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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love_12633
    작성자 : matsu
    추천 : 2
    조회수 : 397
    IP : 112.164.***.202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16/10/09 04:52:30
    http://todayhumor.com/?love_12633 모바일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귀엽다는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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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널 처음 본 게 언제였는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처음에 말이 꽤 많은, 두세 번 날 찾아왔던 내 손님이었다.

    일 년에 한번, 또는 반 년에 한번씩 찾아와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고선 돌아가곤 했던, 비밀이 많던 사람.

    작년 여름.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진 지 3주쯤 지났을 때 네가 찾아왔다.

    그때, 내 눈에 네가 처음으로 '남자'로 보였던 것 같다.

    그날 나를 집에 데려다 주면서 우리는 알고 지낸 지 3년만에 번호를 교환했고 좋은 누나 동생으로 알아가자며 헤어졌다.

    내 카톡 프사의 고양이를 보고서 너는 엄청나게 좋아했다. 고양이를 엄청나게 좋아하는데, 누나가 고양이를 키우는 분인 줄 몰랐다며.

    다음날 퇴근시간 때쯤, 네가 찾아왔다.

    그리고 그날 일이 끝나고, 우리는 치킨을 먹으러 갔다. 적당히 즐거운 대화, 적당히 흘러가는 시간.

    오랜만에 즐겁다고 느꼈다. 그때 네가 입은 옷은 검은 티셔츠에 조끼가 달려 있었는데, 내가 그 옷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자 너는 당황하며 이 옷 이제 그만 입어야겠다고 했다. 안그래도 이모가 대체 그 옷 언제까지 입을거냐고 했단다. 

    근데 솔직히 그 옷은 진짜 에러긴 했다. 그뒤 단 한 번도, 너는 그 옷을 입지 않았다. 진짜 버렸는지는 모르겠다.

    그날 집에 돌아와서, 우리는 일주일 간 연락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좋은 누나동생이 될 것 같았다. 그래, 아무 일 없이, 조용히 좋은 인생의 벗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치킨을 먹을 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구할 수 있는지 물었다. 개봉한 지 십 년도 넘은 프랑스 영화였는데,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구할 수가 없었다.

    너와 치킨을 먹고나서 일주일 째, 너에게서 연락이 왔다.

    '누나'
    '누나가 말한 게 이거예요?'

    함께 보낸 사진은 내가 보고싶어한 영화의 인트로.

    내가 엄청 기뻐했더니 usb있으면 옮겨주겠다고 했다. 바쁜 사람인 걸 아는데 내 말을 기억하고 내 부탁을 어렵게 들어주었다는 게 더 고마웠다.

    그래서 이틀쯤 지나, 내가 먼저 연락했다.

    퇴근길 밤공기는 8월 특유의 알싸함과 적당한 포근함에 감싸여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맥주 한 잔 하고싶다고 했더니 너는  사주시면 나가겠다고 농담을 걸어왔다.

    집까지 반쯤 갔던 발걸음을 돌려, 너를 만나러 갔다.

    백팩을 매고, 흰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너와 다시 만나서 근처의 공원으로 갔다.

    공원 입구의 편의점에서, 나의 추천으로 우리는 호가든을 한 캔씩 쥐었다. 너는 처음 마셔본다며 호기심과 의심이 섞인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빈 벤치로 걸어가면서 난 처음으로 네 향기를 느꼈던 것 같다. 아무 생각 없이 네 손목을 쥐고 코끝을 갖다 대며 무슨 향수 쓰냐고 물었을 때, 너는 이름이 복잡해서 잘 생각나지 않는다며 다음에 알려주겠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그때 너는 당황했던 것 같다. 둔한 나라서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만 넌 그때 처음으로 날 '여자'로 느꼈다고 했지.

    그날 벤치에 앉아서 우리는 밤을 꼬박 샜다.

    새벽 2시, 호가든 캔을 처음 뜯은 그 시간부터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다. 너의 일상과 나의 일상, 고양이, 달, 향기, 그리고 호가든..

    다행히 너는 호가든을 마음에 들어했고 두 캔이나 마셨다. 내가 만났었던 전 남자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네가 어떻게든 위로해주려던 게 생각난다.

    전 남자친구가 나와 커플링 맞추는 걸 사귀는 내내 피했다는 얘기를 하다 우울해진 나를, 너는 조심스럽게 끌어안아 주었다.

    새벽 6시, 미명으로 하얘지는 하늘, 난 그제서야 네 머리카락이 붉은색을 띤다는 걸 발견했다. 신기해하는 내게 너는 생긋 웃으며 핑크브라운으로 염색한 거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날 집에 바래다 준 네가 집에 도착한 걸 확인하고, 나는 너와 같은 시간에 잠이 들었다.

    그날은 8월 9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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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0/09 14:54:06  211.36.***.1  케잌냠냠  426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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