 것이다). 하여튼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에게 익숙했던 문학 고전들을 많이 생각하며 학교에 왔는데 세인트 존스는 문학 고전을 읽는 비중은 적은 편이었고, 그에 따라 나는 예상도, 기대도 않았던 철학, 과학, 수학 고전들에 둘러싸이게 된 것이다.

    세인트 존스에서의 4년간의 수업이 다 이미 정해져 있고, 따라서 학생에게 수업을 선택할 권한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인트 존스에 온다는 것은 수학, 과학, 음악, 언어, 철학 분야의 고전 수업들을  4년간 듣겠다고 매 학기마다 해야 하는 수강신청을 이미 한방에 하고 온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더 디테일한 설명으로 들어가보자. 세인트 존스에서의 4년간의 고전 수업은 어떻게 짜여 있는 것일까? 


    우선 4년간 고전 100권을 읽는 수업에 대해서 먼저 말해야겠다. 4년간 고전 100권을 읽는 공부는 세인트 존스 공부의 핵심, '세미나'에서 할 수 있다. 하지만 세미나는 '수업'에 포함이 되지 않는다. 그냥 저녁 식사 후 있는 독서 동아리의 모임(?) 같은 느낌이다. 세인트 존스 산타페 교정에서는 매주 월, 목요일 저녁 7시 15분이 되면 세미나 15분 전을 알리는 학교 종탑이 뎅-뎅 울리기 시작하고 학생 대이동(?)이 벌어진다.

    모든 학생, 튜터들이 기숙사, 도서관, 그 외 학교 건물들에서 기어나와(?) 자기 세미나 교실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 두 시간 동안은 세인트 존스라는 작은 커뮤니티의 거의 모든 일원이 각자의 교실들에 모여 앉아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이 시간에 만약 방문객이 학교에 와 본다면 건물 어디를 가든 1층, 2층 모든 교실들이 학생, 튜터들로 꽉 찬 채 열정적인 토론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잠깐! 사실 지금부터는 세미나를 포함해 전반적인 세인트 존스 고전 공부 커리큘럼에 관해 조금 더 디테일한 설명을 할 생각이다. 글이 지루해질 거라 슬프지만 혹시 세인트 존스에 관심있거나 고전 공부에 관심 있는 분들이 궁금해 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래도 설명을 하기로 결심했다. 



    세인트 존스 커리큘럼을 파헤쳐보자 

    그럼 세미나에서는 4년간 어떤 고전들을 읽나? 4년간의 세미나 리딩 리스트는 시대순으로 짜여져 있다. 간단하게 설명해 보자면 1학년은 '그리스의 해'라고 할 수 있다. 서양사상의 기반이 된 호머, 소포클레스 등의 그리스 희비극,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책 등을 읽는다. 2학년 때는 성서를 시작으로 고전 로마 시, 문학 작품들, 버질, 아콰이나스, 단테, 셰익스피어 등을 공부한다. 2학년이 시대순으로 볼 때 아주 광범위한 시대의 작품들을 포함하고 있는 해다. 

    3학년은 17, 18세기 작품들로 한정이 된다. 윤리, 정치적 탐구, 사상들이 형이상학과 뒤섞이면서 루소, 스피노자, 칸트 등의 책을 읽게 되고 처음으로 미국 작가들(해밀턴, 마크 트웨인 등)의 작품도 공부한다. 마지막 4학년은 드디어 현대로 넘어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전쟁과 평화> 등의 대하소설뿐만 아니라 링컨 연설문, 미국의 민주주의에 관련된 책을 읽는다. 게다가 헤겔, 하이데거, 니체 등 가장 어렵기로 유명한 작가들의 책을 같이 공부한다.

    이게 바로 세인트 존스의 '4년간 고전 100권을 읽는다'는 세미나다. 개인적으로는 1, 2학년때까지는 책들이 재미있었다. 문학 고전에 속하는 책들도 제법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3, 4학년에 가면서 난이도가 확 높아졌고 많이 어려워졌다. 하여튼 세미나는 대충 정리해 보자면 문학, 철학, 윤리, 정치 고전들을 많이 읽는다.     

    그렇다면 이제 저녁에 하는 '세미나' 말고, 그 외 낮 시간에 있는, 보통 대학 수업 같은 그런 수업들에 대해 살펴보자. 낮 시간에 있는 수업들을 우리는 튜토리알(Tutorial)이라고 부른다. 세인트 존스의 튜토리알은 네 종류가 있다. 수학, 과학(랩), 음악, 언어(랭기지). 세미나가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시대순으로 고전의 흐름을 따라가며 만들어진 것처럼, 얘네들 역시 1학년부터 4학년까지 흐름이 있다. 자세히 설명하면 좋겠지만 지루한 관계로 간단히 설명하겠다.


    수학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비극이겠지만, 세인트 존스에서 수학 수업은 4년 내내 있다. 나 역시 어릴 때부터 수학과는 천적이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아무리 다른 과목들이 더 낮은 점수가 나오려고 발버둥 쳐도 수학은 여유로운 썩소를 지으며 '절대 부동 최하 점수' 자리를 다른 과목들에게 넘겨 준 적이 없었다(그러고 보니 이것들이 왜 그렇게 낮은 자리만 좋아했나 몰라~). 

    그랬기 때문에 세인트 존스에 가면 수학을 4년 내내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나는 "정녕 대학에서까지도 수학을 해야 한단 말입니까" 하면서 울부짖었다. 하지만 세인트 존스의 수학은 지금까지 내가 생각했던 수학이란 녀석의 이미지를 180도 바꿔놓게 되었다. 정말로 너무 너무 재미있는, 내가 세인트 존스 수업들 중 제일 좋아하는 수업이 되었기 때문이다.

    수학은 1학년 때 고대 그리스 수학인 유클리드 기하학을 시작으로 천문학, 현대 수학으로 가는 과정들을 배우다가 미적분, 수학 이론을 배우고 비(非)유클리드 기하학, 상대성 이론, 현대 수학의 주요 토픽들을 살펴보며 4학년을 마친다. 이렇게 써 놓으니 뭔가 되게 어려워 보이는데 정말 그렇지 않다. 기하학에선 도형을 가지고 놀면서 법칙을 찾아내다가 그 도형들이 우주가 작용하는 원리인 걸 알게 되며 "유레카!"를 외치고, 시공간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0은 무엇인가?' '숫자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민해 보는 등 수학은 의외로 너무나 신나는 과목이었다.

    반면에 (2학년을 뺀 1, 3, 4학년) 3년간 수업을 들어야 하는 과학(랩)은 나에게 제일 어려운 과목이었다. 1학년 때는 생물학, 화학을 잠깐 맛보고, 3학년 때는 물리학, 4학년 때는 다시 생물학으로 돌아와 세포질과 분자 생물학, 유전학을 하고 물리학도 다시 하면서 양자역학, 원자론 등을 배운다(되게 어렵게 들리는군!). 


    이 수학, 과학 수업들 역시 교과서, 전공서적이 아닌 원전을 읽는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원전을 전부 다 읽는 게 아니라는 거다. 우리가 공부하는 목적에 맞춰 작가들의 고전 중 필요한 '일부분'만을 읽는다. 그 일부분만을 따내서 새로 편집되고 출판된 것이 세인트 존스의 매뉴얼(Manual)이다.


    즉 완전 쉽게 설명하자면, 내가 핸드폰 만드는 것을 알고 싶은데 핸드폰 만드는 법에 대해서 애플의 스티브 잡스, 삼성, 모토로라 이 세가지 회사에서 쓴 '핸드폰 만드는 법' 책이 있다면 이 책을 다 읽는 게 아니라 애플의 책에 있는 서론, 삼성의 본론, 모토로라의 결론을 따와서 만들어진, 원전 짜깁기(?), 세인트 존스 매뉴얼(Manual)을 읽는 것이다.

    하지만 수학, 과학 수업들에서도 아인슈타인, 뉴턴, 패러데이, 맥스웰 같은 중요 인물 몇몇의 중요한 책들은 그 책 자체를 읽기도 하는 등 튜토리얼 수업은 메뉴얼과 원전을 번갈아 가며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 다음으로 남은 수업은 랭기지와 음악이다. 랭기지 역시 4년 내내 수업을 들어야 한다. 1, 2학때는 고대 그리스어인 희랍어, 논리, 영시를 배운다. 희랍어를 배우면서는 오이디푸스 왕 같은 고대 그리스 희비극을 번역하기도 하고, 희랍어 성서를 번역하기도 한다. 또 중세 영어로 넘어와서 캔터베리 이야기, 셰익스피어도 공부한다.

    3, 4학년엔 불어를 배우고 파스칼 팡세나 라신의 페드라 같은 작품을 번역한다. 또 에밀리 디킨슨 등 현대 미국 시와 소설, 수필 등도 공부한다. 이 랭기지 수업이야말로 원전으로 공부하지 않는 수업이라고 할 순 없구나. 희랍어, 불어 문법 같은 건 고전 같은게 없으니 문법 책을 하나 정해 공부를 하지만 희랍어 성서나 오이디푸스 왕 같은 걸 번역 할 때는 원전을 번역한다. 직접 번역을 해보며 원전과 번역판의 미묘한 차이를 발견하기도 하고, 그 차이점들에 대해 토론을 한다. 


    마지막으로 음악은 1,  2학년, 2년간 수업을 듣는다. 바흐, 베토벤, 모짜르트, 스트라빈스키등의 음악을 수업시간에 함께 들으며 전반적인 분석을 하고 세인트 존스 메뉴얼을 가지고 이론 체계, 멜로디, 대위법, 하모니, 리듬 등등을 공부하고 토론 한다. 나는 모짜르트의 돈 지오반니, 바흐의 성 마태오 수난곡을 두꺼운 악보집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지금까지 간략히(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 길어진 것 같은) 세인트 존스의 수업들에 대한 소개를 했다. 사실 이 정보들은 거의 다 학교 홈페이지에도 나와 있기 때문에 내가 굳이 다시 쓸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나 역시 학교를 조사하면서 이런 것들을 봤음에도 콩깍지의 힘이란 게 참 대단했던가 보다. 내가 읽고 싶은 부분만 "오호! 아하! 이런 학교구나!" 하면서 눈에 들어오고 그 외의 부분은 다 무시해 버렸던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게 문학, 철학 고전들을 읽을 상상만 한 채 학교에 들어왔는데 그건 세인트 존스에서 들어야 하는 수업들 중 1/5밖에 차지하지 않는 세미나였고, 심지어 세미나조차도 3, 4학년부터는 문학이 많지 않기 때문에 나중에는 모든 수업들에서 뺨대기를 찰싹 찰싹 맞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껴야 했다. 특히 문과 성향인 나는 랩이나 수학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전혀 관심이 없었고 모르고 살아도 평생 아쉬울 것 같지 않은 과목이었기 때문에 더 어려웠지만 '지금 아니면 내가 언제 스스로 배우겠나, 어쩌면 평생에 한번이 지금인지도 모르니 최대한 열심히 배워놓자' 하는 생각으로 배웠다.   

    특히 나는 어렸을 때부터 영화감독이 꿈이었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영화 학교와 세인트 존스를 놓고 많은 고민을 했지만 영화의 기술 요소들을 공부하기보다는 먼저 인문학적 기본을 튼튼히 다지고 싶었기 때문에 이 학교를 선택했다. 다방면에 있어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졸업하겠다는 목표가 없었다면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배우고자 하는 의욕도 없었던 수학, 과학 원전들을 읽어야 하는 어려운 수업 앞에서 정말로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St.John's students have little freedom to choose their classes, but nearly unlimited freedom to pursue their questions and ideas"라고 학교는 말한다. 즉, "세인트 존스 학생들은 수업 선택에 있어 조금의 자유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들의 질문과 사상을 추구하는데 있어서는 무한한 자유가 주어진다"는 말이다. 그렇다. 비록 수업들은 정해져 있지만 세인트 존스의 수업만큼 철학, 과학, 수학, 음악, 그 외 많은 사상을 넘나들며 자유로이 탐구하는 수업방식은 없다고 생각한다..

    세인트 존스가 선택한 고전 공부 커리큘럼의 목적은 자유로운 인간(Free man)을 추구하기 위함이라고 학교는 말한다. 우리에게 지금까지 주어져왔던 사상으로부터의 자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의 한계로부터의 자유, 그래서 결국에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마음껏 탐구할 수 있는, 갇혀있지 않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다. 4년간의 공부를 끝마쳐가는 입장에서 '나는 과연 후리맨, 새장에서 탈출한 새가 되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53819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77250 


    세인트 컬리지 출신 조한별씨 기사.

    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53819
    Freemason의 꼬릿말입니다
    + 오늘을 위한 기도


    잃어버린 것들에 애달파하지 아니하며
    살아있는 것들에 연연해하지 아니하며
    살아있는 일에 탐욕하지 아니하며
    나의 나됨을 버리고
    오직 주님만
    내 안에 살아 있는
    오늘이 되게 하소서

    가난해도 비굴하지 아니하며
    부유해도 오만하지 아니하며
    모두가 나를 떠나도 외로워하지 아니하며
    소중한 것을 상실해도 절망하지 아니하며
    오늘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격려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누더기를 걸쳐도 디오게네스처럼 당당하며
    가진 것 다 잃고도 욥처럼 하느님을 찬양하며
    천하를 얻고도 다윗처럼 엎드려 회개하는
    넓고 큰 폭의 인간으로
    넉넉히 사랑 나누며
    오늘 하루 살게 하소서
    (김소엽·시인, 1944-)


    조선건국이래로 600년동안에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번도 바꾸어보지 못했고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말을 했던 사람은 또는 진리를 내세워서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전부죽임을 당했고 그 자손들까지 멸문지화를 당했고 패가망신을 했다.

    600년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있어도 모른척하고 고개 숙이고 외면해야했어요
    눈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밥이라도 먹고 살수 있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제 어머니가 제게 남겨 주었던 제 가훈은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대로 눈치보며 살아라."

    80년대 시위하다가 감옥간 우리에 정의롭고 혈기넘치던 우리 젊은 아이들에게
    그 어머니들이 간곡히 간곡히 타일렀던 그들의 가훈 역시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고만둬라. 너는 뒤로 빠져라."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의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번 쟁취하는 우리의 역사가 이루어져야만이
    이젠 비로소 우리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이야기 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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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7/01/08 21:09:01  125.209.***.49  쓸개빠진남자  383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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